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살 어린 동생이 있다. 그 애는 성격이 좋아 늘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고, 인기도 좋았다. 부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마 이런 경험 때문에 크리스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는지 모른다. 최근 시즌 4를 끝으로 종영한 CW의 시트콤 <에브리바디 헤이츠 크리스> (Everybody Hates Chris)는 잘생기고 키 큰 동생한테 주눅 들고,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여동생한테 협박당하고, 자린고비 아버지와 선생님이나 경찰보다 더 무서운 어머니, 흑인 애인이 있고 흑인 문화에 관심 있지만 자세히 보면 상당히 인종 차별적인 담임 선생님, 늘 크리스만 두들겨 패는 학교 깡패, 만날 때마다 1달러씩 뜯어내는 진짜 깡패 등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크리스 (타일러 제임스 윌리엄스)의 이야기다.

크리스 록의 다사다난했던 어린 시절

모두 그럴 때가 있을 거다. 되는 일 없을 때,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으면 괜스럽게 불안해지는 때. 크리스의 생활은 늘 그렇다. 좋은 일이 있으면 자의든 타의든 반드시 나쁜 일이 뒤 따르고, 나쁜 일이 있으면 더 나쁜 일이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크리스가 엄청나게 불행하거나, 위험한 삶을 사는 소년은 아니다. 그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본 일들을 크리스의 시점으로 때로는 과장 시키기거나, 공상을 곁들여 들려준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생활을 했던, 평범한 소년의 이야기다. 부모님은 엄격하지만 자식들을 사랑하고, 동생들은 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 같지만 중요할 때는 같이 뭉쳐준다. 크리스는 동네 학군이 미덥지 않아 어머니의 성화 때문에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는 백인 학교에 다니지만, 덕분에 그렉이라는 좋은 친구도 만난다.

실제로 <에브리바디 헤이츠 크리스>는 스탠드업 코미디계에서 알아주는 크리스 록의 학창 시절 이야기다. 크리스 록이 제작하고 내레이션을 맡아 그가 학창 시절을 보낸 1980년대 뉴욕 브루클린의 베드-스타이 (Bedford-Stuyvesant) 섹션 지역을 배경으로 했다. 그래서 1980년대의 주옥같은 팝송과 랩송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이 시리즈를 19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코스비 가족>이나 <케빈은 12살>, <말콤네 좀 말려줘> 등의 시리즈에 비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에브리바디 헤이츠 크리스>에는 크리스 록의 실제 학창시절과 가족관계를 바탕으로 그만의 독특한 유머 감각이 스며들어 있다. 제목 역시 CBS의 시트콤 <에브리바디 러브스 레이몬드>를 빗대서 붙였다.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유색인종인데!

크리스 록은 지난 2월 <에브리바디 헤이츠 크리스>를 시즌 4를 마지막으로 끝낼 계획을 밝혔다. 어차피 자신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중퇴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같은 이슈를 다루면서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에피소드는 크리스가 학교를 중퇴하는 것으로는 나오지만, 엔딩 장면을 상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검정고시 GED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크리스와 가족의 모습으로 끝난 결말은 HBO <소프라노스>의 황당하면서도 기발한 시리즈 피날레를 그대로 ‘도용’해 폭소를 자아냈다.

<에브리바디 헤이츠 크리스>는 팬의 입장으로 봤을 때 만족스럽게 끝맺음을 했지만, 그래도 서운함이 남는다. CW가 이 시리즈와 함게 <더 게임> 등 흑인이 주요 캐릭터를 맡은 시리즈를 모두 종영시켰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오바마 선거유세가 절정에 이르렀던 지난해 가을에 새롭게 편성된 코미디 센트럴의 <초콜렛 뉴스>와 CNN의 등도 종영된 상태다. 전미유색인종촉진동맹 (NAACP)의 발표에 따르면 2006-2007 시즌 메이저 방송사 내 유색인종 배우들의 출연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이에 대해 방송사 측은 랩퍼 L. L. cool J가 주연하는 의 스핀오프 시리즈나 흑인을 주연으로 한 시트콤 <브라더스>, 흑인 가정을 중심으로 한 애니메이션 <클리브랜드 쇼>, 풋볼 스타가 출연하는 <더 로> 등이 파일럿 에피소드로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비율은 현재 제작 중인 70여 편의 파일럿 에피소드 중 4개에 불과하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선출됐지만, 황금 시간대에 유색인종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살아남기란 여전히 힘들다.

글. 양지현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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