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이렇게 지독한 감기는 처음이었다. 잠깐 기절했다 깨어나면 무의식중에 기사가 하나 완성되어 있을 정도로 고열에 시달렸고, 불도저 밑에 깔렸던 것처럼 존재하는 모든 마디가 쑤셔서 앉아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얼마나 아팠는지 택시를 타고 퇴근을 하기로 큰 마음을 먹은 날, 나는 예정에 없는 인천 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성내역”이라고 행선지를 말하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 보니 택시는 다리 위를 달리고 있었고, 눈앞에는 ‘송내’가 가까워 왔다는 표지판이 빛나고 있었다. 무려 왕복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이유 없이 달렸지만, 아주 나쁜 경험만은 아니었다. 오래간만에 FISHMANS의 ‘ナイトクル-ジング(Night Crusing)’을 플레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FISHMANS의 노래는 기묘하다. 한숨인지 휘파람인지 모를 가벼운 목소리는 듣는 이의 귀에 끈적하게 내려앉아 오래오래 잔상을 남기고, 레게와 엠비언트와 슈게이징과 기타 등등이 섞여있는 음악은 ‘기분’을 표현하지만 결코 ‘감정’을 정확히 그려내는 법이 없다. 도대체 무슨 설명인지 알 수 없다면, 제대로 전달 된 것이다. 바로 그 뒤죽박죽 알 수 없지만 요염하고 허무한 지나간 세기의 필체로 쓴 미완성의 연애소설 같은 느낌이 FISHMANS의 음악에 들어있다. 무엇하나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대신 이들의 음악은 찰나의 기억에 무엇보다 강렬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달리는 차 안에서 야경을 바라 볼 때는 꼭 ‘ナイトクル-ジング’을 들어야 하고, 6월의 오후, 한적한 버스 정류장에서는 ‘Baby blue’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독한 감기가 들었을 때는, 어떤 곡을 들어도 좋다. 몽환적이면서도 포근한 이들의 음악과 약간의 열이 우주 속으로 붕 뜬 것처럼 아득한 기분을 선사할 것이다. 게다가 이 밴드에서 노래를 부른 전대미문의 보컬 사토 신지가 1999년 독감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기묘한 아름다움이 이미 끝나버린 페이지에 쓰여 있다는 안타까움에 더더욱 기분은 멜랑콜리 해질 것이다. 감기가 낫기 전에 한 번 더 이들의 음악을 플레이해야겠다. 마음과 영혼이 공중으로 부양하는 기회가 언제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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