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은 말했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다. 누가 1등으로 들어오느냐로 성공을 따지는 경기가 아니다. 당신이 얼마나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느냐가 바로 인생의 성공 열쇠다.
오연서는 배우의 인생 역시 경주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중요한 건 분량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다. 그래서 오연서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택했고, 맞춤옷 같은 역할이나 의외의 역할 모두 잘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영화 ‘국가대표2’(감독 김종현)로 또 한 단계 성장한 오연서를 만났다.
10. 이번 영화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 박채경으로 분했다. 평소 스케이트는 잘 타는 편이었나? 오연서: 난생 처음 스케이트를 타봤다. 너무 힘들었다. 보호 장비가 잘 되어있어서 넘어져도 아프지 않다는 걸 알게 된 다음부턴 빨리빨리 실력이 늘더라. 나중에는 모든 배우들의 실력이 비슷해졌다. 달리기를 잘하는 편인데, 얼음 위에서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10.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기 위해 연습을 많이 했겠다. 오연서: 크랭크인 3개월 전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촬영이었지만 전지훈련도 떠났고. 그런데 영화에는 조금 밖에 안 나왔다. A부터 Z까지 2주 동안 찍었는데 1분도 채 안 나온 것 같다.(웃음)
10. 부상당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들었다. 오연서: 재숙 언니와 예원이가 크게 부상을 당했다. 근육통과 멍드는 건 모든 배우들의 기본이었다. 그런데 우리도 우리지만 뒤에서 땀흘려주시고 부상당한 분들이 많다. 상대역으로 출연해준 선수들이 멋진 그림 때문에 계속 달려주셨는데, 그 분들한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얼굴이 안 나오니까 관객들 입장에선 잘 모르니까.
배우 오연서 / 사진제공=이매진아시아
10. 전작인 SBS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에서 털털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그 연결고리가 이번 연기를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다. 오연서: ‘돌아와요 아저씨’가 ‘국가대표2’보다 나중에 찍은 거다. 그래서 ‘돌아와요 아저씨’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런 털털하지만 거친 역할은 처음이어서 많은 부분들에서 걱정했다. 카메라 감독님도 나보고 이미지가 여성적인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고 하셨다. 꼭 촬영 다 하고 나면 나보고 예쁘다고 말씀해주셔서 난 내가 진짜 예쁘게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모니터해보니까 아니더라고.(웃음) 진짜 깜짝 놀랐다.
10. 극중 등장하는 캐릭터 중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다. 이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을 텐데? 오연서: 일단 콤플렉스가 많은 캐릭터다. 겉으론 강해보이지만 마음도 굉장히 약하고, 여리고, 외롭고. 앞에선 반항적이지만 속은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다. 그런 부분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연기적으로는 다른 배우들과 합이 잘 맞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의 호흡이나 이런 걸 보면서 맞추려고 했다.
10.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 갈수록 지원(수애)의 가족 얘기에 초점이 맞춰져 채경이 주목을 덜 받게 된다. 오연서: 이래저래 편집된 분량이 많다. 채경이 2등 콤플렉스 극복과정이 있었는데 편집됐다. 채경이 지원과 불 꺼진 아이스링크에서 다시 한 번 시합하는 장면이 있었다. 굉장히 멋진 신이었다. 채경이 처음에는 지원을 무시하고 덤볐지만, 편집된 장면에선 정말 진지하게 선수 대 선수로서 대결하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진솔하게 대화를 했는데, 아쉽게 편집됐다. 영화가 잘되면 감독판을 내준다고 하더라. 감독판을 기대하고 있다.(웃음)
10. 채경이 스포츠에 확신하듯, 언제 연기가 나의 길인가 확신했나? 오연서: 아직도 고민하는 순간들이 있다. 작년에는 아홉수였다. 사춘기를 좀 겪었다. 이 길이 내 길이 맞을까 고민도 많았다. 연기 그만 두면 뭐 그만두면 뭐하고 사나 그런 생각도 좀 했었고.
배우 오연서 / 사진제공=이매진아시아
10. 아무래도 여배우들이 많이 모이면 보이지 않는 신경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건 전혀 없었나보다. 오연서: 신경전이 있을 틈이 없었다. 일단 배우들끼리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데 굳이 서로를 견제할 이유도 없었다. 또, 각자 캐릭터에 특성이 있다 보니 누구 하나 튄다고 도움이 될 게 없다는 것도 알았고. 만약 패션 영화였다면 서로 더 예뻐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을 순 있었겠지.
10. 쉬는 시간에는 여배우들끼린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오연서: 여자들끼리 모이면 늘 수다다. 남자 얘기도 하고, 피부과는 어디가 좋고, 화장품 얘기도 하고. 각자의 뷰티팁도 공개했다. 여자끼리 모여서 하는 얘기들은 똑같은 것 같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10. 함께 호흡을 맞췄던 수애는 어떤 배우였나? 오연서: 이번에 만나기 전에도 정말 좋아했던 배우였다. 눈빛도 좋고, 호흡도 좋았다.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 정말 존경할 만한 선배다.
10. ‘국가대표2’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가? 오연서: 여배우들이 중심이 되는 영화라는 게 좋았다. 분량과는 상관없이 참여하고 싶었다. 스포츠의 특성상 같이 고된 시간을 견디는 매력도 있으니까. 찍을 때도 즐거웠다. 끝나고 나서 다들 한마음으로 ‘다시는 스포츠 영화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웃음)
배우 오연서 / 사진제공=이매진아시아
10. 이번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가 있다면? 오연서: 극중에서 내가 “1등 아니면 아무도 쳐주지 않더라”고 하면 미란이(김슬기)가 “그래도 메달 딴 게 어디야. 3등도 잘한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좋았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대한 항변 같았다. 우린 어릴 때부터 경쟁에 노출이 너무 많이 돼 있고, 경쟁 때문에 힘들지 않나.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한 건데 모든 분들이 결과에만 너무 집중된 것 같다. 그 대사가 일침이라고 생각돼서 좋았다.
10. 본인은 과정과 결과 중에 어떤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나? 오연서: 어렸을 때는 사소한 거에서도 일등하고 싶었는데, 변했다. 인생은 선택과 집중인 것 같다. 내가 잘하는 걸 더 잘하면 되고 못하는 건 과감하게 빨리 포기하면 마음이 편하다. 내 배우 인생도 천천히 처음부터 정석을 밟고 있다. 주말드라마 막내딸로 시작해서 일일드라마, 미니시리즈, 주말 드라마 주인공, 그리고 영화까지. 앞으로도 이렇게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도 쌓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