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능력자_태일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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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은 추석 연휴에 방송된 파일럿 프로그램들 중 정규 편성에 성공한 첫 번째 프로그램이다. 파일럿 방송 당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능력자들’의 정규편성은 이례적이란 반응도 존재했다. 지난 10일 열린 ‘능력자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지선, 허항 PD는 “시청률로 정규 편성을 결정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며 “‘능력자들’이 보여준 새로운 트렌드를 높게 봐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주말 예능만큼이나 시청률 격전지인 금요일에 편성된 것을 걱정하면서도 ‘능력자들’이 새로운 스타일의 일반인 토크쇼가 될 것이란 확신도 내비쳤다. 제작진들의 말에 따르면 ‘능력자들’은 앞으로 덕밍아웃(덕후+커밍아웃, 특정 분야의 덕후라고 스스로 공개하는 것)한 덕후들이 그동안 자신들이 쌓아온 덕력(덕후들의 공력)을 뽐내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어떤 덕후들이 ‘능력자들’의 손을 잡고 떳떳하게 음지에서 걸어 나올까.

Q. ‘능력자들’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지선 PD : 덕후를 ‘학위 없는 전문가’라고 표현한 기사도 봤다. ‘덕후’가 하나의 사회현상이기도 하고. 그보다 ‘무한도전’ 가요제 특집에 출연한 아이유 덕후 (유)재환 씨를 보면서 ‘사람이 한 우물만 파도 성공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환 씨가 ‘능력자들’ 기획의 출발점이었다.

Q. 과거 특이한 일반인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케이블채널 tvN ‘화성인 바이러스’가 있었다. ‘능력자들’과 ‘화성인 바이러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지선 PD : 우리의 기획의도 자체가 ‘화성인 바이러스’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하나의 분야를 좋아하고, 그것에 몰두했던 것이 새로운 ‘능력’으로 이어진 분들을 찾는다. ‘능력자들’은 지식쇼나 정보쇼에 가까운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웃음 포인트는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Q.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준다면?
허항 PD : 1회에서 3명의 덕후가 나오는데, 그중 ‘버스덕후’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어린 친구인데 버스를 좋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능력자들’에서는 묵묵히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섭렵해가며 마침내 경지에 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덕후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Q. 파일럿 방송을 보면, 특별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치고는 진행 방식이 조금 고전적이었다. 예능적인 장치가 거의 없는 일반인 토크쇼였다. 지상파 프로그램이라 그런 걸까.
이지선 PD : 사전 인터뷰를 나누면서, ‘덕후’들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인터뷰를 해보니, ‘덕후’들이 비슷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1등을 하는 방식은 원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깊고 진지하게 하고 싶어 했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볼 수 있겠지만, ‘덕후’들은 자기 생활을 보여주고, ‘덕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덕후’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그릇이었다.

Q.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덕후’일까? 정해진 기준이 없기 때문에 섭외와 관련해서 논란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지선 PD : 두 가지 원칙을 지키며 섭외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 순수함이다. 정말 순수하게 어떤 분야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두 번째는 왜 좋아하는지 나름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덕후’들과 많은 미팅을 하면서 덕후에 대한 감을 쌓아가고 있다.

허항 PD : 애매모호한 표현이지만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이 사람이 공부를 해서 ‘덕후’처럼 보이는 것인지, 정말 ‘덕질’하는 것 자체를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인지가 느껴진다. ‘능력자들’이 원하는 덕후는 순수하게 어떤 분야를 사랑하고, 왜 그런 것에 빠져있냐고 주변에서 손가락질해도 굴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다.

Q. 편성표를 보니 90분 편성을 받았더라. 방송시간이 조금 긴 편인데, 혹시 이유가 있는지?
허항 PD : 녹화가 생각보다 길었다. 음지에서 막 나온 ‘덕후’들이라 할 이야기가 많으셨던 것 같다. 언제 ‘편의점 덕후’의 인생을 흥미롭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겠는가. 순수하게 본인이 사랑하는 분야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토크에서 진정성이 느껴지고, 편집하기 아까운 이야기들도 많았다. 알차게 90분을 채웠다고 생각한다. 공감 가는 이야기도 많고, 독특하면서 친근한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Q. 첫 방송에 출연하는 덕후들을 선정할 때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이지선 PD : 초반에는 의도적으로 ‘박사님’들이 없는 부분의 ‘덕후’들을 찾았다. 덕후문화에 궁금한 시청자들에게 ‘이것이 덕후다’란 것을 빨리 알려주고 싶었다. 편의점학 박사, 버스학 박사 이런 분들은 없으니까. 1회 출연하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10년 이상 ‘덕질’을 했다. 녹화장에서 대본에 없는 질문들을 던졌는데도 막힘없이 술술 얘기가 나오더라.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랐다. (웃음)

Q. 앞으로 어떤 덕후들을 만날 수 있을까? 준비하고 있는 아이템들을 조금만 알려준다면?
허항 PD : 아무래도 시청자들이 먹는 것에 공감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라면 덕후도 만나보고, 막걸리 덕후도 만나봤다. 막걸리 덕후는 애호가를 넘어 진짜 ‘덕후’시다. (웃음) 또, 추리에 빠진 덕후도 있다. 단순히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추리 문제를 만들고, 현장 검증을 다니는 분들도 있다. 음악인 덕후들도 만나고 있다. 보통 비틀즈 덕후하면 우리 아버지 세대를 떠올릴 수 있는데 비틀즈에 대해 줄줄 꿰고 있는 고등학생도 만나봤다. 앞으로 더욱 ‘덕력’이 센 분들이 나올 것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이지선 PD : 법원 판결문을 외우는 덕후가 있다. 만나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분은 아직 ‘덕밍아웃’을 할 생각이 없으시다고 하더라. 그 분이 ‘능력자들’에 출연하실 때까지 프로그램을 계속 하고 싶다. (웃음)

윤준필 기자 yoon@
사진. MBC

[능력자들 첫방 ①] 덕후들이 당당해지는 본격 ‘덕밍아웃’ 토크쇼
[능력자들 첫방 ②] 제작진이 말하는 ‘능력자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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