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생이란 반드시 대단히 특별하거나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사건에 의해서 바뀌는 건 아니다. 때론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 생각보다 강렬한 이유로 우리의 삶을 크게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서른 살 어느 날에 그 우연한 짧은 만남이 훗날 나와 그녀의 인생을 크게 요동치게 만들었던 것처럼.”
지난 23일 처음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서 공우진(양세종 분)의 독백이다. 공우진과 우서리(신혜선 분)의 인연은 13년 전 일어난 교통사고로부터 시작됐다. 사고로 인해 서리는 13년 간 코마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었고, 우진은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았다.
‘서른이지만’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 ‘피노키오’ ‘너를 사랑한 시간’ 등을 통해 섬세한 연출력을 보여준 조수원 PD와 ‘고교처세왕’ ‘그녀는 예뻤다’등을 통해 재치 넘치는 대사, 코믹과 미스터리의 적절한 조합을 보여주며 필력을 입증한 조성희 작가가 뭉친 작품이다. 이날 첫 방송에서 열일곱에 불의의 사고를 겪은 서리와 우진은 서른 살에 재회했지만 서로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열일곱 우진은 서리에게 첫눈에 반했다.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며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우연히 버스에서 서리와 마주친다. 이때 서리가 우진에게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에 대해 물었다. 우진은 조금 더 서리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이번 정류장이 아닌 다음 정류장에 내리라고 알려줬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서리의 친구로 인해 당황한 우진은 버스에서 헐레벌떡 내린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기 전, 버스는 대형 추돌사고에 휘말렸다. 버스에 타고 있던 서리는 그 사고로 인해 13년 간 코마 상태에 빠지고 만다. 우진은 사고로 인해 서리가 죽었다고 착각하게 되고 자책하며 13년을 살아왔다.
사진=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방송 화면 캡처
서리는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13년의 세월이 흐른 자신의 모습에 당혹스러워 했다. 거울을 보며 “난 열일곱 살인데 어떻게 이 사람이 나냐”며 눈물을 보였다. 설상가상 유일한 가족이었던 외삼촌과 외숙모마저 연락이 두절된 상태. 서리는 어렵게 자신이 원래 살던 집을 찾아갔다. “이 집 조카”라는 말에 가사 도우미 제니퍼(예지원 분)는 문을 열어줬지만 이미 그 집에는 우진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우진은 그의 조카 유찬(안효섭 분)의 침대에서 자고 있던 서리를 조카로 착각했다. 이에 볼에 뽀뽀를 하며 그를 깨웠다. 서리는 우진을 변태로 오해했다. 서리는 “왜 우리 집에 있냐”며 소리 쳤고 우진과 유찬은 “여긴 우리집”이라고 당황스러워했다.
‘서른이지만’ 첫 회에서는 열일곱 서리와 우진의 만남, 서른살 서리와 우진의 재회를 애틋하면서도 코믹하게 살려냈다. 서리가 휠체어를 타고 가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장면은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만들어냈다. 더벅머리에 수염까지 길게 기른 바야바 같은 우진의 비주얼은 단 번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모든 물건의 길이를 재는 엉뚱한 행동까지 보여줬다. 그러한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우진의 상처를 가늠할 수 있었던 동시에 유쾌한 웃음까지 얻을 수 있었다.
사진=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방송 화면 캡처
미스터리한 가사 도우미 제니퍼와 순수함의 결정체인 유찬도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제니퍼는 장을 보러 갈 때도 레이스 블라우스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며 기품 있는 패션을 선보였다. 또한 각종 명언을 인용해 특유의 높낮이 없는 말투로 인사를 건네는 등 독특한 행동으로 시선을 끌었다. 유찬은 길가다 위험에 처한 병아리를 온 몸을 던져 구하는 등 순수하고 마음 따뜻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흐뭇하게 했다. 하지만 “돈트 싱크! 삘!(Don’t think! Feel!) 복잡하게 생각 같은 거 왜하냐. 느낌 삘대로 가는 거지! 에프, 아이, 엘(F, I, L)”이라고 말하며 머리까지 순수한 모습을 보여줘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두 주인공의 과거 사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빠르고 개연성 있는 전개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흡입력 있는 이야기는 다음회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또한 극중 서리의 열쇠고리가 두 사람의 매개체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을 암시하며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한 집에 모여 살게 되는 서리와 우진, 유찬, 제니퍼 앞에 어떤 일이 닥치게 될지, 서리의 가족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궁금증이 높아진다.
1~2회 방송 시청률은 5.7%(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와 7.1%였다. KBS2 ‘너도 인간이니’(4.6%, 5,6%), 같은 날 방송을 시작한 MBC ‘사생결단 로맨스’(4.1%, 3.5%)를 제치고 지상파 드라마 가운데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두 자릿수까지 시청률 상승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