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우빈 기자]
KBS2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에서 이외상을 연기한 배우 이창엽. / 조준원 기자 wizard333@
KBS2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에서 이외상을 연기한 배우 이창엽. / 조준원 기자 wizard333@
“아직 ‘왜그래 풍상씨’의 외상이에게서 헤어날 준비가 안 됐어요. 선배들과 돈독한 정을 쌓았고, 연기자로서 하고 싶은 연기를 다 해봤거든요.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저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던 작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참 힘이 됐고, 앞으로의 제 연기 인생에도 힘이 될 작품일 거예요.”

반항과 방황, 그리고 안쓰러운 청춘. 최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에서 이창엽이 연기한 이외상은 그런 캐릭터였다. 풍상이네 5남매 중 막내인 이외상은 겉으로는 거칠고 감정적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외로웠고, 애정에 목마른 남자였다. 비록 풍상(유준상 분)에게 간을 주지는 못 했지만, 풍상의 부족한 통장을 채워주려고 제 목숨을 걸 만큼 형을 사랑했던 인물이었다. 철없다는 댓글을 볼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는 이창엽을 서울 중림동 텐아시아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10. 시청률도 높고 현장 분위기도 좋았던 드라마가 끝났어요. 기분이 어때요?
이창엽 : 부산으로 포상 휴가를 다녀왔는데 놀면서도 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다가 서울로 오는 길에 마음이 몽글하더라고요. 드라마가 끝났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선배들을 만나서 그냥 참 좋아요.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아서 앞으로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10. 드라마 안에서 유일하게 로맨스가 있었어요.
이창엽 : 외상이만 로맨스가 있었던 것에 대해서 조금 죄송한 부분도 있었죠. 근데 외상이와 영필(기은세 분)이의 로맨스는 답답하고 슬픈 이야기 안에서 시청자들의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부분이 된 것 같아요. 나중에는 그 로맨스마저 답답해지지만요. (웃음) 실제로 외상과 영필의 로맨스에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뿌듯하게 촬영을 했어요. 기은세 누나랑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회가 된다면 로맨스 코미디처럼 밝은 작품에서 만나자고 했어요.

10. 이전 작품인 MBC ‘부잣집 아들’에서도 연상의 여인 홍수현과 로맨스였죠. 연하남 이미지로 계속 가도 될 것 같은데요.
이창엽 : 물론 그렇게 되는 건 좋지만 감히 도전을 못 하겠어요. 사실은 제가 노안이라는 말을 29년 평생 듣고 살다가 이제야 제 나이로 보시는 분들이 많아졌거든요. 하지만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웃음)

10. ‘왜그래 풍상씨’의 시청률이 굉장히 좋았어요. 배우 입장에서도 시청률이 높으면 적당한 긴장감과 행복함 덕분에 연기할 때 좀 더 흥이 오를 것 같아요.
이창엽 : 시청률이 잘 나와서 제 자신을 많이 견제했습니다. 흔들리거나 긴장이 풀어질까 봐 스스로를 다그치면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대본 리딩도 시간이 될 때마다 했는데, 누가 더 완벽하게 해오는지 경쟁도 있었어요. 근데 저한테는 너무 선배들이라서 경쟁하기보다는 선배들 속도에 맞춰서 잘 따라붙자는 생각으로 임했죠. 낙오되지 않도록요.

이창엽은 “밝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밝혔다. / 조준원 기자 wizard333@
이창엽은 “밝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밝혔다. / 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문영남 작가의 특징 중 하나가 인물들의 이름에서 성격과 결말을 대충 알 수 있다는 점인데요. 외상이는 풍상이네 5남매 중 유일하게 짐작이 안 가는 인물이었죠. 캐릭터 연구를 어떻게 했나요?
이창엽 : 처음에는 저도 외상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작가님께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네가 한 번 생각해봐’라고 하셨죠. ‘외상이가 빚을 지는 거니까 평생 빚진 사람의 마음으로 살아가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사실 시청자 입장에서는 풍상이가 가장 연민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잖아요. 가장의 무게도 짊어졌고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도 있고요. 근데 저는 외상이가 다양한 의미로 짐을 짊어지고 가는 20대 청년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청춘, 방황하는 청춘이 딱 외상이었죠.

10. 연기에 포인트를 둔 부분은?
이창엽 : 형, 누나와 달리 외상이는 아버지가 달랐고,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은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겉보기에는 부성애에 대한 결핍이 있는 인물 같지만 사실 모성애의 결핍이 굉장히 있는 인물이거든요. 그래서 애정 결핍에 초점을 맞췄어요. 대본을 읽으니까 가족들과 있을 땐 대사가 많지 않은데 영필이를 만나면 말이 길어지더라고요. 영필이를 통해 모성애에 대한 결핍을 채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영필이가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기운을 풍기는 인물이니까요. 가족과 있는 외상, 영필과 있는 외상을 비교하면 애교를 막 부리진 않지만 묘하게 달라요. 외상이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웃음) 극 후반부에 엄마 노양심(이보희 분)이 돌아왔을 땐 그동안의 자격지심과 결핍의 결정체가 터지죠. 그래서 엄마에게 잘해주면서 사랑받으려고 노력해요. 순한 양처럼 보이려는 외상에서 철없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사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쾌감이 느껴졌어요. 제가 표현하려고 했던 부분이 바로 그거(철없음)거든요.

10. 모성애의 결핍이나, 영필과 가족들과 있을 때 차이점 등을 설명하는 걸 보니 캐릭터 연구를 철저히 했다고 느껴져요.
이창엽 : 제가 연기를 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캐릭터 분석을 최우선에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석과 연구 말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진정성 있는 연기죠. 준비를 먼저 하고 모르는 것은 선배나 감독님, 작가님에게 물어서 채워나가요. 최민식 선배님의 인터뷰 중에 ‘투박하면 어떤가, 진정성을 담아라’라는 구절을 읽었어요. 그때부터 진정성 있는 연기 무엇인가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10. 외상이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낸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요?
이창엽 : 아무래도 첫 회 첫 장면이 아닐까 해요.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깨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외상이의 캐릭터가 폭발해요. 강렬한 장면 중 하나라 ‘외상이스럽다’라고 하고 싶어요. 장례식 장에서 영정 사진을 깰 수밖에 없던 건 어릴 적부터 받아온 학대와 그로 인한 상처들이 있었기 때문에 타당성과 정당성도 있던 것 같고요. 또 마지막에 마초남(이현웅 분)과 거래를 통해 집을 살리려고 한 것도 외상이 같았어요.

연기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울산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를 자퇴하고 배우를 시작했다는 이창엽. / 조준원 기자 wizard333@
연기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울산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를 자퇴하고 배우를 시작했다는 이창엽. / 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외상이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지 않았다면 풍상에게 간을 줬을까요?
이창엽 : 외상이라면 직접 칼로 살을 찢어서라도 형에게 간을 줬을 거예요.

10. 풍상이네 5남매 중 막내라 예쁨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이창엽 : 정말 예뻐해 주시더라고요. 사실 예뻐해 주신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헤드락을 거시더라고요. 하하. 바닥에서 구르기도 하면서 더 친해진 것 같아요. (이)시영 누나는 편하고 장난도 잘 치셨어요. 딱 장난꾸러기죠. 아홉 살 차이 나는 친누나랑 나이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했어요. 제가 사랑둥이로 자랐는데 누나도 참 예뻐해 주셨어요.

10. 드라마의 인기 때문에 부모님도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요.
이창엽 : 한 번도 그런 말씀을 안 하시던 분들이신데 ‘멋있게 입고 내려와라. 인사하러 가자’ 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으로 사진이나 사인을 부탁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나름대로 효도를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10. 울산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를 다니다 자퇴하고 배우가 됐는데, 어쩌다 연기를 시작할 결심을 했나요?

이창엽 : 컴퓨터를 전공하면서 ‘난 안철수 같은 사람이 될 거야’라고 했는데 완전 다른 일을 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웃음) 18살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청소년 인권에 대한 연극을 보게 됐어요. 당시에는 연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극단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모르지만 일단 극단에 들어갔어요. 중간에 들어가서 참여는 못 하고 스태프로 일하다 대학에 입학했죠. 대학에 연기 동아리가 있기에 취미로 연기를 하면 배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까 해서 오디션에 참가했어요. 근데 떨어졌어요. 연기가 너무 궁금한데 못 하니까 너무 하고 싶었죠. 결국 막연한 궁금증과 호기심 때문에 시작했는데,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멋있는 일인 것 같아요.

이창엽은 “주인공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며 “더 큰 시장을 바라보며 건강하게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 조준원 기자 wizard333@
이창엽은 “주인공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며 “더 큰 시장을 바라보며 건강하게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 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촬영을 하다가 감정이 복받쳐 오른 적도 있나요?
이창엽 : 풍상이 형의 뒷모습을 보면서 우는 장면이 있어요. 차에서 내려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유)준상 형이 와서 제 어깨를 툭툭 치면서 ‘힘들지?’라고 하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어요. 거의 눈물을 먹었다고 봐야죠. 연기할 때도 그 감정이 쭉 갔어요. 애틋했고 마음이 아팠죠.

10. 외상이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창엽: 이창엽의 새로운 면을 많이 봤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랬죠. 지인들이 이창엽보다 이외상 캐릭터가 더 돋보인다는 말을 많이 해줬어요. 배우 입장에서는 역할로 보이는 게 좋은 거잖아요. 그런 말을 들을 때 좋았어요. 사실 댓글에서 중2병, 허세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제가 연기를 잘하고 있다는 말 같아서 좋았습니다. (웃음)

10. 훗날 ‘왜그래 풍상씨’를 떠올리면 어떤 작품일 것 같나요?
이창엽 :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연기하면서 ‘힘들지만 좋아 죽겠다’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참 특이한 작품이죠.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작품이면 좋겠어요. 아직은 나이가 많지도 않고 경력이 많지도 않아서 자신할 순 없지만, 몇 년 후 돌아봤을 때 이 작품이 저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으로 남길 바랍니다.

10. 수고한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창엽 : 솔직히 조금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왜그래 풍상씨’가 힘들게 준비한 작품이었고 잘 마무리도 했지만 작품과 외상이를 너무 쉽게 떠나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본 시간이었어요.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 건 힘든데, 떠나보내는 건 왜 쉬울까 하는 싱숭생숭한 마음이에요. 인터뷰를 하면서 최근 추억을 되새기니 정리가 된 것 같아서 잘 놓아줘도 괜찮다는 말을 제게 해주고 싶어요.

10.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이창엽 : 건강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몸과 마음, 정신까지 다 건강한 배우요.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구름 타고 가듯 흐름대로 가고 싶어요. 늘 도전하는 마음으로 임하겠습니다.

우빈 기자 bin0604@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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