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유진 기자]
10. 10주년 소감이 어떤가.
김창렬: 소감이라고 하긴 그렇고, 내가 이렇게 오래 버틸지 몰랐다.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10년을 큰 사고없이 해왔다는 게 정말 대견하다. 처음 시작할때만 해도 1년? 길면 3년 생각했는데 10년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사실 어느정도 청취율이 유지되면서 꾸준히 재밌어야 롱런을 하는데 그걸 버텨내고 10년간 했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것 같다. 나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의 몫도 컸다.
10. ‘올드스쿨’하면서 나이도 10살이 많아졌다.
김창렬: 그러게. 시작할 땐 30대 중반이었는데 40대 중반이 됐다.(웃음) 감회가 새롭다. ‘올드스쿨’이 주환이를 키운 셈이다. 출연료로 기저귀 사고, 분유 사고 그랬으니까.
10. 10년 전, 첫 방송 당시도 기억하나.
김창렬: 물론이다. 굉장히 긴장했었다. 첫날부터 콘솔을 내가 잡았다. DJ 경험이 있어서 믹서 만지는 건 부담 없었다. 그런데 라디오 시스템은 처음이었다. 광고와 음악을 틀고 해야되는데 정신이 없더라. 심지어 대본도 안보고 진행했다. 제작진이 준비한 대본이 있었는데 신철 형이 선물해준 래리 킹의 ‘대화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은 후라 대본대로 하기 싫었다. 래리 킹이 첫 라디오 방송 날 대본을 덮고 지금의 심정을 얘기했다고 적혀있더라. 나도 그게 낫겠다는 생각에 처음이라 떨리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고 ‘슈퍼맨의 비애’를 틀었던 기억이 난다.(웃음) 첫 방송이니까 DJ DOC 데뷔곡으로 의미를 더하고 싶었나보다.
10. 실수는 없었나.
김창렬: 당연히 실수했다.(웃음) 노래 듣고와서 멘트하고 광고 틀어야되는데 음악 틀고 그랬다. 상황이 이상해졌다. 어떻게 보면 방송사고였다. 그 자리에 재국이도 같이 있었다.
이재국: 사실 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창렬이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사연 읽고나면 여운이 남지 않나. 노래 나가야 되는 타이밍이 있는데 아무리 DJ랑 스태프간 호흡이 좋아도 눈치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DJ가 직접 하면 가장 좋긴 한데 옛날 DJ 분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요즘 DJ 중에선 혼자 믹서 만져서 하는 경우 거의 없다. 간이 크다고 생각했다.
10. ‘올드스쿨’은 어떻게 맡게 됐나.
김창렬: 콘셉트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80~90년대로 돌아가 우리들의 추억을 얘기하는 프로그램이라 그때를 그리워하는 분들과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뤄질 것 같더라. 내가 어떤 얘기를 꺼냈을때 청취자가 바로 호응해주고, 같이 깔깔대면서 웃을 수 있는게 좋았다. 처음엔 안 한다고 했다. 내가 하면 사고칠거라면서.(웃음) 그랬는데 당시 PD였던 이윤경 PD가 계속 같이 하자고 하더라. 지금은 CP가 됐다. 요즘도 가끔씩 내려와서 방송을 봐주고 그런다.
10. 이재국 작가와는 정말 가족 같겠다.
김창렬: 동갑내기에다가 생일도 하루 차이다. 내가 12월 26일, 재국이가 12월 27일.
이재국: TV 프로그램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녹화하는데 우리는 자는 시간 빼고 매일 같이 있는 것 같다.
김창렬: 와이프보다 대화를 더 많이 한다.(웃음) ‘아빠수업’이라는 책도 같이 내서 깊은 얘기를 많이 나눴다. 육아 관련 내용이지만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되는 계기가 됐다.
이재국: 책을 쓰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인생 얘기를 나누다보니까 공감대가 넓어지더라.
⇒인터뷰②에서 계속.
김유진 기자 you@tenasia.co.kr
매일 2시간씩, 무려 10년간 생방송을 진행했다. 라디오 DJ를 맡아 3650일, 7300시간, 인생의 4분의 1을 청취자와 함께 보냈다. 라디오 DJ 김창렬이 세운 자랑스런 기록이다.
SBS 파워FM(107.7Mhz, 수도권)에서 매일 오후 4시~6시에 방송되는 ‘김창렬의 올드스쿨'(이하 ‘올드스쿨’)은 지난 2006년 11월 6일 첫 방송됐다. 어느새 SBS의 대표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올드스쿨’은 오는 11월 6일 딱 10년째를 맞는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SBS 파워FM 역사의 반을 함께한 셈이다.
“생방송 펑크요?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김창렬에게 지난 10년간 생방송을 펑크낸 적이 없느냐고 묻자 깜짝 놀라며 답했다. 이제 매일 2시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부가 됐다는 김창렬은 “아무리 힘든 날이라도 ‘온에어(On-Air)’ 불이 들어오는 순간 에너지가 생긴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최근 서울 목동 SBS에서 만난 김창렬은 여느때와 같이 생방송을 앞두고 있었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10년을 함께한 스태프 이재국 작가도 함께였다. 인터뷰 중간 황건희 PD까지 합류해 ‘올드스쿨’ 10주년을 자축하며 풍성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김창렬: 소감이라고 하긴 그렇고, 내가 이렇게 오래 버틸지 몰랐다.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10년을 큰 사고없이 해왔다는 게 정말 대견하다. 처음 시작할때만 해도 1년? 길면 3년 생각했는데 10년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사실 어느정도 청취율이 유지되면서 꾸준히 재밌어야 롱런을 하는데 그걸 버텨내고 10년간 했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것 같다. 나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의 몫도 컸다.
10. ‘올드스쿨’하면서 나이도 10살이 많아졌다.
김창렬: 그러게. 시작할 땐 30대 중반이었는데 40대 중반이 됐다.(웃음) 감회가 새롭다. ‘올드스쿨’이 주환이를 키운 셈이다. 출연료로 기저귀 사고, 분유 사고 그랬으니까.
10. 10년 전, 첫 방송 당시도 기억하나.
김창렬: 물론이다. 굉장히 긴장했었다. 첫날부터 콘솔을 내가 잡았다. DJ 경험이 있어서 믹서 만지는 건 부담 없었다. 그런데 라디오 시스템은 처음이었다. 광고와 음악을 틀고 해야되는데 정신이 없더라. 심지어 대본도 안보고 진행했다. 제작진이 준비한 대본이 있었는데 신철 형이 선물해준 래리 킹의 ‘대화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은 후라 대본대로 하기 싫었다. 래리 킹이 첫 라디오 방송 날 대본을 덮고 지금의 심정을 얘기했다고 적혀있더라. 나도 그게 낫겠다는 생각에 처음이라 떨리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고 ‘슈퍼맨의 비애’를 틀었던 기억이 난다.(웃음) 첫 방송이니까 DJ DOC 데뷔곡으로 의미를 더하고 싶었나보다.
김창렬: 당연히 실수했다.(웃음) 노래 듣고와서 멘트하고 광고 틀어야되는데 음악 틀고 그랬다. 상황이 이상해졌다. 어떻게 보면 방송사고였다. 그 자리에 재국이도 같이 있었다.
이재국: 사실 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창렬이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사연 읽고나면 여운이 남지 않나. 노래 나가야 되는 타이밍이 있는데 아무리 DJ랑 스태프간 호흡이 좋아도 눈치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DJ가 직접 하면 가장 좋긴 한데 옛날 DJ 분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요즘 DJ 중에선 혼자 믹서 만져서 하는 경우 거의 없다. 간이 크다고 생각했다.
10. ‘올드스쿨’은 어떻게 맡게 됐나.
김창렬: 콘셉트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80~90년대로 돌아가 우리들의 추억을 얘기하는 프로그램이라 그때를 그리워하는 분들과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뤄질 것 같더라. 내가 어떤 얘기를 꺼냈을때 청취자가 바로 호응해주고, 같이 깔깔대면서 웃을 수 있는게 좋았다. 처음엔 안 한다고 했다. 내가 하면 사고칠거라면서.(웃음) 그랬는데 당시 PD였던 이윤경 PD가 계속 같이 하자고 하더라. 지금은 CP가 됐다. 요즘도 가끔씩 내려와서 방송을 봐주고 그런다.
10. 이재국 작가와는 정말 가족 같겠다.
김창렬: 동갑내기에다가 생일도 하루 차이다. 내가 12월 26일, 재국이가 12월 27일.
이재국: TV 프로그램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녹화하는데 우리는 자는 시간 빼고 매일 같이 있는 것 같다.
김창렬: 와이프보다 대화를 더 많이 한다.(웃음) ‘아빠수업’이라는 책도 같이 내서 깊은 얘기를 많이 나눴다. 육아 관련 내용이지만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되는 계기가 됐다.
이재국: 책을 쓰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인생 얘기를 나누다보니까 공감대가 넓어지더라.
⇒인터뷰②에서 계속.
김유진 기자 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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