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웨일은 밤하늘을 질주하는 우주선의 승무원 같다. 늘씬한 의상에 까맣고 동그란 단발머리. 완급을 조절하며 ‘로켓 펀치’ 혹은 ‘로봇’, ‘캡틴’ 같은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노랫말로 녹여내는 당당한 목소리는 특히 그렇다. 주저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 없이 라디오에서건, 음악 페스티벌에서건, 혹은 통신사 광고 음악에서건 듣는 사람을 사로잡는 그 목소리는 ‘지루하게 선명하기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롭게’ 살자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그녀의 노래는 너무 선명해서 흥미롭다. 그러나 무대 아래의 웨일은 수줍다. 낯선 아가씨다. 어깨에 짊어진 기타 케이스, 시원한 눈매, 미묘하게 긴장된 미소는 분명 그녀의 것이지만, 빼꼼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작게 두리번거리는 몸짓,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는 종종 걸음, 셔터가 터질 때 마다 어색하게 갸웃거리는 표정은 고래보다는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어리죠?”

“실제로 보면 많이 놀라시죠. 생각보다 애기 같다. 많이들 그러세요.” 그리고 캐득캐득. 그녀는 노래를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매사에 자신감 없고 쑥스러움 많은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평한다. 그러나 실제와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을 속이는 것이 재미있는지 웃음에는 유쾌한 장난스러움이 묻어난다. 영어 가사가 더 편해 보인다고 하자 이번엔 웃음이 먼저 터진다. “큭큭. 메이크업을 해 주시는 분들은 아직도 제가 런던에서 십 년쯤 살다 온 줄 알고 있어요. 외국 생활 했냐고 물으시길래 조금 장난을 쳤죠. 사실은 한 달 여행이 전분데.” 장난기에 더해, 키우던 강아지 얘기를 하면서 “내 동생들인데, 엄마가 아는 분 댁에 줘 버리신 거 있죠!” 발끈 했다가 “제가 라디오 게스트로 나가면 ‘애교 작렬’이라고 문자가 많이 와요”라고 은근히 자랑을 하기도 하는 모습은 이십대 중반에 접어드는 그녀의 실제 나이보다도 더 어린 소녀의 느낌마저 준다.

야심찬 소녀와 뮤지션의 이중생활

그런 소녀의 눈에 바다가 출렁이고, 그 안에 고래가 떠오르는 순간은 역시 음악 이야기를 할 때다. 그녀가 좋아한다기에 틀어놓았던 존 메이어의 ‘Everyday I Have The Blues’를 능숙하게 따라 부르더니 “이 앨범, 로스앤젤레스 라이브는 특히 좋아해요. 차에서 매일 들어요. 이 공연 블루레이도 나온 거 아시죠? 플레이어가 없어서 아직 보질 못했는데”라며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낸다. 음악에 너무 빠져서 다른 취미를 가질 여유도 없다는 그녀의 최종 목표는 싱어 송 라이터. 그래서 작곡 공부도 하고, 기타 연습에도 열심이란다. “비비킹은 그만의 비브라토가 있잖아요. 기타를 울려버린다고 하는 거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잘 웃는 소녀와 야심찬 뮤지션. 둘 중 어느 것이 그녀의 진짜 모습인지 혼란스러워 마시라. 무대라는 경계를 놓고 그녀는 유연하게 이중생활 중이다. 친구들과도 우스갯소리는 곧잘 하지만 노래방에는 절대로 같이 안 간다. “사실, 애들이 제가 부르는 노래는 지루하대요.” 이번엔 조금 작게 캐득캐득.

오디션에서 불렀다는 ‘서른 즈음에’와 ‘그리움만 쌓이네’를 이은미와 노영심의 곡으로 더 익숙해 하는 그녀는 스스로의 표현처럼 “아직 어린”나이다. 그래서 그녀의 앞에 펼쳐진 날들은 수평선조차 지워진 밤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특별한 목소리로 순조롭게 데뷔를 하고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그녀에게 기대를 하는 것은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그녀가 언젠가 발견하게 될 그녀만의 음악, 고래의 노래다. 밤바다를 헤엄치는 고래가 어디쯤 있는지 알고 싶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 귀를 기울이면 된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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