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에서 엄초롱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권수현./조준원 기자 wizard333@
권수현은 최근 호평 속에 종영한 tvN 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극본 송혜진, 연출 유제원, 이하 ‘일억별’)에서 엄초롱 역으로 출연한 배우다. ‘일억별’은 잃을 것이 없어 때로는 삶을 게임처럼 여기고, 그 게임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던 ‘위험한 남자’ 김무영(서인국)과 그를 따뜻한 세상 속으로 끌어오고 싶은 유진강(정소민)의 사랑과 죽음을 그린 드라마다. 엄초롱은 유진강을 짝사랑했으나 끝내 포기해야 했다.
밝고 순수한 매력의 엄초롱을 자연스럽게 녹여내 무겁게만 흘러갈 수 있는 극의 흐름에 활력소가 된 권수현을 서울 중림동 텐아시아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실제로 만난 권수현은 목소리도 엄초롱보다 훨씬 낮았고, 좀 더 차분했다. 성격이 엄초롱과는 정반대라고 했다.
“저는 초롱이처럼 목소리가 원래 귀엽지도 않고 감정이 늘 쾌활하지도 않아요.(웃음) 그래서 그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목소리도 일부러 높게 잡고, 호들갑을 떠는 듯한 초롱이 특유의 손동작도 만들었어요. 유제원 감독님이 저와 사전 미팅 후 ‘잘했으면 좋겠다’며 바로 초롱이 역할을 주시기도 했고요.(웃음)”
유 감독은 권수현에게 처음부터 엄초롱 캐릭터를 제안했다고 한다. 원래 ‘유제원 표’ 연출의 팬이었다는 권수현은 “5~6회 대본까지 읽고 촬영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굉장히 흥미롭게 봤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나올 줄 알았다”며 웃었다. 드라마가 끝난 지금, 권수현은 ‘일억별’을 보고 또 보는 ‘빅 팬’이 됐다.
“얼마 전에도 인국이랑 ‘일억별’을 다시 봤어요. 종방연에서 다같이 보기는 했지만 떠들썩해서 집중을 못 했거든요. 인국이랑 15, 16회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맞아서 봤는데, 한마디도 안하고 펑펑 울었어요. 인국이는 보다가 갑자기 가슴에 무거운 무언가가 오는 것 같다고 하고…아직 ‘일억별’이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9회 방송화면 캡처.
엄초롱이 유진강은 사실 김무영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같이 여행을 갔다가 알아차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묵언의 이별을 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울림으로 다가왔다. 권수현은 “초롱이가 이름처럼 항상 초롱초롱하고 발랄한 모습만 보여주다가 힘든 감정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장면이라 고민이 많았다”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라고 밝혔다.
“스크립터(대본대로 촬영되는지 확인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는 사람)가 저한테 엄청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순서대로 촬영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저를 보는 사람인 데다 친한 동생이라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어요. 제 연기가 공감대를 이뤘다는 거니까 너무 감사했어요. 저도 그 장면이 되게 좋았거든요. 소민이한테도 좋은 에너지를 받았어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시덥잖은 농이나 치고 있었는데, 리허설부터 소민이가 점점 불편해지더라고요. 저도 몰입해서 소민이와 더 좋은 호흡을 주고 받을 수 있었어요.”
권수현은 같이 촬영하는 배우들로부터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많이 배웠다고 했다. 유진강의 오빠이자 형사인 유진국을 맡은 박성웅과는 애드리브도 많이 주고 받았다.
“유 과장과 엄초롱의 관계처럼 사석에서도 성웅이 형이랑 친해졌어요. 그래서인지 감독님이 둘이 찍는 장면에서는 컷을 늦게 하시더라고요. 그러면 계속 대본에 없는 연기도 많이 했어요.(웃음) 저도 팬의 입장에서 메이킹 영상을 기다렸는데, 미처 다 담기지 못해 저도 아쉽습니다. 하하.”
권수현은 ‘일억별’에서 같이 호흡을 맞춘 서인국, 정소민 뿐만 아니라 고민시, 서은수, 도상우 등 극에선 거의 마주치지 않은 배우들로부터도 배웠다고 한다.
“나이가 비슷비슷해서 감독님이 미리 친해지라고 자리를 만들어주셨어요. 여섯 명이나 모였는데 신기한 게 모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웃음) 각자 준비한 연기를 일부러 말 안하고 현장에서 보여주면 서로 그 에너지를 주고 받고는 했어요. 다들 서로의 팬이라 연기를 기대했고, 그러한 시너까지 즐겼던 것 같아요.”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은 출연 배우 권수현 스스로가 팬이 된 작품이었다./조준원 기자 wizard333@
권수현은 ‘일억별’을 “계절과 같이 흘러간 작품같다”고 말했다.
“치열했던 여름에 ‘일억별’이 시작해 쓸쓸한 겨울에 끝났어요. 그동안 새파랗게 날이 서 있던 무영이는 무뎌졌고, 초롱이는 여름 같은 캐릭터였다고 느꼈습니다. 제 욕심이겠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겨울 같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인국이랑 성웅이 형을 보면서 배운 것들을 연기로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일억별’에 대해 권수현을 포함한 팬들이 갖고 있는 한 가지 아쉬움은 시청률일 터다.
“언젠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고 믿고 있어요. MBC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2002)도 당시에는 시청률이 별로 나오지 않았는데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야 명작으로 평가받았던 것처럼요. 그때까지 저는 더 공감 가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저에게 주어진 캐릭터로 살아있을 수 있도록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