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한혜리 기자]
유호진
유호진
2007년 8월 5일 시작된 KBS2 ‘1박 2일’은 시즌 2를 거쳐 지금의 시즌 3의 모습을 갖췄다. 그간 ‘1박 2일’을 거쳐 간 멤버들은 참 화려했다. 국민 MC를 비롯해 영화배우, 한류스타까지. 그들이 주는 의외의 모습은 많은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허나 멤버들의 개인적인 문제로 몸살을 앓은 경우도 많았다. 큰 축을 이루던 MC와 스타 PD가 하차하면서 시즌 1은 마무리가 됐고, 배우들로 화려한 라인업을 구성한 시즌 2가 탄생했다. 기대와는 달리 시즌 2는 시즌 1에 못 미치는 저조한 반응을 얻어냈다. 그렇게 시즌 2가 마무리 되고 김주혁, 김준호, 데프콘, 차태현, 김종민, 정준영으로 구성된 지금의 시즌 3가 만들어졌다. 이미 시즌 3에 대한 기대치는 없던 상태였다.

‘기대치가 낮을수록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만족은 더 크다’라는 말이 있다. 시즌 3는 의외로 1회부터 웃음이 터졌다. 시즌 1의 정신을 이어받은 시즌 3는 더 혹독해진 복불복과 내츄럴함으로 시즌 1만큼의 웃음을 자아냈다. 시즌 3의 방송이 끝나면 온갖 커뮤니티에서는 ‘역대급, 오늘 역대급 웃음’이라며 ‘1박 2일’에 관한 게시글이 넘쳐났다. 시즌 3를 이끄는 유호진 PD마저 “의외의 합”이라고 말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여섯 명이 그야말로 ‘역대급’ 웃음을 이끌어냈다.

시즌 3가 시작한 지 2년이 지났고 200회까지 흘렀다. 시즌 3는 ‘1박 2일’ 전체 시즌을 통틀어 반 이상 가까운 회차를 이끌어나갔다. 반응은 예전만큼 뜨겁지는 않다. 허나 이제 ‘1박 2일’은 안정권에 들어섰다. 편성 변동이 심한 예능 프로그램에 ‘안정’이 어딨겠냐만은, 그만큼 ‘1박 2일’은 꾸준한 웃음을 전한다는 의미인 것. 이에 시청자가 ‘1박 2일’에 안정감을 느낀다면 연출자인 유호진 PD가 보는 현재 ‘1박 2일’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27일 유호진 PD는 여의도 한 식당에서 펼쳐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1박 2일’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털어놨다.

Q. 긴 여정이었다. 시즌 1 조연출부터 지금의 시즌 3의 메인피디까지 긴 시간을 ‘1박 2일’과 함께 보냈다. 시즌 3 200회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유호진 PD : 아, 울 것 같은데. 하하. 어영부영 오다보니 200회가 됐다. 이제야 난 밥차 밥을 한 그릇 온전히 먹을 수 있게 됐다. 멤버들이랑도 형이라고 부르고 말도 놓게 됐고, 2년 걸려서 겨우 PD 노릇 하기 시작한 것 같다.

Q. 때마침 큰 형 김주혁이 하차한다. 좋은 일과 아쉬운 일이 함께 겹쳤다.
유호진 PD : 주혁이 형의 하차는 갑자기 정해진 건 아니다. 지난여름부터 의논이 오갔다. 오히려 마지막 녹화하는 날은 하차 소식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편안하게 진행됐던 것 같다. 농담도 건네면서. 개인적으로 나는 ‘OST 로드’(2015.10.25 방송) 특집 녹화할 무렵이 제일 생각이 많았다. 녹화한 걸 보다보니까 ‘이 형이랑 두 번밖에 촬영할 수 없겠구나’ 싶더라. 마지막 촬영은 평소보다 더 번잡했다. 주혁이 형이 웃길 때마다 ‘저 형 (예능) 진짜 잘하는데’라면서 아쉬움이 들더라. 저렇게 또 사람 좋은 형 없으면 어쩌나. 계속 아쉬운 마음이었다. 마치 초콜릿을 하나씩 까먹고 서너 개 남았을 때 기분이랄까. 참 고마운 형이다.

Q. 후임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유호진 PD : 지금은 그냥 작가님들과 CP님과 계속 논의 중이다. 사실 내가 연기자에 대한 감이 없는 편이다. 선배들의 조언을 얻고 작가님들과 의논을 하고 있다. 지금은 회의에 거론된 많은 후보들을 압축해 나가는 중이다. 아직 압축하기가 어렵다. 처음엔 큰 형 자리가 비었으니 큰 형을 모셔올까도 하다가도 ‘그게 맞나?’ 하는 의심스런 마음이 들어 갈팡질팡 중이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리 멤버들은 기가 좀 약하다. 좀 착한 사람이 와야겠다라고 느꼈다. 하하. 연령도 직군도 완전 열려있지만, 김주혁이 가지고 있던 큰 장점 중 하나가 인간성이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계승하고 싶은 마음이다.
유호진 PD
유호진 PD
Q. 착한 사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왔으면 좋겠는지 말해줄 수 있나?
유호진 PD : 멤버 문제는 언제나 잠재적인 문제인 것 같다. 진짜 잘 모르겠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특히나 합이 중요하다. 김주혁, 김준호 같은 경우도 계획적인 합류가 아닌데도 이렇게 좋은 합을 보여줬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전쟁터에 나갈 땐 한 번 기도를 하고, 바다에 나갈 땐 두 번 기도를 하고, 결혼할 땐 세 번 기도를 한다는 말이 있다. 난 촬영할 때 한 번 기도하고, 개편일 때 두 번 기도를 하고, 사람을 뽑을 때 세 번 기도를 한다. (웃음)

Q. 이번 기회에 전체적인 개편을 꾸릴 생각은 없는가?
유호진 PD :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Q. 신기한 게 갈수록 더 호흡이 좋아진다. 2년 간 꾸준한 인기를 유지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유호진 PD : 우리 프로그램은 계속 봐주시는 분들이 있다. 고정 시청자들의 지지 덕분에 버티고 있는 거다. 그 분들 덕분에 정신 나간 짓도, 치기 어린 짓도 많이 해본 것 같다. 또 하나는 작가님들이 게임 메이킹에 능한 사람들이다. 요즘 관찰 예능들이 참 많이 발전해 있으니까 웬만큼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 있어 작가님들이 많은 상황을 활용할 수 있게 게임을 참 면밀하고 촘촘하게 잘 짜줬다. 게임이란게 출연자들의 다양한 표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니까, 너무 고통스럽거나 밋밋하면 게임을 하는 본인도 재미없을 것이다.

Q. PD로서 보기에 이번 시즌 성공했었던 특집과 비교적 망했던 특집은 무엇이 있나?
유호진 PD : 작년 건 성공작이 많았는데 올해 아이템 중에서는 ‘여사친’ 특집(2015.06.14.~06.28)인 것 같다. 남녀를 떠나서 털털한 웃음이 나와서 좋았다. 남자가 여자를 증언하고, 여자가 남자를 증언한 걸 통해서 멤버들과 게스트들의 자연스런 모습이 가장 잘 보였던 것 같다. 음, 실패한 건. 솔직히 망한 건 많은 데 생각이 안 나네. 하하. 내가 망한 건 마음이 아프니까 빨리 잊는 편이다.

Q. 시즌 1 조연출 때랑, 시즌 3 메인 PD 때랑 어떻게 다른가?
유호진 PD : 책임감의 차이인 것 같다. 후배였을 땐 너무 좋았다. 제일 선임 후배였을 때. 그땐 스태프들 얼굴도 알고, 연예인과도 어느 정도 얼굴을 텄을 때였다. 기획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스탠바이만 해놓으면 나머지는 윗 선배가 다 책임졌으니까.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메인 PD가 되고 나니까 절대 말할 수가 없더라. (웃음) 다 내 책임이니까. 재미없다고 말도 못하고, 기분 나쁘다고 말도 못하는. 많이 참아야 한다. 하하. 사실 내가 인간관계 조율이 서툴다. 작가 분들이나 연기자 분들, 스태프 분들 모두 불만은 다르잖아. 그런 걸 일일이 캐치해서 알맞게 조율을 해줘야 하는 게 PD의 몫인데 잘 못한다. 그래서 간혹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해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다.
1박 2일 멤버들
1박 2일 멤버들
Q. 올해 KBS 연예대상을 기대하고 있는가?
유호진 PD : 예. 좀 주세요. (일동웃음) 차태현 대상? 받았으면 좋겠지. 사실 차태현의 대상보다 멤버 한 명 한 명, 모두 상이 간절하다. 특히 김종민. 김종민이 최우수상을 받았으면 좋겠다. 뭐, 희망사항이니까 이 정돈 말해도 되는 거겠지? 하하. 김종민만큼은 꼭 수상을 했으면 좋겠다. 세월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가끔 옛날 테이프를 편집을 할 때보면 “김종민 여기도 나왔어?”라고 놀랄 때가 많다. (웃음) 김종민은 예능으로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종민의 예능 포지션 같은 경우 자기 인생을 보여줘야 할 포지션이다. 일부러 자신을 망가트리며 다른 사람의 펀치 라인을 돕는 역할이다. 메인 MC들의 얘기가 진행되게끔 밑받침해주는 역할. 대체 불가한 역할인거다.

Q. 대형 특집은 아직 계획이 없는가? 가령 시청자 투어라든지 해외 특집이라든지.
유호진 PD : 아직은 큰 계획이 없다. 일단 멤버가 재정비 되어야 생각할 문제인 것 같다. 해외 특집도 그간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서 당분간은 계획이 없다. 시청자 투어도 당분간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최근 큰 기획이 없긴 했지. 반 년 이상 멤버들의 소소한 재기발랄함으로 버티고 있다. 한 번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기획도 해야 할 텐데. 아마 내년에 하나쯤은 하지 않을까. 늘 계획이란 건 바뀌니까 잘 모르겠다. (웃음) 6인 체제는 내년 봄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언제까지 게스트 플레이로만 갈 순 없으니까.

Q. PD가 꼽는 200회 특집 관전포인트는 무엇인가?
유호진 PD : 특집으로 구성하진 않았다. 굳이 이름을 붙어 ‘안녕, 주혁이 형’, ‘안녕, 구탱이 형’이라고 치면, 거기서 관전포인트는 김주혁의 얼굴이겠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촬영하면서 표정이 참 다양했다.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달랐다. 편집상으로도 김주혁의 얼굴을 평소보다 좀 더 보여주려 노력했다. 내용 자체는 평소랑 똑같지만. 스페셜한 얼굴은 필요 없다. 평소와 똑같은 날 이 사람이 어떻게 다르게 느끼느냐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달라질 거다.

Q. ‘1박 2일’ 전 시즌을 통틀어 벌써 10년 차다. 연출진으로서 10년에 대한 무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유호진 PD : 결국 모두를 만족시키진 못할 것이다. 중요한 건 ‘1박 2일’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비슷한 만족을 제공하는 거? ‘1박 2일’은 오래된 음식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떤 사람은 그 가게가 맛이 없을 수도 있는 거다. 오래된 곰탕집이 문을 닫았을 때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을 닫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손님 유치도 중요하지만 단골이 중요한 법이다. 그러기 위해선 가업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기존 재료를 쓰는데 맛이 변하면 안 된다. 예능도 그렇다. 책상 물림이라 생각하고 배운 걸 재생산해낸다. 이때, 아버지 맛만 낼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부가가치 등은 편성에서 생각할 문제인 거다.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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