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MBC 화 밤 9시 55분
<배트맨 비긴즈>의 악당 듀카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속임수와 쇼도 때로는 훌륭한 무기가 된다.” 혼자서 도시 전체의 악당과 상대해야 했던 배트맨은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등장을 깜짝쇼로 만들어 강한 첫인상을 남겼다. 드라마 마지막 순간에 정말 ‘짠’하고 등장한 덕만이 노린 것 역시 바로 이러한 효과였을 것이다. 예언, 일식, 그리고 예언자 비담의 외침에 이은 화려한 등장. 말하자면 시각적 ‘선빵’이었던 셈이다. 아직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심지어 쌍둥이가 나면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른다는 예언 때문에 정당한 공주 자리조차 가질 수 없던 덕만이 현실 정치에 개입할 명분을 얻기엔 더할 나위 없는 쇼였고, 그래서 일식이 중요했다. 하늘의 뜻이라는 상징성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역시 하늘의 뜻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말 그대로 그것은 상징일 뿐, 진정한 하늘의 뜻은 아니다. 미실도 덕만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혼란이 생긴다. 주인공들은 일식 같은 자연 현상이 물리적 세계에서 벌어질 뿐 어떤 당위를 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제작진이 덕만에게 부여한 여왕으로서의 당위성은 오직 북두의 여덟 번째 별뿐이다. 단순히 자기모순에 빠졌다는 걸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선덕여왕의 명분을 위해 제작진은 하늘의 승인을 끌어들여왔지만 정작 주인공들은 그 승인이 자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북두의 여덟 번째 별조차 덕만의 권력 쟁취에 당위성을 주지 못한다면 대체 그녀는 무슨 권리로 여왕이 될 수 있는 걸까. 우리가 그녀를 응원할 이유가 있긴 한 건가. 바로 여기서 물리적 하늘과 정치 윤리적 하늘을 동일시하던 이 드라마가 잊고 있던 어떤 명제가 생각난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글 위근우

‘청계천과 가든파이브’ MBC 화 밤 11시 5분

서울 문정동 가든파이브는 성격이 참 복합적인 건물이다. 당초 건립목적은 허름한 청계천 상인들의 이주대체상가이나, 남녀 청춘스타를 내세운 광고 속 가든파이브는 도시남녀들이 쇼핑백을 들고 활보하는 복합문화공간이고, 2009년 8월 현재 가든파이브의 실제 모습은 허허벌판에 홀로 선 매머드급 미분양 건물일 뿐이다. 25일 의 심층취재 대상은 2003년 서울시의 약속만 믿고 청계천 복원과 상가 이주에 합의했다가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린 청계천 상인들이었다. 6∼7천만 원대 분양가를 장담하던 이명박 시장의 서울시는 상인들과의 서면합의서 작성을 회피했고, 땀내 나는 청계천 시장 분위기와 거의 무관한 럭셔리 쇼핑몰이 완공되는 사이 분양가는 2∼3억 원대로 뛰었고, 상인들은 80% 이상이 이주를 포기한 채 죽어버린 청계천 상권에서 배신감을 넘어 한스럽다며 울먹이는 처지가 됐다. 성기연 PD의 취재에서 돋보인 것은 사태 이면의 심층을 놓치지 않은 후반부, 바로 ‘사람’을 외면하는 개발정책에 대한 지적이었다. 만물상·공업사·중고가전점이 자리 잡기엔 지나치게 으리으리한 외관, 금속 용접·연마는커녕 쓰던 기계도 들여놓지 못할 만큼 천장도 하중도 낮은 아파트형 공장, 과도한 건축비 부담을 상인들에게 떠넘기는 분양가 책정, 허름한 청계천이 부끄럽다는 듯 당초 건설계획에 없던 문화특구 콘셉트만 반복 선전하는 홍보전략. “백화점식 번쩍번쩍한 건물에 이런 지저분한 물건 갖고 들어가겠냐”는 어느 상인의 항변은 ‘건축의 기본은 사람’이라는 기본 명제마저 배반하는 서울시의 무신경과 세련됨에 대한 집착을 고발하고 있었다.
글 김은영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