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시나리오 작가]
1990년대 후반에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고질라’를 보러 극장에 갔다. 사실 예고편이 본편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심심한 괴수영화는 몰입을 방해하고 급기야 입에서는 비명이 아닌 하품을 뽑아냈다. 그런데 말이다. 고질라가 자신의 새끼를 찾으며 포성처럼 울부짖자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투둑 쏟아졌다.
한 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고질라와 혼연일체가 되었다. 어머니로서 고질라의 울부짖음은 그 영화에 등장한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 관객 중에서 고질라와 함께한 흔치 않은 눈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대가로 영화관에 동행한 동생으로부터 혹독한 놀림을 받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를 보면 주인공인 배트맨뿐만이 아니라 관객의 숨통까지 조이는 치명적인 매력의 악당 조커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양 입가로 번지듯 남겨진 흉터를 설명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이고 심각한 얼굴로 지켜보는 자신의 얼굴에도 칼로 미소를 그려주었노라고. 그렇게 그의 어머니는 대사 속에 흐르듯이 잠시 등장했다. 그런데 나는 조커에게서 안개처럼 흩어지는 처연한 어머니의 표정이 그려졌다.
그렇게 ‘다크나이트’를 시작으로 종종 나는 영화를 볼 때 미등장한 인물의 어머니를 그려보게 됐다. 몇 몇 대사로 혹은 단 한 번의 언급도 없이 공기처럼 존재할 때도 있지만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그녀들의 존재로 극 속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사실 영화에는 정말 숱한 어머니들이 등장한다. 최근에 만난 어머니는 얼마 전에 개봉한 난니 모레티 감독의 ‘나의 어머니’이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근거한 이 영화는 담담한 어조로 점차 눈물에 젖어들게 만든다. 어머니를 다루는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에도 우리의 마음을 훔치는 대사들이 존재한다.
내게 특히 인상적인 대사는 영화 엔딩부에 어머니가 죽은 후 우연히 찾아온 어머니의 제자를 통해서였다. 늘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자신이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 사람이 당신의 어머니였노라고. 마치 사전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란 단어의 뜻 풀이 같았다.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주인공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전화 한통 해보시면 어떠실지. 어머니에게 그전 그런 자식이란 없으니까 말이다.
[시나리오 작가 박미영은 영화 ‘해변으로 가다’, ‘하루’, ‘빙우’, ‘허브’의 시나리오. 연극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의 극본. 그리고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포함한 다수의 동화책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입문: 감동주는 이야기 쓰기 비법’ 강의를 맡고 있다.]정리=문연배 기자 bretto@tenasia.co.kr
한 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고질라와 혼연일체가 되었다. 어머니로서 고질라의 울부짖음은 그 영화에 등장한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 관객 중에서 고질라와 함께한 흔치 않은 눈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대가로 영화관에 동행한 동생으로부터 혹독한 놀림을 받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를 보면 주인공인 배트맨뿐만이 아니라 관객의 숨통까지 조이는 치명적인 매력의 악당 조커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양 입가로 번지듯 남겨진 흉터를 설명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이고 심각한 얼굴로 지켜보는 자신의 얼굴에도 칼로 미소를 그려주었노라고. 그렇게 그의 어머니는 대사 속에 흐르듯이 잠시 등장했다. 그런데 나는 조커에게서 안개처럼 흩어지는 처연한 어머니의 표정이 그려졌다.
그렇게 ‘다크나이트’를 시작으로 종종 나는 영화를 볼 때 미등장한 인물의 어머니를 그려보게 됐다. 몇 몇 대사로 혹은 단 한 번의 언급도 없이 공기처럼 존재할 때도 있지만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그녀들의 존재로 극 속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사실 영화에는 정말 숱한 어머니들이 등장한다. 최근에 만난 어머니는 얼마 전에 개봉한 난니 모레티 감독의 ‘나의 어머니’이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근거한 이 영화는 담담한 어조로 점차 눈물에 젖어들게 만든다. 어머니를 다루는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에도 우리의 마음을 훔치는 대사들이 존재한다.
내게 특히 인상적인 대사는 영화 엔딩부에 어머니가 죽은 후 우연히 찾아온 어머니의 제자를 통해서였다. 늘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자신이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 사람이 당신의 어머니였노라고. 마치 사전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란 단어의 뜻 풀이 같았다.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주인공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전화 한통 해보시면 어떠실지. 어머니에게 그전 그런 자식이란 없으니까 말이다.
[시나리오 작가 박미영은 영화 ‘해변으로 가다’, ‘하루’, ‘빙우’, ‘허브’의 시나리오. 연극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의 극본. 그리고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포함한 다수의 동화책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입문: 감동주는 이야기 쓰기 비법’ 강의를 맡고 있다.]정리=문연배 기자 brett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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