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영화 ‘덕혜옹주’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덕혜옹주’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10. 덕혜옹주는 굉장히 다층적인 캐릭터다. 고국을 그리워하는 모습부터 제정신이 아닌 노년의 모습까지 보여줘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배우 입장에선 난이도가 상당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손예진: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우리 영화의 첫 번째 촬영이었다. 첫 촬영부터 내가 옹주가 돼서 민중들 앞에 서야 하는데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다. 관객들에게 정말 덕혜라는 인물을 잘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보고 싶은 옹주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내가 그 사이에서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공감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감독님과, 언제나 든든한 해일 오빠가 원동력이 됐다. 부담감이 엄청났기 때문에 두 사람이 없었다면 정말 미쳤을지도 모른다.

10. 덕혜와 장한은 참 묘한 관계다. 요즘 말로 ‘썸타는’ 사이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동지애가 느껴진다.
손예진: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진 않지만, 덕혜 입장에선 장한이 날 지켜준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서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눈빛을 나누는 그 애틋함이 덕혜와 장한의 멜로라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정말 큰 멜로였다.(웃음) 해일 오빠의 눈빛이 감정을 더 잘 끌어 오르게 해줬다.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노인 분장도 꽤 자연스러웠다.
손예진: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노인 분장을 했는데, 덕혜옹주가 아닌 손예진이 보이면 안 되지 않느냐. 그럼 관객들의 감정이 깨질 텐데, 그렇다고 또 분장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결국 내린 결론이 내 얼굴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분장을 하자였다. 그래서 영화 출연을 결정짓고 노인 분장부터 해봤다. 어색하지 않으면서 관객들이 몰입하는 데 도움을 주는 노역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 대사도 많지 않았다. 힘을 뺀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아침에 말을 일부러 말을 안 하고 목소리가 잠기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계속 옆에서 말을 시키는 거다.(웃음) 결국 노년의 덕혜의 대사들은 후시녹음을 했다.

노인 연기의 전문가 박해일이 옆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나도 자연스럽게 보였던 것 같다. 해일 오빠는 정말 노인 분장이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웃음) 최근에 해일 오빠가 인터뷰에서 노역을 하다보면 중독성이 있다고 말한 걸 봤는데,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분장을 하면 내 얼굴이 아닌 모습이 나오고, 눈빛도 알맞게 흐려진다. 특수 분장을 하면 후유증이 정말 심한데, 그만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10. 영화가 덕혜옹주 개인의 비극뿐만 아니라 영친왕 망명 작전 등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사건들을 조명한다. 오롯이 덕혜옹주의 비극과 고뇌, 번민을 담은 사건들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손예진: ‘덕혜옹주’를 다큐멘터리로 찍었다면 있는 그런 방향으로 갔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생각보다 덕혜옹주에 대한 기록도 많지 않고, 너무 단편적인 일화밖에 없다. 난 개인적으로 한 여자의 번뇌와 고민을 다큐처럼 그려내면 재미없을 것 같았다. 너무 답답하고 어둡게 이야기를 풀어내면 가슴 아프기만 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실제 역사적 인물인데 지나치게 미화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소설이 재미있었던 건 나름 소설에 맞게 팩션(fact+fiction)으로 그려냈기 때문이었고, 독자들이 실제 역사를 다시 찾아보게 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화하는 지점도 비슷했다. 덕혜옹주가 대단한 위인도 아니고, 독립운동가도 아니지만 비극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그 비극을 그려내고 싶었다. 우리 영화로 관객들이 다시 덕혜옹주의 실제 삶을 찾아보게 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연장선상의 질문인데, 일각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 큰 고통 속에서 살던 민중들이 있었는데, 그들보다는 비교적 불편함 없이 살았던 대한제국의 황녀 덕혜옹주에 왜 관심을 쏟는 것 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손예진: 한국인이라면 ‘덕혜옹주’의 시대가 주는 아픔을 느낄 것이다. 왕족 중에서 이우 공처럼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도 있고, 갈팡질팡했던 사람도 있었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덕혜옹주는 그 시대의 아픔을 경험했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많은 분들이 덕혜옹주가 과연 당시 의미 있는 인물이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으신데, 영화를 본 다음에는 그런 말씀을 거의 안하시는 것 같다. 고국에 돌아가고 싶은 덕혜옹주의 이야기도 있고, 강제징용당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있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큰 틀 안의 덕혜를 보여주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 인터뷰③에서 계속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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