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꽃보다 남자>(이하 <꽃남>)는 올 상반기 최고의 히트작이자 최대 문제작이었다. 아시아 전역을 휩쓴 원작 만화와 일본판, 대만판에 이어 한국에서 이 작품이 만들어지고 방영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음은 물론, 방영 중에도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다. <꽃남>에 열광하는 시청자들마저 열악한 제작 환경과 개연성 부족한 전개, 남발된 OST를 비롯한 무수한 문제들에 분개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 드라마 시스템 안에서 항상 불거져 온 문제였고, 다른 점이 있다면 <꽃남>은 그 모든 문제의 집결체이자 가장 ‘핫’한 드라마였다는 사실이다. MBC <궁>, MBC <궁S>에 이어 <꽃남>을 만든 제작사 그룹에이트의 배종병 기획 PD로부터 3년간 <꽃남>을 만들며 겪은 다양한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처음 <꽃남> 원작 판권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
배종병: 2006년 초쯤 기획팀 직원들이 <꽃남>을 강력히 추천해서 보름에 걸쳐 전권을 읽었다. 초반에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전개되는 걸 보며 점점 매력을 느꼈고, 일본판과 대만판 <꽃남>까지 챙겨보니 상당히 재미있었다. 물론 원작이 워낙 유명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여러 번 만들어진 데다 우리나라 예능에서도 ‘F4’라는 콘셉트가 여러 번 등장했기 때문에 어떤 메리트가 있을지 생각해 봤다. 하지만 F4라는 설정은 여전히 매력적이었고 그걸 한국 배우로 캐스팅했을 때의 효과는 굉장히 클 거라 생각했다.
“‘정말 잘 만들 수 있다’는 공들인 제안서로 판권을 살 수 있었다”
유명한 작품인 만큼 판권 구입도 쉽지는 않았을 텐데.
배종병: 일단 판권을 가지고 있는 일본 슈에이사에 의사를 타진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백지수표를 제시한 회사도 있었고, 아시아권 대형 스타를 캐스팅한다는 계획을 제시한 회사도 있었는데 우리는 그냥 ‘정말 잘 만들 수 있다’는 내용으로 공들인 제안서를 제출했다. 당시 회사에 큰돈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제시한 금액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았는데, 결국 거기서 크게 달라지지 않고 계약을 맺었다. 슈에이사와 원작자 카미오 요코는 그동안 <꽃남>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드라마로 돈을 버는 것 보다 작품을 훼손하지 않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어쨌든 시작부터 계약까지 1년 9개월 정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일본판과 대만판이 이미 아시아 전역에서 히트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국내에서만 팔린다면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어떤 수익 창출을 예상했나.
배종병: 수익을 구체적으로 내다보지는 않았지만 우리 작품이 만들어지면 ‘한류 드라마’가 아니라 한국판 <꽃남>으로 알려지고 해외에 팔릴 거라는 생각은 있었다. 그리고 작년 3월 초 우리가 판권 계약을 맺고 제작에 착수한다는 보도자료를 내놓자마자 2주 동안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선구매 요청이 쏟아졌다. 일본의 아이맥스, 덴츠 등 유수한 회사들을 비롯해 필리핀, 태국, 대만 등에서도 연락이 왔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지만 그 이상의 반응이었다.
<꽃남>은 전체 제작비 65억 원짜리 프로젝트인데, 방송사와 편성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초기 진행에 들어갔다. 제작비는 어떻게 조달했나.
배종병: 초기에 국내에서 투자받은 건 10억 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시장이 악화되면서 드라마 펀드가 다 죽었고, 있는 펀드에도 투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꽃남>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높지 않은 데다 여성 취향의 원작이다 보니 투자자들 대부분은 내용도 잘 모르고 캐스팅도 안 된 작품에 투자하지 않으려고 했다. 해외 촬영도 꼭 나가야 하는데 충분한 비용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크지는 않았다. 마카오에서 촬영을 갈 때는 회사 내에 돈이 없어 일단 사업팀 차장님 개인 카드로 스태프 수십 명의 항공권을 끊기도 했다.
작년 하반기 방영 예정으로 잡혔던 편성이 결국 올 초로 넘어왔다.
배종병: 처음에 KBS에서는 무조건 방송사 내부 감독을 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원작이 설정을 그대로 취한다는 입장이었던 것과 달리 초반 <꽃남>을 맡았던 감독님께서는 등장인물 연령대를 20대로 올리자 거나 한류의 힘은 ‘출생의 비밀’같은 설정에서 나오니 ‘F4’라는 설정만 남기고 전체적으로 바꾸자는 입장이었다. 그 과정에서 진행이 늦어졌고, 9월 방영 예정이었던 드라마가 8월에 편성에서 빠졌다. 그러다 결국 KBS 출신 흥행감독으로 인정받은 전기상 감독이 <꽃남>을 맡기로 하면서 9월 중순에 다시 진행이 시작됐다.
12월에 촬영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기획한 작품인데 왜 그렇게 초반부터 일정이 밀리느냐는 의문도 있었다.
배종병: 전기상 감독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구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카오와 뉴칼레도니아는 1월부터 성수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연내가 아니면 촬영협조를 받을 수가 없었고, 출발 전에 제작진이 손발을 맞춰봐야 했기 때문에 사흘 정도 촬영을 진행하고 바로 떠났다. 작품 하면서 사건사고가 잦다 보니 ‘그룹에이트가 고사를 안 지내서 그렇다’는 말도 들었는데 이번엔 워낙 정신이 없어서 못 지낸 것뿐이다. (웃음)
“김현중보다 무명이었던 이민호가 주목받은 게 놀라웠다”
뉴칼레도니아는 굉장히 생소한 지역인데 나중에 배우들의 후일담을 들어 보니 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
배종병: <꽃남>이 아시아 전역에 알려진 프로젝트다 보니 관광청과 여행사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제안이 들어왔다. 그 중에 우리가 욕심을 냈던 건 그동안 우리나라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은 두바이와 뉴칼레도니아였다. 그런데 두바이는 안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뉴칼레도니아를 선택했다. 자료를 봤을 때는 정말 아름답고 좋았는데 막상 가보니 촬영이 굉장히 힘든 환경이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나?
배종병: 드라마 촬영을 한 적이 없는 곳이라 한국에서 장비를 다 가져가야 했다. 나무 박스 수십 개에 장비를 포장해서 보냈는데 뉴칼레도니아 공항이나 운송회사에서 모두 이런 건 받아본 적이 없다며 패닉 상태에 빠졌다. 게다가 영어권이 아닌 불어권이다 보니 이중으로 통역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물가가 비싸 점심으로 먹는 샌드위치 하나가 3만원 정도였다. 심지어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계속 좋던 날씨가 나빠져 촬영 기간인 7박 8일 동안 매일 비가 왔는데 햇볕은 쨍쨍해서 화상을 입은 스태프들도 있다. 결국 제대로 잠도 못 자고 2회분 촬영을 마쳤는데, 나중에 방송에 나온 화면은 거의 색 보정의 힘이다. 아, 그런데 항공 촬영한 장면은 자료 화면이 아니라 그 후 날씨 좋을 때 <반지의 제왕> 기술팀이 와서 촬영한 거다. 거기에만 4천만 원이 들었다.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무리한 로케이션을 진행한 이유가 뭔가.
배종병: <꽃남>을 만들면서 ‘국가대표 드라마’를 만드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하든 일본판, 대만판과 비교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른 데서 못 보여준 화면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욕심을 낸 거다.
어쨌든 방영 시작 후에는 반응이 뜨거웠다. 예상했던 바인가, 혹은 예상치 못했던 건 어떤 점인가.
배종병: 1회 시청률이 16% 나왔다. 방송 시작 전 “4회 안에 20% 넘겠다”고 말했는데 MBC <에덴의 동쪽>도 잘 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꽃남>이 30%까지 갈 줄은 몰랐다. 그리고 대만과 일본의 경우 ‘루이’, 즉 한국판의 윤지후 역 배우들이 크게 주목받았는데 한국판에서는 그 전부터 스타였던 김현중보다 무명이었던 구준표 역의 이민호가 주목받은 게 좀 놀라웠다.
타겟으로 삼았던 시청층의 반응도 생각했었나.
배종병: 우리는 기획 드라마를 여러 편 만들어왔는데 특히 <꽃남>은 <궁>의 성공과 <궁S>의 실패로 얻은 교훈들을 접목해 만든 작품이다. 이를테면 <궁>은 10대 위주의 작품처럼 보였지만 30대 이상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했기 때문에 <꽃남>도 그런 점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궁S>의 실패를 통해 <꽃남> 역시 방영되면 비판을 많이 받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이 판타지 로망스’라는 표현을 일부러 많이 사용한 것도 그 때문이다.
현실과 떼어서 생각하라, 혹은 학원물이 아니라는 의미인가?
배종병: 그렇다. <꽃남>은 청소년물이 아니라 판타지물이니까 그 점을 감안하고 봐 달라는 의미였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거기에 대한 준비를 하고 포커스를 맞췄다.
“DVD에서는 음악도 수정되고, CG, 편집도 바뀐다”
초반부터 OST 논란이 불거졌다. 내부적으로는 어떻게 받아들였나.
배종병: OST가 10대 취향의 음악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했다. 그대로 만들기는 했는데 BGM이 과잉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꽃남>은 제작사와 기획자들의 영향이 워낙 큰 작품이다 보니 감독의 고유 권한을 지켜드려야 하는 부분도 어느 정도 필요했고, 오준성 음악감독은 전기상 감독과 오랫동안 함께 하며 히트곡을 많이 냈던 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초반에는 사실 여러 가지 이유로 BGM이 약간 과잉될 정도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DVD에서 OST가 수정되나.
배종병: 음악이 좀 바뀌긴 할 거다. CG같은 것도 더 손을 볼 거고, 편집되었던 장면들도 들어간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구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소 엉뚱한 장면에서 끝나는 경우도 많았는데.
배종병: 1회에서 광고가 3개 붙었다가 6회부터 28개 완판이 됐다. 그러자 70분 편성에서 드라마의 분량이 60~62분 정도로 줄었고 엔딩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실 대본이 늦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런 식의 변화와 사건 사고, PPL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면서 엔딩을 지키지 못하고 다음 회로 넘어간 경우가 생겨났다.
특히 중반 이후에는 상황이나 감정을 설명해야 하는 신들이 뭉텅뭉텅 잘려나간 느낌인데 그 이유는 뭔가.
배종병: ‘생방송 촬영’을 하다 보니 스케줄 짜 놓은 걸 소화하지 못하면 다음 전개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을 먼저 찍고 나머지는 빼야 했다. 현장에서 손발이 맞지 않아 놓친 부분도 있고, 작품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배우들에게 광고 촬영을 비롯한 다른 스케줄이 생겨 도저히 조율할 수 없었던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야 하니까 촘촘히 넣어놨던 에피소드 가운데 걷어낸 것도 굉장히 많다.
윤지후(김현중)가 금잔디(구혜선)를 찾아다니는 ‘인간 내비게이션’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캐릭터 성격이 바뀌거나 송우빈(김준) 캐릭터의 비중이 낮았던 것도 그런 이유인가?
배종병: 지후(김현중)가 잔디(구혜선)를 만나려면 비상계단에 가야 하는데 그 장소가 계명대에 있다. 촬영을 하면 인파가 3천명 이상 몰린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그걸 진행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다. 사실 대본에는 청계천을 비롯해 등장하는 장소들이 다양한데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송우빈과 구준희(김현주) 캐릭터를 더 살리지 못한 것도 아쉽다. 특히 구성상 우빈이의 가족사와 준희의 첫사랑 이야기가 후반부에 쭉 나와야 하는데 준표, 잔디, 지후의 에피소드를 녹이다 보니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줄어든 거다. 그렇다고 그 셋의 이야기를 줄이면 드라마의 응집력이 떨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걷어냈다.
PPL로 인해 징계를 받기도 했고 비판도 많았는데.
배종병: 하지만 지금 제작 환경에서는 PPL 없이 드라마를 만들 수가 없다. 과거에는 작품 마지막 화면 하단에 들어가는 바 광고 하나를 넣는 데만 2, 3억까지 했지만 지금은 시장이 다 죽어있기 때문에 그걸 받으면 에피소드 몇 개에 어떤 내용을 녹일지에 대해서도 협의를 해야 한다. 단가는 낮아졌고 다뤄야 할 내용은 늘어났다. 하지만 제작비를 메우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작품 내용과 맞지 않는 PPL은 거절하고 있다.
KBS와의 제작비 계약은 어떻게 되어 있나.
배종병: <꽃남>의 경우 회당 2억 5천~2억 8천만 원 정도의 제작비가 든다. 보통 지급되는 제작비는 1억 2천에서 1억 6,7천만 원 정도인데 우리는 제작사에서 저작권을 더 많이 갖는 대신 회당 4천만 원을 받는다. 그리고 광고 연동제로 해서 광고 완판한 회에 대해서는 7천만 원을 받는다. 즉 총 제작비 65억 원 가운데 방송사에서 받는 건 15억 원이 좀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투자나 PPL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시간과 돈에 여유가 더 있었으면 퀄리티에 욕심냈을 텐데”
전기상 감독의 연출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았다. 내부적으로는 어떻게 받아들이나.
배종병: 전기상 감독님은 굉장히 융통성이 있는 분이다. 감독이라는 입장을 내세우기보다는 기획자들과 협의하고 소통하고, 현실적인 데 맞춰주실 줄 안다. 원작에 대한 이해도 높고, 또 연출 면에서는 시침 뚝 떼고 코미디를 해 버리는 스타일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꽃남>은 그런 면이 좀 필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윤지련 작가에 대해서는 외부적인 상황이나 비판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점이 가장 미안하다.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욕심내고 싶었던 부분은 뭔가.
배종병: 퀄리티다. 한정된 시간 안에 서둘러 찍고, 감독과 작가가 대본을 조율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게 아쉽다. 그러면 화면이나 연출이나 개연성 면에서도 좀 더 욕심을 낼 수 있었을 텐데, 시간과 돈이 늘 아쉽다. 하다못해 엑스트라 넣을 때도 100명 넣고 싶은데 70명만 넣은 것들이 마음에 걸린다.
지금 <꽃남>의 해외 수출 현황은 어떤가.
배종병: 아시아 11개국에 판매됐고, 일본은 4월 중순 위성방송에서 방영된 뒤 7월에는 지상파인 TBS에서 방영된다.
그 이후 좀 더 장기적인 수익을 내다보는 부분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배종병: 일본 DVD 시장이 있고, OST나 사진집, 책을 비롯한 각종 상품 판매를 할 것 같다. 일단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작은 소품 하나도 상품으로서 큰 가치를 하게 될 테니까 그게 중요하다.
앞으로의 드라마 제작 계획은.
배종병: 20부작에서 절반 가까이 촬영한 트렌디 사극 <탐나는도다>를 4월 중순부터 촬영 재개한다. 그 밖에는,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신선한 기획 드라마, 한국에 맞는 시즌 드라마를 해 보고 싶은 바람도 있고 케이블에서도 히트작을 내고 싶다. 케이블이 살아야 외주제작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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