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한 여고생이 교탁 앞에 섰다. “여러분이 기다렸던 친구가 왔다” 라고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여고생은 수화(手話)로 같은 반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친구들은 일단 박수를 쳤다. 영화의 첫 장면이다. 관객들 중 수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여고생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이때는 알지 못했다.
여자고등학교에서 실종사건이 벌어졌다. 김형사(유재명)는 같은 반 학생 영희(전여빈)와 한솔(고원희)이 사건 전날 실종된 경민(전소니)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면담 끝에 영희, 한솔, 경민 사이에 얽힌 비밀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한솔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 김형사는 영희를 집중적으로 추궁한다.
경민의 엄마(서영화)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갑작스런 딸의 실종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운전 중에 구토를 하고, 주변 사람들의 말 한 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엄마는 딸이 실종된 이유가 영희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진실을 토해내라며 영희를 궁지로 몰아 넣었다.
영희는 하루아침에 가해자로 지목됐다. 형사, 선생님, 같은반 친구들, 절친 한솔마저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아무도 영희의 말을 듣지 않았다. 급기야 영희는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충격적인 사건을 계획하고, 필사적으로 반격을 도모한다.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죄 많은 소녀’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 연출부 출신인 김의석 감독의 데뷔작이다. 한 여고생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이 죄의식,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책임을 전가하며 충돌하는 이야기다. 영희가 가해자로 몰렸지만 실종된 경민 주변의 모든 이들이 떳떳하지만은 않다.
김 감독은 “풀 수 없는 문제에 매달리는 인간의 모습, 본능처럼 자신의 탓이 아니길 바라며 필사적으로 자기와 가장 먼 답을 도출해내려는 가냘픈 인간상을 담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신인 감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날카로운 시선과 패기 넘치는 연출이 돋보인다. 세밀한 전개로 몰입도를 높이며 적절한 시기에 임팩트 있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지루하지 않게 한다. 전하려는 메시지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예산 영화의 한계는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로 넘어선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영희’를 연기한 전여빈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된 이 작품으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전여빈은 궁지에 몰려 고통 받는 여고생을 온 정신과 몸을 다해 연기했다. 빈틈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온전히 ‘영희’가 돼 시선을 압도한다.
대립관계에 있는 경민의 엄마를 연기한 서영화도 만만치 않다. 눈빛부터 말투, 행동 하나까지 장면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수화로 시작되는 첫 장면부터 영희가 굴다리를 지나가는 마지막 장면까지, 사소한 궁금증으로 시작해 끝까지 물음표를 남긴다. 열린 결말에 대한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9월 13일 개봉.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여자고등학교에서 실종사건이 벌어졌다. 김형사(유재명)는 같은 반 학생 영희(전여빈)와 한솔(고원희)이 사건 전날 실종된 경민(전소니)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면담 끝에 영희, 한솔, 경민 사이에 얽힌 비밀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한솔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 김형사는 영희를 집중적으로 추궁한다.
경민의 엄마(서영화)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갑작스런 딸의 실종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운전 중에 구토를 하고, 주변 사람들의 말 한 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엄마는 딸이 실종된 이유가 영희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진실을 토해내라며 영희를 궁지로 몰아 넣었다.
영희는 하루아침에 가해자로 지목됐다. 형사, 선생님, 같은반 친구들, 절친 한솔마저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아무도 영희의 말을 듣지 않았다. 급기야 영희는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충격적인 사건을 계획하고, 필사적으로 반격을 도모한다.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김 감독은 “풀 수 없는 문제에 매달리는 인간의 모습, 본능처럼 자신의 탓이 아니길 바라며 필사적으로 자기와 가장 먼 답을 도출해내려는 가냘픈 인간상을 담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신인 감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날카로운 시선과 패기 넘치는 연출이 돋보인다. 세밀한 전개로 몰입도를 높이며 적절한 시기에 임팩트 있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지루하지 않게 한다. 전하려는 메시지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예산 영화의 한계는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로 넘어선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영희’를 연기한 전여빈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된 이 작품으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전여빈은 궁지에 몰려 고통 받는 여고생을 온 정신과 몸을 다해 연기했다. 빈틈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온전히 ‘영희’가 돼 시선을 압도한다.
대립관계에 있는 경민의 엄마를 연기한 서영화도 만만치 않다. 눈빛부터 말투, 행동 하나까지 장면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수화로 시작되는 첫 장면부터 영희가 굴다리를 지나가는 마지막 장면까지, 사소한 궁금증으로 시작해 끝까지 물음표를 남긴다. 열린 결말에 대한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9월 13일 개봉.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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