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6년차. 결코 짧지 않는 경력. 20대였던 배우 조현재는 10년 동안 치열하게 연기 경력을 쌓았다. 그러던 조현재가 어느 순간부터 보기 힘들어졌다. 이유는 군 복무. 조현재에게는 첫 공백기였다. 제대 후 ‘20대 조현재’가 그랬던 것처럼,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예상과는 달리 조현재는 몇 작품 후, 다시 1년 6개월간의 공백기를 가졌다. 배우로선 쉽지 않은 선택. 조현재는 좀처럼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MBC ‘제왕의 딸, 수백향’(2013-2014) 이후 SBS ‘용팔이’(2015)는 1년 6개월만의 작품이었다. 조현재는 ‘용팔이’로 과감한 변신을 꾀했다. 극 중 야망 넘치는 한도준으로 첫 악역에 도전한 것. 그의 연기 인생에 있어 가장 파격적인 행보로 남았다. 더욱 그의 공백기가 궁금해졌다. 쉼이 변화의 계기가 됐다는 건 작품을 통해 충분히 전해졌는데, 나아가 공백기는 그의 배우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궁금증을 안고 조현재를 만났다.
Q.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용팔이’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기분이 어떤가? 조현재 : 악역 캐릭터로 첫 시도를 한 ‘용팔이’가 호평 받아서 기분이 좋다. 작품 선택할 때 고민도 많았는데, 결과가 기대 이상으로 나와 감사할 따름이다.
Q. 데뷔 이후 첫 악역이었다. 악역을 연기해보니 어땠나? 조현재 : 악역은 비뚤어진 마음이 행동이나 대사로 악스럽게 표현되더라. 이런 연기는 전에 해본 것들도 아니었고, 무척 생소했다. 완전히 새로운 역할을 만난 거지. 연기할 때 짜릿함을 느꼈다. 간혹 사람들이 한도준을 보면서 나쁘다, 무섭다고 할 때가 있었다.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연기자로서 기분이 좋더라.
Q. 10년 이상 커리어를 쌓아온 배우가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는 건 꽤 도전인 것 같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지만 작품에 임하기 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조현재 : 나는 그동안 반듯한 이미지가 강했다. 늘 내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역할을 만나고 싶었다. 20대부터 변화를 시도하려고 했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안 오더라. 그러다 뒤늦게 ‘용팔이’로 기회가 왔다. 한도준을 연기하기 전까지 역할에 대한 고민은 당연히 있었다. 새로운 도전이었으니까. 대중에게 나의 다른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다.
Q. 변신에 대한 주변의 반응도 궁금하다. 조현재 : ‘네가 어울릴까?’ 대부분 이렇게 얘기하더라. 지인들도, 팬들도 우려의 소리가 많았지. 사실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잘 어울리겠다’고 했다. 막상 해보고 나니 ‘진짜 잘어울렸다’고 하더라. 우려를 표하던 사람들도 반전이 일어났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연기자로선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뿌듯했다. 앞으로도 이 맛을 계속 느껴보고 싶을 정도로.
Q. 끝내고 보니 어떤가? 첫 악역 연기는 만족스러웠는가? 조현재 : 평가를 하기엔 굉장히 어렵다. (웃음) 어느 작품이나 항상 100% 만족은 못한다. 늘 아쉽고, 더 잘하고 싶지. 다만 변신을 시도했는데, 혹평이 아닌 호평이 이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느꼈다. 큰 사랑을 받으니 예전보단 좀 더 연기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더라. 신중해지고, 책임감이 더 커졌다.
조현재Q. 한도준은 시청자들을 분노케 하는 악역은 아니었다. 오히려 연민이 드는? 그의 욕심을 타당하게 만든 어린 시절 불행한 배경 때문일지 몰라도. 본인이 느낀 한도준은 어땠나? 조현재 : 어떻게 보면 많이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었다. 태초부터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도준은 어린 시절 가족에게서 소외당했고, 아버지의 사랑도 못 받았다. 아버지로부터 돈과 권력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 마냥 가르침을 받아온 인물이었다. 한여진(김태희)에 대한 비교도 늘 따랐고. 성인이 돼서도 좋아하는 여자한테 사랑도 못 받았다. 한도준은 애정결핍에 콤플렉스가 많은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를 이용하려는 주변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더 날카로워졌고, 악행을 일삼았다.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더 큰 악당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Q. 성공에 대한 집착 속에서도 채영(채정안)만은 진실로 사랑한 것처럼 보였다. 조현재 : 도준이 채영을 사랑한 건 맞다. 보통 사랑보다 감정이 더 깊은 게 문제였지만. 도준은 늘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언가 받기를 원했다. 그런 도준에게 채영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도준은 더 화가 났었던 거다. ‘너마저?, 네까짓 게?’라면서. 점점 채영에 대한 사랑이 비뚤어졌다. 결국 올바르지 못한 감정들이 그릇된 판단을 낳게 됐고.
Q. 반대로 채영은 도준을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조현재 : 채영은 도준을 사랑하지 않았다. 채영조차도 어떤 권력 때문에 도준과 결혼했던 거였다. 무언가의 이득을 위해서. 도준의 주변엔 그런 사람들 밖에 없었다.
Q. 한도준의 죽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사고를 당하고, 칼에 찔리고. 일련의 사고가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허무했을 것 같았다. 조현재 : 결국엔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조금 허무하기도 했지. 고 사장도, 한도준도 권력이나 가진 거 상관없이 허무하게 가는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 한도준을 통해 극대화되어 표현되긴 했지만, 결국 우리 주변에 있는 얘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허무하고 외롭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겉으로는 모든 것이 풍요롭지만, 내면은 불쌍하고 외로운 사람일 수도 있다. 주변을 돌이켜보게 됐다. 사람은 늘 돌아서서 후회하니까. 한도준의 죽음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을까.
Q. ‘용팔이’ 결말에 대해 말이 많았다. 연기자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조현재 : 결말은 사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한도준의 주변을 돌이킬 수 있게끔 만들었다면, ‘용팔이’의 지금의 결말이 맞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허무할 수도 있겠다 싶더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누구는 되게 좋았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구는 굉장히 아니었다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큰 그림은 작가님, 감독님이 그려놓는 거다. 배우가 맘대로 바꿀 수도 없다. 바꿔서도 안 되겠지. 배우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사실 난 판단은 대중의 몫이라 생각한다. 보는 사람의 판단이 맞는 거고. 모든 의견을 존중한다.
Q. 매 작품이 끝날 때마다 캐릭터에서 잘 빠져나오는 타입인가, 벗어나기 힘든 타입인가? 조현재 : 그때그때 마다 다르다. 캐릭터에 빠져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좋을 때도 있었다. 때로는 집에서 핸드폰도 꺼둔 채, 홀로 연기 연습을 했다. 혼자 집에서 고함만 지르고, 소리치다보면 내 모습이 그렇게 차가워 보일 수가 없더라. 연습과 캐릭터에 빠져 전화기도 꺼놓고, 며칠을 그럴 때가 있었다. 20대 때는 더 그랬던 것 같았다. 다른 걸 할 여유도 없었으니까. 30대에 들어서면서 작품이 끝나고 캐릭터에서 빨리 빠져나오려고 노력했다. 캐릭터에 너무 빠져있으면 생활에 불편함이 있으니까.
Q. 한도준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 같다. 조현재에게 있어 첫 변신이었으니까. 지금까지 연기한 역할 중 순위를 매기자면, 몇 위 안에 드는가? 조현재 : 애착이 많이 가는 게 사실이다. 워낙 고심도 많았고, 노력을 쏟아 부었던 캐릭터였으니까. 감독님과 함께 만들어가면서 저절로 애정이 쏟아지더라. 순위를 매기긴 어렵다. 다른 캐릭터들과 대등한 순위다. 그럼에도 굳이 매겨보자면, 내 필모그라피 중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정도?
Q. 앞으로도 조현재의 변신은 계속될 예정인가? 조현재 : 배우로서 변신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악역을 해보고 싶다. 다른 면이 있는 악역을 보여주고 싶다. 헐리웃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소름끼치는 뱀파이어 같은? 판타지 장르를 해보고 싶다. 액션이나 블록버스터도 좋다. 안 해봤던 장르들을 만나고 싶다.
Q. 많은 배우들이 변신을 선호한다. 이미지든, 역할이든. 배우로서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반전에서 느끼는 희열감 때문일까? 조현재 : 배우는 각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일상에서 해볼 수 없는 성격을 연기하고, 만들어내는. 그런 작업들이 재밌다. 더군다나 내 작업을 대중들이 공감해준다면 더 행복한 거고. 누군가가 공감을 해줘야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이 없으면 씁쓸하기도 하다. 다행히 이번 작품은 많은 시청자분들이 공감해주셔서 기분이 좋다.
조현재Q. 처음엔 이미지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선한 역할로 인한 이미지가 강했고, 선한 인상이 얼굴에 드러나는 배우였으니까. 이런 이미지 고착에 대한 고충도 많았을 것 같다. 조현재 : 아무래도 난 강한 캐릭터나 악역에 있어서 캐스팅 1순위 배우는 아니다. ‘센’ 인상이 아니니까. 그래서 기회가 늦게 온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다르다. 트렌드가 바뀌었다. 오히려 반듯하게 생긴 사람들이 악행을 하면 더 무섭다. 반전이니까. ‘용팔이’ 대본을 받고, 내 역할을 알았을 때도 크게 부담은 없었다. ‘내 소신껏 캐릭터를 만들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물론 내가 산 속의 원시인이나 산적 역할 같은 걸 한다면 굉장히 안 어울리겠지. 하하.
Q. 바른 이미지처럼 실제로도 바른 생활을 하는가? (웃음) 조현재 : 굉장히 반듯하다. 정말로. 신호 하나 위반안하고, 딱지도 날아오는 게 없다. 이렇게 내 자랑해도 되나? 하하.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실생활이 이래서 그런가. 극 중에서라도 악행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나보다.
Q. 스캔들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결혼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조현재 : 결혼 생각 당연히 있다. 마흔 전에는 가고 싶다. 나만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게 인생의 목표다. 또 지금은 ‘용팔이’가 잘됐으니, 좀 더 일에 탄력을 받아보고도 싶다. 가정도 중요하고, 일도 놓칠 수 없고. 지금 그런 상황이다. 차차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겠지.(웃음)
Q. ‘용팔이’를 시작하면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이 또한 조현재라는 배우의 이미지와는 매우 거리가 멀어보였다.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조현재 : 진짜 거리가 멀다. (웃음) ‘용팔이’ 시작하면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그전에 페이스북도 했었는데, 잘 안하게 되더라. 인스타그램은 스마트폰으로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사실 지금 돌이켜보니까, 팬들에게 너무 고맙더라. 내가 연기한지 16년이 됐다. 데뷔 때 팬들이 지금 팬들이다. 10년 넘게 변함없이 응원해준다는 게 쉽지 않은 일 아닌가. 일 년을 쉬다가 나와도 팬들은 그 자리에 있더라. 고마움에 시작했다. 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이런 모습, 저런 모습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다. 안하다보니 굉장히 어렵더라. 하하. 나름 열심히 했다.
Q.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 인기가 대단하다. 물론 중국 드라마를 찍긴 했지만, 그것도 인기를 얻은 후였다. 온전히 한국 작품으로만 인기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조현재 : 중국 팬들도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신다. 일본 팬들은 지금도 단체로 오셔서 응원해주시고 간다. 너무 감사할 뿐이지. 태국이나 이란에도 팬들이 계시더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많은 외국 분들이 응원을 해주시더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개인보다, 한국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세계에서 인기를 얻는 것 같다. 한류가 점점 더 확산되는 것 같아서 좋다.
조현재Q. ‘용팔이’는 MBC ‘제왕의 딸, 수백향’(2013-2014) 이후 1년 6개월만의 작품이었다. 긴 시간 쉬었고, 이후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에, 공백기의 시간들이 궁금해진다. 그때의 공백기는 배우 조현재에게 어떤 시간이었나? 조현재 : 20대 때는 생계형 연기자였다. 쉬고 싶어도 절대 쉬어서는 안 되는. 정신없이 달려왔다. 반면에 30대 때는 군대도 다녀오고, 공백기도 있었다. 배우로서 되짚어보는 시간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공백기가 길어지더라. 생각이 많아질수록 작품을 선택하기도 어려워졌다. 어떤 모습으로 대중을 만나야할까 고민이 많았다. 사실 그동안 기존에 하던 선한 역할은 많이 들어왔었다. 난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계속 새로운 캐릭터를 기다렸다.
Q. 그동안 드라마의 제작 환경이나 매체가 많이 달라졌다. 조현재가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 휴식기를 갖는 동안 가장 크게 변화했던 것 같다. 스스로도 전반적인 변화를 느꼈나? 조현재 : 전엔 몰랐는데, ‘용팔이’를 하면서 많이 느꼈다. 많은 분들이 스마트폰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시더라. 매체가 굉장히 다양해졌다. 연기자로서 매체의 다양화는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다. 나는 그동안 늘 공중파나 영화로만 대중을 찾았다. 환경이 많이 달라진 만큼, 이제는 다양하고 유연하게 찾아뵙고 싶다.
Q. 올해 소속사를 옮겼다. 또, 올해 ‘용팔이’를 통해 성공적인 변신과 흥행을 다 잡았고. 조현재에게 꽤 뜻 깊은 해가 아닐 수 없다. 조현재 : 올해는 나에게 좋은 일들만 일어났다. 좋은 기운이 들어오는 해인 것 같다.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에 대한 보상 같기도 하고. 앞으로도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
Q. 연기를 시작한 지 15년이 지났다. 배우로서 15년의 삶은 어땠나? 조현재 : 20대 때는 각박했다. 나를 돌아볼 시간도 없었고. 30대 들어서야 신중해지고, 연기를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전까지는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시작한지 16년이 됐지만, 지금부터 스타트라는 마음이 든다. 스타트다운 스타트. 앞으로 어떤 캐릭터로, 어떤 연기를 할지 나 또한 기대되고 설렌다.
Q. 앞으로 조현재는 배우로서 어떤 모습을 그려나갈지 궁금하다.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가? 조현재 : 드라마가 잘 끝나서 기분이 좋다. 시청자들한테 “조현재가 나오는 부분이 재밌었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20년 더 배우를 하고 싶다. 그때까지 왕성하게 잘 해내면 ‘완전 성공’이라 생각한다. 그 뒤로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웃음) 캐릭터를 하나, 하나 소중히 가꿔가며 대중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