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박서준 : 촬영장에 더 이상 안 가니까 이제야 끝났구나 싶다. 촬영 막바지엔 끝이 보이니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더울 때 촬영을 시작해서 잠도 많이 못 자다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어쨌든 잘 끝나서 다행이다.
Q. 올해 2편의 드라마와 2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년 내내 쉬지 않고 일하는 것 같다.
박서준 : 일에 욕심이 있다기보다 일을 안 하면 허전한 느낌이 든다. 꼭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제 적응이 됐다.
Q. 지성준처럼 워커홀릭인가?
박서준 : 지부편이랑은 목적이 다른 것 같다. 지성준은 모스트 코리아를 1위로 만들고, 폐간을 막겠다는 목적이 있었지만 난 그냥 연기가 너무 좋아서 촬영 현장에 있는 것이다.
Q. ‘그녀는 예뻤다’는 어떤 점에서 마음에 들었나?
박서준 : 대본이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시트콤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고. 또, 내게 주어진 지성준이란 역할이 초반에 까칠하지만 마냥 그런 역할은 아닐 것 같아서 어떻게 이야기가 풀릴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시기에 이런 역할을 맡게 되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도 궁금했고.
Q. ‘이 시기에 이런 역할’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줄 수 있을까?
박서준 : 차근차근 경험을 쌓고 단계를 밟으면서 올라왔다. 이제는 주인공이 돼 극을 끌고 나가는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다. 시작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지 않나. 주연 박서준의 본격적인 시작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기작을 고를 때 굉장히 신중하게 선택했다.
Q. 이전에 ‘잘될 것 같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중 후자를 선택한다고 말했더라.
박서준 : 캐스팅이나 사업성 부분에서 누가 봐도 잘 될 것 같은 작품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것들을 따라 가는 것보단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 ‘잘될 것 같은 것’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배우 입장에서도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내 선택에 존중해야 만족감도 크고.
Q. 시청률 상승세를 보면, 지성준은 박서준이 ‘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박서준 : 시청률이 이렇게 잘 나올 줄은 예상 못했다. 항상 작품을 시작하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 책임감도 있고. 이번에도 주인공을 맡게 돼서 극을 끌고 가야 하니까 책임감을 느꼈다. 그런데 세상에 작품이 공개된 다음에는 내 영역이 아니다. 홍보라든지 입소문이라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내 역할은 연기를 하는 것이고, 난 역할에 있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을 100%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내 연기에 어떤 것들이 부족한지 시청자 반응을 가볍게 살펴보는 정도다.
Q. 그런데 사람이 취향이란 것이 있지 않나. 계속 ‘하고 싶은 것’을 하다보면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생기지 않을까?
박서준 : 비슷한 캐릭터를 계속 선택하기 보단 어떤 역할이든 열어놓고 생각하려는 편이다. 다만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에 담을 수 있는 역할인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역할인지를 고민한다.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생각이 들면, 선택하는 거다.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역할을 연기를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Q. 초반에 지성준의 캐릭터가 다른 주인공들에 비해 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박서준 : 나도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에 그런 고민을 했었다. 제일 밋밋할 수 있겠구나. 그런데 여러 드라마들의 대본을 보니까 오히려 주인공은 초반에 밋밋한 경우가 많더라.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초반에는 주인공보단 감초 역할이 돋보인다고 봤다. 하지만 어쨌든 드라마는 주인공을 따라가며 그들의 감정선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초반에 부족해보이더라도 충분히 내가 얻어갈 것도 많고, 그 안에서 보일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밋밋해 보일 것 같다는 걱정이 있었지만 지성준을 선택하기 잘한 것 같다.
Q. 지성준은 박서준이 그동안 보여준 적이 없었던 ‘독설하는 남자’였다. 그런데 또 혜진 앞에선 엄청 다정한 남자이고.
박서준 : 캐릭터란 것은 다중인격이 아닌 이상 일관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성준이 30살인데 그의 인생을 16부작 드라마에 고스란히 담을 수도 없지 않나. 당연히 생략된 부분이 생긴다. 그런 부분들에 왜 지성준이 이렇게 행동하는지가 녹아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디테일하게 전달해주는 것이 연기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찍을 땐 내가 그렇게 공격적으로 독설을 내뱉는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막상 방송을 보니까 심하긴 하더라. 하하. 난 화를 안 내본 사람이 화내면 어색하다고 미묘한 어색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잘 표현됐는지는 모르겠다.
Q. 다르게 생각해보면, 지성준은 거의 ‘김혜진 환자’다. (웃음) 지성준처럼 한 사람을 이렇게나 오랫동안 좋아하는 사람은 요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가 아닐까?
박서준 : 그렇게 생각할 순 있지만 빈도의 차이일 뿐 지성준 같은 남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 점에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성준의 모습은 성준의 강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아까 말한 것처럼 성준의 캐릭터가 밋밋했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성준에게는 ‘첫사랑 혜진을 잊지 못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것만큼은 다른 인물에게 없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예뻤다’는 결국 첫사랑 이야기였으니까. 성준이와 혜진이가 어릴 적 아름다운 기억들도 많았고, 한참 좋아하고 보고 싶을 나이에 헤어져서 편지도 주고받고. 그런 걸 보면 “성준이는 15년 동안 혜진을 잊지 못했을 것 같다”고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Q. 당연히 박서준도 첫사랑을 경험했을 텐데, (웃음) 그런 경험들이 이번 작품을 하는데 도움이 됐는가?
박서준 : 나한테도 학창시절에 첫사랑 경험이 있으니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긴 했다. 나는 어땠을까. 성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뭔가 상대에게 바란다는 마음보단 그녀를 보기 만해도 설레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지성준은 박서준이 아니지 않나. 성준은 어떤 마음으로 혜진을 느꼈을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해보고. 이런 고민들과 이해가 모여 하나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 같다.
Q. 본인이 지성준이었더라도, 극중에서처럼 첫사랑 혜진을 못 알아봤을까?
박서준 : 드라마니까 혜진을 몰라본 것이지, 현실에서는 보자마자 알아챘겠지. 혜진이 이력서만 봐도 알아채지 않았을까. (웃음) 성준도 계속 혜진과 마주치면서 어느 정도 느낌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혜진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헷갈렸다고 생각한다. 진짜 혜진에게서 내가 기억하는 혜진의 향기가 났지만, 다른 사람이 첫사랑 혜진이라고 말하니까. 만약 내가 성준이라면, 첫사랑이 아닌 사람에게 흔들리는 내 모습에 실망하거나 자책하는 모습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결국엔 혜진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에게 점점 더 다가가고, 고백도 했을 것이다. Q. 성준이 완벽한 남자처럼 보여도 ‘빙구’ 같은 구석이 있었다. 박서준에게도 그런 허당 면모가 있는지 궁금하다.
박서준 : 당연히 있다. 잘 까먹는 스타일이다. 집에서 외출할 때 한두 개 빼먹고 나와서 다시 집에 들어간다. ‘잘 챙겼겠지’ 생각하면 꼭 뭐가 없다. 차키가 없다든지, 지갑이 없다든지. 또,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잘 못한다. 어딘가에 집중하고 있으면 날 불러도 잘 못 듣는다.
Q.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는지?
박서준 : 난 캐릭터들의 감정이 보이는 장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재미있는 장면이 전체 드라마를 끌고 가진 못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성준의 감정이 보였던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딱 5부 엔딩이 그랬던 것 같다. 그전까지 계속 혜진이가 성준이를 ‘지랄준’이라며 부르면서 “쳐다도 안 본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던 혜진이가 빗속에서 트라우마에 휩싸인 성준이를 어릴 때처럼 지켜줬는데, 그 장면에서부터 어긋났던 두 사람의 감정이 다시 싹텄던 것이 아니었을까.
Q.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혹시 시청자들이 추리했던 예상 결말들을 본 적 있는가?
박서준 : 봤다. ‘황천길 가시오다’가 제일 웃기더라. (웃음) 처음에는 시청자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시지 했다. 난 당연히 로맨틱 코미디니까 당연히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시청자들의 추측들을 보니까, 이게 또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재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대한민국에 작가님들이 많았나 싶었다. (웃음)
Q.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결말이 마음에 드는가?
박서준 : ‘황천길 가시오다’처럼 혜진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진짜 그랬다면 멘붕이었을 것 같다. (웃음) 마지막 신에서 우리 딸 역할의 아이가 혜진이처럼 분장하고 왔는데 귀여웠다. 아, 마지막 촬영 날에 비가 와서 우산을 썼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드라마가 비랑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았나. 그래서 마지막에 비가 와준 것 같았다. 뭐, 어쨌든 혜진이랑 성준이가 행복하게 살게 됐으니까 맘에 든다.
Q. 음치 연기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극중에선 음치였는데 드라마 OST도 불렀더라.
박서준 : 음치처럼 부르기 힘들었다. 노래를 하면 할수록 제 음을 찾아가는 거다. (웃음) OST를 부른 건 작가님이 요청을 하셨다고 들었다. 12부 엔딩에 내가 부른 노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더라. 작품에 도움이 되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든 OST를 부르고 싶기 때문에 ‘알겠습니다’고 했다. 그런데 곡이 늦게 나와서 작가님이 원하시는 타이밍엔 노래가 안 나왔다.
Q. OST 녹음과 관련해 다른 에피소드는 없었나?
박서준 : 밤새 촬영하고 나서 아침에 녹음을 하러 갔다. 스튜디오 스태프들도 아침에 녹음하는 게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가수들도 아침에는 녹음을 잘 안 한다는데 좋은 곡을 망친 것 같아서 조금 아쉽다. 가수들은 하루 동안 녹음하고 그런다던데, 2~3시간 했었나? (웃음) 난 훈련이 된 사람이 아니니까 그 이상은 목이 못 버티더라. Q. 12월에 생일이 있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박서준 : 생일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어릴 적부터 ‘특별하게 보내는 하루’에 대해 어색하다. 남들 축하해주는 것은 오히려 편한데 기념일이라든지, 생일처럼 하루를 특별히 보내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 요즘엔 파티도 많이 하던데, 난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지려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좀 쑥스럽다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도 생일을 특별히 챙긴 적이 없었다. 항상 시험 기간이었거든. 내게 그냥 부모님께 감사한 날이다. (웃음) 데뷔한 다음엔 계속 현장에 있었던 것 같다.
Q. 3개월 가까이 몰두했던 작품이 끝났다. 남은 2015년은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
박서준 : 시간은 금방 갈 것 같다. 역할을 비워낸다는 표현들을 하는데, 주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웃고 떠들다보면 자연스럽게 지성준을 비우고 박서준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다음 작품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정리하는 시간도 가져보려고 한다.
Q. 배우 박서준의 목표가 궁금하다.
박서준 : 아직 목표를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데뷔를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진 한 작품이 주연이 되고 싶다가 목표였다. 이제부턴 내 필모그래피를 잘 쌓아갈 차례라고 생각한다. 행여 시청률이든 연기력이 부족해서 악평을 받든 실패를 맛본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들을 겪다보면 어떤 목표가 생기지 않을까.
Q. 질문을 바꿔보자. 박서준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웃음)
박서준 : 내년까지 딱 20대다. 남은 20대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
Q. ‘그녀는 예뻤다’처럼 ‘박서준은 00다’를 채운다면, 어떤 말이 들어갔으면 좋겠는가?
박서준 : 내 얼굴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 난 쌍꺼풀이 진한 것도 아니고, 코가 날카로운 것도 아니고, 각이 진 얼굴도 아니다. 색깔이 느껴지는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밋밋한 얼굴이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밋밋하게 생겼기 때문에 더 많은 역할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역할이든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연기자가 됐으면 좋겠다. 그만큼 내가 더 노력을 해야겠지만.
윤준필 기자 yoo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내가 밋밋하게 생겼기 때문에 많은 역할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Q. ‘그녀는 예뻤다’가 끝났다. 실감이 나는가?
아니, 이 무슨 망언인가. MBC ‘그녀는 예뻤다’에서 15년 동안 김혜진(황정음)만 바라본 순정남 지성준으로 여심을 저격했던 박서준이 밋밋한 외모의 소유자라니. 누가 동의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많은 역할을 담을 수 있는 얼굴’이란 말에는 부정할 수 없다. 2012년 KBS2 ‘드림하이2’로 배우 활동을 시작한 박서준은 단 한 번의 연기력 논란 없이 어느 작품에서나 자연스럽게 배역에 녹아들며 존재감을 뽐냈다. 그는 ‘대박’ 작품을 고집하지 않았다. 항상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배역을 찾아 100%에 가까운 노력을 쏟아 부었다. 열심히 박서준이란 하얀 도화지에 ‘배우’란 밑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예뻤다’는 박서준이 그동안 열심히 그렸던 밑그림에 첫 번째로 ‘채색’을 한 작품이었다. 그가 맡은 지성준은 일을 할 때는 완벽을 추구하는 까칠한 상사이지만 평상시에는 15년 동안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지고지순한 남자였다. 지성준이 지금껏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독보적인 캐릭터는 아니었다. 자칫 뻔하게 보일 수 있었던 캐릭터에 박서준은 자신만의 색깔을 입혔다. 시청자들이 그에게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박서준이 보여줄 다음 색깔은 무엇일까. 그리고 박서준은 완성해 나갈 ‘배우’란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박서준 : 촬영장에 더 이상 안 가니까 이제야 끝났구나 싶다. 촬영 막바지엔 끝이 보이니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더울 때 촬영을 시작해서 잠도 많이 못 자다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어쨌든 잘 끝나서 다행이다.
Q. 올해 2편의 드라마와 2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년 내내 쉬지 않고 일하는 것 같다.
박서준 : 일에 욕심이 있다기보다 일을 안 하면 허전한 느낌이 든다. 꼭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제 적응이 됐다.
Q. 지성준처럼 워커홀릭인가?
박서준 : 지부편이랑은 목적이 다른 것 같다. 지성준은 모스트 코리아를 1위로 만들고, 폐간을 막겠다는 목적이 있었지만 난 그냥 연기가 너무 좋아서 촬영 현장에 있는 것이다.
Q. ‘그녀는 예뻤다’는 어떤 점에서 마음에 들었나?
박서준 : 대본이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시트콤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고. 또, 내게 주어진 지성준이란 역할이 초반에 까칠하지만 마냥 그런 역할은 아닐 것 같아서 어떻게 이야기가 풀릴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시기에 이런 역할을 맡게 되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도 궁금했고.
Q. ‘이 시기에 이런 역할’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줄 수 있을까?
박서준 : 차근차근 경험을 쌓고 단계를 밟으면서 올라왔다. 이제는 주인공이 돼 극을 끌고 나가는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다. 시작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지 않나. 주연 박서준의 본격적인 시작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기작을 고를 때 굉장히 신중하게 선택했다.
Q. 이전에 ‘잘될 것 같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중 후자를 선택한다고 말했더라.
박서준 : 캐스팅이나 사업성 부분에서 누가 봐도 잘 될 것 같은 작품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것들을 따라 가는 것보단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 ‘잘될 것 같은 것’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배우 입장에서도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내 선택에 존중해야 만족감도 크고.
Q. 시청률 상승세를 보면, 지성준은 박서준이 ‘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박서준 : 시청률이 이렇게 잘 나올 줄은 예상 못했다. 항상 작품을 시작하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 책임감도 있고. 이번에도 주인공을 맡게 돼서 극을 끌고 가야 하니까 책임감을 느꼈다. 그런데 세상에 작품이 공개된 다음에는 내 영역이 아니다. 홍보라든지 입소문이라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내 역할은 연기를 하는 것이고, 난 역할에 있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을 100%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내 연기에 어떤 것들이 부족한지 시청자 반응을 가볍게 살펴보는 정도다.
Q. 그런데 사람이 취향이란 것이 있지 않나. 계속 ‘하고 싶은 것’을 하다보면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생기지 않을까?
박서준 : 비슷한 캐릭터를 계속 선택하기 보단 어떤 역할이든 열어놓고 생각하려는 편이다. 다만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에 담을 수 있는 역할인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역할인지를 고민한다.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생각이 들면, 선택하는 거다.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역할을 연기를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Q. 초반에 지성준의 캐릭터가 다른 주인공들에 비해 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박서준 : 나도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에 그런 고민을 했었다. 제일 밋밋할 수 있겠구나. 그런데 여러 드라마들의 대본을 보니까 오히려 주인공은 초반에 밋밋한 경우가 많더라.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초반에는 주인공보단 감초 역할이 돋보인다고 봤다. 하지만 어쨌든 드라마는 주인공을 따라가며 그들의 감정선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초반에 부족해보이더라도 충분히 내가 얻어갈 것도 많고, 그 안에서 보일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밋밋해 보일 것 같다는 걱정이 있었지만 지성준을 선택하기 잘한 것 같다.
Q. 지성준은 박서준이 그동안 보여준 적이 없었던 ‘독설하는 남자’였다. 그런데 또 혜진 앞에선 엄청 다정한 남자이고.
박서준 : 캐릭터란 것은 다중인격이 아닌 이상 일관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성준이 30살인데 그의 인생을 16부작 드라마에 고스란히 담을 수도 없지 않나. 당연히 생략된 부분이 생긴다. 그런 부분들에 왜 지성준이 이렇게 행동하는지가 녹아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디테일하게 전달해주는 것이 연기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찍을 땐 내가 그렇게 공격적으로 독설을 내뱉는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막상 방송을 보니까 심하긴 하더라. 하하. 난 화를 안 내본 사람이 화내면 어색하다고 미묘한 어색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잘 표현됐는지는 모르겠다.
Q. 다르게 생각해보면, 지성준은 거의 ‘김혜진 환자’다. (웃음) 지성준처럼 한 사람을 이렇게나 오랫동안 좋아하는 사람은 요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가 아닐까?
박서준 : 그렇게 생각할 순 있지만 빈도의 차이일 뿐 지성준 같은 남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 점에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성준의 모습은 성준의 강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아까 말한 것처럼 성준의 캐릭터가 밋밋했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성준에게는 ‘첫사랑 혜진을 잊지 못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것만큼은 다른 인물에게 없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예뻤다’는 결국 첫사랑 이야기였으니까. 성준이와 혜진이가 어릴 적 아름다운 기억들도 많았고, 한참 좋아하고 보고 싶을 나이에 헤어져서 편지도 주고받고. 그런 걸 보면 “성준이는 15년 동안 혜진을 잊지 못했을 것 같다”고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Q. 당연히 박서준도 첫사랑을 경험했을 텐데, (웃음) 그런 경험들이 이번 작품을 하는데 도움이 됐는가?
박서준 : 나한테도 학창시절에 첫사랑 경험이 있으니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긴 했다. 나는 어땠을까. 성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뭔가 상대에게 바란다는 마음보단 그녀를 보기 만해도 설레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지성준은 박서준이 아니지 않나. 성준은 어떤 마음으로 혜진을 느꼈을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해보고. 이런 고민들과 이해가 모여 하나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 같다.
Q. 본인이 지성준이었더라도, 극중에서처럼 첫사랑 혜진을 못 알아봤을까?
박서준 : 드라마니까 혜진을 몰라본 것이지, 현실에서는 보자마자 알아챘겠지. 혜진이 이력서만 봐도 알아채지 않았을까. (웃음) 성준도 계속 혜진과 마주치면서 어느 정도 느낌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혜진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헷갈렸다고 생각한다. 진짜 혜진에게서 내가 기억하는 혜진의 향기가 났지만, 다른 사람이 첫사랑 혜진이라고 말하니까. 만약 내가 성준이라면, 첫사랑이 아닌 사람에게 흔들리는 내 모습에 실망하거나 자책하는 모습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결국엔 혜진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에게 점점 더 다가가고, 고백도 했을 것이다. Q. 성준이 완벽한 남자처럼 보여도 ‘빙구’ 같은 구석이 있었다. 박서준에게도 그런 허당 면모가 있는지 궁금하다.
박서준 : 당연히 있다. 잘 까먹는 스타일이다. 집에서 외출할 때 한두 개 빼먹고 나와서 다시 집에 들어간다. ‘잘 챙겼겠지’ 생각하면 꼭 뭐가 없다. 차키가 없다든지, 지갑이 없다든지. 또,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잘 못한다. 어딘가에 집중하고 있으면 날 불러도 잘 못 듣는다.
Q.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는지?
박서준 : 난 캐릭터들의 감정이 보이는 장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재미있는 장면이 전체 드라마를 끌고 가진 못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성준의 감정이 보였던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딱 5부 엔딩이 그랬던 것 같다. 그전까지 계속 혜진이가 성준이를 ‘지랄준’이라며 부르면서 “쳐다도 안 본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던 혜진이가 빗속에서 트라우마에 휩싸인 성준이를 어릴 때처럼 지켜줬는데, 그 장면에서부터 어긋났던 두 사람의 감정이 다시 싹텄던 것이 아니었을까.
Q.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혹시 시청자들이 추리했던 예상 결말들을 본 적 있는가?
박서준 : 봤다. ‘황천길 가시오다’가 제일 웃기더라. (웃음) 처음에는 시청자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시지 했다. 난 당연히 로맨틱 코미디니까 당연히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시청자들의 추측들을 보니까, 이게 또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재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대한민국에 작가님들이 많았나 싶었다. (웃음)
Q.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결말이 마음에 드는가?
박서준 : ‘황천길 가시오다’처럼 혜진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진짜 그랬다면 멘붕이었을 것 같다. (웃음) 마지막 신에서 우리 딸 역할의 아이가 혜진이처럼 분장하고 왔는데 귀여웠다. 아, 마지막 촬영 날에 비가 와서 우산을 썼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드라마가 비랑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았나. 그래서 마지막에 비가 와준 것 같았다. 뭐, 어쨌든 혜진이랑 성준이가 행복하게 살게 됐으니까 맘에 든다.
Q. 음치 연기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극중에선 음치였는데 드라마 OST도 불렀더라.
박서준 : 음치처럼 부르기 힘들었다. 노래를 하면 할수록 제 음을 찾아가는 거다. (웃음) OST를 부른 건 작가님이 요청을 하셨다고 들었다. 12부 엔딩에 내가 부른 노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더라. 작품에 도움이 되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든 OST를 부르고 싶기 때문에 ‘알겠습니다’고 했다. 그런데 곡이 늦게 나와서 작가님이 원하시는 타이밍엔 노래가 안 나왔다.
Q. OST 녹음과 관련해 다른 에피소드는 없었나?
박서준 : 밤새 촬영하고 나서 아침에 녹음을 하러 갔다. 스튜디오 스태프들도 아침에 녹음하는 게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가수들도 아침에는 녹음을 잘 안 한다는데 좋은 곡을 망친 것 같아서 조금 아쉽다. 가수들은 하루 동안 녹음하고 그런다던데, 2~3시간 했었나? (웃음) 난 훈련이 된 사람이 아니니까 그 이상은 목이 못 버티더라. Q. 12월에 생일이 있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박서준 : 생일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어릴 적부터 ‘특별하게 보내는 하루’에 대해 어색하다. 남들 축하해주는 것은 오히려 편한데 기념일이라든지, 생일처럼 하루를 특별히 보내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 요즘엔 파티도 많이 하던데, 난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지려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좀 쑥스럽다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도 생일을 특별히 챙긴 적이 없었다. 항상 시험 기간이었거든. 내게 그냥 부모님께 감사한 날이다. (웃음) 데뷔한 다음엔 계속 현장에 있었던 것 같다.
Q. 3개월 가까이 몰두했던 작품이 끝났다. 남은 2015년은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
박서준 : 시간은 금방 갈 것 같다. 역할을 비워낸다는 표현들을 하는데, 주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웃고 떠들다보면 자연스럽게 지성준을 비우고 박서준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다음 작품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정리하는 시간도 가져보려고 한다.
Q. 배우 박서준의 목표가 궁금하다.
박서준 : 아직 목표를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데뷔를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진 한 작품이 주연이 되고 싶다가 목표였다. 이제부턴 내 필모그래피를 잘 쌓아갈 차례라고 생각한다. 행여 시청률이든 연기력이 부족해서 악평을 받든 실패를 맛본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들을 겪다보면 어떤 목표가 생기지 않을까.
Q. 질문을 바꿔보자. 박서준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웃음)
박서준 : 내년까지 딱 20대다. 남은 20대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
Q. ‘그녀는 예뻤다’처럼 ‘박서준은 00다’를 채운다면, 어떤 말이 들어갔으면 좋겠는가?
박서준 : 내 얼굴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 난 쌍꺼풀이 진한 것도 아니고, 코가 날카로운 것도 아니고, 각이 진 얼굴도 아니다. 색깔이 느껴지는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밋밋한 얼굴이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밋밋하게 생겼기 때문에 더 많은 역할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역할이든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연기자가 됐으면 좋겠다. 그만큼 내가 더 노력을 해야겠지만.
윤준필 기자 yoo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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