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부의 아들 강석(박시후)과 종갓집 딸인 단아(윤정희)는 만나기만하면 싸운다. 그런데 호숫가 유원지에서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한단다. 둘의 사이가 갑작스럽게 진전된 것 같다 했더니, 주영광 조감독의 설명에 금방 의문이 풀린다. “18회에 나올 장면입니다. 12월은 되어야 방송 되겠네요.” 날씨가 추워질 것을 우려해 미리 야외 신을 소화해 둘 요량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이날따라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 버렸고, 호숫가의 체감 온도는 한겨울 못지않다. 혹한기를 대비하기 위해 스태프들은 쉬는 시간마다 어느 브랜드의 방한복이 더 좋은지 의견을 나누고, 지나가던 행인들은 배우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아유, 이렇게 추운데.”하고 제작진을 걱정해 준다.

그런 강추위 속에서 박시후는 공을 던져 인형을 떨어뜨리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인형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급기야 박시후는 제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코트를 벗어 던진다. 심지어 셔츠 소매를 풀어 팔뚝까지 걷어 부친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제 살에 찬바람이 감겨드는 냥 표정이 일그러지지만, 박시후의 표정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사람 진정제 좀 사다 먹일게요.”라며 박시후를 말리는 윤정희는 앵글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허리 아래로 묶어 두었던 점퍼를 걸쳐 입고 온열기 앞으로 다가간다. 퍽. 그런 윤정희의 등에 둔탁하게 공이 날아와 꽂힌다. 범인은 손이 발갛게 얼어버린 박시후다. 그러나 맞은 사람은 배시시 웃고, 던진 사람은 오히려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스탠바이!” 감독님의 목소리에 더욱 팔을 걷어 올리는 박시후는 아직도 찍을 신이 많이 남아 있다. 춥고 힘들지만 어쩌랴. 작품의 영광을 위해서 카메라는 다시 또 돌아간다.

오늘 현장의 한마디 : “화장실이 그나마 따뜻해요.”
완전 무장한 스태프들이 보기에 목도리 하나 달랑 하고 나타난 취재진의 차림은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었나보다. 하루 종일 밖에서 고생하는 제작진에 비할 바 아니니 염려하지 말라고 해도 숨 쉴 때 마다 입김이 허옇게 뿜어져 나오는 상황에서 추위를 숨기기란 불가능 한 일. 몰래 뒤에 숨어서 펜을 쥔 손을 녹이고 있는데 FD가 다가오더니 중요한 비밀인 냥 한마디 건넨다. “화장실에 좀 다녀오세요.” “네? 괜찮은데요.” “아니… 화장실이 그나마 따뜻하거든요.” 아하, 좀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는 스태프에게 ‘땡땡이친다’는 장난 섞인 핀잔이 쏟아지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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