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쟤는 누구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곡을 들어보겠습니다.” 약 한 달 전 장기하가 출연했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배철수는 ‘싸구려 커피’를 그렇게 소개했고, 그날 게시판엔 ‘오늘 처음 듣는 음악인데 가사가 재밌네요’라는 감상평이 올라왔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장기하는 이름도 못 들어본, 혹은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냥 거기까지인 낯선 존재다. 하지만 그 반대지점의 누군가에게 그는 종교적 열정의 대상인 장교주다. ‘인디계의 서태지’라는 장기하의 별명은 그가 가진 팬덤의 독특함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준다. 많은 주류음악인들은 10점 만점에 10점에 도전하고, 7점 이상을 기록하면 스타라는 이름을 얻는다. 수도꼭지를 틀면 수돗물이 나오듯 TV를 틀면 공중파를 타고 얼굴을 드러내는 이들과 비교해 공중파 음악방송 출연 자체가 화제가 되는 장기하의 점수는 많아야 5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영역 안에선 서태지이고 이효리다. 그래서 5점 만점에 5점이다. 그것이 장기하가 확보한 독특한 위치다.

‘재미지상주의자’의 출현

사실 지난 해 여름 장기하와 얼굴들을 결성해 ‘싸구려 커피’로 인디 신의 주목을 받을 때만 해도 그는 아기자기하면서 달착지근한 시부야계 음악이 주류를 이룬 인디 신에서 토속적 맛이 나는 음악을 추구하는 조금 특이한 루키였을 뿐이다. 물론 ‘싸구려 커피’는 인디와 메이저를 통틀어 근 몇 년 동안 나온 곡 중 무기력한 청춘에 대한 가장 탁월한 자화상이었지만 눅눅한 비닐 장판 위를 걷는 꼬질꼬질한 청춘의 감성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88만원 세대를 대변하기 위해 음악한 건 아니”라 하고, “재미 외에 밴드가 그 이상의 무슨 덕목을 갖춰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이 ‘재미지상주의자’의 가벼운 태도는 그의 음악에 공감하진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는 굳이 누군가의 대변자가 되려 하기보다는 즐거움의 제공자가 되려 했고 위트 있는 가사와 의뭉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나지막한 독백을 들으며 스타벅스 마니아도 ‘싸구려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그가 인터넷 공연 동영상을 계산적으로 이용해 지명도를 높였는지, 그토록 커다란 신드롬을 예상하고 ‘나를 받아주오’를 부르며 미미 시스터즈와 춤을 췄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단 재밌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재료라는 사실이다. 많은 네티즌들이 합성사진을 비롯한 UCC를 통해 장기하와 얼굴들을 ‘가지고 논 건’ 장기하의 의도는 아닐지언정 우연 역시 아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드롬 안에서 그는 지난해 상반기의 요조와 함께 인디 신 안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인기를 얻은 뮤지션이 될 수 있었다.

10점 만점의 세계에서 지켜낸 5점의 영역

다만 공연이 아닌 부흥성회라는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얻은 장교주 신드롬과 싱글 1만장 이상 판매의 원인이 온전히 70년대 음악에 오마주를 바치는 뮤지션 장기하 개인의 능력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것은 그의 음악과 퍼포먼스,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생이라는 출신 성분과 무언가 전혀 새로운 것을 원했던 네티즌 및 리스너들의 요구 등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하나의 현상이었다. 만약 최근 발매한 장기하와 얼굴들 1집이 거둔 성과가 주목할 만하다면 일시적 현상을 넘어 자신이 확보한 영역에서의 독보적 지위를 확실히 했기 때문이다. 물론 선주문 8000장이 매진되며 음반판매 일일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그의 앨범에 좀 더 거시적이고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 고무돼서 그와 인디 음악이 주류 음악계를 점령했다고 말하는 건 무리가 있다. 음반 판매량과 순위는 분명한 팩트지만 그 뒤에는 음반 시장의 침체라는 현상이 깔려있다.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싱글을 거쳐 공장에서 찍어낸 앨범을 성공시킨 인디 신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은 기본적으로 5점 만점의 영역에 어울리는 방식이고, 이것이 주류 음악계에 신선한 자극은 줄 수는 있어도 가능한 대안으로 제시되긴 어렵다.

그래서 ‘별일 없이 산다’로 돌아온 장기하의 활동은 5점 만점에 5점을 받던 인디계의 신성이 10점 만점의 세계에서도 먹힐 점수를 기록해서가 아니라 10점 만점의 세계에서도 자신만의 5점 만점 영역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주위에서 어떤 호들갑을 떨어도 이번 앨범의 성과는 일차적으로 “부모님 용돈 없이 밥값과 술값, 차비 정도는 가능”하게 된 것이고, 수상한 시절에 로커에게 필요한 일관된 목소리를 요구해도 그의 앨범에서는 ‘기름진 땅이 나온다길래 죽을 똥 살 똥 왔는데 여긴 아무 것도 없’는 (‘아무 것도 없잖어’) 상황과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별일 없이 산다’)는 감정이 천연덕스럽게 공존한다. 걷던 길을 유지하며 여전히 재밌는 가사와 음악적 시도를 통해 그는 여전히 5점 만점에 5점인, 다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자신의 세계를 살고 있다. 미지근한 콜라를 마시다 담배꽁초가 입에 들어가도 ‘별일 없이 산다’고 대답할 것 같은, 무심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표정과 함께.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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