호러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의 <로프트>(Loft)가 지난 24일 미로스페이스에서 공개됐다.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소설가 레이코(<역도산>의 나카타니 미키)는 좀 더 대중적인 연애소설을 차기작으로 써보라는 출판사 편집장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집필 활동에는 도무지 진전이 없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침이 계속되자 레이코는 편집장이 소개한 교외 저택으로 이사한다. 이삿짐을 풀던 레이코는 바로 옆집에 고고학자 요시오카(<러브레터>의 도요카와 에쓰시)가 살고 있으며 그가 근처 늪에서 발굴한 고대 여인의 미라를 보관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원인불명의 기침을 계속하던 레이코의 입에서 늪에서 파낸 듯한 시커먼 진흙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의 원혼이 레이코의 집을 맴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음울하고 기묘한 미궁인 <로프트>는 제작한 지 무려 4년 만에 국내 개봉한다.

호러의 실타래가 엉켜있는 이상한 사랑영화

구로사와 기요시는 일본 호러의 거장 정도가 아니라 현대 호러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다. 그는 <큐어>와 <회로>같은 작품을 통해 일본사회의 집단적 무의식을 파헤치는 동시에 현대인의 두려움과 죄의식을 집요하게 탐구해왔다. 한국의 미로비젼과 함께 제작한 <로프트>는 기요시의 전작들과 주제와 스타일을 공유하는 작품이지만 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 기요시의 설명처럼 이 영화는 “많은 호러적 요소들이 들어간 이상한 사랑영화”에 가깝다. 레이코와 요시오카의 로맨스는 점점 진행됨에 따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공간 속에서 헤매고, 관객에게 던져진 여러가지 복선들은 해답 없이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로프트>를 기요시의 걸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회로>, <큐어>와 비교하면 허점이 많은데다가 장르적인 세공술도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로프트>가 대중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미지근한 평가를 받은 이후에 기요시는 그의 최대 걸작 중 한편인 <절규>를 만들었다. 이미 국내외 영화제들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절규>는 아직 정식 개봉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4년이나 기다려서야 <로프트>를 볼 수 있었으니 <절규>도 좀 더 기다려야한다. <로프트>는 <절규>를 갈구하는 팬들의 절규를 조금이나마 달래줄 소품이다.

글. 김도훈 ( 기자)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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