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히어로를 얕잡아보던 인식은 브라이언 싱어와 샘 레이미 같은 작가주의 감독들이 ‘엑스맨’ ‘스파이더맨’의 메가폰을 잡으면서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히어로들에게 인간적인 고뇌와 다층적인 개성을 안기며 히어로 물의 변화를 이끌었다. 뒤 이어 나온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크나이트’로 히어로물의 영화적 위상을 격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마블의 꿈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아이언맨’에서 시작된 마블의 원대한 꿈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로 이어지는 동안 전세계 팬들의 사랑을 빨아들이며 승승장구했다. 덩달아 슈퍼히어로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선망하는 인기 직종(?)으로 급부상했다. 히어로 배역을 따내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진 이유다. 그런데 여기, 한 번 입기도 어렵다는 히어로 유니폼을 두 번씩이나 입은 남자들이 있어 소개한다. 일명, 두 번 히어로인 남자들.
#크리스 에반스: 자니 스톰 VS 캡틴 아메리카

그런데 크리스 에반스의 ‘쫄쫄이 패션 컬렉션’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 방패를 휘두르기 이전, 그는 ‘판타스틱4’(2005)에서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불꽃 남자’였다. 1962년 발간된 ‘판타스틱4’는 초능력을 부여받은 ‘미스터 판타스틱’, ‘인비지블 우먼’, ‘휴먼 토치’ ‘더 씽’ 등 4명의 초능력자들이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 크리스 에반스는 이 중 자니 스톰(휴먼 토치)을 연기하며 타블로이드지를 후끈 달구는 스타가 됐다. 피플지가 선정한 ‘가장 멋진 싱글 남자’, ‘게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남자’ 등에 오르내린 것도 이 무렵이다. 결과적으로 자니 스톰은 크리스 에반스의 ‘배우 인생’을, 캡틴 아메리카는 그의 ‘인생 자체’를 바꿔놓았다. 이제 크리스 에반스 아닌, 캡틴 아메리카를 상상할 수 있을까.
#벤 애플렉: 데어데블 VS 배트맨

그래서였을 게다. 그가 2016년 개봉하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배트맨 팬들이 들고 일어선 것은. 워너브라더스 사무실로 “확실해요? 그게 최선이에요?”를 묻는 항의가 빗발쳤다. 벤 애플렉 하차 서명운동이 일어났다. 광분한 원작 팬들은 급기야 벤 애플렉에게 살해협박도 가했다. 하지만 워너는 벤 애플렉 카드를 포기하지 않았고 촬영은 이미 끝났으니, 계속 시무룩해봤자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다. 그리고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욕먹다’가 도리어 ‘대박’을 터뜨린 케이스를 많이 알고 있다. 역대 더블오(00) 살인면허를 부여받은 007 중 가장 섹시하다 평가받는 다니엘 크레이그, 그 자체로 신화가 된 ‘다크나이트’의 조커 히스 레저. 두 배우 모두 영화가 상영되기 전까지 엄청난 반대 여론에 시달렸음을 기억해 보자. 그러니 기다려 볼 일이다. 벤 애플렉표 배트맨을.
#라이언 레이놀즈: 그린랜턴 VS 데드풀

‘그린랜턴’으로 흥행의 쓴맛을 본 라이언 레이놀즈가 절치부심해서 도전하는 캐릭터는 ‘데드풀’이다. 맞다. 앞서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서 연기했던 데드풀. 하지만 이번에는 데드풀을 전면에 내세운 단독 작품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데드풀은 아이어맨 뺨치는 언변과 개그감과 겸비한 마블의 감초 캐릭터다. 무기는 두 자루의 일본도와 총기. 능력은 울버린급의 자가 치유능력이다. 과연 라이언 레이놀즈가 ‘그린랜턴’에서 입은 치명적인 상처를 ‘데드풀’로 자가 치유 할 수 있을까.
정시우 siwoorain@
편집. 김민영 kimino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