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쉽지 않은 여정이었어요. 그래도 내가 좀더 잘했다면 또다른 결과를 낼 수 있었을텐데, 스스로에게 또다른 배울 점을 안겨준 기회네요”

5월부터 10월말까지, 꼬박 6개월간의 긴 여정을 달려온 황정음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흐른다. SBS 주말드라마 ‘끝없는 사랑’의 주인공 서인애로 살아온 지난 시간은 그에게 작품 제목 그대로 ‘끝없는 성장’을 안겨준 날들이었다. 물론 과정은 지난했다.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조망하는 폭넓은 시대 배경 속에 20대부터 40대 후반까지를 연기해야 했던 그는 각종 사회적 사건과 개인적 고난에 맞닥뜨리는 역할로 방송 내내 고군분투했다. 방송이 끝난 후 인터뷰를 통해 자체적으로 ‘힐링’ 시간을 갖고 있다는 그에게서 배우로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SBS 주말드라마 ‘끝없는 사랑’으로 촬영기간까지 6개월에 이르는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황정음: 쉽지 않은 촬영이었고, 사실 촬영하는 동안 불평도 했다. 그런데 끝나고 보니 작품을 선택한 건 나고, 그렇다면 내가 더 움직였어야했는데 왜 불평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만난 건 내 운이다. MBC ‘골든 타임’을 찍을 때 느낀 건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성민 선배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것을 뽑아내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모자라니까 만족할 만큼 못한 것 같다.

Q. 이번 작품은 특히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드라마였나보다.
황정음: 요즘들어 특히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많이 고민한다. 지금까지 열심히만 살아왔는데, 그저 열심히 사는 게 답이 아니구나란 생각을 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더 단단해지고 쌓아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Q. 드라마계에서는 시청률 보증수표로 불렸는데 이번 작품으로 연승이 깨졌다는 평가도 있었다. 벽을 실감한 경험이었나?
황정음: 맞다. 사실 어떤 작품에서든 높은 벽을 경험하는데 그건 연기자들이 죽을 때까지 싸워야하는 지점인 것 같다. 그걸 넘어서야 하는 게 연기자들이고. 연예계 일을 하다 보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사회생활하는 사람들보다 좀더 빨리 성장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워낙 치열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니 다양한 일에 맞닥뜨리면서 멍청한 사람도 똑똑해질 수 있는 곳이 이 곳인 것 같다.


Q. 그래도 배우 황정음에 대한 연기 평가는 괜찮았다.

황정음: (웃음) 이번처럼 어려운 대본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려면 50년은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Q.그런데 목소리 톤과 발음이 다소 어색하다는 지적은 여전히 일부 존재했다. 스스로에게 스트레스인가?
황정음: 내 목소리가 ‘비밀’ 전에는 스트레스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감정이 전해지면 그 어떤 발음이건 목소리건 상관이 없음을 깨달았다. 우린 표현하는 사람들이니, 전달이 정확하게되면 성공하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내 목소리로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KBS2 ‘비밀’을 해 냈고 많은 분들이 칭찬해주는 걸 느끼면서 ‘아, 내 목소리로도 멜로를 할 수 있구나’란 걸 깨달았다.

Q. 사실 대부분의 배우들은 본인이 잘하는 것을 위주로 선택한다. 하지만 황정음은 되든 안 되든 몸사리지 않고 부딪치며 열심히 도전하고 있다.
황정음: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경험에서 얻어지는 많은 것들은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거다. 내가 못했건 잘했건 중요하지 않다. 도전하면 결과가 있고 도전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결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일단 부딪쳐서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거다. 이렇게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뭔가는 조금씩 다른 작품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번에도 연기의 맛을 또 느낀 것 같다. ‘하이킥’ 때는 그저 재밌었고, ‘비밀’ 때는 안되리라 생각했던 점을 해 내서 기뻤다. 이번에는 다른 여배우들이 기피하는 역할을 해 냈다는 점에선 칭찬해주고 싶다.

Q. 이번 작품에서 한 여성의 20대부터 40대 후반까지의 일대기를 연기했다. 이 또한 새로운 도전이었겠다.
황정음: 정말 어려웠다. 작가님이 표현하고 싶은 부분이 많으셨는데 잘 소화해내지 못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선 드라마 환경이 좀 아쉽다. 영화라면 아니다 싶으면 싹 고치고 다시 할 텐데 드라마는 여건 상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주인공이라는 게 단지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장을 이끌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많이 배웠다. 나는 아직 모자란데, 이 작품을 할 수 있었던 게 고맙다. 한편으로는 욕심 부렸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웃음) 이제는 다 내려놓고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도전하는 데 의의를 뒀다면 이제는 내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걸 해보고 싶다.


Q. 배우들과 연대감은 매우 좋았던 것 같다.

황정음: 심혜진 선배는 정말 사랑스러우신 분이고 차인표 선배는 존재만으로도 멋있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든 어떤 사람에서든 장점을 습득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멋있는 행동은 누군가에게 터득하는 건 소중한 경험이니까. 그런 습득력 때문에 빨리 성장한 것 같다.

Q. 시간이 지나며 점점 성숙해진 황정음의 모습이 엿보인다
황정음: 처음에 워낙 못했기 때문에(웃음) ‘발연기’라는 평가가 이후에 조금 잘하게 되면 칭찬으로 바뀌니 좋은 것도 같다. 촬영장에서 늘 벽을 느끼면서 성숙해졌다. 내가 바보가 돼 보니 상대방도 값진 사람이란 걸 알게 되고. 이렇게 생각 없었던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차인표 선배같은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건 스스로도 정말 놀랍다. 예전엔 명품 백, 자동차에 관심 가지던 내가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어떤 삶이 좋은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아, 정말 배우되길 잘 했다는 생각이다.

Q. 9년째에 접어든 김용준과의 연애도 물론 ‘인간 황정음’의 성숙에 도움이 됐겠지.
황정음: 우린 조금 모자란 커플이다. 매일 싸우고 서로 질척대고(웃음) 지긋지긋할 때도 있지만 용준이라는 아이는 내 인생에서 없으면 안 되는 존재다. 마치 엄마 아빠처럼. 우린 스물 셋이라는 풋풋한 나이에 서로 그저 예쁘고 귀여워하며 만났다. 그런 시절을 같이 보냈다는 건 정말 소중하다. 열렬히 싸우고 열렬히 사랑해서 지금도 용준이와의 관계에 있어 후회는 없다.

Q. 결혼도 생각하나?
황정음: 때가 되면 하고 싶다. 지금은 너무 이른 것 같고. 물 흘러가듯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 그게 인생을 좀더 풍요롭게 사는 방법인 것 같다.

Q.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회사도 옮겼다.
황정음: 영화 쪽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연찮게 좋은 인연이 닿아서 지금의 회사와 계약했고,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은 행복하다. 최민식 설경구 이정재 선배님 같은 쟁쟁한 분들도 많이 계시고,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예의를 지키면서 선배들과도 친해지고 싶다.

Q.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작품에 마음이 가나?
황정음: ‘엽기적인 그녀’ 같은 발랄한 작품도 좋고 스케일이 큰 작품도 해보고 싶다. 내가 아직 능력이 안 되니 캐스팅해주시는 것부터 차근차근 하고 싶다.(웃음) 그동안은 내가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고 영화에 도전하기가 무섭기도 했다. 큰 화면에서 오롯이 나를 집중하면 사실 숨을 구멍이 없으니. 그런데 이제는 진짜 연기다운 연기를 해보고 싶다. 시간에 쫓기면서 겉?기로 하는 거 말고, 느끼는 것 만큼 느끼고 상대배우가 주는 만큼 받으며 연기해보고 싶다. 그런 감정은 공기로도 전해지니까.

Q.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약간 쉬는 시간을 가지고 싶지는 않나
황정음: 모르겠다. 난 원체 변덕이 심해서. 쉬고 싶어 하다가도 좋은 작품을 보면 ‘이거 딴 사람이 하면 어떡해’하고 달려들기도 한다. 그런제 지금은 좀 중요한 시점인 것 같다.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고, 예전처럼 멋모르고 할 때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Q. 엉뚱한 질문이지만 예전 ‘슈가’ 시절 가수할 때보다 지금이 좋은가?
황정음: 비교할 수 없지. 돌아보면 지금 이렇게 연기하려고 내가 가수를 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 힘든 시기를 겪어서 지금도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그때가 없었으면 지금 나는 없을 것 같다.

Q. 인터뷰 내내 얘기를 듣다 보니 인간 황정음은 무언가 배우는 데 항상 열정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황정음: 어릴 때부터 공부를 안해서 인가? 모든 것에 목마른 면이 있다. 내가 모자란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배워보려는 노력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다.(웃음)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a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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