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광고를 많이 찍는 것이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광고라는 것이 결국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하는 것일 텐데, 굴지의 기업들이 고소영을 기용하는 것은 그만큼 그녀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아직 높다는 방증일 테다. 스타가 되고 난 후 몇 차례 방송에 얼굴을 비추고, 간간히 행사장에 출몰하고, 피부 관리하다가 CF장으로 향하는 것이 어디 또 고소영만의 일인가. 심적으로 아쉬움을 토로할 수 있어도 도덕적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비난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서민 등골 빼먹는 대부업 광고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CF로 흥한 고소영에게 CF가 악수가 돼버린 상황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 ‘그룹 홍보 광고’ vs 대부업 ‘꼼수’ 광고 고소영은 지난 달 일본계 금융사 J모 그룹과 광고 계약을 체결했다. J모 그룹은 J모저축은행과 J모캐피탈을 보유한 금융회사, 즉 대출을 주업무로 삼는 제2금융권 회사다. J모 그룹은 고소영이 지닌 세련된 이미지와 신뢰감을 내세우며 자사 홍보에 나섰다. 광고를 살펴보면 “내 옆에, 당신 옆에 누가 있나요”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고소영이 등장, “기대하세요”라는 달콤한 목소리를 선보인다.
고소영의 이번 논란은 과거 구설수에 올랐던 대출업체 출연 연예인들의 사례와는 성격이 다르다. 고소영의 광고는 특정 업체의 개별 상품 광고가 아니어서 송출 규제에서 자유롭다. 대부업체나 저축은행 광고는 대부업법 개정상, TV에서 방송될 수 있는 시간대가 따로 있다. 그러나 고소영의 해당 광고는 개별 대출상품 광고가 아닌 그룹 이미지 광고이기에 이 같은 규제를 받지 않는다. 고소영이 억울할 수도, 반대로 더 비난 받을 수 있는 여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톱스타를 기용한 전형적인 ‘꼼수’ 광고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TV광고 규제의 우회노선으로 보는 비판적 시각이 상당하다.
논란이 일자 고소영 측은 “고금리 상품이나 대부업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제외하고 오로지 기업 광고 이미지 모델로만 계약을 맺었다. 대부업 부분에 대한 것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J모 그룹과 대부업 두 회사는 사실상 한식구다. J모 그룹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직장인 맞춤대출’ ‘최대 5천대출’ ‘햇살론’이 연관검색어로 쏟아진다. 고소영은 광고 선정에 조금 더 신중할 수 없었을까.
# 고소영이 치르게 될 고금리 이자
대부업체들이 폭발적인 매출 증가에 성공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말부터다.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섭외해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인 게 주효했다. 연예인을 모델로 섭외한 업체는 대부분 일본계 회사였다. 그들은 거액의 광고료를 연예인들에게 지불하는 대가로 기업의 이미지를 포장했다. 무이자! 무이자!”(조원석) “최고의 당신께 11.25% 낮춰드립니다.”(최민수) “현금서비스밖에 모른다”(이보영) “여보게, 서민에게 열린 금융을 만들자는 꿈 잊은 겐가”(명계남) 좋아하는 배우가, 믿는 오빠가, 이미지 깨끗한 배우가 내뱉는 속삭임을 믿고 돈을 빌린 서민들을 기다리는 건 66%에 이르는 ‘이자 폭탄’이었다. 파산의 길로 들어선 이들이 속출했다. 이영아, 한채영, 김하늘, 최민수 등 광고에 등장한 스타들이 고금리 사채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도덕성 논란이 커지자 김하늘은 2007년 위약금을 물고 광고 계약을 해지하기도 했다. 이후 잦아드는가 싶었던 대부업계의 스타마케팅이 고소영을 통해, 다소 진화된 방식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목소리는 과연 지나친 우려인 것일까.
스타는 이미지를 먹고 산다. CF는 그런 스타의 이미지를 산다. 누군가 대부업체 광고모델은 양날의 칼이라 했는데, 양날의 칼이라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건, 그냥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거액의 출연료와 오랜 시간 쌓아올린 이미지를 맞바꾸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마 지금 이 글에 소환된 스타들은 ‘왜 잊고 있던 사건을 또 거론하냐’고 볼멘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지해야 할 것은 이것이 그들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치러야 하는 이자라는 점이다. 아마, 고소영에게도 이 이자는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이 무슨 고금리 이자란 말인가.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팽현준 기자 pangpang@, 대부업광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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