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에 미치면 고생한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진리다. 10년 전 H.O.T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이돌 팬이란 몸 고생 마음고생에 지갑 걱정까지 최소 3중고를 지고 사는 존재다. 특히 세월의 흐름에 발맞춰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아이돌 관련 상품들은 팬들의 발목을 붙들며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끌어들인다. 요즘같이 얼어붙은 경기에도 여전히 치열하고 분주한 곳, 월급이 동결된 누나들도 주저 않고 지갑을 여는 그 곳, ‘10 FOCUS’의 두 번째 기사는 바로 그 아이돌 시장에 대한 이야기다. 데뷔 전부터 기획사를 통해 시작되는 아이돌 마케팅 유형 분석과, 아이돌 시장의 최대 소비자인 어느 직장인 팬의 일상도 가상으로 재구성해 담았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팬 여러분, 부끄러워하지 마시라. 미친 세상, 신나게 미칠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아미고’는 올해 데뷔한 5인조 아이돌 샤이니의 노래 제목이다. “아름다운 미녀를 좋아하면 고생한다”는 알쏭달쏭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어쨌든 이 곡을 타이틀로 한 샤이니의 정규 1집 리패키지 앨범은 발매 한 달도 되지 않아 만 장도 넘게 팔렸다. 요즘같이 침체된 가요 시장에서, 신인 가수의 ‘리패키지’ 앨범이 그만큼 팔렸다는 사실은 곧 팬덤의 규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팬덤의 규모를 따지자면 역시 동방신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1월 15일 열린 2008 Mnet Km Music Festival(이하 MKMF)에서 동방신기는 4집 앨범 <미로틱>으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9월 말 발매된 이 앨범은 30만 장 이상이 팔렸다. 동방신기의 유노윤호는 수상소감에서 자신들의 기획자인 “사랑하는 이수만 아버지”를 부르고 공식 팬클럽을 향해 “사랑한다. 카시오페이아!”라고 외쳤다. 기획자와 아이돌과 팬, 이들이 바로 아이돌 시장을 형성하고 움직이는 3주체다.

팔 수 있는 건 CD뿐이 아니다

90년대 후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H.O.T 시절부터 팬덤이 갖는 구매력은 남달랐다. 인기 아이돌의 새 앨범이 나오면 열성 팬들은 CD를 최소한 세 장씩 샀다. ‘감상용’, ‘보관용’, ‘증정용’이 각각의 용도였다. 여학교 앞 문구점에서는 아이돌 그룹의 ‘프로필 사진’도 불티나게 팔렸다. 한 달에 한두 번, 비슷한 배경에 비슷한 포즈와 표정을 한 아이돌 그룹의 사진이 새로 깔리면 여고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의 사진을 놓치지 않으려 줄을 서서 용돈을 털었다. 아이돌을 내세운 향수와 음료수도 나왔다. 빵이나 과자에 멤버들의 포토 카드를 넣어 팔았고, DNA 상품까지 나왔다. 모든 팬이 이것들을 다 사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 모든 것을 다 사는 팬도 있었다. <세븐틴>이나 <평화의 시대>같은 아이돌 주연의 영화도 개봉했다. 영화의 완성도나 자신의 취향과는 관계없이, 팬들은 보러 갔다. 애초부터 팬에게 선택의 여지란 없었다.

영화에 비하면 같은 기획사 가수들끼리 모여 내놓는 여름 댄스곡 앨범이나 겨울마다 내놓는 캐롤 앨범은 비교적 양반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정규 앨범에 신곡이 몇 개 추가되고 디자인만 바뀐 ‘리패키지’ 앨범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니 앨범’이니 ‘싱글’이니 헷갈리는 이름들도 늘었다. 뭐가 뭔지 잘 모른다면, 새로 나오는 것들을 빼놓지 않고 다 사는 수밖에 없다. 동방신기의 <미로틱>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두 가지 버전으로 발매되었다. A버전에는 사진집과 노래 12곡이, B버전에는 DVD와 노래 10곡이 수록되어 있다. 지난 번 활동 이후 1년 7개월 동안 동방신기를 기다렸던 팬들에게는 앨범 두 장을 함께 사는 일쯤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발매된 C버전에는 새로운 사진과 멤버들의 자작곡을 포함해 노래 16곡이 담겨 있다. A, B 버전을 가지고 있는 팬이라면 물론 C버전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언젠가 D버전이 나온다면 그 때는 컬렉션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야 한다. 그래서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열성 팬들은 CD를 세 장 이상 산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당시 십대 팬 열 명에게 열 장 팔던 앨범을 이제는 이십대 팬 두 명에게 다섯 장씩 팔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어찌 결제를 안 하리

게다가 최근에는 앨범 발매나 공연 활동처럼 공적 영역에서의 만남을 넘어 아이돌과 팬이 사적 영역에서 1대 1로 소통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UFO 문자’를 통해서다. 아이돌이 각 그룹별로 대표 번호를 받고 팬들이 관련 사이트에 가입해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의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멤버들은 시간 날 때, 혹은 기분 내킬 때 답장을 해 준다. 팬이 한 번 문자를 보내는 데는 ‘우표’가 3백 원 어치 든다. 물론 답장을 받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러나 “시험 잘 봐요. 감기 조심하고^^” “오늘도 쿤모닝하세요~”같은 소소한 대화는 팬과 아이돌 사이의 친밀감을 그 어느 때보다 증폭시켜 줄 뿐 아니라 ‘유사 연애’의 형태마저 띤다. 그래서 여기에 한번 빠져든 팬들은 저도 모르게 월 정액제를 결제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과거에 비해 아이돌 팬의 수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의 구매력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뜻한다.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아이돌 팬덤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여성 팬들이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초기부터 팬덤을 떠나지 않은 채 경제력을 지닌 성인이 되어 적극적으로 아이돌 관련 상품을 소비하고 있다. 그 사이 한국 가요 시장은 붕괴되었지만 아이돌 시장은 남은 이유다.

누나 팬, 아이돌 시장의 최대 주주

이런 기형적 형태의 시장 안에서 기획사의 목표는 역시 구매력이 높은 성인 팬을 확보하고 이들로부터 지속적인 충성도를 얻어내는 것이다. 음원을 사는 대중도 고객이지만 음반을 사고 공연에 오는 팬은 VIP 고객이다. 그래서 아이돌 마케팅의 방식은 점점 디테일해지고 타겟은 명확해진다. 2004년을 열었던 동방신기의 데뷔곡 ‘허그’가 ‘여성 전반’을 향한 달콤한 고백이었다면 2008년 샤이니의 데뷔곡 ‘누난 너무 예뻐’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누나’만을 향한 과감한 구애다. 잠시 정체 상태에 빠져 있던 아이돌 시장이 2006년 빅뱅의 데뷔와 함께 다시 불붙은 것도 이들이 기존 아이돌의 팬이 아니었던 성인 여성 상당수를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MKMF에서 빅뱅의 멤버 탑이 여덟 살 연상의 가수 이효리와 키스 퍼포먼스를 연출한 것은 소녀 팬들의 ‘오빠’를 넘어 누나 팬들에게 ‘남자’로 어필할 수 있다는 선언이자, 이 정도로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시장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시장성이 검증된 아이돌은 마침내 CF를 찍는다. 보통 시작은 교복이고 끝은 휴대폰이다. 그 행보가 어디쯤에서 멈추느냐를 결정짓는 가장 큰 힘 가운데 하나가 팬의 구매력이다. 팬들 역시 자신이 앨범에, 관련 상품에, 유료 투표에 들이는 돈이 결과적으로 ‘오빠’ 혹은 ‘아가’들의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결국, 아이돌에 미치면 고생한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하지만 ‘사서’하는 고생이든 ‘사면서’ 하는 고생이든 어쩔 수 없다. 누가 뭐래도 팬에게 아이돌은 ‘산소같은 너’인 걸.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