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지난 7월 통계청이 발표한 ‘100세 이상 고령자조사 집계결과’에 따르면 5년 전에 비해 고령자 수는 72% 넘게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노인만 13.1%를 차지했으며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이처럼 성큼 다가온 백세시대에 ‘잘 죽는 방법’, 혹은 ‘웰다잉(Well-dying)’이 최근 화두로 떠올랐지만 그것도 65세 이상 인구 중 49.6%나 차지하고 있는 빈곤 노인들에게는 남일일 터다. 이재용 감독은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통해 이 외롭고, 아프고, 가난한 노인들을 햇볕처럼 보듬었다.
‘죽여주는 여자’는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이 감독은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로 입 소문을 얻던 그녀가 자신의 단골 고객이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노인'(전무송)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진짜 ‘죽여주는 여자’가 되면서 겪게 되는 일련의 과정과 감정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터부시 되어 오던 노인의 성매매와 조력 자살이라는 문제를 따뜻하게 그려냈다는 점은 감독이 곳곳에 배치해 놓은 웃음 코드들에서 알 수 있다. 그냥 한번 웃고 넘어가는 웃음보다는 여운을 남기는 유쾌함이다. 소영이 일상을 살아가며, 주변 사람들과 부대끼며 겪게 되는 일상다반사에서 소소한 웃음이 터지지만, 동시에 엿보이는 그녀의 내면은 보는 이의 마음 속에도 묵직한 무언가를 남긴다.
잔잔한 웃음과 함께 감독은 죽음만이 유일한 소망이 된 노인들의 내면 속으로 관객을 자연스레 이끌어간다. 세련된 매너의 신사였던 송노인이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건지”라며 한숨을 내뱉거나, 소영이 두 번째로 죽이게 되는 노인이 친구에게 “(내가 더 사리 분간을 못하게 되면) 그때는 네가 나 좀 보내주라.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늙어버렸다니”라고 부탁하는 장면, 세 번째 노인이 소영에게 “죽을 때 곁에 누군가 있어준다는 건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을 고민할 만큼 큰 일”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비로소 ‘웰다잉’이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영화의 공간 또한 다층적이다. ‘죽여주는 여자’ 속 장소들은 등장 인물들과도 닮아있다. 소영은 노인들에게 ‘연애’를 제안하기 위해 종로 탑골 공원과 장충단 공원에 나선다. 곧 없어질 낡은 서울의 상징처럼 오래된 이 공원들은 번호표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소영과 함께 가족 아닌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이태원의 ‘변두리 사람들’ 또한 어떤 지배적 특성으로는 규정되지 못하는 이태원과 닮았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은 영화 전반에 걸쳐 독특하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한몫한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인생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백세시대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당신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버킷리스트를 고민할 만큼 여유로운 노인이 되지 못했을 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죽여주는 여자’는 어쩌면 그 담론의 출발이 될 영화다. 청소년 관람불가.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죽여주는 여자’는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이 감독은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로 입 소문을 얻던 그녀가 자신의 단골 고객이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노인'(전무송)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진짜 ‘죽여주는 여자’가 되면서 겪게 되는 일련의 과정과 감정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터부시 되어 오던 노인의 성매매와 조력 자살이라는 문제를 따뜻하게 그려냈다는 점은 감독이 곳곳에 배치해 놓은 웃음 코드들에서 알 수 있다. 그냥 한번 웃고 넘어가는 웃음보다는 여운을 남기는 유쾌함이다. 소영이 일상을 살아가며, 주변 사람들과 부대끼며 겪게 되는 일상다반사에서 소소한 웃음이 터지지만, 동시에 엿보이는 그녀의 내면은 보는 이의 마음 속에도 묵직한 무언가를 남긴다.
잔잔한 웃음과 함께 감독은 죽음만이 유일한 소망이 된 노인들의 내면 속으로 관객을 자연스레 이끌어간다. 세련된 매너의 신사였던 송노인이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건지”라며 한숨을 내뱉거나, 소영이 두 번째로 죽이게 되는 노인이 친구에게 “(내가 더 사리 분간을 못하게 되면) 그때는 네가 나 좀 보내주라.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늙어버렸다니”라고 부탁하는 장면, 세 번째 노인이 소영에게 “죽을 때 곁에 누군가 있어준다는 건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을 고민할 만큼 큰 일”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비로소 ‘웰다잉’이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인생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백세시대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당신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버킷리스트를 고민할 만큼 여유로운 노인이 되지 못했을 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죽여주는 여자’는 어쩌면 그 담론의 출발이 될 영화다. 청소년 관람불가.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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