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봄은 WBC와 함께 왔다. 그 마지막 경기인 결승전이자 다섯 번째 한일전이 열린 24일 아침, TV를 켜자마자 “부장님! 저 아픈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하고 소리치는 회사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어딘가에 매인 몸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랜만에 감사하게 느껴졌다. 8회까지 아슬아슬하게 점수를 주고받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던 9회가 지나간 뒤, ‘그래도 잘 싸웠다’는 뉴스의 헤드라인이 떠올라 어쩐지 불길했던 10회 초, 결국 이치로에게 점수를 내주면서 경기는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한국야구의 ‘위대한 도전’은 끝나지 않은 채로 현재 진행형이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인생의 진리를 새삼 확인 시켜준 꽃범호에게 감사를! 이제는 의사(義士)의 반열에 오른 봉중근에게도, 이번 대회를 통해 새로운 별명을 수도 없이 얻은 김삼촌에게도, 모두 감사하다. 마음 같아서는 한 선수, 한 선수 이름을 불러가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들이 보여주었던 끈기와 열정은 이 나라에서, 이 시기에, 하필이면 20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회의가 들게 만드는 수많은 일들 속에서도 눈부시게 빛나는 얼마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부끄럽지 않은 패배를 가슴에 안은 모두에게, 봄의 절정인 4월이 다가오고 있다. 바야흐로, 야구의 계절이다.
글 윤이나
<내조의 여왕> MBC 화 저녁 09:55
<워낭소리>가 벌써 TV로 방영하는가 싶을 정도로 70여 분 내내 들리던 ‘딸랑딸랑’ 소리. 어제 MBC <내조의 여왕>은 퀸즈푸드 직원 부인들이 남편 상관의 부인에게 충성을 다짐하며 ‘딸랑딸랑’ 아부하고 굽신거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천하의’ 천지애는 3개월 인턴으로 들어간 달수(오지호)의 정규직 채용을 위해 한준혁 부장(최철호)의 부인이자 고교 동창인 봉순(이혜영)에게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김홍식 이사(김창완)의 부인 영숙을 위해 특 A급 ‘짝퉁’ 명품 가방을 선물하는 양동 작전을 펼치고, 김과장의 부인인 이슬(황효은)은 그걸 금세 봉순에게 일러바친다. <내조의 여왕>이 제법 잘 만든 코미디라면 이런 캐릭터들의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서도 그 안에 있는 정치적 본질을 놓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KBS ‘1박 2일’에서 김C가 “인생은 줄이야”라고 간명하게 말했듯 조직 생활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어딘가에 줄을 대고, 누군가를 배제해야 한다. 이 드라마는 바른 말만 하는 달수가 좋은 사람인 걸 부정하지 않는 만큼 그가 조직 부적응자인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균형 감각 속에서 거짓 충성의 워낭소리를 들려주는 지애는 ‘내조의 여왕’이 맞다. 그리고 칭찬 하나 더. 회사 단합대회에서 홍식에게 축구경기 첫 골을 일부러 내주는 모습은 군대에서 중대장과 축구해본 남자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다.
글 위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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