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윤성호: 집까지 와줘서 고맙다.(웃음)
Q. 왜 이리 바쁜 건가.
윤성호: 관여하는 프로젝트가 많다. 모두 내가 연출하는 건 아니다. 가령 캐스팅에만 관여하는 프로젝트가 있고, 직접 연출은 안 해도 스태프-감독-배우들을 패키징 하면서 톤 앤 매너 등을 기획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왜, 재능이 많은데 TV를 안 해 본 사람이 있을 수 있고, TV만 하고 영화는 안 해 본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외부로 자신을 보여주는 패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을 작품과 연결시키는 거다.
Q. 영화계에서 쌓은 인맥의 힘인가. 뭔가 캐스팅 전문가라 해야 할 것 같다.
윤성호: 에이전트를 하면 잘 할 것 같긴 하다.(웃음) 대부분의 감독님들은 어떤 제안이 들어오면 “죄송합니다. 영화 준비하는 게 있어서 시간이 안 됩니다” 사양한다. 오래전엔 나도 그랬다. 이젠 아니다. 스케줄이 안 맞아서 못하더라도 “이건, 그 사람이 하면 잘 하겠네요!”하면서 소개한다. 제안이 들어오면 그걸 어떻게 가장 이상적인 포맷으로 만들어낼까 전체를 그려내는 거다. 그러다보니 일이 많아졌다.(웃음)
Q. 그 말은 사람들이 지닌 장점을 잘 캐치한다는 의미인데.
윤성호: 단점도 캐치 잘한다.(웃음)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사람들이 ‘뻑’ 갈만한 매력을 지닌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을 연결시키는 건데, 내가 감히 끌어준다고 하기엔 그렇다. 내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잘 될 분들이니까. 다만 긴 호흡으로 가는 각자의 길 위에서, 워밍업 하듯 함께 해 보자는 게 내 취지다. 아까 인맥 이야기를 하셨는데 방송국 PD, 연출자, 배우, 매니저 등을 다양하게 알고 있긴 하다. 그런데 나의 가장 큰 자산이라면 독립영화를 많이 본 거다. 여전히 독립영화인이기도 하고. 아, 나는 독.립.영.화.감.독.이라는 말은 싫어한다.
Q. 독립영화라는 틀에 갇힐까봐?
윤성호: 독립영화배우-독립영화기자라는 말은 안 쓰지 않나. 배우들이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오가듯, 기자들이 상업영화부터 독립영화를 모두 다루듯, 연출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할 수도 있고, 드라마를 할 수도 있고, 모바일 시리즈도 할 수 있다. 물론 베이스가 TV인지 영화인지는 나눌 필요가 있겠지. 그랬을 때 내 정체성은 분명 독립영화인인데, 다른 이유가 아니라, 독립적인 자세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독립영화인이라는 거다. 가령 쿠엔틴 타란티노의 정체성 중 하나는 독립영화인이지 않을까?
Q. 그렇게 볼 수 있지. 저예산 독립영화도 많이 만드는 감독이니.
윤성호: 맞다. 거대 스튜디오가 아니어도 자기 걸 하니까. 스티븐 소더버그도 그런 의미에서 독립영화인 같고. 반대로 독립영화를 도저히 할 수 없는 분들이 있다. 가령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스필버그는 본인 자체가 스튜디오니까.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의 자산이 독립영화를 많이 본 거라고 하는 이유는 그럴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연출만 한 게 아니라, 영화제 프로그래머-심사위원-집행위원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를 많이 보게 됐다. 또 영화제는 뒤풀이 자리로 이어지니까 배우-감독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면서 ‘아, 누가 영화를 엣지있게 잘 만드는 구나’ ‘저 사람은 예산이 없어서 그렇지 대중영화로 가면 대박이겠다’ 하는 걸 느낀다. 가령 이병헌 감독 같은?
Q. 아, 영화 ‘스물!’ 재미있게 본 영화다. 이병헌 감독과는 온라인 먹방무비 ‘출출한 여자’(2013)를 함께 했다.
윤성호: 이병헌 감독은 시나리오를 보고 그 끼를 바로 알아봤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아는 제작자에게 “제발 이 분 좀 섭외 해 달라”고 했을 정도다.(웃음) 물론 이병헌 감독의 필력이야 충무로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니 내가 유세 떨 일은 아니다. 웹드라마 ‘출중한 여자’(2014)를 함께 한 백승빈 감독도 숨은 고수다. 독립영화 ‘장례식의 멤버’(2009)를 보면 얼마나 연출을 잘 하는 감독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정통영화과 출신이 아니어서 그런지,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갖춘 동료들을 보면 괜히 친해지고 싶고 함께 뭔가를 하고 싶고 그렇다.
Q. 어쨌든 능력이다. 주변 사람들을 눈여겨봤다가 ‘이렇게 조합하면 잘 맞겠다’ 그림을 그려내니 말이다.
윤성호: 능력까지는 아니다. 30억 짜리 프로젝트를 메이드 시킨다면야 능력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내 경우는 소소한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나눠서 함께 하는 정도다. 골목장사를 하는데 콜라보를 많이 하는 느낌이랄까.(웃음) 그러니까 요리 잘 하는 셰프들을 알아보는 눈은 있는데, 그 분들에게 식당을 차려 줄 급은 아직 안 되고. 대신 “같이 볶음요리를 해보자”라고 말할 정도는 되는 거다. 더 큰 게임을 하기 전에 이 정도를 함께 하면 좋지 아니한가, 싶은 거다.
Q 반대로 윤성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끌어준 분들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윤성호: 나에게 항상 힘이 돼 준 분들은 함께 일했던 프로듀서 분들이다. 먼저 김일권PD님. 독립영화 제작배급사 ‘시네마 달’의 수장이자, 이송희일 감독의 영원한 작업 파트너시다. 다큐 액티비스트들의 작품을 물심양면에서 도와주는, 젊은 영화인들의 멘토이기도 하다. 나는 이분이 사회적 의제가 있는 작품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내 장편 데뷔작 ‘은하해방전선’(2007)을 도와주셨다. 나는 스타감독이 아닌데, 이 분과 함께 하는 몇 년 동안은 스타감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치기 어릴 때는 자기가 보는 한정된 커뮤니티와 미디어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지 않나. 경험이 부족한 나를 언제나 존중해주고 치켜세워 주시니까, 내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존중해주면 괜히 자신감이 생기고 호방해진다. 김일권PD님 덕분에 자신감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웹드라마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2010)를 함께 한 박남희PD.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내 온라인/모바일 이력을 시작시킨 시리즈다. 이걸 MBC 에브리원 시트콤으로 확장시키기까지 물심양면 도움 주신 분이 바로 박남희 PD님이다.(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그 인기를 타고 스크린을 거쳐 TV로까지 진출했다.)이분의 지긋함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멀티로 이일 저일 뛰는 포지션이 가능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박관수PD님. 김태용 강이관 등 훌륭한 감독님들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나와는 ‘출출한 여자’ ‘출중한 여자’ 등 온라인 콘텐츠를 함께 만들었다. 지금도 모바일 시리즈를 함께 기획하고 있다. 내가 감독을 셰프에 자꾸 비유했었는데, 셰프가 요리에만 전념하고 싶어도 그밖에 온갖 일들이 있지 않나. 가게 오픈해야지, 재료 공수해야지, 세금 내야지,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하고 간판 달아야지…. ‘폼’은 안 나는데 ‘품’은 많이 드는 일을 누군가 앞서 해주는 게 필요한데, 이분 덕분에 함께 일구는 모든 작은 작업들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박관수PD는 작업물을 만들면 그 데이터를 외장하드 세 개에 꼭 보관한다. 남들은 웹에서 한번 보고 마는, 그것도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그 무엇들을 그렇게 소중하게 보관하고 같이 기뻐하고 그러는데…아, 이러면 신난다. 힘이 나고, 더 재밌는 거, 오래 남는 걸 하고 싶어진다. 이런 고마운 분들 덕분에 또 발걸음 옮기는 것 같다.
Q.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웹드라마의 원조가 되는 작품이다. 먹방무비 ‘출출한 여자’는 지금처럼 ‘먹방’ 방송이 범람하기 이전에 나온 작품이고. 뭐랄까. 항상 남들보다 한 발 앞선다. 트렌드를 읽는 눈이 밝은 느낌이랄까.
윤성호: 솔직히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은 아니다. 기획을 하고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까지 내 경우엔 텀이 짧다. 이유? 작은 프로젝트니까. 큰 조직에서 뭔가를 만들려면 시나리오를 쓰고, 사람을 모으고, 배우를 섭외하고, 의견을 조율하는데 긴 시간이 걸린다. 그들이 1년 걸릴 일을 나는 체급이 작으니까 몇 개월 안에 끝낼 수 있다. 그러니 내 작품이 나오고 나서 몇 달 후나 동시기에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그건 그 분들의 고민이 더 빨랐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렇지 않나?
Q. 강하게 설득당하는 중이다.(웃음)
윤성호: 맞다니까.(웃음) 나는 어떤 작품이 히트하는 걸 보면서 “내가 먼저 생각한 아이디어인데!”라고 하시는 분들의 말을 크게 귀담아 듣지 않는다. 어쩌면 대중매체 창작의 관건은 ‘먼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먼저 메이드 시키는 것’에 있다고 보니까. Q 굉장히 부지런하게 달리는 것 같다. 쉬지 않고.
윤성호: 그런데,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 내 의지로 먼저 치고 나간 작품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제안을 받아서 작업에 들어간 거다.(웃음)
Q. 설마, ‘은하해방전선’도?
윤성호: 그 작품도. 상상마당이 매해 단편지원사업을 한다. 그런데 그 해(2007년)에는 “우리 500만 원 짜리 단편 20편을 지원하지 말고, 1억 짜리 장편영화를 한번 해 보자”며 청년필름에 제작비를 지원했다. 1억을 지원하며 상상마당이 내 건 조건은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영화를 틀 수 있어야 한다’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4월에 그 제안을 받은 청년필름이 5월에 내게 연락을 해왔다. 10월에 부산에서 영화를 틀려면 적어도 6월에는 시나리오를 써야 했다. 그래서 6월에 시나리오를 쓰고, 7월에 바로 촬영에 들어간 다음에, 영화제에 출품한 거다. ‘도약선생’(2010)도 아리랑 TV 의뢰로 만든 거고, ‘출중한 여자’는 잡지 ‘싱글즈’ 창간 10주년 기념으로 의뢰를 받은 경우다. 옴니버스 영화들도 대부분 의뢰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가 아주 오랜만에 내 의지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5년에 한번 씩 자의에 의해 하는 것 같다.
Q.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제안이 들어왔을 때 그걸 베스트로 뽑아내는 재능이 있는 거네.
윤성호: 자꾸 셰프 비유를 하는데, 나는 시간을 많이 주면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타입이다. 짧은 시간에 제한된 재료로 하라고 하면 오히려 잘 하는 것 같다.
Q. 작품을 본인의 의지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떤 순간인가.
윤성호: 여자 친구랑 헤어졌을 때.(일동폭소)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 그걸 어떠한 사회현상과 버무려서 작품으로 만든다.(웃음) 2004년 만든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이라는 단편영화가 대표적이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찍은 영화인데, 내 작품 중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도 가고 인디포럼 개막작으로도 상영됐다. 이후 쭉 의뢰로 작품을 만들다가 오랜만에 다시 스스로 만든 게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다.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역시 여자 친구와 헤어진 다음에 찍은 거다.(웃음)
Q. 당신에게 ‘연애와 이별’은 창작의 원동력인가보다.(웃음) 그래서 궁금한데 결혼을 하면 어떨까. 변할까.
윤성호: 그래서 내가 결혼을 빨리 안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만난 여자 친구들 대부분과 결혼이 이슈가 될 때쯤 헤어졌다.(웃음)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약간 겁먹는 게 있는 거지. 그런데, 해야지. 나는 독신주의는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인연을 못 만났던 것일 수도 있고, 지금 사람이 인연일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요새 내가 만드는 작품들을 보면, 결혼을 해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의뢰받는 작품은 결혼하면 오히려 더 잘 만들 것 같기도 하고.(웃음)
Q. 만들고 싶은 것들이 바뀌겠지. 부부싸움이 모티브가 될 수도 있겠고.
윤성호: 맞다. 다른 모티브가 생길 것 같다. 최근의 변화라면, 일부러 내 이야기를 작품에 안 넣으려고 애쓴다는 거다. 실제로 ‘출출한 여자’ ‘썸남썸녀’ ‘출중한 여자’ 모두 나와 접점이 없는 이야기다. 공부하고 취재해야 하는 대상들의 이야기였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내 이야기보다 관찰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좋다.
Q 나이를 먹었다니. 윤성호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묘하다.
윤성호: 나이 먹는 게 무슨 죄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늦은 나이에 영화계에 입문했는데, 악동으로 이미지가 포지셔닝 되면서 유리한 게 많았다. 30대 후반까지 악동 소리를 들었으니까. 어려보이는 인상 플러스, 늦게 영화를 시작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성호는 아직 어리지 않나?”했던 것 같다. ‘은해해방전선’ 때가 이미 30대였는데.
Q. ‘은하해방전선’이 워낙 발랄하고 통통 튀는 영화여서 당신에 대한 이미지가 더 그랬을 수 있다.
윤성호: 그것도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떤 것은 더 잘하게 될 것 같고 어떤 것은 반대가 될 텐데,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고민을 그래서 많이 했다. 슬펐고. 걱정됐다. 그게 서른다섯 전후로 극에 달했었다. 아저씨가 된다는 것에.
Q. 뭐가 그리 슬펐던 건가. 꼰대로 보일까봐?
윤성호: ‘뭘 해도, 꼰대로 보이겠구나.’ 싶었다. 이전과 똑같은 나이의 여자를 사귀어도 이젠 도둑놈 소리를 듣고.(일동웃음) 그런데 이젠 그게 뭔지 조금 알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어떤 부분은 양보하고 포기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나이 먹은 게 무슨 잘못이야’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우린 누구나 젊기에 누리고 양보 받았던 것들이 있었다. 뒤돌아보면 나 역시, 나보다 훨씬 경험 있고 실력 있는 감독님들과 섰을 때,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가장 젊다는 이유로 조금 더 환영받고 괜히 예쁨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젠 나이를 먹었으니 다 끝난 것이냐! 그건 아니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층위의 뭔가를 제공해야겠지. 지금 그걸 만들어가는 단계에 있는 것 같다.(윤성호 감독 인터뷰2로 이어집니다)
[두근두근 윤성호②]“영화관? 내겐 또 하나의 도서관”(인터뷰)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제공. 인디스토리, 기린제작사
Q. 집까지 초대해 줘서 고맙다.(웃음)재기발랄함으로 영화계에서 사랑받던 윤성호 감독이 인터넷 세상에 뛰어든 건 지난 2010년.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라는 5~7분 분량으로 구성된 시트콤이 윤성호의 이름을 달고 온라인에 공개됐다. ‘불펌’을 ‘권장’하는 이 요망한 시트콤은 ‘웹드라마’라는 용어자체가 없었던 시기에 나온 콘텐츠였다. 이후에도 윤성호 감독은 ‘출출한 여자’(2013), ‘썸남썸녀’(2014), ‘출중한 여자’(2014)를 연이어 웹 공간에 선보이며 영화와 드라마의 모바일의 경계파괴를 이끌었다. 그런 그를 두고 어떤 이는 ‘웹드라마의 선구자’라 했다. 하지만 정작 윤성호 감독은 자신을 ‘소규모 분식점을 운영하는 골목장사꾼’이라고 말한다. 확실한 것은 그는, 사람들을 하나 둘 불러 모아 얼굴 마주보고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들을 사랑한다.
윤성호 감독이 영화 ‘오늘영화’를 통해 오랜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 서울독립영화제 프로젝트 ‘오늘영화’는 윤성호 감독의 ‘백역사’, 강경태 감독의 ‘뇌물’, 구교환·이옥섭 감독의 ‘연애다큐’ 등 3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백역사’에서 윤성호 감독은 공장을 조퇴한 남자와 중국 만두집에서 일하는 여자를 극장으로 초대한다.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확인하시라.(이 인터뷰는, 여러 프로젝트로 업무가 많았던 윤성호 감독 여건상 (감독) 자택에서 진행됐다.)
윤성호: 집까지 와줘서 고맙다.(웃음)
Q. 왜 이리 바쁜 건가.
윤성호: 관여하는 프로젝트가 많다. 모두 내가 연출하는 건 아니다. 가령 캐스팅에만 관여하는 프로젝트가 있고, 직접 연출은 안 해도 스태프-감독-배우들을 패키징 하면서 톤 앤 매너 등을 기획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왜, 재능이 많은데 TV를 안 해 본 사람이 있을 수 있고, TV만 하고 영화는 안 해 본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외부로 자신을 보여주는 패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을 작품과 연결시키는 거다.
Q. 영화계에서 쌓은 인맥의 힘인가. 뭔가 캐스팅 전문가라 해야 할 것 같다.
윤성호: 에이전트를 하면 잘 할 것 같긴 하다.(웃음) 대부분의 감독님들은 어떤 제안이 들어오면 “죄송합니다. 영화 준비하는 게 있어서 시간이 안 됩니다” 사양한다. 오래전엔 나도 그랬다. 이젠 아니다. 스케줄이 안 맞아서 못하더라도 “이건, 그 사람이 하면 잘 하겠네요!”하면서 소개한다. 제안이 들어오면 그걸 어떻게 가장 이상적인 포맷으로 만들어낼까 전체를 그려내는 거다. 그러다보니 일이 많아졌다.(웃음)
Q. 그 말은 사람들이 지닌 장점을 잘 캐치한다는 의미인데.
윤성호: 단점도 캐치 잘한다.(웃음)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사람들이 ‘뻑’ 갈만한 매력을 지닌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을 연결시키는 건데, 내가 감히 끌어준다고 하기엔 그렇다. 내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잘 될 분들이니까. 다만 긴 호흡으로 가는 각자의 길 위에서, 워밍업 하듯 함께 해 보자는 게 내 취지다. 아까 인맥 이야기를 하셨는데 방송국 PD, 연출자, 배우, 매니저 등을 다양하게 알고 있긴 하다. 그런데 나의 가장 큰 자산이라면 독립영화를 많이 본 거다. 여전히 독립영화인이기도 하고. 아, 나는 독.립.영.화.감.독.이라는 말은 싫어한다.
윤성호: 독립영화배우-독립영화기자라는 말은 안 쓰지 않나. 배우들이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오가듯, 기자들이 상업영화부터 독립영화를 모두 다루듯, 연출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할 수도 있고, 드라마를 할 수도 있고, 모바일 시리즈도 할 수 있다. 물론 베이스가 TV인지 영화인지는 나눌 필요가 있겠지. 그랬을 때 내 정체성은 분명 독립영화인인데, 다른 이유가 아니라, 독립적인 자세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독립영화인이라는 거다. 가령 쿠엔틴 타란티노의 정체성 중 하나는 독립영화인이지 않을까?
Q. 그렇게 볼 수 있지. 저예산 독립영화도 많이 만드는 감독이니.
윤성호: 맞다. 거대 스튜디오가 아니어도 자기 걸 하니까. 스티븐 소더버그도 그런 의미에서 독립영화인 같고. 반대로 독립영화를 도저히 할 수 없는 분들이 있다. 가령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스필버그는 본인 자체가 스튜디오니까.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의 자산이 독립영화를 많이 본 거라고 하는 이유는 그럴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연출만 한 게 아니라, 영화제 프로그래머-심사위원-집행위원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를 많이 보게 됐다. 또 영화제는 뒤풀이 자리로 이어지니까 배우-감독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면서 ‘아, 누가 영화를 엣지있게 잘 만드는 구나’ ‘저 사람은 예산이 없어서 그렇지 대중영화로 가면 대박이겠다’ 하는 걸 느낀다. 가령 이병헌 감독 같은?
Q. 아, 영화 ‘스물!’ 재미있게 본 영화다. 이병헌 감독과는 온라인 먹방무비 ‘출출한 여자’(2013)를 함께 했다.
윤성호: 이병헌 감독은 시나리오를 보고 그 끼를 바로 알아봤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아는 제작자에게 “제발 이 분 좀 섭외 해 달라”고 했을 정도다.(웃음) 물론 이병헌 감독의 필력이야 충무로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니 내가 유세 떨 일은 아니다. 웹드라마 ‘출중한 여자’(2014)를 함께 한 백승빈 감독도 숨은 고수다. 독립영화 ‘장례식의 멤버’(2009)를 보면 얼마나 연출을 잘 하는 감독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정통영화과 출신이 아니어서 그런지,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갖춘 동료들을 보면 괜히 친해지고 싶고 함께 뭔가를 하고 싶고 그렇다.
Q. 어쨌든 능력이다. 주변 사람들을 눈여겨봤다가 ‘이렇게 조합하면 잘 맞겠다’ 그림을 그려내니 말이다.
윤성호: 능력까지는 아니다. 30억 짜리 프로젝트를 메이드 시킨다면야 능력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내 경우는 소소한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나눠서 함께 하는 정도다. 골목장사를 하는데 콜라보를 많이 하는 느낌이랄까.(웃음) 그러니까 요리 잘 하는 셰프들을 알아보는 눈은 있는데, 그 분들에게 식당을 차려 줄 급은 아직 안 되고. 대신 “같이 볶음요리를 해보자”라고 말할 정도는 되는 거다. 더 큰 게임을 하기 전에 이 정도를 함께 하면 좋지 아니한가, 싶은 거다.
Q 반대로 윤성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끌어준 분들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윤성호: 나에게 항상 힘이 돼 준 분들은 함께 일했던 프로듀서 분들이다. 먼저 김일권PD님. 독립영화 제작배급사 ‘시네마 달’의 수장이자, 이송희일 감독의 영원한 작업 파트너시다. 다큐 액티비스트들의 작품을 물심양면에서 도와주는, 젊은 영화인들의 멘토이기도 하다. 나는 이분이 사회적 의제가 있는 작품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내 장편 데뷔작 ‘은하해방전선’(2007)을 도와주셨다. 나는 스타감독이 아닌데, 이 분과 함께 하는 몇 년 동안은 스타감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치기 어릴 때는 자기가 보는 한정된 커뮤니티와 미디어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지 않나. 경험이 부족한 나를 언제나 존중해주고 치켜세워 주시니까, 내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존중해주면 괜히 자신감이 생기고 호방해진다. 김일권PD님 덕분에 자신감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박관수PD님. 김태용 강이관 등 훌륭한 감독님들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나와는 ‘출출한 여자’ ‘출중한 여자’ 등 온라인 콘텐츠를 함께 만들었다. 지금도 모바일 시리즈를 함께 기획하고 있다. 내가 감독을 셰프에 자꾸 비유했었는데, 셰프가 요리에만 전념하고 싶어도 그밖에 온갖 일들이 있지 않나. 가게 오픈해야지, 재료 공수해야지, 세금 내야지,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하고 간판 달아야지…. ‘폼’은 안 나는데 ‘품’은 많이 드는 일을 누군가 앞서 해주는 게 필요한데, 이분 덕분에 함께 일구는 모든 작은 작업들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박관수PD는 작업물을 만들면 그 데이터를 외장하드 세 개에 꼭 보관한다. 남들은 웹에서 한번 보고 마는, 그것도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그 무엇들을 그렇게 소중하게 보관하고 같이 기뻐하고 그러는데…아, 이러면 신난다. 힘이 나고, 더 재밌는 거, 오래 남는 걸 하고 싶어진다. 이런 고마운 분들 덕분에 또 발걸음 옮기는 것 같다.
Q.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웹드라마의 원조가 되는 작품이다. 먹방무비 ‘출출한 여자’는 지금처럼 ‘먹방’ 방송이 범람하기 이전에 나온 작품이고. 뭐랄까. 항상 남들보다 한 발 앞선다. 트렌드를 읽는 눈이 밝은 느낌이랄까.
윤성호: 솔직히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은 아니다. 기획을 하고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까지 내 경우엔 텀이 짧다. 이유? 작은 프로젝트니까. 큰 조직에서 뭔가를 만들려면 시나리오를 쓰고, 사람을 모으고, 배우를 섭외하고, 의견을 조율하는데 긴 시간이 걸린다. 그들이 1년 걸릴 일을 나는 체급이 작으니까 몇 개월 안에 끝낼 수 있다. 그러니 내 작품이 나오고 나서 몇 달 후나 동시기에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그건 그 분들의 고민이 더 빨랐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렇지 않나?
Q. 강하게 설득당하는 중이다.(웃음)
윤성호: 맞다니까.(웃음) 나는 어떤 작품이 히트하는 걸 보면서 “내가 먼저 생각한 아이디어인데!”라고 하시는 분들의 말을 크게 귀담아 듣지 않는다. 어쩌면 대중매체 창작의 관건은 ‘먼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먼저 메이드 시키는 것’에 있다고 보니까. Q 굉장히 부지런하게 달리는 것 같다. 쉬지 않고.
윤성호: 그런데,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 내 의지로 먼저 치고 나간 작품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제안을 받아서 작업에 들어간 거다.(웃음)
Q. 설마, ‘은하해방전선’도?
윤성호: 그 작품도. 상상마당이 매해 단편지원사업을 한다. 그런데 그 해(2007년)에는 “우리 500만 원 짜리 단편 20편을 지원하지 말고, 1억 짜리 장편영화를 한번 해 보자”며 청년필름에 제작비를 지원했다. 1억을 지원하며 상상마당이 내 건 조건은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영화를 틀 수 있어야 한다’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4월에 그 제안을 받은 청년필름이 5월에 내게 연락을 해왔다. 10월에 부산에서 영화를 틀려면 적어도 6월에는 시나리오를 써야 했다. 그래서 6월에 시나리오를 쓰고, 7월에 바로 촬영에 들어간 다음에, 영화제에 출품한 거다. ‘도약선생’(2010)도 아리랑 TV 의뢰로 만든 거고, ‘출중한 여자’는 잡지 ‘싱글즈’ 창간 10주년 기념으로 의뢰를 받은 경우다. 옴니버스 영화들도 대부분 의뢰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가 아주 오랜만에 내 의지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5년에 한번 씩 자의에 의해 하는 것 같다.
Q.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제안이 들어왔을 때 그걸 베스트로 뽑아내는 재능이 있는 거네.
윤성호: 자꾸 셰프 비유를 하는데, 나는 시간을 많이 주면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타입이다. 짧은 시간에 제한된 재료로 하라고 하면 오히려 잘 하는 것 같다.
Q. 작품을 본인의 의지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떤 순간인가.
윤성호: 여자 친구랑 헤어졌을 때.(일동폭소)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 그걸 어떠한 사회현상과 버무려서 작품으로 만든다.(웃음) 2004년 만든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이라는 단편영화가 대표적이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찍은 영화인데, 내 작품 중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도 가고 인디포럼 개막작으로도 상영됐다. 이후 쭉 의뢰로 작품을 만들다가 오랜만에 다시 스스로 만든 게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다.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역시 여자 친구와 헤어진 다음에 찍은 거다.(웃음)
Q. 당신에게 ‘연애와 이별’은 창작의 원동력인가보다.(웃음) 그래서 궁금한데 결혼을 하면 어떨까. 변할까.
윤성호: 그래서 내가 결혼을 빨리 안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만난 여자 친구들 대부분과 결혼이 이슈가 될 때쯤 헤어졌다.(웃음)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약간 겁먹는 게 있는 거지. 그런데, 해야지. 나는 독신주의는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인연을 못 만났던 것일 수도 있고, 지금 사람이 인연일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요새 내가 만드는 작품들을 보면, 결혼을 해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의뢰받는 작품은 결혼하면 오히려 더 잘 만들 것 같기도 하고.(웃음)
윤성호: 맞다. 다른 모티브가 생길 것 같다. 최근의 변화라면, 일부러 내 이야기를 작품에 안 넣으려고 애쓴다는 거다. 실제로 ‘출출한 여자’ ‘썸남썸녀’ ‘출중한 여자’ 모두 나와 접점이 없는 이야기다. 공부하고 취재해야 하는 대상들의 이야기였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내 이야기보다 관찰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좋다.
Q 나이를 먹었다니. 윤성호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묘하다.
윤성호: 나이 먹는 게 무슨 죄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늦은 나이에 영화계에 입문했는데, 악동으로 이미지가 포지셔닝 되면서 유리한 게 많았다. 30대 후반까지 악동 소리를 들었으니까. 어려보이는 인상 플러스, 늦게 영화를 시작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성호는 아직 어리지 않나?”했던 것 같다. ‘은해해방전선’ 때가 이미 30대였는데.
Q. ‘은하해방전선’이 워낙 발랄하고 통통 튀는 영화여서 당신에 대한 이미지가 더 그랬을 수 있다.
윤성호: 그것도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떤 것은 더 잘하게 될 것 같고 어떤 것은 반대가 될 텐데,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고민을 그래서 많이 했다. 슬펐고. 걱정됐다. 그게 서른다섯 전후로 극에 달했었다. 아저씨가 된다는 것에.
Q. 뭐가 그리 슬펐던 건가. 꼰대로 보일까봐?
윤성호: ‘뭘 해도, 꼰대로 보이겠구나.’ 싶었다. 이전과 똑같은 나이의 여자를 사귀어도 이젠 도둑놈 소리를 듣고.(일동웃음) 그런데 이젠 그게 뭔지 조금 알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어떤 부분은 양보하고 포기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나이 먹은 게 무슨 잘못이야’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우린 누구나 젊기에 누리고 양보 받았던 것들이 있었다. 뒤돌아보면 나 역시, 나보다 훨씬 경험 있고 실력 있는 감독님들과 섰을 때,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가장 젊다는 이유로 조금 더 환영받고 괜히 예쁨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젠 나이를 먹었으니 다 끝난 것이냐! 그건 아니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층위의 뭔가를 제공해야겠지. 지금 그걸 만들어가는 단계에 있는 것 같다.(윤성호 감독 인터뷰2로 이어집니다)
[두근두근 윤성호②]“영화관? 내겐 또 하나의 도서관”(인터뷰)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제공. 인디스토리, 기린제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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