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MBC ‘신과의 약속’에 출연한 배우 병헌./사진제공=더킴컴퍼니
MBC ‘신과의 약속’에 출연한 배우 병헌./사진제공=더킴컴퍼니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되어버린 것 같아요.”

MBC 주말드라마 ‘신과의 약속’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병헌의 말이다. 드라마를 마치고 만난 그는 극 중 안하무인의 재벌 2세 조승훈(병헌)과는 많이 달랐다. 시종일관 조용한 목소리로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평소 집에서 하는 일은 게임과 TV 보기, 앞으로 해야 할 역할과 연기에 대해 생각하기밖에 없다고 했다. 아이돌 그룹 틴탑으로 7년 간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병헌은 2017년 그룹을 나와 ‘라이어’ ‘S다이어’ ‘여도’ ‘그 여름, 동물원’ 등의 연극 무대에 서며 배우로 전향했다. 벌써 데뷔 10년차인 병헌은 그 또래다운 들뜬 마음으로 장밋빛 미래를 그리거나 과거를 얘기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한 목소리로 현재의 자신에 대해 얘기했다.

10. ‘신과의 약속’에서 조승훈 역으로 재벌의 삶을 경험한 소감은?

병헌: 겪지 못하던 삶이라 신선했다. 그래도 나이는 승훈이와 26살로 같았다. 직업과 외적인 면은 달라 표현하기 힘들었지만 그가 꿈꾸는 야심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파격적인 장면도 있었는데 배수빈 선배님이 제임스 딘의 마초적인 모습을 추천해주셔서 참고했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많이 찾아 봤다.

10. 배수빈을 비롯해 선배들이 많았다. 현장은 어땠나?

병헌: 내가 유일한 20대 배우였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초반에 많이 조심스러웠는데, 선배들이 먼저 다가와주셔서 감사했다.

10. ‘신과의 약속’은 오윤아, 한채영의 대립이 중심이었다. 극 중 엄마인 오현경과 조승훈의 결이 달라 힘들진 않았나?

병헌: 넓게 보면 나는 다른 세계관과 상황에 있었다. 오로지 아버지의 꿈과 복수를 위해 살아온 승훈의 면면에 집중했다. 그 상황과 극의 중심을 연결시키는 게 우리 엄마 오현경 선배님이라 많이 의지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밥도 많이 사주셨다. 감동적이었다. 맛집도 정말 많이 알고 계셔서 추천도 받고, 샌드위치도 얻어먹었다. 엄마처럼 나를 먹여주셨다.

‘행복은 뭘까’에 대해 생각한다는 배우 병헌./사진제공=더킴컴퍼니
‘행복은 뭘까’에 대해 생각한다는 배우 병헌./사진제공=더킴컴퍼니
10. 승훈은 재벌 2세였다. “엄마가 그랬지. 행복하지 않으면 돈이 없는지 생각해봐. 나 돈 줘”라는 극 중 대사에 공감하나.

병헌: 나는 행복의 기준이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그렇게 인상적인 대사는 아니었다. 하하. ‘돈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그게 다일까’라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에 전 재산을 기부한 중국 배우의 기사를 읽었다. ‘행복은 뭘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

10. 그럼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뭔가?

병헌: 시간이다.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진을 찍고 있다. 나중에 ‘이 때 내가 뭐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으면 한다. 쓸데없는 사진도 많이 찍으면서 일상을 소중하게 쓰려고 한다. 사진도 별 건 안 찍는다. 그냥 내가 보는 것들. 엄마의 뒷모습, 강아지가 자는 모습 등등을 찍고 영상으로 남긴다. 딱히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단 그냥 일기를 기록하듯이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시간이 좋다.

10. 승훈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다.

병헌: 그런가? 그런 것 같다. 조용하다. 말 수도 없다. 승훈이처럼 딱히 까칠하지도 않다. 승훈이의 꿈이나 야망, 그런 걸 제외하면 그렇다.

10. 극 중 승훈이가 도시를 만드는 이야기가 생경했다. 자신이 직접 도시를 만들어 본다면?

병헌: 나는 안 만들 것 같다. 하하. 승훈이를 하면서 도시 하나를 만든다는 게 정말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돼서 도전조차 안할 거다. 연기를 위해 공부를 많이 하게 됐다. 도시 관련 용어, 경영학 용어가 어려워서 입에 붙이려고 반복 연습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 도시를 만든다는 건 돈도 많이 든다. 극 속에서 열심히 했으니까 나는 안 만들어도 되지않을까.

10. 2017년 그룹을 나온 뒤 1년 동안 꾸준히 연극 무대에 섰다. 데뷔한 지 한참 지났는데 대학로에서 연극을 시작한 이유는?

병헌: 그냥 연기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선배님들이 연기에 대해 알려면 연극을 해보라는 말을 많이 해 주셨고, 연극이 연기의 시작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시작했는데 재미에 푹 빠져버려서 1년 동안 쭉 하게 됐다. 항상 커튼콜을 위해서 연기를 했던 것 같다. 커튼콜에서 관객들의 박수소리에 위안을 받는다. 무대 위에 서 있을 때 ‘내 자신이 뜨겁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연극을 하게 된다.

10. 연기는 언제부터 하고 싶었나?

병헌: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 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해 부모님 옆에서 따라 보곤 했다. 학창시절에도 영화 DVD 같은 걸 계속 모았다. 내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언젠가는 나도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며 자랐다.

10. 미국에도 살았다고 들었다.

병헌: 초등학교 5학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미국에 있었다.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였을 거다. 그런데 그곳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기보다는 반대로 외국에 있어서 한국 드라마를 정말 많이 보게 됐다. 이번 주 드라마가 나오면 다음 주까지 일주일을 기다려서 봐야 하는 때였는데 말이다. 향수를 많이 느끼던 때이기도 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 ‘이 죽일 놈의 사랑’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등. 이거 말고도 되게 많이 봤는데, 당장 생각나는 건 다 슬픈 사랑 얘기 뿐이다.

10.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하다.

병헌: 공부 밖에 안했다. 조용하고. 낯을 되게 많이 가렸다. 지금도 가리지만, 지금 보다 더. 밥 같은 것도 혼자 먹는 조용한 애였다.

병헌./사진제공=더킴컴퍼니
병헌./사진제공=더킴컴퍼니
10. 조용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면 연예인이란 직업이 힘들지 않나.

병헌: 오히려 반대이지 않을까. 평소 내가 잘 못하는 걸 연기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어렵다기보단 섬세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 좋다. 그런데 감정선을 잡는 게 참 어렵다. 연기가 참 어렵고 재미있다.

10. 뚝심 있는 사람 같다. 일관되게 흐르는 정서가 있다.

병헌: 그렇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이다. (웃음)

10. SBS ‘녹두꽃’에 바로 캐스팅됐던데.

병헌: 번개라는 캐릭터다. 조정석 선배님과 얽히는 사연 있는 캐릭터인데 액션도 있어서 재미있을 것 같다. 액션 시연 영상을 봤는데, 지금은 보기만 한 단계다. ‘이걸 어떻게 촬영할까’ 했다. 눈이 즐거워서 기대가 많이 된다.

10. 지난해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3 : 비긴즈’에서는 모태솔로 역을 맡아 망가지는 연기도 했다.

병헌: 처음 드라마를 시작할 때는 그렇게 많이 망가지는 캐릭터인 줄 몰랐다. (웃음) 캐스팅 후에 감독님이 잡아주는 캐릭터와 외적인 모습들을 보니 많이 망가지더라. ‘아, 이 드라마는 그냥 외모 관리는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야식 같은 것도 많이 먹고, 대학생들의 삶처럼 보이기 위해서 술도 많이 마셨다. 자연스럽게 보이기를 원했다.

10. 짧은 시간 동안 차곡차곡 연기 경험을 쌓았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연기 생활에 꼬리표로 느껴지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병헌: 10년 동안 연예계 생활을 해왔다. 굳이 내 10년의 생활에 대한 누군가의 인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꾸준히 내 길을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에 대한 편견이 변화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경험이든 연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뭐라고 해야 할까. 다양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그런데 요즘은 연기에만 빠져 있다. 이러면 슬럼프에 빠졌을 때 나오기가 힘들더라. 너무 한 가지에만 빠져 있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다고는 생각하는데….사람들을 좀 만나고 다녀야겠다.

병헌은 “요즘은 연기에만 빠져 있다”고 했다./사진제공=더킴컴퍼니
병헌은 “요즘은 연기에만 빠져 있다”고 했다./사진제공=더킴컴퍼니
10. 연기 외의 취미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병헌: 평소에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스타일이다. 게임과 TV밖에 안 본다. 공연 보는 것도 주로 연극, 뮤지컬을 보고. 아주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되어 버렸다. 항상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그냥 다른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계속 생기니까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래도 말했듯 요즘은 사진을 찍고 있다.

10. 배우로서 목표가 있다면.

병헌: 꾸준히 관객, 시청자들이 나를 찾아주는 것. 나를 생각했을 때 차기작을 기대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연극을 많이 쉬어서 연극도 하고 싶다. 드라마를 하다 보면 팬들과 만날 기회가 많이 적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고민도 된다.

10. 아이돌 출신으로 팬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 같다.

병헌: 나를 오랫동안 좋아해준 분들이 많으셔서 그 시간들이 감사하다. 여전히 응원해주는 것도. 나와 같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있는 분들로 생각된다. 내가 요즘 건강을 신경 써야 하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건강이 참 많이 신경 쓰인다. 팬들도 다같이 나이를 먹어가니 건강을 잘 챙기셨으면 한다. 동생 팬들은 아직은 안 그래도 되겠지만, 다 같이 영양제 드시고 그랬으면 좋겠다.

10. 뜬금없지만,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뭔가.

병헌: 지금은 머릿속에 ‘녹두꽃’ 생각밖에 없다. 올해 목표도 ‘녹두꽃’이고, 그거 끝나면 가을, 겨울에 어떤 작품을 만날까를 생각한다. 참, 말했지만 건강에 대해서도 생각 중이다. 건강해야 할 텐데….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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