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정화 기자] 자신감이 엿보였다. 겸손한 태도 속에서도 바래지 않는, 명료한 당당함이었다. 영화 ‘연평해전’에서 박동혁 역을 맡은 이현우는 이번 영화에 대해 “노력을 많이 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노력의) 결실을 봤다.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기술자들’을 거쳐 ‘연평해전’에 다다른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반-중반-후반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스토리 변화가 뚜렷한 영화 속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유연하게 타고 넘었다. 신마다 드러내야 하는 다른 결의 감정들을 명확하게 구분해 야무지게 표현한 건 물론이었다. 그 자신이 “욕심이 났다”고 말한 박동혁 캐릭터를 통해 이현우의 ‘오늘’을 목격했다.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Q. ‘연평해전’을 언론시사회가 아닌 크라우드 펀딩 시사회에서 봤다. 영화가 다 끝났을 때, 대부분의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잔잔한 박수를 보내더라. 왜 그랬을 것 같나.
이현우 : 아… (한참 생각하다가) 내가 느끼기에 ‘연평해전’은 영화 자체로 보면 소소한 재미와 웃음이 있지만 마지막엔 큰 감동이 몰아치는, 휴먼드라마 성격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영화적인 그림을 떠나서 영화가 뭘 보여주고자 했던 건지 아마 다 아실 수 있으실 텐데, 그런 부분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이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 또한 영화가 끝나고 나서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온 거 같았다. 관객분들도 나랑 비슷한 마음이셨을 것 같은데… 그래서 박수를 쳐주신 건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하하하.
Q. 그래서 더 궁금했다. 왜, 이현우가 이 영화를 선택했을까 하고.
이현우 : 이전에 했던 작품들과 선택 기준이 다르진 않았다. 시나리오를 보고 전체적인 그림을 봤다. 그 안에서 내가 하게 될 캐릭터를 통해 무엇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무엇을 얻게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박동혁이란 인물을 꼭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많이 생겼다.
Q. 그 기준이…?
이현우 : 난 캐릭터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이현우 : 일단 동혁이는 정직하고 바른 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그전에도 많이 보여드렸던 연기일 수도 있고, 내 모습이 많이 반영되어 있을 수도 있다. 너무 비슷한 것 아니냐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난 지금의 모습에서 이 연기를 했을 때 분명 다른 냄새가 날 거고 다른 모습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전투 장면 같은 경우 남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해 몸을 바치고 마음을 쓰는 모습에서 강인함 같은 게 많이 와 닿아서 그걸 풀어내 보고 싶었다.
Q. 그 강인함은 영화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나.
이현우 : 개인적으로 그 부분에 있어서 봐주셨으면 하는 게, 동혁이는 포탄이 터져서 파편에 맞든, 총알이 직접 날라와서 맞든 상관없이 항상 부상자부터 걱정하는 말을 꺼낸다. 아파서 도망가고 싶은 게 아니라, 아픈데도 불구하고 이희완 부장(이완)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괜찮습니까?”라고 묻는다. 의무병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두려움을) 이겨내지 않았나. 자신보다 남을 위할 줄 아는 그 모습이 강인하다고 느껴져 표현하고 싶었다.
Q. 자신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서로 닮은 점이 있었던 걸까?
이현우 : 전투 전의 장면에선 그냥 똑같은 것 같다. 동혁이가 사병 생활할 때는 나도 군대에 가면 저럴 것 같았다. 전투 장면 부분에서의 동혁이 모습은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품어 봤는데, 절대 못 그럴 것 같았거든.
이현우 : (부담이) 되게 컸다. 시나리오 받을 때도 극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나오니 욕심이 나는 반면에 그만큼 부담도 됐다. 촬영하는 동안엔 현장에서 뭐가 잘 안 풀려 꼬이거나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다른 배우분들과 감독님과 다 같이 상의하면서 그림을 만들어 갔다.
Q.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우리 모두는 살아서 돌아가길 원했다”라는 동혁의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후에 전투가 끝났을 땐 “하늘이 파랗다”로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느낌도 줘 꽤나 중요한 역할임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영화 속에서 자신이 해내야 하는 부분은 뭐라고 생각했나.
이현우 : 동혁이로서 극을 잘 이끌어가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많았던 걸 보면 거기에 초점을 많이 뒀던 것 같다. 특히, 동혁이의 감정변화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중간에 잘 잡히진 않았던 것 같은데 대원들이랑 함께 있을 때 보면 동혁이가 엄청 밝다. 계속 웃고 있고 누구보다 열심히 (월드컵 경기를) 응원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병실에 있을 땐 다른 배우들 간의 감정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에 대해 많이 신경 써서 영화가 전하는 감동을 좀 더 배가시킬 수 있게끔 노력했다.
이현우 : 묵직한 감동이 있는 영화인 건 확실하다. 그리고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무거운 소재를 다뤘지만 영화만큼은 무겁지 않다.
Q. 영화만큼은?
이현우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시면서 보실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볼 때만큼은 영화 그 자체로 봐 주시면 되고, 그 이후에 뭔가를 느껴주셨으면 한다.
Q.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연기를 한 건가, 아니면 캐릭터 그 자체만 봤나.
이현우 : 영화와 극 안에서 내가 볼 수 있는 부분들에 집중했다.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고 마음 아픈 사건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는 맞다. 하지만 난 연기를 하는 배우고, 어떤 한 인물을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걸 더 잘 살릴 수 있을지 거기에 집중을 많이 했다.
Q. 이번 작품에서도 동혁에게선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부분이 발견된다. 엄마(김희정)와 같이 있는 신이라든가, 한상국 하사(진구)와 있을 때 특히 그렇더라. 캐릭터의 영향도 있겠지만 이현우라는 사람이 지닌 분위기도 한몫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건 자신에게 득일까 실일까.
이현우 : 득인 것 같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때는 그 느낌을 ‘브로맨스’라고 해서, 새로운 것으로 봐주셔서 감사했다. 이번 작품에선 어머니와 있을 때 아들의 모습이 많이 반영되었던 거였고, 한상국 하사와 있을 땐 계급 사회에서 상사와 그 아랫사람이 만났을 때의 모습 속에서 또 그런 느낌을 나타낸 거였으니 나로선 성공한 거다. 내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거니깐.
Q. 또, 동혁은 누구와 있어도 ‘케미’가 좋았다. 초코파이를 주던 김일병(김희찬), 방금 말한 한상국 하사, 엄마 등등. 정작 배우 이현우는 누구와 있을 때 더 시너지가 났던 것 같나.
이현우 :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진구 형이랑 극에서 동기 권기형 역할을 맡은 (김)동희 형. 그 둘과 촬영할 때 제일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동희 형은 날 많이 챙겨주고 예뻐해 줬다. 영화상에선 친구로 나오다 보니 먼저 친구처럼 다가와 편하게 대해주셨다. 진구 형도 동희 형처럼 그런 부분이 있었지만 더 컸던 건 연기할 때 나도 모르게 형한테 확 빨려 들어가서 연기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었단 거다. 같이 연기하는 입장에서 정말 재미있었다. 재미있다고 표현해야 할 거 같다. 물론 영화에선 엄마와 아들의 모습이 가장 부각돼서 그런 장면들이 각인이 많이 되실 텐데 말씀하신 대로 이 사람 저 사람 등과 감정을 많이 나눴다. 잘 찾아보면 소소하게 그런 부분들이 많다.
이현우 : 형이랑 촬영하면서 진짜 좋았다. 전투 중 조타실에서 한상국 하사에게 “하사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너는 사람 살리고 나는 배를 살리겠다. 너 갈 길 가라” 해서 동혁이 혼자 내려가는 신이 있었다. 그 장면을 찍을 때 형과 얘기를 정말 많이 했다. 그렇게 같이 고민해서 찍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 되게 좋더라. 내가 앞에 있어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진구 형도 “난 ‘연평해전’ 찍으면서 너랑 연기할 때가 제일 좋다. 편하다”고 하셨다. 그런 얘기도 듣고 나도 많은 감정을 느끼고 해서 그런지 형과 함께 한 그 장면이 많이 기억에 남았다.
Q. 제작보고회에서 진구가 “(현우가) 잘 엉긴다”고 얘기하기도 해서 사랑받는 동생이었구나 싶었다.
이현우 : 헤헤헤. 진구 형 표현이 그렇다. 표현을 개구지게 하시는데 그 안에 느껴지는 따듯한 정이 있다.
Q. 그래서인가, 둘 사이의 그런 감정들이 영화에도 묻어났던 것 같다.
이현우 : 맞다.
Q. 올 초 SBS ‘내일을 향해 뛰어라’에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연평해전’에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등장했다. 남녀 간의 사랑보다 좀 더 큰 개념의 사랑에 더 마음이 가는 건가,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됐는데.
이현우 : 앗, 그건 전혀 아니다.
Q. 우연인 건가?
이현우 : 그렇지. 뭐 우연일 수도 있고, 필연일 수도 있고. (웃음) 그런 생각을 두고서 작품을 고르진 않는다.
이현우 : 하하하. 이거, 보셔도 된다. 없으시면 가져가시라고 올려 둔 건데…
Q. 요새 주변에 ‘연평해전’에 대해 직접 홍보를 많이 하고 있나? 인스타그램에 요거트 가게 사장에게 영화 홍보를 했다는 글을 봤다.
이현우 : 아까 (손가락으로 창문 밖을 가리키며) 저~기 요거트 집을 갔거든. ‘뭘 파는 데지?’ 하면서 기웃기웃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들어와서 한 입씩 먹어보라고 하시며 파는 양만큼이나 엄청 많이 주셨다. 그냥 먹긴 그래서 계산하고는 “나중에 저희 영화 개봉하니깐 보러 와주세요~” 했지.
Q. 주변 지인이나 친구들은 영화를 다 봤나?
이현우 : 지인들은 시사회 때 와서 봤다. 슬프다, 많이 울었다, 이런 말을 많이 하더라. 난 촬영 현장에서 계속 함께 있었던 매니저 형이랑 본 뒤에 아쉬운 부분에 대해 같이 얘기했다.
Q. 어떤 게 아쉬웠나.
이현우 : 다 연기적인 거지. 좋은 부분도 있지만 다 좋을 수는 없는 거니깐. 그래도 다행인 건, 전체적인 극의 흐름을 무너뜨리진 않은 거 같아서… 나름대로는 좋게 생각하고 있다.
Q. 원래 배우들은 자신의 연기에 항상 아쉬운 점이 남는 법이니깐. ‘연평해전’은 이현우에게 어떤 영화로 기억될 것 같나.
이현우 : 음… 노력을 많이 했던 작품. 이전에도 노력을 했지만 이번 작품은 더 컸던 것 같다. 가장 최근으로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기술자들’을 얘기한다면,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놀이터에 가듯 아무 부담 없이 놀러 갔던 작품이고, ‘기술자들’은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컸던 작품이다. ‘연평해전’은 정말 노력을 많이 해서 나 나름대로는 결실을 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Q.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차기작 계획은 없나.
이현우 : 정확히 잡힌 거나 얘기 중인 건 없다. 뭘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영화가 될지 드라마가 될지. 이렇게 얘기할 때마다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싶다.
이정화 기자 lee@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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