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위의 얼굴이 등장했던 첫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낯선 호텔방에서 그는 난생 처음이었을 남자와의 관계를 앞두고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자신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나라의 풍경이 흘러나오는 TV 화면을 빨아들일 듯 바라보면서 조금은 슬프고 몽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 정확히는 그 크고 깊고 물기어린 눈동자는 이후 내내 이 영화 속의 가장 인상적인 표상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편집이 유달랐던 두 장면 속의 란위다. 하나는 그와 한동이 첫 섹스를 한 뒤 정확히 ‘넉 달 하루’ 만에 재회하는 신. 눈이 비처럼 내리던 날이었다.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작게 미소 짓는 란위는, 그러나 무척 추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동은 그에게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준다. 비교적 길고 고른 호흡의 숏으로 이루어진 영화 속에서 이 신은 유독 짧은 숏으로 란위와 한동의 표정을 번갈아 비추는데, 이것은 기묘하게도 오히려 둘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잔상을 오래 남기는 효과를 준다.

다른 하나는 1989년 6월 4일의 밤. 란위를 찾아 천안문 광장을 헤매던 한동은 마침내 그를 만난다. 첫 번째 이별 뒤 수년만의 재회였다. 불쑥 란위를 숨 가쁘게 끌어안는 한동. 그리고 이 신은 다시 란위의 정면에서 반복된다. 이때 그의 표정은 무어라 표현이 어렵다. 그냥 숨이 막혀온다. 묵직한 통증 같기도 하다. 영화는 그의 표정을 비추는 것만으로 그 날의 처연한 비극과 상처받은 순수를 그대로 전달한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 속 장면을 묻는다. 그러면 늘 가슴이 아프게 조여 오면서 란위의 그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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