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오케피
오케피
공연기간 2015.12.18~2016.02.28
원작 미타키 코니
연출 황정민
음악감독 김문정
주요 배우 황정민/오만석(컨덕터), 서범석/김태문(오보에), 박혜나/최우리(바이올린), 윤공주/린아(하프), 최재웅/김재범(트럼펫) 정상훈/황만익(색소폰), 송영창/문성혁(피아노), 김원해/김호(비올라), 백주희/김현진(첼로), 육현욱/이승원(기타), 남문철/심재현(드럼), 이상준(바순), 정욱진/박종찬(퍼커션)

줄거리
웅장하고 화려한 뮤지컬 무대의 아래 한번쯤은 궁금했지만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오페스트라 피트, 일명 오케피. 뮤지컬 ‘보이 밋 걸(BOY MEET GIRL)’ 공연을 시작하기 위해 오케피로 연주자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한 클래식함과 우아함도 잠시. 관객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사건과 사고들이 터지는 가운데,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리얼한 현장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진다. 과연 이들은 뮤지컬 ‘보이 밋 걸’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총평
연극인 듯 연극 아닌 연극 같은 뮤지컬. 화려한 무대 장치나 거대한 오케스트라, 극장 지붕을 날려버릴 듯한 짱짱한 가창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겐 다소 아쉬울 수도 있겠다. 반대로 뮤지컬에 처음 입문하는 관객들에게는 매우 친절한 작품이 될 전망. 좌중을 압도할 만한 킬링 넘버는 없으나, 관능적인 트럼펫, 우아한 하프 등 다양한 악기가 중심이 돼,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을 들려준다.

1막은 유쾌하게 흐른다. 개성 강한 인물들이 코믹스럽게 성격을 드러내며 초장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배우들은 관록의 연기로 순식간에 각 인물의 캐릭터를 구축해가고, 춤과 노래로 볼거리도 제공한다. 배우들 간 앙상블도 좋다. ‘오션스 일레븐’ 급 캐스팅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오케피
오케피
다만 스토리는 산만하다. 13인의 이야기가 고르게 분포되는 만큼, 서사적인 전개는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각자의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흩어지는데, 중강-약-중강-약의 강도로 이어지다보니 100분(1막 공연 시간)이 퍽 길게 느껴진다. 좋게 말하자면 자극적이지 않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흡입력이 약하다는 비판 또한 피할 수 없을 듯 보인다.

무게 조절 또한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나름의 갈등 상황에 빠지는데, 이 과정에서의 무게 조절을 어떻게 해나가느냐가 큰 숙제로 보인다. 시종 코믹하게 다뤄지던 각 인물의 성격이 제법 무겁게 눌리는 지점이 있다. 흔한 말로 손발 오그라들지 않게 이 지점을 풀어내는 게 최대의 난제. 극중 인물들의 갈등관계는 2막에서 보다 심화될 예정인데, 이들의 성장이 관객들에게 통쾌함까지 안겨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막에서 보인 컨덕터-하프-첼로의 이야기를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연출가 황정민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다. 그는 지난달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좋은 작품은 반드시 입소문을 타는 법”이라며 “‘회전문 관객들(같은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는 관객들)’보다는 입소문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뮤지컬 팬들, 이른바 ‘회전문러’보다는 유쾌한 연말 데이트를 원하는 이들에게 더욱 적합한 작품이다.

요주의 인물 오보에 김태문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조금은 낯설 수 있는 이름. 하지만 캐릭터와 가장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 배우 중 하나다. 만사에 무심한 표정과 냉소적인 말투, 그러면서도 남모를 사연이 있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황정민은 앞서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김태문이라는 배우가 있다. 오디션으로 뽑은 친구인데, 여태까지 앙상블만 해왔다. 이번에 주목해볼만 하다”고 귀띔했다. 당시 황정민은 시뻘게진 눈으로 “사실 태문이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하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태문이란 이름에 물음표가 그려진다면, 황정민의 촉을 믿어 보는 건 어떨까.

한줄 대사 “원래는 30인조인데 제작사 대표 김미혜가 12명으로 줄였어요. 돈 아끼려고요!”
(*김미혜는 ‘오케피’ 제작사 샘 컴퍼니의 대표이자 황정민의 아내이기도 하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조슬기 기자 kelly@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