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해야 되는 거냐?” “해야 됩니다. 로커도 이제 친근감이 있어야 돼요.”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에 출연한 유현상이 부부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에 어색해하며 물어보는 것도, 그에 대한 대답도 그가 20년 만에 백두산을 재결성해 오랜만에 공중파에 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대답의 주인공이 부활의 김태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86년 데뷔 이후 25년 동안 록그룹 부활을 이끌어 오면서도 그저 보컬 뒤에서 묵묵히 작곡하고 기타를 연주할 뿐이었던 그 김태원이 80년대 하드록 신을 함께 주름잡던 선배에게 예능 출연자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라니.

25년을 버텼기에 거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 고정 멤버로 출연해 금단 현상 때문에 24시간 내내 멍하니 앉아있고, 줄넘기 한 번을 넘지 못하는 몸 개그를 보여준다고 해서 마치 부활 1집 의 정신이 무너지는 양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작년 9월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 출연 이후 그가 예능 늦둥이가 되어 ‘남자의 자격’과 <샴페인>의 고정 멤버가 되어 활동할 수 있는 지금도 그는 여전히 부활의 김태원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가 아직도 부활이란 밴드를 이끌고 싱글 앨범 발매와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있어서도, “이런 기회를 바탕으로 부활과 록음악에 대한 관심을 높여볼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만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이미지를 배반한 적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해 그에게 어떤 이미지라는 것이 대중 안에서 만들어진 적이 없다. ‘라디오 스타’ 출연 때만 해도 꼬박꼬박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라는 자막이 달려야 했던 무명씨일 뿐이었다. 그와 부활의 역사는 불변의 이미지를 지켜온 기록이 아닌, 비주류인 록을 연주하며 멤버 교체와 대마초 사건 등 모진 풍파 속에서 존재 자체가 소멸되지 않도록 노력해온 생존의 기록이다.

김태원과 부활의 역사가 생존의 기록이었단 것이 그들의 음악 수준이 별로였다는 걸 뜻하는 건 물론 아니다. 이승철과 함께 했던 시기의 ‘희야’와 ‘회상’ 3부작, 이승철 탈퇴 이후의 대표곡인 ‘사랑할수록’과 ‘Lonely Night’, 15년 만에 이승철과 함께 하며 만든 ‘Never Ending Story’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부활 스타일의 서정성이 빛나는 곡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그렇게 잘 알려진 작업을 했단 사실이 아니라 어쿠스틱한 리프와 일렉트릭 솔로가 불협을 이루는 프로그레시브한 대곡인 ‘잡념에 관하여’나 1집의 ‘인형의 부활’을 연상케 하는 헤비리프가 돋보이는 ‘1970’처럼 음악적 퀄리티는 높지만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작업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25년 동안 거장으로 사는 게 아니라 25년을 버텼기 때문에 거장이 되는 거다. 성공과 실패를 포함한 모든 음악적 시도와 활동이 겹겹이 쌓인 25년의 지층처럼 기록될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그가 지층의 가장 새로운 표면 위에서 아직까지 활동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근 예능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 표면 위에서 펼쳐지는 생존의 현재형일 뿐이다.

웃기든 기타를 둘러 메든 현재진행형의 록커

김태원이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목받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삶의 지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현재를 충실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령 ‘Never Ending Story’ 저작권료를 듣고 전화기를 떨어뜨린 사연이나 술이 덜 깨 있어 별명이 ‘들깨’인 아는 형 이야기처럼 지층 깊숙이 숨겨진 자원을 캐내 일회적으로 소비할 때도, ‘남자의 자격’ 첫 미션인 리마인드 웨딩에서처럼 뻔한 시도를 개인사를 통해 좀 더 풍부한 맥락으로 보여줄 때도 그는 그런 과거를 지닌 지금의 김태원을 드러낼 뿐 과거의 영광 혹은 회한에 푹 빠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느끼한 자기고백의 함정에서 자유롭다. 가령 록그룹으로서의 저항 정신이 없어 동시대 시나위나 백두산에게 질책을 받았던 과거를 이야기할 때도 그는 유미주의자로서의 자의식으로 과거를 포장하고 변명하기보단 ‘희야’의 한 소절을 불러줄 뿐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후배들에게 대마초 흡연을 하지 말라고 권할 때도 겪어본 사람 특유의 모든 걸 아는 태도나 보수적인 강압 대신, “그렇게 만든 곡은 다음날 들으면 최악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경험을 담담히 말할 뿐이다. 그렇게 고통도 영광도 어깨에 힘을 뺀 상태에서 말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의 과거사의 맥락 안에서 훨씬 깊이를 갖게 되고, 그의 말은 심리적 공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올해부터 부쩍 예능을 찾는 김태원의 모습은 “부활을 알리기 위해서”라는 멋쩍은 변명이 아니라 해도 결코 로커의 변절 혹은 주접으로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의 예능 전성기는 오래 유지될 수도, 생각보다 빨리 끝날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적어도 그는 현재 자신이 잘할 수 있으면서 음악인으로서의 인지도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활동을 하며 현재를 보내고 있고, 그 시간동안 그와 부활은 26, 27주년을 맞으며 더 두껍게 생존의 기록을 지층에 새길 거란 것이다. 불변은 아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Will Never Die’는 어쩌면 록음악 이상으로 김태원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일지도 모른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