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훅한 여름의 기운이 넘실대기 시작하던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얘기를 듣지 않지만, 2년 전만 해도 <매거진t> 시절 나는 회사 내 ‘마이너의 기준’으로 불렸다. 1회를 보고 “이거 정말 재밌어요!”라고 내뱉는 순간, 그 드라마는 늘 시청률이 바닥을 쳤고 광고는 안 팔렸으며 대중의 눈 밖에서 멀리멀리 밀려났다. 그 시작은 MBC <메리대구 공방전>이었고, 이후 KBS <한성별곡 正>과 <얼렁뚱땅 흥신소>로 꾸준히도 이어졌었다.

하지만 초여름의 청량한 나무로 우거진 효창공원이, ‘슈퍼에서 라면이나 팔고 손님 없으면 자’라는 친구의 말에도 돼지바 하나 먹고 힘내는 메리가 참 좋았다. 힘들 법도 한데 애써 웃으며 자신의 꿈을 향해 돌진하는 메리와 대구의 모습은 나에게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그들은 전 재산 3만원을 걸고 ‘죽음의 고스톱’을 치고 옥상에서 도라지를 까더라도, 난 지금 무얼 위해 일하고 무얼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뮤지컬배우의 꿈을 접기로 결심하고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눈물로 부르던 메리의 모습이 그렇게 가슴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직접 실험에 뛰어들기 직전 지킬이 부르는 강렬한 결심의 노래인줄만 알았다가, 눈물이 범벅된 채 부르는 메리버전을 들으며 이것이야말로 절절한 꿈에 대한 노래라는 걸 깨닫기도 했었다.

그냥 ‘희미해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날들이 켜켜이 쌓아올려지는 어느 날이면 꼭 이 드라마가 생각나고, 그때마다 다시 꺼내보게 된다. 우직하게 밀고 나갈 줄 알고,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남기지 않았던 메리가 그리워진다. ‘지금 이 순간 나만의 길 당신이 날 버리고 저주하여도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꿈 간절한 기도 절실한 기도 신이여 허락하소서’. 가사가 쉬이 들리지 않는다.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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