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로빈훗’ 이건명.
영국의 리처드왕(김민수)이 십자군전쟁에 나섰다가 측근인 길버트(박진우)에게 암살 당한다. 그리고 대신 살인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된 록슬리(이건명). 설상가상으로 록슬리 가족 모두 교수형에 처해지고 연인 마리안(서지영)마저 길버트의 아내가 되는 극한 상황에 내몰린다. 이후 셔우드 숲 속으로 도망치다 도둑무리를 만나 ‘로빈훗’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는데 (중략)불의에 맞서 부자들을 약탈하고 가난한 이를 돕는다는 식의 가공인물은 세계 곳곳에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홍길동이 있고, 미국에는 조로가 있고, 영국에는 로빈훗이 있다. 특히 영국의 로빈훗은 어느 나라의 의적보다 유명해서 영화, 애니메이션, TV 시리즈물 등 다양한 장르로 제작되어 지속적인 인기를 누려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새로이 뮤지컬 형태의 로빈훗이 등장했는데, 독특하게도 영국이 아닌 독일에서 이 작품을 제작했다.
영화와는 다른 극적 구성
러셀 크로우 주연의 ‘로빈훗’ 포스터.
이제까지 제작된 로빈훗을 소재로 한 영화는 수십 편에 달하는데, 그중에서 블록버스터로 개봉된 최근작을 꼽으라면 러셀 크로우 주연의 동명 영화(2010)이다. 그럼 로빈훗이라는 인물이 지금까지도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을 들 수 있으나, 특히 불의에 굴하지 않으면서도 약자를 도와주는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를 꼽을 수 있다.
영화의 러셀 크로우와 뮤지컬의 이건명이 분한 로빈훗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단지 그 느낌이 다르다. 영화 속 로빈훗은 고뇌하는 인간형으로 행동에 나서기 전 명분 축적과 성공 가능성을 세심히 분석한다. 이와는 달리 뮤지컬의 로빈훗은 개인적인 원한이 행동으로 나서게 했다.
특히 러셀 크로우가 분한 로빈훗 캐릭터는 여타 영화들 속 주인공과는 사뭇 다르다. 대다수 영화에서 로빈훗은 꽃미남이고 젠틀한 이미지를 지녔던 반면, 러셀 크로우에겐 선 굵고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어필한 점도 있다. 러셀 크로우가 분한 로빈훗은 가공인물이면서도 실제 존재했을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영화는 대헌장 작성과정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극 전개에 잘 활용한 반면, 뮤지컬은 역사왜곡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과감한(?) 각색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리처드왕이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존이 신하의 농간에 놀아나는 허수아비왕으로 전락하는 장면이 나오는 가하면, 실제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리처드의 아들(필립)이 등장하기도 한다.
뮤지컬 ‘로빈훗’ 장면.
그럼 이처럼 영화와 다른 극적 구성을 보이는 뮤지컬 로빈훗은 여타 공연과 어떤 다른 특성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해서 딱히 눈에 띠는 대목이 없는 것 같다. 이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기발한 무대장치나 세트 혹은 조명도 없고 관객의 소름을 돋게 하는 가창력이나 중독성있는 뮤직넘버도 나오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엔딩부분에서 극적 반전이 나오는데, 오히려 극의 흐름을 산만하게 한 것 같다.한편으로 이 공연에선 주역보단 조역의 역할이 훨씬 인상적이다. 즉 주인공 로빈훗 역의 이건명보다 오히려 악인 역을 맡은 길버트 역의 박진우와 존왕 역의 서영주의 연기가 주목할 만하다. 이건명의 경우, 로빈훗의 캐릭터가 그의 전작인 ‘그날들’에서의 정학 역과 오버랩되어 별다른 인상을 느끼지 못했다.
이와는 달리 박진우는 특유의 눈빛 연기와 음색으로 악인의 캐릭터를 잘 살렸으며, 이러한 강렬한 존재감으로 극적 긴장감이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그리고 서영주 역시 뛰어난 연기력을 과시했는데, 그에게 이렇게 가벼운 하이 톤의 음색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전작 ‘맨 오브 라만차’에 나오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지닌 카리스마 넘치는 여관주인 역과 같은 배우라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씨네컬은 시네마(Cinema)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말로, 각기 다른 두 장르를 비교 분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편집자주>
글. 문화평론가 연동원 yeon0426@hanmail.net
사진제공. 엠뮤지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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