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 ‘살인마 잭의 집’은 살인을 예술이라 믿는 잭이 지옥의 안내자 버지와 동행하며, 자신이 12년 동안 저지른 살인에 대해 고백하는 이야기다. 영화 속 잭은 이렇게 말한다. “옛 성당엔 신만이 볼 수 있는 예술품들이 숨겨져 있고, 그 뒤엔 위대한 건축가가 있죠. 살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를 살인의 예술가, 예술품을 완성하는 건축가가 되고 싶은 그는, 사실 현실에서는 기술자일 뿐이다. 그는 끊임없이 건축가가 되고 싶어 허허벌판에 집을 만들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그리고 12년간 이어져온 살인의 끝, 그가 향한 곳은 지옥의 문턱이다.
결론적으로 ‘살인마 잭의 집’은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상상할 법한 불쾌함에서 한 걸음 더 불쾌한 영화라 할 수 있다. 감독은 반성하지 않는 살인마 잭이라는 인물에 스스로를 투영한다. 영화 속 잭은 기술자이지만 건축가가 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살인을 통해, 시체를 통해 여러 가지를 실험한다. 그는 끊임없이 교양 있는 체, 실험하는 체 한다. 억지에 가까운 잭의 자기변명 사이로 ‘어둠 속의 댄서’ ‘멜랑콜리아’ ‘님포매니악’ 등 이전에 연출한 영화 장면을 삽입하는 과감함을 보이면서 살인마 잭이 느끼는 고통이, 예술가로서 자신이 겪어가는 고통이라고 동일시한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1822년 회화 작품 ‘단테의 조각배’를 인용한 지옥도 장면은 물론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앞서 말한 자신의 영화 등 다양한 예술가와 소재를 차용하면서 잭과 감독 자신, 살인과 예술 사이의 연결고리를 계속 쌓아간다.
라스 폰 트리에는 ‘살인마 잭의 집’을 통해 창작의 고통이 지옥이라는 예술가의 변명과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 지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예술적 함의라기보다는 자위 혹은 변명에 가깝다. 그럼에도 영화를 관통하는 아이디어는 어느 정도 신선하기도 하다. 살인마 잭은 첫 살인을 잭(jack, 자동차 타이어를 갈 때처럼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때 쓰는 기구)으로 시작하고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유명한 재즈 명곡 ‘힛 더 로드 잭(Hit the road Jack)’이 흘러나온다. 등장인물, 도구, 노래로 이어지는 잭의 3중주는 기발하지만, 계속 맴도는 노래 가사는 관객들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게 들려주고 싶은 충고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Hit the road Jack and don’t you come back no more
잭, 떠나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최재훈(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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