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힘이 있는 이야기, 감독의 영민한 연출, 배우들의 조화로운 연기 앙상블이라는 조건이 한 작품 안에서 모두 충족되기란 쉽지 않다. ‘터널’은 이 모든 것이 퍼즐 조각처럼 꼭 들어맞는 영화다. 김성훈 감독의 날카로운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터널’은 자칫 통속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함정을 피해갈 수 있었고, 극을 홀로 힘있게 이끌어가는 배우 하정우와 이를 뒷받침하는 배두나와 오달수가 있었기 때문에 ‘터널’은 생동감 있게 그려질 수 있었다.
‘터널’은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터널이 무너지면서 구조될 때까지 버티는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터널 밖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하정우는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히게 된 남자 ‘정수’를 맡았다. 정수는 아내와 딸이 있는 평범한 가장이자 국내 자동차 브랜드의 영업 사원이다. 하정우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무장해야 하는 캐릭터의 직업적인 특성을 십분 살려 영화 초반부부터 지루해질 틈 없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하정우는 ‘정수’ 역을 위해 여러 가지 종류의 1인 조난 영화를 참조했다고 했다.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는 ‘캐스트 어웨이'(2001)부터 ‘127시간'(2011), ‘베리드'(2010), ‘나는 전설이다'(2007), 대사 한 마디 나오지 않는 ‘올 이즈 로스트'(2013)까지. 다양한 조난극을 참조한 만큼, 연기의 촉수는 날카로워졌고 결실은 풍성해졌다. 예를 들어, 터널 안에 고립된 후 자신을 둘러싼 ‘영화 같은 상황’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순간 그가 흔들어 보인 동공 연기는 그 어떤 대사보다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자연스러운 애드리브 또한 극의 무게감을 균형있게 유지하며 몰입도를 높여준다.
정수의 아내 ‘세현’으로 분한 배두나와 구조 대장 ‘대경’ 역을 맡은 오달수는 하정우와 함께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룬다. 김 감독은 “배두나는 터널 밖에서 남편의 구조를 기다리는 아내로 남은 자의 아픔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가지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아픔을 내면화’한 배두나의 연기는 하정우-배두나-오달수로 구성된 트리니티의 무게의 축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며 영화의 중심을 진중하게 붙든다. 오달수가 맡은 대경은 세현을 제외하고는 터널 속에 갇힌 정수의 억하심정에 공감하려고 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오달수는 자칫 평면적이고 기능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이 대쪽 같은 정의의 사도 캐릭터를 지루하지 않게 표현해냈다. ‘천만 요정’의 힘이 돋보이는 연기다.
김 감독은 현 사회의 안전 불감증과 컨트롤 타워 부재 문제를 ‘깨알같이’ 꼬집고, 계절처럼 반복되는 인재(人災)를 지켜보며 국민들이 왠지 모르게 가렵다고 느꼈던 곳을 특유의 화법을 통해 속 시원하게 긁어준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참사와 일련의 정치적 사태를 반영한 인물들과 장면들 상황 곳곳에 배치했을 뿐 아니라, 정부·기업·언론·사회 등 다각도에서 풍자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데에서 김 감독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한 예로, 터널이 무너져 내렸다는 정수의 최초 신고에 “선생님, 어느 정도 무너진 것입니까, 예예, 안전한 곳에서 기다려주세요”라는 119 구조대의 ‘너무나 예의범절 갖춘’ 대응은 실소를 자아낸다. 붕괴 23일 째 미디어의 한 프로그램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놓고 벌어지는 썰전이나 경제적 가치와 생명을 한 테이블 위에 놓고 벌이는 탁상 공론은 또 어떤가. 카케라의 렌즈는 이 토론을 건조하게 비추며 이 대단한 ‘경제 정책’이라는 것이 결국 누구를 살리기 위한 정책인지 관객에게 되묻는다.
결국 ‘터널’은 수십 번의 재난을 겪고 나서도 우리는 무방비로 살고 있으며, 이런 세태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영화다. 하정우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남겨졌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이 무더운 한 여름날에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과연, 시원할 정도로 통쾌해 열대야가 지속되는 요즘 보기 좋은 영화다. 10일 개봉.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터널’은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터널이 무너지면서 구조될 때까지 버티는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터널 밖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하정우는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히게 된 남자 ‘정수’를 맡았다. 정수는 아내와 딸이 있는 평범한 가장이자 국내 자동차 브랜드의 영업 사원이다. 하정우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무장해야 하는 캐릭터의 직업적인 특성을 십분 살려 영화 초반부부터 지루해질 틈 없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하정우는 ‘정수’ 역을 위해 여러 가지 종류의 1인 조난 영화를 참조했다고 했다.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는 ‘캐스트 어웨이'(2001)부터 ‘127시간'(2011), ‘베리드'(2010), ‘나는 전설이다'(2007), 대사 한 마디 나오지 않는 ‘올 이즈 로스트'(2013)까지. 다양한 조난극을 참조한 만큼, 연기의 촉수는 날카로워졌고 결실은 풍성해졌다. 예를 들어, 터널 안에 고립된 후 자신을 둘러싼 ‘영화 같은 상황’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순간 그가 흔들어 보인 동공 연기는 그 어떤 대사보다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자연스러운 애드리브 또한 극의 무게감을 균형있게 유지하며 몰입도를 높여준다.
정수의 아내 ‘세현’으로 분한 배두나와 구조 대장 ‘대경’ 역을 맡은 오달수는 하정우와 함께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룬다. 김 감독은 “배두나는 터널 밖에서 남편의 구조를 기다리는 아내로 남은 자의 아픔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가지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아픔을 내면화’한 배두나의 연기는 하정우-배두나-오달수로 구성된 트리니티의 무게의 축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며 영화의 중심을 진중하게 붙든다. 오달수가 맡은 대경은 세현을 제외하고는 터널 속에 갇힌 정수의 억하심정에 공감하려고 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오달수는 자칫 평면적이고 기능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이 대쪽 같은 정의의 사도 캐릭터를 지루하지 않게 표현해냈다. ‘천만 요정’의 힘이 돋보이는 연기다.
한 예로, 터널이 무너져 내렸다는 정수의 최초 신고에 “선생님, 어느 정도 무너진 것입니까, 예예, 안전한 곳에서 기다려주세요”라는 119 구조대의 ‘너무나 예의범절 갖춘’ 대응은 실소를 자아낸다. 붕괴 23일 째 미디어의 한 프로그램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놓고 벌어지는 썰전이나 경제적 가치와 생명을 한 테이블 위에 놓고 벌이는 탁상 공론은 또 어떤가. 카케라의 렌즈는 이 토론을 건조하게 비추며 이 대단한 ‘경제 정책’이라는 것이 결국 누구를 살리기 위한 정책인지 관객에게 되묻는다.
결국 ‘터널’은 수십 번의 재난을 겪고 나서도 우리는 무방비로 살고 있으며, 이런 세태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영화다. 하정우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남겨졌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이 무더운 한 여름날에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과연, 시원할 정도로 통쾌해 열대야가 지속되는 요즘 보기 좋은 영화다. 10일 개봉.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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