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남대중: 스태프들도 왜 제목 바꿨냐면서 혹시 겉멋 들었냐고 물어보더라. (웃음) 알다시피 ‘잎섹’이란 표현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패러디다. 그런데 후반 작업 할 때 그 표현이 다르게 들릴 수 있다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 같다는 말을 들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소재만으로 자극적인데 굳이 제목까지 그렇게 해서 오해를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제목을 바꿨다.
10. 굉장히 다양한 패러디들을 영화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패러디가 굉장히 디테일해서 더 재미있었다.
남대중: 만화를 비롯한 방송이나 고전소설, 영화 등 다양한 패러디가 있었다. 패러디를 꼭 웃겨야겠다는 생각으로 패러디를 곁들인 건 아니다. 관객들이 편안하게 힘 빼고 영화를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영화 전체적인 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익숙한 장면들을 많이 썼다. 특히, 남준이(김동명)가 죽음이란 뭘까 생각할 때 나온 패러디들은 죽음이란 것을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만 접했던 청춘이 가까이서 죽음을 지켜보게 됐을 때의 단순하고, 명확한 감정들을 쉽게 표현하려고 사용했다.
10. 영화 첫 장면부터 아는 사람들은 웃을 수밖에 없는 패러디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그 부분에 본인의 ‘위대한 소원’을 적어놨다고 들었다.
남대중: 첫 장면은 나름 독창적인 시도로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웃음)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FBI Warning’ 아래 영어로 쓴 내용은 알아보시는 분들만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적은 거다. 루게릭병에 대한 설명과 세상 모든 불치병이 정복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10. 극 중 남준이가 ‘아이스 버킷 챌린지(루게릭병 환자들을 돕기 위한 릴레이 기부 캠페인, 참가자로부터 지목을 받은 사람은 24시간 안에 얼음물 샤워를 하거나 루게릭병 협회에 100달러를 기부해야 한다)’를 하는 친구들에게 분노하는 모습도 평소 루게릭병에 대한 생각이 반영된 건가?
남대중: 그 부분만큼은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담은 것이었다. 원래 아이스 버킷 챌린지란 것이 좋은 취지로 시작한 것이지 않으냐. 나도 좋은 취지로 참여했다. 그날 깔깔 웃으면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했었다. 그런데 술 마시다가 갑자기 내가 진지한 생각으로 이걸 한 건지 아니면 장난을 친 건지 반성하게 됐다. 참가자들의 의도가 불순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캠페인 자체가 조금 희화화되는 것은 아닌지 불편하기도 했고. 많은 불치병 중에서 루게릭병을 소재로 고른 것도 이런 생각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다.
10. 건강한 사람들은 미처 모르는 사회 문제 중의 하나가 ‘장애인들의 성욕 해결’이라고 하더라.
남대중: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루게릭병 환자, 하반신이 마비된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 루게릭병 환자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자기는 어릴 적부터 일찍 루게릭병을 앓아서 여자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포기한 지 오래라고. 난 아직 성욕이 남아 있는데 이걸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괴롭다고 말씀하셨다. 진짜 슬픈 말이었다.
10. 누군가의 실제 경험들을 영화로 옮긴다는 점에서, 특히 코미디 영화로 만든다는 점에서 굉장히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남대중: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의 투병 과정이나 죽음을 앞에 두고 눈물을 쥐어짜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환자나 환자들의 가족에 좋은 추억이 되고, 그들을 위로해주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 중심을 잘 지키니까 민감한 소재를 사용했는데도 장점을 봐주시더라. 10. 고환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친구들이 ‘성매매’를 시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매춘이란 것이 우리나라에선 불법이지 않나. 보기에 따라선 굉장히 불편한 장면일 수도 있다.
남대중: 치기어리고 단순하고, 무모한 10대 남자 고등학생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발상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만약 이 친구들이 20대 성인이었으면 당연히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어리니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10. 일부 관객들은 여자를 고환의 소원을 해결하기 위한 성적 도구로 바라본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남대중: 영화를 만들 때도 자신 있게 말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 우리 영화는 ‘섹스’를 위해 달려가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환이의 소원이 섹스일 뿐이지 영화는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위대한 소원’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는 고환이 엄마(전미선), 여신, 학교 여학생들인데, 단 한 번도 그들을 직접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거나 희롱하는 것으로 웃음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여성들에게 헛소리하는 남성들이 희화화의 대상이었다. 나이를 먹어도 철없고, 충동적인 남자들을 통해 재미를 만들어냈다. 사실 그게 현실적이기도 하고.
10. 상당히 센 ‘드립’들이 많은 영화인데 15세 관람가 영화다. 혹시 시나리오 작업 당시 수위는 굉장히 센데, 15세 관람 등급을 받기 위해 수위를 낮춘 것은 아닌가?
남대중: 오히려 반대였다. (웃음) 내용은 동일한데 몇몇 대사들이 수위가 낮았다. 여성들에게 10~30대의 수십 명의 여성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모니터를 부탁했는데, 그분들이 관대한 건지 아니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아주신 건지 좀 더 세게 가도 괜찮겠다고 하시더라. 10대들은 요새 애들 이렇게 얘기 안한다면서 깜짝 놀랄 욕도 많이 알려줬다.
10. 철없는 친구 세 사람이 발칙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영화 ‘스물’과 비슷한 느낌도 받았다. 그런데 그 ‘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특별 출연을 했다. 못 알아볼 뻔했다. (웃음)
남대중: ‘스물’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꼭 연락하는 사이다. 감독님이 먼저 연출 ‘입봉’하고 나서 나중에 내가 영화를 만들면 꼭 도와주겠다고 술자리에서 약속하셨다. 나중에 ‘위대한 소원’ 들어간다는 연락을 받고 축하한다는 전화가 왔는데 개인적으로는 밥차나 간식 차를 예상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시더니 특별출연을 하겠다고 하시는 거다. 난 오디션을 봐야겠다고 그랬고, 감독님은 날 배우로서 대접해주지 않으면 현장에서 펑크낼 거라고 협박했다. (웃음) 노개런티로 정말 재미있게 잘 해주셔서 감사하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 있는데, 원래 이병헌 감독님이 하신 역할을 제작사 이사님이 하시려고 했다. 덩치도 있고, 연기도 하신 적이 있어서 꽤 어울리셨다. 그런데 감독님이 그 역할에 들어오신 거다. 이사님도 제작사 마인드가 있으셔서 흔쾌히 양보해주시고, 여장한 다음 감독님 곁에서 뒷모습으로 출연하셨다. (웃음)
10. 고환이의 ‘위대한 소원’이 영화 초반에 나오지 않은 것도 의아했다. 왜 고환의 아버지와 갑덕-남준이의 착각으로 고생하는 고환이의 모습부터 보여준 건가?
남대중: 고환이가 자신의 진짜 소원을 말하기까지 이야기가 다소 느슨해지더라도 반드시 아빠와 친구들의 착각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고환이의 진정성이 구축된다고 믿었다. ‘어른으로 죽고 싶다’는 고환이의 소원이 10대 남학생의 철없는 소원이 아니라 진정성이 담긴 소원이란 드라마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앞은 좀 지루한데 뒤에 웃겨’라고 말하는 것도 앞에서 웃을 준비를 했기 때문에 뒤에서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가 없는 코미디는 없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모든 이야기는 드라마가 구축되어야 한다. 코미디는 드라마를 위한 보조해주는 장치일 뿐이다.
10. 이 영화가 작년에 촬영했지만, 그 사이 안재홍은 tvN ‘응답하라 1988’로 엄청 떴다.
남대중: ‘응답하라’와 캐릭터를 많이 비교하시던데, 정봉이와 갑덕이를 떠나 워낙 안재홍이란 배우의 캐릭터가 워낙 강렬하다. 갑덕이는 지금 10대들과 가장 유사한 캐릭터다. 현실적인 고등학생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안재홍 특유의 코믹한 분위기가 어우러지면서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갑덕이가 만들어진 것 같다. 배우의 역량이다.
10. 갑덕이가 전방에서 재미를 뽑아내는 공격수라면, 김동영은 공격수 뒤에서 중원을 책임지는 플레이메이커 같은 느낌이었다.
남대중: 비슷하지만 다른 비유를 들자면, 남준이는 최후방 수비수인 갑덕이에게 지시를 내리는 이운재 골키퍼 같았다. (웃음) 남학교에 갑덕이처럼 엉뚱한 사고를 치는 애들이 꼭 있다. 엉뚱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애들. 그런데 우리 때는 그런 친구들을 따돌리지 않고, 남준이처럼 꼭 옆에서 구박해주는 친구가 있었다. ‘위대한 소원’도 둘이 같이 있어야 시너지가 생기면서 코미디가 살아났다.
사실 갑덕이도, 남준이도, 고환이도 모두 현실적인 캐릭터다. 상황이나 코미디 영화의 특성상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연출했을 뿐이다. 관객들이 세 사람을 보면서 ‘우리 학교에도 저런 친구 있었어’ ‘야, 꼭 너 같다’ 이렇게 공감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배우들이 정말 잘해줬다. 아직 대중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는 배우들일지 몰라도 똑똑하고, 캐릭터 흡수력도 뛰어나고,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는 친구들이다. 10. 아버지 역할의 전노민 연기도 상당히 인상 깊었다. 젠틀한 이미지를 그대로 고수하면서도 코믹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더라. 코미디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들은 많은데 왜 전노민을 캐스팅한 건가?
남대중: 코미디를 잘하는 배우들은 많다. 그러나 배우의 개인기로 웃음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전혀 웃길 것 같지 않은 인물이 엉뚱한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전노민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시나리오를 드렸다. 혹시 날 뭐로 보고 이러냐며 화내시진 않을까 조심스러웠는데, 뜻밖에도 처음 만날 때 ‘이런 거 하고 싶었다’며 흔쾌히 출연을 결정해주셨다.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캐릭터를 제안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현장에서도 내가 신인감독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10. 류덕환-김동영-안재홍의 케미가 정말 좋았다. 최적의 캐스팅이 아니었나 싶다.
남대중: 세 배우가 진짜 친구처럼 지냈다. 촬영 없는 날엔 전노민 선배와 같이 맛집 돌아다니고, 술도 마시고, 스태프들이랑 방에서 놀고 그러더라. 이 친구들의 호흡이 정말 좋으니까 화면에도 그게 녹아들더라.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나하고도 많이 얘기했다. 아이디어 공유를 많이 했다. 모두 더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10. 코미디 영화라는 게 굉장히 수 싸움이 치열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스릴러는 큰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클라이맥스에 한 방을 터트리는 장르라면, 코미디는 수많은 국지전이 일어나는 장르랄까. 그런 점에서 영화를 볼 때, ‘위대한 소원’의 감독은 분명 코미디 장르를 굉장히 좋아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남대중: 코미디를 가장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휴먼 코미디를 제일 좋아한다. 지금까지 썼던 시나리오도 모두 코미디 장르다. 코미디를 계속 쓰면서 훈련이 된 건지 코미디의 공식들도 체득 했고, 설득력 있는 코미디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10. 추천하는 코미디 영화가 있다면?
남대중: ‘덤앤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등 패럴리 형제의 영화들을 좋아한다. 또, 짐 캐리 영화도 좋아하고 통통 튀는 첩보 영화도 좋아한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넘버 원 영화는 이정향 감독님의 ‘집으로’다.
10. 인생 영화가 ‘집으로’인가? 의외다.
남대중: 대폭소를 유발하는 코미디만 코미디가 아니다. ‘집으로’는 억지 신파도 아니면서 다양한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해준다. 영화를 보면서 ‘저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유일한 영화다.
10. 남대중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벌써 차기작을 논의하기엔 이르지만, 다음도 코미디 영화가 될까?
남대중: 다음 영화도 코미디가 될 것 같다. ‘버킷리스트’를 소재로 한 번 더 써보고 싶다. 여러 이야기를 써놨지만, 아버지의 버킷리스트를 한 번 영화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궁극적으로는 휴머니즘과 코미디가 있는, 고상하게 표현하면 희극과 비극이 느껴지는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영화를 꾸준히 하고 싶다.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영화 ‘위대한 소원’은 때로는 발칙한 대화로, 때로는 어이없는 상황으로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그리고 웃음과 웃음 사이에는 죽음을 앞둔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하는 10대 소년들의 우정과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진한 부정을 느낄 수 있다.10. 크랭크인 당시 ‘마지막 잎섹’이라는 영화 제목이 ‘위대한 소원’으로 바뀌었다. 발칙하고 유쾌한 영화 내용에 비해 제목이 조금 밋밋하게 바뀐 느낌이다.
남대중 감독은 자신의 첫 영화를 연출하기 전,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영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그의 흔들리지 않는 원칙 덕분에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코미디 ‘위대한 유산’이 탄생할 수 있었다. 순수한 웃음과 따뜻한 정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영화 ‘위대한 소원’을 연출한 남대중 감독을 만나 스크린에 채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남대중: 스태프들도 왜 제목 바꿨냐면서 혹시 겉멋 들었냐고 물어보더라. (웃음) 알다시피 ‘잎섹’이란 표현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패러디다. 그런데 후반 작업 할 때 그 표현이 다르게 들릴 수 있다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 같다는 말을 들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소재만으로 자극적인데 굳이 제목까지 그렇게 해서 오해를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제목을 바꿨다.
10. 굉장히 다양한 패러디들을 영화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패러디가 굉장히 디테일해서 더 재미있었다.
남대중: 만화를 비롯한 방송이나 고전소설, 영화 등 다양한 패러디가 있었다. 패러디를 꼭 웃겨야겠다는 생각으로 패러디를 곁들인 건 아니다. 관객들이 편안하게 힘 빼고 영화를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영화 전체적인 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익숙한 장면들을 많이 썼다. 특히, 남준이(김동명)가 죽음이란 뭘까 생각할 때 나온 패러디들은 죽음이란 것을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만 접했던 청춘이 가까이서 죽음을 지켜보게 됐을 때의 단순하고, 명확한 감정들을 쉽게 표현하려고 사용했다.
10. 영화 첫 장면부터 아는 사람들은 웃을 수밖에 없는 패러디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그 부분에 본인의 ‘위대한 소원’을 적어놨다고 들었다.
남대중: 첫 장면은 나름 독창적인 시도로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웃음)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FBI Warning’ 아래 영어로 쓴 내용은 알아보시는 분들만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적은 거다. 루게릭병에 대한 설명과 세상 모든 불치병이 정복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10. 극 중 남준이가 ‘아이스 버킷 챌린지(루게릭병 환자들을 돕기 위한 릴레이 기부 캠페인, 참가자로부터 지목을 받은 사람은 24시간 안에 얼음물 샤워를 하거나 루게릭병 협회에 100달러를 기부해야 한다)’를 하는 친구들에게 분노하는 모습도 평소 루게릭병에 대한 생각이 반영된 건가?
남대중: 그 부분만큼은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담은 것이었다. 원래 아이스 버킷 챌린지란 것이 좋은 취지로 시작한 것이지 않으냐. 나도 좋은 취지로 참여했다. 그날 깔깔 웃으면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했었다. 그런데 술 마시다가 갑자기 내가 진지한 생각으로 이걸 한 건지 아니면 장난을 친 건지 반성하게 됐다. 참가자들의 의도가 불순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캠페인 자체가 조금 희화화되는 것은 아닌지 불편하기도 했고. 많은 불치병 중에서 루게릭병을 소재로 고른 것도 이런 생각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다.
10. 건강한 사람들은 미처 모르는 사회 문제 중의 하나가 ‘장애인들의 성욕 해결’이라고 하더라.
남대중: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루게릭병 환자, 하반신이 마비된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 루게릭병 환자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자기는 어릴 적부터 일찍 루게릭병을 앓아서 여자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포기한 지 오래라고. 난 아직 성욕이 남아 있는데 이걸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괴롭다고 말씀하셨다. 진짜 슬픈 말이었다.
10. 누군가의 실제 경험들을 영화로 옮긴다는 점에서, 특히 코미디 영화로 만든다는 점에서 굉장히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남대중: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의 투병 과정이나 죽음을 앞에 두고 눈물을 쥐어짜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환자나 환자들의 가족에 좋은 추억이 되고, 그들을 위로해주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 중심을 잘 지키니까 민감한 소재를 사용했는데도 장점을 봐주시더라. 10. 고환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친구들이 ‘성매매’를 시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매춘이란 것이 우리나라에선 불법이지 않나. 보기에 따라선 굉장히 불편한 장면일 수도 있다.
남대중: 치기어리고 단순하고, 무모한 10대 남자 고등학생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발상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만약 이 친구들이 20대 성인이었으면 당연히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어리니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10. 일부 관객들은 여자를 고환의 소원을 해결하기 위한 성적 도구로 바라본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남대중: 영화를 만들 때도 자신 있게 말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 우리 영화는 ‘섹스’를 위해 달려가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환이의 소원이 섹스일 뿐이지 영화는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위대한 소원’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는 고환이 엄마(전미선), 여신, 학교 여학생들인데, 단 한 번도 그들을 직접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거나 희롱하는 것으로 웃음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여성들에게 헛소리하는 남성들이 희화화의 대상이었다. 나이를 먹어도 철없고, 충동적인 남자들을 통해 재미를 만들어냈다. 사실 그게 현실적이기도 하고.
10. 상당히 센 ‘드립’들이 많은 영화인데 15세 관람가 영화다. 혹시 시나리오 작업 당시 수위는 굉장히 센데, 15세 관람 등급을 받기 위해 수위를 낮춘 것은 아닌가?
남대중: 오히려 반대였다. (웃음) 내용은 동일한데 몇몇 대사들이 수위가 낮았다. 여성들에게 10~30대의 수십 명의 여성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모니터를 부탁했는데, 그분들이 관대한 건지 아니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아주신 건지 좀 더 세게 가도 괜찮겠다고 하시더라. 10대들은 요새 애들 이렇게 얘기 안한다면서 깜짝 놀랄 욕도 많이 알려줬다.
10. 철없는 친구 세 사람이 발칙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영화 ‘스물’과 비슷한 느낌도 받았다. 그런데 그 ‘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특별 출연을 했다. 못 알아볼 뻔했다. (웃음)
남대중: ‘스물’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꼭 연락하는 사이다. 감독님이 먼저 연출 ‘입봉’하고 나서 나중에 내가 영화를 만들면 꼭 도와주겠다고 술자리에서 약속하셨다. 나중에 ‘위대한 소원’ 들어간다는 연락을 받고 축하한다는 전화가 왔는데 개인적으로는 밥차나 간식 차를 예상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시더니 특별출연을 하겠다고 하시는 거다. 난 오디션을 봐야겠다고 그랬고, 감독님은 날 배우로서 대접해주지 않으면 현장에서 펑크낼 거라고 협박했다. (웃음) 노개런티로 정말 재미있게 잘 해주셔서 감사하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 있는데, 원래 이병헌 감독님이 하신 역할을 제작사 이사님이 하시려고 했다. 덩치도 있고, 연기도 하신 적이 있어서 꽤 어울리셨다. 그런데 감독님이 그 역할에 들어오신 거다. 이사님도 제작사 마인드가 있으셔서 흔쾌히 양보해주시고, 여장한 다음 감독님 곁에서 뒷모습으로 출연하셨다. (웃음)
10. 고환이의 ‘위대한 소원’이 영화 초반에 나오지 않은 것도 의아했다. 왜 고환의 아버지와 갑덕-남준이의 착각으로 고생하는 고환이의 모습부터 보여준 건가?
남대중: 고환이가 자신의 진짜 소원을 말하기까지 이야기가 다소 느슨해지더라도 반드시 아빠와 친구들의 착각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고환이의 진정성이 구축된다고 믿었다. ‘어른으로 죽고 싶다’는 고환이의 소원이 10대 남학생의 철없는 소원이 아니라 진정성이 담긴 소원이란 드라마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앞은 좀 지루한데 뒤에 웃겨’라고 말하는 것도 앞에서 웃을 준비를 했기 때문에 뒤에서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가 없는 코미디는 없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모든 이야기는 드라마가 구축되어야 한다. 코미디는 드라마를 위한 보조해주는 장치일 뿐이다.
10. 이 영화가 작년에 촬영했지만, 그 사이 안재홍은 tvN ‘응답하라 1988’로 엄청 떴다.
남대중: ‘응답하라’와 캐릭터를 많이 비교하시던데, 정봉이와 갑덕이를 떠나 워낙 안재홍이란 배우의 캐릭터가 워낙 강렬하다. 갑덕이는 지금 10대들과 가장 유사한 캐릭터다. 현실적인 고등학생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안재홍 특유의 코믹한 분위기가 어우러지면서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갑덕이가 만들어진 것 같다. 배우의 역량이다.
10. 갑덕이가 전방에서 재미를 뽑아내는 공격수라면, 김동영은 공격수 뒤에서 중원을 책임지는 플레이메이커 같은 느낌이었다.
남대중: 비슷하지만 다른 비유를 들자면, 남준이는 최후방 수비수인 갑덕이에게 지시를 내리는 이운재 골키퍼 같았다. (웃음) 남학교에 갑덕이처럼 엉뚱한 사고를 치는 애들이 꼭 있다. 엉뚱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애들. 그런데 우리 때는 그런 친구들을 따돌리지 않고, 남준이처럼 꼭 옆에서 구박해주는 친구가 있었다. ‘위대한 소원’도 둘이 같이 있어야 시너지가 생기면서 코미디가 살아났다.
사실 갑덕이도, 남준이도, 고환이도 모두 현실적인 캐릭터다. 상황이나 코미디 영화의 특성상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연출했을 뿐이다. 관객들이 세 사람을 보면서 ‘우리 학교에도 저런 친구 있었어’ ‘야, 꼭 너 같다’ 이렇게 공감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배우들이 정말 잘해줬다. 아직 대중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는 배우들일지 몰라도 똑똑하고, 캐릭터 흡수력도 뛰어나고,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는 친구들이다. 10. 아버지 역할의 전노민 연기도 상당히 인상 깊었다. 젠틀한 이미지를 그대로 고수하면서도 코믹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더라. 코미디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들은 많은데 왜 전노민을 캐스팅한 건가?
남대중: 코미디를 잘하는 배우들은 많다. 그러나 배우의 개인기로 웃음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전혀 웃길 것 같지 않은 인물이 엉뚱한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전노민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시나리오를 드렸다. 혹시 날 뭐로 보고 이러냐며 화내시진 않을까 조심스러웠는데, 뜻밖에도 처음 만날 때 ‘이런 거 하고 싶었다’며 흔쾌히 출연을 결정해주셨다.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캐릭터를 제안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현장에서도 내가 신인감독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10. 류덕환-김동영-안재홍의 케미가 정말 좋았다. 최적의 캐스팅이 아니었나 싶다.
남대중: 세 배우가 진짜 친구처럼 지냈다. 촬영 없는 날엔 전노민 선배와 같이 맛집 돌아다니고, 술도 마시고, 스태프들이랑 방에서 놀고 그러더라. 이 친구들의 호흡이 정말 좋으니까 화면에도 그게 녹아들더라.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나하고도 많이 얘기했다. 아이디어 공유를 많이 했다. 모두 더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10. 코미디 영화라는 게 굉장히 수 싸움이 치열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스릴러는 큰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클라이맥스에 한 방을 터트리는 장르라면, 코미디는 수많은 국지전이 일어나는 장르랄까. 그런 점에서 영화를 볼 때, ‘위대한 소원’의 감독은 분명 코미디 장르를 굉장히 좋아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남대중: 코미디를 가장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휴먼 코미디를 제일 좋아한다. 지금까지 썼던 시나리오도 모두 코미디 장르다. 코미디를 계속 쓰면서 훈련이 된 건지 코미디의 공식들도 체득 했고, 설득력 있는 코미디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10. 추천하는 코미디 영화가 있다면?
남대중: ‘덤앤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등 패럴리 형제의 영화들을 좋아한다. 또, 짐 캐리 영화도 좋아하고 통통 튀는 첩보 영화도 좋아한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넘버 원 영화는 이정향 감독님의 ‘집으로’다.
10. 인생 영화가 ‘집으로’인가? 의외다.
남대중: 대폭소를 유발하는 코미디만 코미디가 아니다. ‘집으로’는 억지 신파도 아니면서 다양한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해준다. 영화를 보면서 ‘저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유일한 영화다.
10. 남대중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벌써 차기작을 논의하기엔 이르지만, 다음도 코미디 영화가 될까?
남대중: 다음 영화도 코미디가 될 것 같다. ‘버킷리스트’를 소재로 한 번 더 써보고 싶다. 여러 이야기를 써놨지만, 아버지의 버킷리스트를 한 번 영화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궁극적으로는 휴머니즘과 코미디가 있는, 고상하게 표현하면 희극과 비극이 느껴지는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영화를 꾸준히 하고 싶다.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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