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호가 스푼을 내밀며 “누나, 아~”라고 말했을 때, 전국의 누나들은 모니터와 TV를 핥을 기세로 “아-”를 외쳤다. 물론 입 안에 들어온 것은 먼지 섞인 공기뿐이었지만. 1993년생, 열 살 때 찍은 영화 <집으로>로 알려졌고 MBC <태왕사신기>와 SBS <왕과 나>에서 그윽한 눈빛을 지닌 소년으로 자라 희망을 주더니 드디어 ‘마의 16세’마저 무사히 넘기고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유승호에게 격한 애정을 불태운 것은 또래보다 오히려 2, 30대 이모뻘 누나들이었다. 그리고 고작 열일곱 주제에 ‘소간지’의 분위기마저 갖춘 이 소년을 ‘연하남’으로 바라보는 것이 혹여 범죄가 아닌가를 내심 고민했던 누나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이 유산균 음료 광고는 소비자들의 숨은 욕망을 완벽하게 구현해 낸 성공작이었다. (비록 띠동갑이지만) 승호에게 업혀보고 싶고, (비록 30대지만) 승호가 떠 주는 대로 받아먹고 싶었던 누나들은 이제 “너라고 불러줘!”만 외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예측불허, 최근 발표된 유승호의 새로운 제과 CF는 그가 아직 성장기를 한참 남겨놓은 십대 소년임을 확인시키며 누나들에게 깊은 반성과 통한의 시간을 갖게 만들었다.
아이돌이 제3의 성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성 팬들을 향해 언제나 “사랑합니다”를 외치지만 그들이 실생활에서 ‘여자’를 만나거나, 혹은 만난다는 소문만 돌아도 그 상대에게 난도질한 사진과 협박장이 배달되었던 엄혹한 과거. 그에 비해 세상 참 좋아졌다. 스타와 일반인의 가상 연애를 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엠넷 스캔들>에서 아이돌 그룹 2PM의 멤버 닉쿤이 한 일반인 여성 출연자와 1주일 동안 ‘연애하는 척 하는 연애’를 했으니 말이다. 휘성, 김지석 등 앞서의 출연자들이 보다 연애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 반면 닉쿤의 <스캔들>은 ‘스타’와의, 그것도 훈훈한 외모에 젠틀한 매너로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아이돌 스타와의 연애 판타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함께 놀이공원에 가서 데이트를 하고 남들에게 “제 여자친구예요!”라고 소개시키며 자연스런 스킨십까지 하는 이 도발적인 콘셉트는 팬 아닌 여성들까지 ‘열폭’ 하게 만들었고, 일부 팬들은 <스캔들>을 보지 않는 것으로 소심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2PM의 다른 멤버 택연 역시 <스캔들> 촬영 스케줄이 잡힌 상태다.
슈퍼주니어에게 대표곡이 생기는 데 4년이 걸렸다. 열 세 명이라는 초유의 멤버 수, 각종 유닛 활동과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활동 반경은 넓었지만 대중에게 각인될 만한 ‘한 방’이 아직 없었던 슈퍼주니어에게 트렌디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곡이었던 ‘쏘리쏘리’는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SBS <인기가요>의 연출과 카메라팀은 ‘쏘리쏘리’의 무대를 방송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상태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양 손바닥을 비비는 독특한 군무는 물론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 각 멤버들이 이동하고 각자의 안무를 펼치는 식으로 스케일이 크면서도 정교하고 섬세한 무대를 <인기가요> 카메라는 타 방송사의 음악 프로그램에서보다 두 배 가량 많은 컷들을 통해 거의 빠짐없이 담아냈으며 이는 팬이 아니었던 시청자들에게 슈퍼주니어라는 그룹의 이미지를 바꾸어놓는 데 한 몫을 했다.
생계형 아이돌, 짐승돌, 저인망 아이돌…지난 해 데뷔한 7인조 아이돌 그룹 2PM에게는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별명들이 있다. ‘꽃미남’이나 ‘아이돌이 아닌 뮤지션’ 등 흔한 수식어 대신 그들에게 온갖 잡다하고 험하고 웃기고 기이한 이미지를 형성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획사가 아닌 MBC 에브리원 <아이돌 군단의 떴다 그녀 시즌 3>였다. 아이돌의 얼굴에 스타킹을 씌우고 휴게소에서 음식 구걸을 시키는 등 벼랑으로 내모는 이 프로그램의 극한 콘셉트는 특히 ‘인지도 특집’ 편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동대문 한복판에서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한 차례 굴욕을 당한 2PM은 “여학교에서 공연한다”는 제작진의 말에 희희낙락하며 무대를 준비한다. 그러나 관객은 바로 노인대학의 할머님들, 평균 40세 위의 ‘누나’들 앞에서 무대를 펼치고 할머님들의 포옹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커다란 청년들의 모습은 멤버 닉쿤이 출연한 <스캔들>과는 정반대의 효과로 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리고 <떴다 그녀>로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인 2PM은 최근 싱글 2집 활동에서도 각종 음악 프로그램 차트 1위를 기록, 비범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학 입시를 봤던 사람들이 평생 대입 시험을 한 번 더 보는 악몽에서 자유롭지 못하듯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은 평생 입영 통지서를 한 번 더 받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런 의미에서 <해피 선데이> ‘남자의 자격’의 ‘두 번 군대 가기’ 편은 상당히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소재를 다루었지만 ‘오버하는 놈(김성민), 춥다고 지붕 찾는 놈(이윤석), 교관 나이 묻는 놈(김태원)’ 등 예측불허의 행동을 보이는 출연자들의 캐릭터는 이 프로그램을 진부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입만 열면 불만투성이인 이경규, 금방이라도 재활원에 가야 할 듯 형편없는 체력의 김태원, 소풍 온 것처럼 신나 하는 김성민 등 예비군 훈련장에 모인 사회인들의 천태만상을 담은 것 같았던 이 날 방송에서는 특별출연한 남진의 입담마저 ‘아저씨들의 (허세 섞인) 사랑스러움’을 보여주었다. 결국 모든 예능 프로그램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대세를 따르고 있는 요즘, 그 안에서도 틈새시장을 잡아낸 ‘남자의 자격’은 김국진, 이경규, 이윤석 등 한동안 주춤했던 예능인들에게 ‘부활의 자격’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무한도전> ‘프로젝트 런어웨이’ 편은 온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 KOREA>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프로젝트 런웨이 KOREA>에서 경직된 멘트와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이소라는 <무한도전>을 만나자 장난꾸러기 남학생들 앞에 단단히 작정하고 선 교생 선생님처럼 “방송계는 냉정합니다. 진보한 웃음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웃음은 외면당합니다”라는 자기패러디적 대사를 읊어대며 과거의 예능스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물론 이 날 최고의 수훈갑은 개그맨 김경민의 의상을 만드는 미션에서 ‘민석룩’ 도 아니고 ‘명수룩’도 아닌 ‘상어룩’을 디자인한 박명수. 모두의 구박과 무시, 어두운 눈과 떨리는 손끝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직하게 스펀지를 재단하고 이빨을 칠하고 테이프로 둘둘 감아 만들어낸 이 의상이 우승작으로 발표되는 순간은 웃길 뿐 아니라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특히 ‘프로젝트 런어웨이 코리아’ 편은 꾸준히 트렌드를 읽고 반영하는 부지런함이야말로 <무한도전>이 자기복제를 뛰어넘어 여전히 참신한 재미를 주는 힘의 근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KBS <해피 선데이> ‘1박 2일’은 2007년 8월 첫 방송 되었다. 같은 콘셉트의 프로그램을 2년 가까이 만들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올해 들어 ‘1박 2일’은 얼마나 멀고 힘든 곳에 가느냐가 아니라 그 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집중하며 하나의 돌파구를 찾아냈다. ‘시청자 투어’, ‘같이 가자 친구야’에 이어 최근 방송된 ‘집으로’ 편 역시 경북 영양의 농가를 찾아가 멤버들이 주민의 집에 묵으며 농사일을 돕고 함께 게임을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연예인과 일반인들이 함께 등장하는 프로그램에서는 흔히 촌스럽거나 억지스런 연출이 있기 마련이지만 ‘1박 2일’은 그동안 전국을 돌며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친해진 출연자들로부터 평범한 손자 같은 모습을 이끌어냈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가족사진을 찍는 데 성공하면 산간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신선한 해산물을 대접할 수 있다는 미션 역시 속 깊은 제작진의 센스를 보여주었다. 특히 택시 기사로 일하느라 허리가 좋지 않은 아들을 위해 ‘천하장사’ 강호동의 기가 담긴 허리띠를 선물하고 싶다는 할아버지에게 강호동이 허리띠를 풀어 드리는 장면에는 ‘1박 2일’ 이기에 볼 수 있는 독특한 감동이 담겨 있었다.
KBS <개그 콘서트>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어느 날 갑자기 핵폭탄처럼 떨어진 코너였다. 여성 연기자들만의 공간 분장실을 배경으로 고작 네 명의 등장인물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권력관계를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키워드인 진상과 아부와 비아냥으로 풀어낸 이 코너는 군대건 학교건 회사건 아무튼 ‘조직’이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개그였다. 슈렉, 골룸, 헬보이 등 그로테스크한 분장으로 전신을 뒤덮은 개그우먼들 사이에서도 “똑!바로해 이것듀라~”와 희대의 깐죽 연기로 코너에 정점을 찍은 안영미는 일당백의 포스를 내뿜었으며, 특히 그가 ‘대선배’ 역의 강유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릴 때 눈을 가리는 데 사용되었던 소품 ‘닭손’은 그야말로 불가항력적인 웃음을 유발함으로써 ‘강선생님’의 대박을 일구어냈다. 이에 힘입어 ‘강선생님’ 팀은 최근 CF 스타로도 활약하고 있다.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1회에 유희열은 자신을 캐스팅한 제작진의 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꽃보다 남자>에 이어서 또? 변하지 않는 건 미남 마케팅이라는 걸 알겠는데…” 그를 처음 보는 시청자들이라면 ‘방송사고인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KBS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을 비롯해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오랫동안 들어온 애청자들이라면 이 자칭타칭 ‘아이돌의 임금님’의 말씀에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스케치북>에는 아이돌 그룹 카라가 깜짝 출연했다. 초대손님 윤하의 친구라는 인연으로 갑자기 등장한 이들에게 몹시 수줍어하며 “팬이에요”라고 고백한 유희열은 그가 <라디오 천국>에서 페퍼톤스의 신재평과 함께 열광한 바 있는 카라의 노래 ‘Rock you’를 청해 들은 뒤 “제가 살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습니다”라고 감격해 했다. ‘뮤지션’이 ‘아이돌’로 존재하고, 또 이들이 ‘아이돌’에게 열광하며 경계를 허무는 이런 순간이 <스케치북> 만의 매력임은 분명하다.
MBC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어느 순간 ‘붐의 친구를 소개합니다’가 된 프로그램이었다. “붐 친구, 누규? 붐 친구, 누규?”라는 노래로 웃겨야 할 만큼 ‘친구 수급’이 쉽지 않은 프로그램의 특성은 결국 연예인 지망생이나 연예인은 아니지만 유명인들을 출연시켜야 하는 상황에 이렀고, 개그맨 이혁재의 대학 후배라는 이유로 출연한 프로게이머 이윤열 또한 이러한 경우에 속했다. 그러나 연예인보다는 운동선수에 가까운 직업적 특성상 버라이어티에 익숙하지 않은 이윤열이 <스친소>에서 과감히 선보인 ‘로봇춤’은 붐으로부터 “70년대에 유행한 춤”이라는 비웃음을 샀으며 “연봉 3,4억을 피시방 비로 투자한다”는 붐의 발언은 스타크래프트계의 톱스타인 ‘천재’ 이윤열의 팬들과 스타크래프트 유저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는 방송에 출연하는 셀러브리티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는 현 상황, 그리고 서로의 콘셉트가 맞지 않을 때 벌어지는 참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케이스였다. 그러나 어쨌든, 이 날 이윤열에게 호감을 표했던 소녀시대의 유리는 단숨에 스타크래프트 팬들 사이에서 ‘여신’으로 떠올랐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아이돌이 제3의 성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성 팬들을 향해 언제나 “사랑합니다”를 외치지만 그들이 실생활에서 ‘여자’를 만나거나, 혹은 만난다는 소문만 돌아도 그 상대에게 난도질한 사진과 협박장이 배달되었던 엄혹한 과거. 그에 비해 세상 참 좋아졌다. 스타와 일반인의 가상 연애를 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엠넷 스캔들>에서 아이돌 그룹 2PM의 멤버 닉쿤이 한 일반인 여성 출연자와 1주일 동안 ‘연애하는 척 하는 연애’를 했으니 말이다. 휘성, 김지석 등 앞서의 출연자들이 보다 연애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 반면 닉쿤의 <스캔들>은 ‘스타’와의, 그것도 훈훈한 외모에 젠틀한 매너로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아이돌 스타와의 연애 판타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함께 놀이공원에 가서 데이트를 하고 남들에게 “제 여자친구예요!”라고 소개시키며 자연스런 스킨십까지 하는 이 도발적인 콘셉트는 팬 아닌 여성들까지 ‘열폭’ 하게 만들었고, 일부 팬들은 <스캔들>을 보지 않는 것으로 소심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2PM의 다른 멤버 택연 역시 <스캔들> 촬영 스케줄이 잡힌 상태다.
슈퍼주니어에게 대표곡이 생기는 데 4년이 걸렸다. 열 세 명이라는 초유의 멤버 수, 각종 유닛 활동과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활동 반경은 넓었지만 대중에게 각인될 만한 ‘한 방’이 아직 없었던 슈퍼주니어에게 트렌디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곡이었던 ‘쏘리쏘리’는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SBS <인기가요>의 연출과 카메라팀은 ‘쏘리쏘리’의 무대를 방송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상태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양 손바닥을 비비는 독특한 군무는 물론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 각 멤버들이 이동하고 각자의 안무를 펼치는 식으로 스케일이 크면서도 정교하고 섬세한 무대를 <인기가요> 카메라는 타 방송사의 음악 프로그램에서보다 두 배 가량 많은 컷들을 통해 거의 빠짐없이 담아냈으며 이는 팬이 아니었던 시청자들에게 슈퍼주니어라는 그룹의 이미지를 바꾸어놓는 데 한 몫을 했다.
생계형 아이돌, 짐승돌, 저인망 아이돌…지난 해 데뷔한 7인조 아이돌 그룹 2PM에게는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별명들이 있다. ‘꽃미남’이나 ‘아이돌이 아닌 뮤지션’ 등 흔한 수식어 대신 그들에게 온갖 잡다하고 험하고 웃기고 기이한 이미지를 형성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획사가 아닌 MBC 에브리원 <아이돌 군단의 떴다 그녀 시즌 3>였다. 아이돌의 얼굴에 스타킹을 씌우고 휴게소에서 음식 구걸을 시키는 등 벼랑으로 내모는 이 프로그램의 극한 콘셉트는 특히 ‘인지도 특집’ 편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동대문 한복판에서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한 차례 굴욕을 당한 2PM은 “여학교에서 공연한다”는 제작진의 말에 희희낙락하며 무대를 준비한다. 그러나 관객은 바로 노인대학의 할머님들, 평균 40세 위의 ‘누나’들 앞에서 무대를 펼치고 할머님들의 포옹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커다란 청년들의 모습은 멤버 닉쿤이 출연한 <스캔들>과는 정반대의 효과로 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리고 <떴다 그녀>로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인 2PM은 최근 싱글 2집 활동에서도 각종 음악 프로그램 차트 1위를 기록, 비범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학 입시를 봤던 사람들이 평생 대입 시험을 한 번 더 보는 악몽에서 자유롭지 못하듯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은 평생 입영 통지서를 한 번 더 받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런 의미에서 <해피 선데이> ‘남자의 자격’의 ‘두 번 군대 가기’ 편은 상당히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소재를 다루었지만 ‘오버하는 놈(김성민), 춥다고 지붕 찾는 놈(이윤석), 교관 나이 묻는 놈(김태원)’ 등 예측불허의 행동을 보이는 출연자들의 캐릭터는 이 프로그램을 진부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입만 열면 불만투성이인 이경규, 금방이라도 재활원에 가야 할 듯 형편없는 체력의 김태원, 소풍 온 것처럼 신나 하는 김성민 등 예비군 훈련장에 모인 사회인들의 천태만상을 담은 것 같았던 이 날 방송에서는 특별출연한 남진의 입담마저 ‘아저씨들의 (허세 섞인) 사랑스러움’을 보여주었다. 결국 모든 예능 프로그램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대세를 따르고 있는 요즘, 그 안에서도 틈새시장을 잡아낸 ‘남자의 자격’은 김국진, 이경규, 이윤석 등 한동안 주춤했던 예능인들에게 ‘부활의 자격’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무한도전> ‘프로젝트 런어웨이’ 편은 온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 KOREA>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프로젝트 런웨이 KOREA>에서 경직된 멘트와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이소라는 <무한도전>을 만나자 장난꾸러기 남학생들 앞에 단단히 작정하고 선 교생 선생님처럼 “방송계는 냉정합니다. 진보한 웃음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웃음은 외면당합니다”라는 자기패러디적 대사를 읊어대며 과거의 예능스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물론 이 날 최고의 수훈갑은 개그맨 김경민의 의상을 만드는 미션에서 ‘민석룩’ 도 아니고 ‘명수룩’도 아닌 ‘상어룩’을 디자인한 박명수. 모두의 구박과 무시, 어두운 눈과 떨리는 손끝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직하게 스펀지를 재단하고 이빨을 칠하고 테이프로 둘둘 감아 만들어낸 이 의상이 우승작으로 발표되는 순간은 웃길 뿐 아니라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특히 ‘프로젝트 런어웨이 코리아’ 편은 꾸준히 트렌드를 읽고 반영하는 부지런함이야말로 <무한도전>이 자기복제를 뛰어넘어 여전히 참신한 재미를 주는 힘의 근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KBS <해피 선데이> ‘1박 2일’은 2007년 8월 첫 방송 되었다. 같은 콘셉트의 프로그램을 2년 가까이 만들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올해 들어 ‘1박 2일’은 얼마나 멀고 힘든 곳에 가느냐가 아니라 그 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집중하며 하나의 돌파구를 찾아냈다. ‘시청자 투어’, ‘같이 가자 친구야’에 이어 최근 방송된 ‘집으로’ 편 역시 경북 영양의 농가를 찾아가 멤버들이 주민의 집에 묵으며 농사일을 돕고 함께 게임을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연예인과 일반인들이 함께 등장하는 프로그램에서는 흔히 촌스럽거나 억지스런 연출이 있기 마련이지만 ‘1박 2일’은 그동안 전국을 돌며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친해진 출연자들로부터 평범한 손자 같은 모습을 이끌어냈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가족사진을 찍는 데 성공하면 산간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신선한 해산물을 대접할 수 있다는 미션 역시 속 깊은 제작진의 센스를 보여주었다. 특히 택시 기사로 일하느라 허리가 좋지 않은 아들을 위해 ‘천하장사’ 강호동의 기가 담긴 허리띠를 선물하고 싶다는 할아버지에게 강호동이 허리띠를 풀어 드리는 장면에는 ‘1박 2일’ 이기에 볼 수 있는 독특한 감동이 담겨 있었다.
KBS <개그 콘서트>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어느 날 갑자기 핵폭탄처럼 떨어진 코너였다. 여성 연기자들만의 공간 분장실을 배경으로 고작 네 명의 등장인물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권력관계를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키워드인 진상과 아부와 비아냥으로 풀어낸 이 코너는 군대건 학교건 회사건 아무튼 ‘조직’이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개그였다. 슈렉, 골룸, 헬보이 등 그로테스크한 분장으로 전신을 뒤덮은 개그우먼들 사이에서도 “똑!바로해 이것듀라~”와 희대의 깐죽 연기로 코너에 정점을 찍은 안영미는 일당백의 포스를 내뿜었으며, 특히 그가 ‘대선배’ 역의 강유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릴 때 눈을 가리는 데 사용되었던 소품 ‘닭손’은 그야말로 불가항력적인 웃음을 유발함으로써 ‘강선생님’의 대박을 일구어냈다. 이에 힘입어 ‘강선생님’ 팀은 최근 CF 스타로도 활약하고 있다.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1회에 유희열은 자신을 캐스팅한 제작진의 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꽃보다 남자>에 이어서 또? 변하지 않는 건 미남 마케팅이라는 걸 알겠는데…” 그를 처음 보는 시청자들이라면 ‘방송사고인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KBS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을 비롯해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오랫동안 들어온 애청자들이라면 이 자칭타칭 ‘아이돌의 임금님’의 말씀에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스케치북>에는 아이돌 그룹 카라가 깜짝 출연했다. 초대손님 윤하의 친구라는 인연으로 갑자기 등장한 이들에게 몹시 수줍어하며 “팬이에요”라고 고백한 유희열은 그가 <라디오 천국>에서 페퍼톤스의 신재평과 함께 열광한 바 있는 카라의 노래 ‘Rock you’를 청해 들은 뒤 “제가 살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습니다”라고 감격해 했다. ‘뮤지션’이 ‘아이돌’로 존재하고, 또 이들이 ‘아이돌’에게 열광하며 경계를 허무는 이런 순간이 <스케치북> 만의 매력임은 분명하다.
MBC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어느 순간 ‘붐의 친구를 소개합니다’가 된 프로그램이었다. “붐 친구, 누규? 붐 친구, 누규?”라는 노래로 웃겨야 할 만큼 ‘친구 수급’이 쉽지 않은 프로그램의 특성은 결국 연예인 지망생이나 연예인은 아니지만 유명인들을 출연시켜야 하는 상황에 이렀고, 개그맨 이혁재의 대학 후배라는 이유로 출연한 프로게이머 이윤열 또한 이러한 경우에 속했다. 그러나 연예인보다는 운동선수에 가까운 직업적 특성상 버라이어티에 익숙하지 않은 이윤열이 <스친소>에서 과감히 선보인 ‘로봇춤’은 붐으로부터 “70년대에 유행한 춤”이라는 비웃음을 샀으며 “연봉 3,4억을 피시방 비로 투자한다”는 붐의 발언은 스타크래프트계의 톱스타인 ‘천재’ 이윤열의 팬들과 스타크래프트 유저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는 방송에 출연하는 셀러브리티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는 현 상황, 그리고 서로의 콘셉트가 맞지 않을 때 벌어지는 참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케이스였다. 그러나 어쨌든, 이 날 이윤열에게 호감을 표했던 소녀시대의 유리는 단숨에 스타크래프트 팬들 사이에서 ‘여신’으로 떠올랐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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