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 3년 동안 무명으로 지냈다. 삭발과 함께 스타덤에 올랐다. 악성 루머에 시달렸다. 흥행 영화의 주인공이 됐다. 출연한 영화들이 실패했다. 출연한 드라마가 엄청나게 성공했다.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구설수에 올랐다. 다시 드라마와 영화에서 성공했다. 사귀던 사람과 헤어졌다. 배우가 10여년 동안 활동하다 보면 온갖 좋은 일과 온갖 나쁜 일을 겪는다. 이제 다시 좋은 일이 생길 차례다.
차태현 : 배우. 1999년 MBC <해바라기>, 2008년 MBC <종합병원 2>에 함께 출연한다. 당시 김정은은 온갖 해프닝을 일으키는 환자 캐릭터로 화제를 모았다. 막 데뷔한 여배우가 출연을 위해 삭발을 감행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신인이 과감하게 망가지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도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기 때문. 1996년 MBC 공채 탤런트가 된 이후 3년여를 무명으로 보냈던 김정은은 당시 제작진에게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독하게 했다”고. 이때부터 주연급 여배우로는 드물게 코미디 연기에 능하고, 무엇이든 몸을 던지다시피 하는 김정은의 특징이 만개한 셈. 이런 김정은의 연기 스타일은 자신의 데뷔 과정과도 관련이 있는데, 김정은은 대학 재학 시절 우연히 학교 패션쇼 모델이 되고, 방청객으로 갔던 TV 녹화장에서 진행자가 펑크가 나서 무대까지 오르는 일을 겪으면서 연예인이 되기로 한 독특한 경험 때문에 그 때까지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노력해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했다고. 비교적 순탄하게 스타덤에 오른 듯하지만, 동시에 꽤 다이내믹한 데뷔기간을 겪었던 셈.
정준호 : 배우. 영화 <가문의 영광>과 SBS <루루공주>에 함께 출연했다. 김정은은 “부자 되세요”를 외친 CF와 <가문의 영광>으로 2002년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실시한 ‘가장 좋아하는 모델’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김정은은 코미디 영화인 <재밌는 영화> 출연을 결심했을 당시 주변으로부터 “미쳤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과연 내가 CF 몇 편 찍고 얻은 코믹한 이미지를 콤플렉스로 가져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영화 출연을 결심했고, 이것이 <가문의 영광>까지 이어져 김정은이 대체하기 힘든 주연급 여성 코미디 배우가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얼마 전까지 여주인공은 무조건 청순가련해야 했는데, 이젠 좀 더 친근하고 솔직한 여성을 보고 싶어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는 김정은의 말처럼, <가문의 영광>은 확실하게 망가질 줄 아는, 하지만 동시에 멜로가 가능한 여배우도 대중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모든 여배우가 심은하가 될 필요는 없고, 관객이 좋아하는 게 이거라면 코믹 연기에 있어서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최고가 되고 싶다”는 게 코미디 연기에 대한 당시 김정은의 지론.
실제로 김정은은 코미디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이미지가 망가질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재밌는 영화>에서는 자신의 구토물을 되삼키고, <가문의 영광>에서는 길이 1m가 넘는 뱀을 손에 감은 채 코미디 연기를 하기도 했다. 이 영화들 이후 이런 식의 ‘온 몸을 던지는 연기’는 김정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영화 <나비>에서는 실제로 구타를 당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불어라 봄바람>에서는 다방 종업원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실제 다방 종업원과 자신의 옷을 바꿔 입기도 했다. 이런 연기는 김정은이 “망가지길 주저하지 않는 여배우”와 “오버연기”라는 양 극단의 평을 듣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김정은이 배우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만든 것 역시 분명한 사실. 특히 당시 김정은은 여러 겹치기 출연과 악성 루머 등으로 인해 “의욕적으로 일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배우가 일에 대한 열정이 없어지는 것”을 걱정했던 상황이었으니, <재밌는 영화>와 <가문의 영광> 등의 코미디 영화는 그에게 연기에 대한 의욕을 다시 불러일으킨 셈.
김민종 : 배우. 영화 <나비>에 함께 출연했다. 두 사람은 그 전에 마약 복용을 했다는 악성 루머에 함께 시달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스스로 마약 복용 여부를 검사 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으면서 누명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김정은은 “갑자기 멀리 하다 음성 판정을 받고나서, <가문의 영광> 시사회에서는 축하 전화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또한 <나비>는 <가문의 영광> 이후 승승장구하던 김정은에게 흥행 실패작으로 남았다. 그는 ‘멜로 영화의 주인공’을 하고 싶어 <나비>를 선택했고, 촬영장에서 자신의 촬영분량이 끝나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나, 웃겼어요? 안 웃기죠? 괜찮죠?”라고 물어보며 코미디 연기를 벗어나려 했지만, <나비>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했다. 당시 김정은은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넋 놓고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야 하는 것인지 난감했다”고 할 정도로 당황스러워 했다. 또한 코미디 영화 <불어라 봄바람>의 실패와 함께 그의 코미디 연기가 식상해졌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는 “10가지 칭찬 듣다가도 1가지 험담 들으면 속상해서 못참는” 그의 성격상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김정은은 “다시는 예전 같은 인기를 얻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날 무너뜨리기는 쉽다. 몰아세우거나 자존심 상하게 하면 무너진다. 그래서 더 빈틈을 안 보이려고 바둥대는 것 같다”던 김정은의 태도는 부침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은숙 : 작가. 김정은이 출연한 SBS <파리의 연인>과 SBS <연인>을 집필했다. 두 작품은 모두 김정은의 인기를 되찾게 해 준 작품. 영화에서 실패를 경험할 때 <파리의 연인>이 그를 되살렸고, SBS <루루공주>에서 졸속 제작을 문제 삼아 더 이상 작품에 출연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의 대상이 된 뒤 <연인>의 성공으로 이를 극복했다. 김은숙 작가 역시 <파리의 연인>으로 명실상부한 스타 작가가 됐고, <연인>으로 대중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완성도가 떨어져 상처를 입었다는 <프라하의 연인>의 상처를 어느 정도 극복했으니 서로에게 좋은 파트너였던 셈. <파리의 연인>과 <연인>은 김정은의 연기 인생에서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는데, 두 작품에서 과거에 비해 과장된 코미디 연기는 줄어드는 대신 일상적인 연기 안에서 귀여운 느낌을 주는 자연스러움은 늘어나면서 <가문의 영광>에서 그가 보여준 매력을 좀 더 새롭게 포장할 수 있었다. 특히 <연인>에서는 김정은이 코미디 연기를 상당 부분 줄이면서 그가 좀 더 심각한 분위기도 소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한 <연인>은 그를 이서진과 만나게 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작품. 애초에 이서진은 <파리의 연인>에 캐스팅 될 수도 있었지만 스케줄 문제로 하차했고, 반대로 <연인>에서는 박신양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 출연을 포기해 이서진이 주인공이 되면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됐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사람의 인생은 결코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선아 : 배우. 김정은, 김선아, 김원희는 연예계에서 절친한 사이로 유명하다. 하지만 일에 있어서 이들은 묘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둘 다 코미디와 멜로 양쪽을 오가는 연기에 강하고, 다른 배우들이 소화하길 꺼리는 강한 여성 캐릭터를 소화하는데도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종종 이미지나 배역이 겹치기 때문.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캐스팅 당시에도 김정은과 김선아가 같은 배역에 거론되기도 했다. 특히 <루루공주> 출연 직전에 김선아의 <내 이름은 김삼순>이 방영된 것은 김정은과 김선아를 직접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같이 망가지는 연기라도 김정은이 <가문의 영광>, <파리의 연인> 등 좀 더 귀엽고 예쁜, 판타지에 가까운 여성 캐릭터를 보여줬다면, <내 이름은 김삼순> 등에서 보여준 김선아의 연기는 보다 일상성에 주력했고, 김정은이 코미디를 할 때 더 강한 감정 표현을 하는 것과 달리 김선아는 좀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부실한 스토리와 과도한 PPL 등으로 점철된 <루루공주>는 김정은의 연기가 가진 단점만을 드러내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김정은의 터닝 포인트로 평가 받는 영화 <사랑니>에서 맛 본 새로운 연기는 김정은에게 “참을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의 경계”를 바꿔 놓았고, 겉도는 캐릭터에 불면증까지 시달리던 김정은은 결국 자신의 팬 카페에 “갈수록 반복되는 이해되지 않는 드라마의 흐름을 여러분께 도저히 진심을 담아 이해시킬 수가 없다”며 <루루공주>의 촬영에 불참했다. 이로 인해 김정은은 과도한 PPL과 일정에 쫓기는 드라마 제작 현실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주연 배우로서 책임감이 없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인기는 얻을 만큼 얻었던 김정은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성장통을 겪은 셈.
정지우 : 영화감독. 김정은이 출연한 영화 <사랑니>를 연출했다. <사랑니>는 김정은이 “내 연기 인생의 한 챕터를 넘겨준 영화”라고 말하는 작품. “나를 한 번 발견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선택한 <사랑니>를 통해 김정은은 자신이 로맨틱 코미디 외에도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당시 정지우 감독은 김정은이 “인기의 정점에 서 있는데도 내가 어딘지 불안해 보인다”며 그를 캐스팅했고, 김정은에게 “학원 강사라면 시선은 학생한테 두고 뒤로 손을 뻗어 능숙하게 분필을 써야 한다”며 칠판을 선물했다. 이런 정지우 감독과의 만남은 13살 연하의 고교생을 사랑하는 학원 강사를 연기하는 김정은에게 코미디 영화에서의 큰 몸짓 대신 “얼굴을 줄이고 기분만 느끼는” 연기의 영역을 발견하도록 했고, 일상과 판타지의 경계에 선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비록 <사랑니>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김정은은 <사랑니>를 통해 “남들 시선을 더 이상 크게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됐고, “인생은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모자라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니>와 함께 “잔머리와 현명함이 동의어인줄 알았던” 20대에서 “지구가 자기를 중심으로 도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 30대가 됐고, “몇 초 안에 우는 게 중요한 줄 알았던” 연기자에서 “연기가 이렇게 좋았던 적이 없다”며 연기 자체를 즐기는 배우로 만들었다. 물론 김정은이 이 영화 이후 모든 사람들이 놀랄 정도의 성장을 거듭한 것은 아니다. 김정은은 이후에도 <잘살아보세>같은 코미디 영화에 출연했고, <종합병원 2>에서 힘이 들어간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작품들 사이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선택할 수 있는 배우가 됐다.
임순례 : 영화감독.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연출했다.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가 “나처럼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지내왔고, 살면서 큰 어려움 없이 여기까지 왔지만 고민이나 슬픔이 없는 건 아니다. 나처럼 신세지는 거 싫어하고 ‘힘들어, 봐줘’ 뭐 그런 얘기를 선천적으로 잘 못하는” 것이 끌려 영화 출연을 원했고, 영화 제작사가 걱정할 만큼 약한 체력이었지만 진통제를 맞아 가며 촬영에 임해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했다. 또한 여러 여배우들과 함께 어울리며 촬영장의 즐거움을 느꼈고, 임순례 감독과 친해져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계속 문자를 보낼 정도로 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이기도 했다. 스타성을 유지하면서 배우로서의 입지도 보다 확실하게 다질 수 있었던 것. 여기에 연인인 이서진과 시사회에 동행 하면서 애정을 과시했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시작했다. 2008년은 그렇게 김정은의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시작됐다.
이서진 : 배우. 김정은과 <연인>에 함께 출연했고, 김정은의 연인이 됐다. <연인> 촬영 당시에는 김정은이 김원희에게 “절대 보조개에 넘어가면 안 된다”라는 얘기를 듣고 이서진을 멀리 해 전화번호도 주고받지 않았다고. 그러나 방송이 끝난 뒤 이서진이 김정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 교제를 시작했고, 창문을 열면 상대방의 방 창문이 보일 정도로 서로의 집이 가까워 자주 데이트를 하며 사랑을 키웠다. “(사랑에 관해서는) 운명을 믿는다”던 김정은에게 정말 그런 상대가 나타났던 셈. 그러나 김정은과 이서진은 얼마 전 헤어졌다. 연애는 두 사람의 일인 만큼 제 3자가 누가 잘못했고, 누가 불쌍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김정은은 자신이 스스로 “화나고 기분이 엉망일 때도 카메라 앞에선 언제나 웃어야 하는 게 배우의 힘든 점이다. 그런데 그렇게 웃고 있을 때 문득 나한테 화가 날 때가 있다. 이렇게 사람들을 속여도 되는 건가 라는 착잡함이다”라고 말했던 상황에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김정은은 어쨌든 SBS <초콜릿>에 출연해야 하고, <종합병원 2>에서는 ‘오버연기’ 논란을 받기도 한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일을 겪고, 연예인은 그것을 대부분 노출하는 직업이다. 지금 김정은에게 어떤 위로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김정은이 한 가지만 기억했으면 한다. 배우의 인생은 길고, 오랜 배우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일만큼 좋은 일도 함께한다는 걸.
이지혜 seven@10asia.co.kr
차태현 : 배우. 1999년 MBC <해바라기>, 2008년 MBC <종합병원 2>에 함께 출연한다. 당시 김정은은 온갖 해프닝을 일으키는 환자 캐릭터로 화제를 모았다. 막 데뷔한 여배우가 출연을 위해 삭발을 감행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신인이 과감하게 망가지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도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기 때문. 1996년 MBC 공채 탤런트가 된 이후 3년여를 무명으로 보냈던 김정은은 당시 제작진에게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독하게 했다”고. 이때부터 주연급 여배우로는 드물게 코미디 연기에 능하고, 무엇이든 몸을 던지다시피 하는 김정은의 특징이 만개한 셈. 이런 김정은의 연기 스타일은 자신의 데뷔 과정과도 관련이 있는데, 김정은은 대학 재학 시절 우연히 학교 패션쇼 모델이 되고, 방청객으로 갔던 TV 녹화장에서 진행자가 펑크가 나서 무대까지 오르는 일을 겪으면서 연예인이 되기로 한 독특한 경험 때문에 그 때까지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노력해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했다고. 비교적 순탄하게 스타덤에 오른 듯하지만, 동시에 꽤 다이내믹한 데뷔기간을 겪었던 셈.
정준호 : 배우. 영화 <가문의 영광>과 SBS <루루공주>에 함께 출연했다. 김정은은 “부자 되세요”를 외친 CF와 <가문의 영광>으로 2002년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실시한 ‘가장 좋아하는 모델’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김정은은 코미디 영화인 <재밌는 영화> 출연을 결심했을 당시 주변으로부터 “미쳤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과연 내가 CF 몇 편 찍고 얻은 코믹한 이미지를 콤플렉스로 가져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영화 출연을 결심했고, 이것이 <가문의 영광>까지 이어져 김정은이 대체하기 힘든 주연급 여성 코미디 배우가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얼마 전까지 여주인공은 무조건 청순가련해야 했는데, 이젠 좀 더 친근하고 솔직한 여성을 보고 싶어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는 김정은의 말처럼, <가문의 영광>은 확실하게 망가질 줄 아는, 하지만 동시에 멜로가 가능한 여배우도 대중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모든 여배우가 심은하가 될 필요는 없고, 관객이 좋아하는 게 이거라면 코믹 연기에 있어서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최고가 되고 싶다”는 게 코미디 연기에 대한 당시 김정은의 지론.
실제로 김정은은 코미디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이미지가 망가질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재밌는 영화>에서는 자신의 구토물을 되삼키고, <가문의 영광>에서는 길이 1m가 넘는 뱀을 손에 감은 채 코미디 연기를 하기도 했다. 이 영화들 이후 이런 식의 ‘온 몸을 던지는 연기’는 김정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영화 <나비>에서는 실제로 구타를 당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불어라 봄바람>에서는 다방 종업원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실제 다방 종업원과 자신의 옷을 바꿔 입기도 했다. 이런 연기는 김정은이 “망가지길 주저하지 않는 여배우”와 “오버연기”라는 양 극단의 평을 듣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김정은이 배우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만든 것 역시 분명한 사실. 특히 당시 김정은은 여러 겹치기 출연과 악성 루머 등으로 인해 “의욕적으로 일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배우가 일에 대한 열정이 없어지는 것”을 걱정했던 상황이었으니, <재밌는 영화>와 <가문의 영광> 등의 코미디 영화는 그에게 연기에 대한 의욕을 다시 불러일으킨 셈.
김민종 : 배우. 영화 <나비>에 함께 출연했다. 두 사람은 그 전에 마약 복용을 했다는 악성 루머에 함께 시달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스스로 마약 복용 여부를 검사 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으면서 누명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김정은은 “갑자기 멀리 하다 음성 판정을 받고나서, <가문의 영광> 시사회에서는 축하 전화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또한 <나비>는 <가문의 영광> 이후 승승장구하던 김정은에게 흥행 실패작으로 남았다. 그는 ‘멜로 영화의 주인공’을 하고 싶어 <나비>를 선택했고, 촬영장에서 자신의 촬영분량이 끝나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나, 웃겼어요? 안 웃기죠? 괜찮죠?”라고 물어보며 코미디 연기를 벗어나려 했지만, <나비>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했다. 당시 김정은은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넋 놓고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야 하는 것인지 난감했다”고 할 정도로 당황스러워 했다. 또한 코미디 영화 <불어라 봄바람>의 실패와 함께 그의 코미디 연기가 식상해졌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는 “10가지 칭찬 듣다가도 1가지 험담 들으면 속상해서 못참는” 그의 성격상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김정은은 “다시는 예전 같은 인기를 얻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날 무너뜨리기는 쉽다. 몰아세우거나 자존심 상하게 하면 무너진다. 그래서 더 빈틈을 안 보이려고 바둥대는 것 같다”던 김정은의 태도는 부침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은숙 : 작가. 김정은이 출연한 SBS <파리의 연인>과 SBS <연인>을 집필했다. 두 작품은 모두 김정은의 인기를 되찾게 해 준 작품. 영화에서 실패를 경험할 때 <파리의 연인>이 그를 되살렸고, SBS <루루공주>에서 졸속 제작을 문제 삼아 더 이상 작품에 출연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의 대상이 된 뒤 <연인>의 성공으로 이를 극복했다. 김은숙 작가 역시 <파리의 연인>으로 명실상부한 스타 작가가 됐고, <연인>으로 대중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완성도가 떨어져 상처를 입었다는 <프라하의 연인>의 상처를 어느 정도 극복했으니 서로에게 좋은 파트너였던 셈. <파리의 연인>과 <연인>은 김정은의 연기 인생에서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는데, 두 작품에서 과거에 비해 과장된 코미디 연기는 줄어드는 대신 일상적인 연기 안에서 귀여운 느낌을 주는 자연스러움은 늘어나면서 <가문의 영광>에서 그가 보여준 매력을 좀 더 새롭게 포장할 수 있었다. 특히 <연인>에서는 김정은이 코미디 연기를 상당 부분 줄이면서 그가 좀 더 심각한 분위기도 소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한 <연인>은 그를 이서진과 만나게 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작품. 애초에 이서진은 <파리의 연인>에 캐스팅 될 수도 있었지만 스케줄 문제로 하차했고, 반대로 <연인>에서는 박신양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 출연을 포기해 이서진이 주인공이 되면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됐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사람의 인생은 결코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선아 : 배우. 김정은, 김선아, 김원희는 연예계에서 절친한 사이로 유명하다. 하지만 일에 있어서 이들은 묘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둘 다 코미디와 멜로 양쪽을 오가는 연기에 강하고, 다른 배우들이 소화하길 꺼리는 강한 여성 캐릭터를 소화하는데도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종종 이미지나 배역이 겹치기 때문.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캐스팅 당시에도 김정은과 김선아가 같은 배역에 거론되기도 했다. 특히 <루루공주> 출연 직전에 김선아의 <내 이름은 김삼순>이 방영된 것은 김정은과 김선아를 직접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같이 망가지는 연기라도 김정은이 <가문의 영광>, <파리의 연인> 등 좀 더 귀엽고 예쁜, 판타지에 가까운 여성 캐릭터를 보여줬다면
정지우 : 영화감독. 김정은이 출연한 영화 <사랑니>를 연출했다. <사랑니>는 김정은이 “내 연기 인생의 한 챕터를 넘겨준 영화”라고 말하는 작품. “나를 한 번 발견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선택한 <사랑니>를 통해 김정은은 자신이 로맨틱 코미디 외에도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당시 정지우 감독은 김정은이 “인기의 정점에 서 있는데도 내가 어딘지 불안해 보인다”며 그를 캐스팅했고, 김정은에게 “학원 강사라면 시선은 학생한테 두고 뒤로 손을 뻗어 능숙하게 분필을 써야 한다”며 칠판을 선물했다. 이런 정지우 감독과의 만남은 13살 연하의 고교생을 사랑하는 학원 강사를 연기하는 김정은에게 코미디 영화에서의 큰 몸짓 대신 “얼굴을 줄이고 기분만 느끼는” 연기의 영역을 발견하도록 했고, 일상과 판타지의 경계에 선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비록 <사랑니>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김정은은 <사랑니>를 통해 “남들 시선을 더 이상 크게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됐고, “인생은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모자라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니>와 함께 “잔머리와 현명함이 동의어인줄 알았던” 20대에서 “지구가 자기를 중심으로 도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 30대가 됐고, “몇 초 안에 우는 게 중요한 줄 알았던” 연기자에서 “연기가 이렇게 좋았던 적이 없다”며 연기 자체를 즐기는 배우로 만들었다. 물론 김정은이 이 영화 이후 모든 사람들이 놀랄 정도의 성장을 거듭한 것은 아니다. 김정은은 이후에도 <잘살아보세>같은 코미디 영화에 출연했고, <종합병원 2>에서 힘이 들어간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작품들 사이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선택할 수 있는 배우가 됐다.
임순례 : 영화감독.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연출했다.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가 “나처럼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지내왔고, 살면서 큰 어려움 없이 여기까지 왔지만 고민이나 슬픔이 없는 건 아니다. 나처럼 신세지는 거 싫어하고 ‘힘들어, 봐줘’ 뭐 그런 얘기를 선천적으로 잘 못하는” 것이 끌려 영화 출연을 원했고, 영화 제작사가 걱정할 만큼 약한 체력이었지만 진통제를 맞아 가며 촬영에 임해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했다. 또한 여러 여배우들과 함께 어울리며 촬영장의 즐거움을 느꼈고, 임순례 감독과 친해져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계속 문자를 보낼 정도로 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이기도 했다. 스타성을 유지하면서 배우로서의 입지도 보다 확실하게 다질 수 있었던 것. 여기에 연인인 이서진과 시사회에 동행 하면서 애정을 과시했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시작했다. 2008년은 그렇게 김정은의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시작됐다.
이서진 : 배우. 김정은과 <연인>에 함께 출연했고, 김정은의 연인이 됐다. <연인> 촬영 당시에는 김정은이 김원희에게 “절대 보조개에 넘어가면 안 된다”라는 얘기를 듣고 이서진을 멀리 해 전화번호도 주고받지 않았다고. 그러나 방송이 끝난 뒤 이서진이 김정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 교제를 시작했고, 창문을 열면 상대방의 방 창문이 보일 정도로 서로의 집이 가까워 자주 데이트를 하며 사랑을 키웠다. “(사랑에 관해서는) 운명을 믿는다”던 김정은에게 정말 그런 상대가 나타났던 셈. 그러나 김정은과 이서진은 얼마 전 헤어졌다. 연애는 두 사람의 일인 만큼 제 3자가 누가 잘못했고, 누가 불쌍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김정은은 자신이 스스로 “화나고 기분이 엉망일 때도 카메라 앞에선 언제나 웃어야 하는 게 배우의 힘든 점이다. 그런데 그렇게 웃고 있을 때 문득 나한테 화가 날 때가 있다. 이렇게 사람들을 속여도 되는 건가 라는 착잡함이다”라고 말했던 상황에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김정은은 어쨌든 SBS <초콜릿>에 출연해야 하고, <종합병원 2>에서는 ‘오버연기’ 논란을 받기도 한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일을 겪고, 연예인은 그것을 대부분 노출하는 직업이다. 지금 김정은에게 어떤 위로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김정은이 한 가지만 기억했으면 한다. 배우의 인생은 길고, 오랜 배우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일만큼 좋은 일도 함께한다는 걸.
Who is next강명석 two@10asia.co.kr
김정은이 출연한 영화 <불어라 봄바람>의 음악 감독을 맡은 윤종신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