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장장 6개월, 50부작에 달하는 대장정이었다. 끝나고 나니 후련할 것 같기도 한데
“아, 왜 그렇게들 사랑해주셨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두 손을 모으고 마치 소설 ‘빨강머리 앤’ 속 앤 셜리처럼 순진무구한 웃음을 짓는 이 배우의 모습에서 ‘국민악녀’로까지 추앙(?)받은 MBC ‘왔다! 장보리’ 속 연민정을 떠올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2000년 KBS2 ‘학교 4’로 데뷔, 미니시리즈와 주말극, 아침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을 오가며 착실히 내공을 쌓아온 그는 2014년 드디어 악녀 역할로 잭팟을 터뜨렸다. 그러나 꾸준하고도 도전정신을 잃지 않았던 그의 행보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영광은 우연의 산물이 아닌 매 작품마다 한 뼘씩 성장하며 자신을 다져온 지난한 노력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이유리: 동료 배우들이 벌써부터 많이 보고싶다. 매일 촬영장에서 어린애들처럼 장난치며 놀아서 그런지…. 오연서와는 지금도 계속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연락한다.
Q. 롤러코스터 타듯 갈등이 첨예했던 드라마 내용과는 달리 촬영 현장은 화기애애했나보다.
이유리: 서로 장난치고 캐릭터 흉내내고 엄청 유치하게 놀았다.(웃음) (오)연서 씨도 그렇고 (김)지훈 씨도 그렇고 다들 웃기고 장난기 많은 친구들이라 본인 촬영이 아닐 때면 항상 모여서 인터넷상에 패러디된 내용도 찾아보고 고등학교 교실처럼 서로 웃겨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Q. 사실 제목처럼 ‘왔다 장보리’의 주인공은 장보리(오연서)였는데 연기적으로는 연민정이 더 화제를 모았다.
이유리: 나는 어떤 캐릭터를 맡아도 내 역할이 ‘조연’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할 뿐이다. 다만 전체적인 드라마 내용 상에서 연민정이 너무 돋보였던 게 다른 배우들에게 좀 미안한 느낌은 있다.
Q. ‘희대의 국민 악녀’로 떠올랐는데 인기는 체감하나?
이유리: 사실 난 계속 어리둥절한 상태다. 연민정에 관한 기사가 쏟아지거나 인터넷 상에서 회자되는 걸 보고 ‘도대체 왜이렇게 좋아해주실까?’ 의문이었다(웃음) 물론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지만 상상할 수 없었던 만큼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시니 아직까지도 몸둘 바를 모르겠다.
Q.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
이유리: 시장에 갈 때면 어김없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손가락질을 받곤 했다.(웃음) 내가 지나가면 가리키면서 ‘저 사람 그 나쁜 X이야’라고 수군수군 하시는 모습을 보며 재밌기도 하고,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불끈 들더라.
Q. 한편으로는 이런 큰 반응이 과분하다는 생각도 드나보다.
이유리: 맞다. 데뷔 14년 만에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은 처음이었으니까. 무섭다는 생각도 들고, 난 많이 부족했는데 과분한 칭찬과 인기였지 않나 하는 마음이다. 물론 이런 관심은 또 곧 잊혀질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그래도 적지 않은 시간 배우로서 시간을 보낸 데서 온 혜안이 조금은 생겼달까.(웃음) 어찌 됐든 지금 이런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게 무척 고마울 뿐이다.
Q. 결말에 대해서는 분분한 의견이 있었다. 다소 코믹하게 끝맺음됐다는 지적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어땠나?
이유리: 내 입장에서는 ‘과연 이 인물이 어떤 최후를 맞을까’가 늘 궁금했었다. 개인적으로는 민정이가 죗값을 치른 게 내 입장에서는 마음의 큰 짐을 벗은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마지막 부분에 ‘아내의 유혹’ 민소희 패러디가 들어간 점은 그간 ‘악녀 스트레스’가 있었던 데서 벗어나 반전을 꾀할 수 있어 좋았다. 51회까지만 해도 너무 처절해져버린 삶이 안타까웠는데 코믹하게 끝나서 다행이란 생각이다.
Q.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연기라 적지 않은 스트레스도 있었을 것 같다.
이유리: 맞다. 어느 작품보다 ‘집중력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때론 잠도 못 자고 에너지를 많이 요하는 장면을 마치고 나면 거의 실신 직전까지 이르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짧은 순간에 몰입해서 연기하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특히 ‘거짓말하는 순발력’하나는 끝내주게 연구했다.(웃음)
Q.희대의 악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남다르게 주목한 포인트가 있었나?
이유리: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연민정이라는 사람은 연기하는 나는 그를 이해하고 그의 편이 돼줘야 하는 입장이지 않나. 그런 관점에서 누구보다 민정이를 잘 아는 친구가 돼 주려고 노력했다.
Q.실제로 마주한 배우 이유리의 얼굴은 상당히 동안에다 천진난만함이 많이 묻어 있다.
이유리: 철없이 장난치는 거 좋아하고 좀 유치하다.(웃음) 얼굴 무서운 사람 보면 말도 잘 못하고 아직 아이같은 면이 많다. 남편도 그런 얘길 많이 한다.
Q.극중 연민정이 주춤하는 순간은 친딸 비단(김지영)과 마주할 때였다. 실제 연기하면서는 어땠나?
이유리: 비단이를 보며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더라. 나도 비단이같은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엄마가 돼야하는 입장이니까. 서 보어린 아이인데도 성숙한 생각을 한다는 게 무척 놀라웠다. 내가 나중에 아이를 키운다면 이렇게 키우면 좋겠다는 공부를 한 것 같다. 촬영장에서 지영양을 꼭 끌어안아 주곤하면서 설렘을 많이 느꼈다.
Q. 올해 연말 시상식 수상 후보로도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는데
이유리: 촬영장에서 보면 누구 하나 대충 하는 연기자는 없다. 안 열심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도 영광스럽게 수상 후보로 언급해주신 건 일단 운이 좋았고, 많은 분들이 상상 외의 응원을 보내주신 덕분이란 걸 너무나 잘 안다.
Q. ‘악녀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릴만한 역할을 소화해서 다음 작품에 다시 악역에 도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이유리: 난 연기할 때가 가장 재미있고 설렌다. 데뷔한 지 꽤 지났지만 지금도 어떤 대본을 받든 나 혼자만이 느끼는 두근거림이 있다. ‘어떤 역할이냐’는 상관없을 것 같다. 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역할이라면.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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