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지난 9일 첫 번째 미니음반 ‘큐리어시티(Curiosity)’를 발매한 가수 아이반. / 사진제공=에버모어뮤직
지난 9일 첫 번째 미니음반 ‘큐리어시티(Curiosity)’를 발매한 가수 아이반. / 사진제공=에버모어뮤직
가수 아이반의 취향은 극과 극을 달린다. 고등학생 시절 오아시스 같은 밴드 음악이나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처럼 메시지가 분명한 음악에 빠져 있었다. 대학생이 될 무렵에는 마이클 잭슨처럼 화려한 볼거리를 가진 가수들에게 마음이 끌렸다. 때마침 K팝 열풍이 그가 살던 캐나다 몬트리올까지 불었다. 그는 특히 동방신기의 음악과 무대에 빠졌다. 세련된 노래와 뛰어난 실력에 마음을 빼앗겼다.

급기야 아이반은 스물한 살이던 2011년 9월 한국에 왔다. 가수가 되기 위해서였다. 한국행을 극구 반대하던 부모님을 1년 안에 데뷔하겠다는 말로 설득했다. 아이반은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내딛었을 때가 생생하다고 했다. “‘잘 있어라, 몬트리올!’ 하는 심정으로 떠났어요. 그 때의 설렘은… 혼자 영화 한 편 찍었다니까요. 하하하.”

그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기획사에 이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3개월 안에 오디션에 붙겠다는 다짐을 그는 이뤄냈다. 하지만 데뷔는 쉽지 않았다. 연습생으로 4년을 지냈지만 꿈을 이루진 못했다. 그 사이 한국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을 늘리려고 대학교에도 지원했다. 연세대 언론정보학과였다. 학교에 다닐 땐 장학금도 받았다. 요즘엔 이런 사람들을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라고 부른다고 하자 “내 나름대로는 생존을 위한 일이었다”며 웃었다.

“1년 안에 데뷔를 못하면 캐나다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데뷔를 못한 상태에서) 한국에 있으려면 학교에 다녀야 했어요.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으려면 장학금도 꼭 받아야 했고요. 오전 9시부터 3시까지 학교 수업을 듣고 5시부터 지하철 막차가 끊기기 전까진 역삼동에 있는 연습실에 있었죠. 상암동에서 살던 때라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길었는데, 그 때 학과 공부를 했어요.”

캐나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아이반은 2011년 가수 데뷔를 꿈꾸며 홀로 한국에 왔다. / 사진제공=에버모어뮤직
캐나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아이반은 2011년 가수 데뷔를 꿈꾸며 홀로 한국에 왔다. / 사진제공=에버모어뮤직
하지만 시간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연습생을 그만 뒀다. 기타는 방 안 깊숙한 곳에 밀어 넣고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음악 없이 2년 동안 공부와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한 외신의 한국 지사에서 인턴 기자로 일하면서 그는 ‘내가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아이돌 준비를 할 땐 스스로 수동적으로 움직인단 느낌이 들어서 동기를 잃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기자나 가수 모두 이야기가 중심이 된 직업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 좋은 이야기를 찾아서 어떻게 꾸며서 전달하느냐가 핵심인 거죠. 그렇다면 가장 오랫동안 해왔고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 음악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인턴 계약이 끝나자 아이반은 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다시 기타를 잡아들었다. 어린 시절 우상으로 여겼던 오아시스나 데미안 라이스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 안에 담으려고 했다. 그 때 만든 첫 자작곡이 지난 9일 발매한 첫 번째 미니음반 ‘큐리어서티(Curiosity)’의 수록곡 ‘파인드 마이 셀프(Find Myself)’다. 20대에 겪은 성장통을 털어놓은 노래로 어머니께서 늘 해주신 ‘꿈을 놓지 마(Never let your dreams down)’라는 말을 가사로 담았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탓에 노래를 하다가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아이반은 “내 아킬레스 건 같은 노래”라며 웃었다. 최근에도 공연 도중 눈물이 터져 나온 적이 있단다. 창피한 마음에 그날 밤 이불을 걷어차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그날 이후 위로를 많이 받았다”면서 “그래도 나 혼자만의 감정에 너무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좋은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는 아이반. / 사진제공=에버모어뮤직
“좋은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는 아이반. / 사진제공=에버모어뮤직
아이반은 “다시 음악을 시작했을 땐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가사 한 줄을 쓰는 데에도 훨씬 긴 시간이 걸렸다. 멋있다는 감상은 바라지 않게 된 대신 꾸밈없고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고도 했다. 서른을 두 해 앞둔 지금은 고(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같은 노래를 써보고 싶단다. “아직은 감정이 여물지 못한 것 같아요. 조금 더 성숙한 뒤에 통찰력 있는 노래를 쓰고 싶어요.”

아이반의 꿈은 좋은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다. “신선하고 세련된 내용을 다큐멘터리를 보듯 생생하게 전하거나, 반대로 내겐 특별한 일일지언정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쓴 것이 좋은 이야기”라고 했다.

“음악이 미웠던 적도 있었어요. 어리석은 생각이었죠. 음악이 문제가 아니라 제 마음가짐이 문제였던 겁니다. 예전엔 음악을 통해 성공하길 바랐어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노래와 더 화려한 퍼포먼스로 나를 보여주고 싶었죠. 하지만 지금은 단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제 의도를 완벽하게 전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그게 제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이야기꾼의 모습이에요.”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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