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아니 국딩 시절이었겠지. 그 시절 ‘볼만한’ 재패니메이션을 구해보는 방법이 있었다.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당시의 내게는 꽤 큰 금액을 가지고 쫄랑쫄랑 지하철에 올라타 찾아간 곳은 4호선 회현역의 지하상가였다. 가게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곳에 가면 일본에서 들여온 LD를 비디오 테이프로 떠주던 곳이 있었다.

한글화, 한글패치가 당연시되어 있는 요즘엔 그나마 약간의 판독이 가능한 영문판의 매체조차도 꺼리고 있지만, 그 어리던 시절에 자막도 없는 재패니메이션이 뭐가 그리 재밌다고 그 먼 거리를 찾아가 그 큰돈을 주고 그것들을 회 떠오듯 떠왔던 것일까? 불행히도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만화의 꿈을 키우며 자란 나의(지금 세대도 별반 다를 것은 없지만) 기억에 남는 명작들은 <마크로스> 극장판, <뉴건담-샤아의 역습>, <오렌지 로드>,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 등이었다. 그때 나에게 ‘일본’만화를 큰돈주고 사본다고 무려 학급회의 시간에 나를 비난하던 친구에게 “일본과 일본 만화는 별개야!”라는 이상한 논리로 반박했던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일본과 그 일본에서 태어난 애니메이션들에 대한 쓸데없는 단상이 문득 떠오르는 건 내일 벌어질 5전 3선승제의 ‘WBC’(라 쓰고 ‘한일베이스볼클래식’이라 읽는다) 결승전 때문이려나…

글. 신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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