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을 보면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게 된다. 그를 인터뷰로 처음 만난 건, 2010년 연극 ‘트루웨스트’ 때다. 그때 조정석은 연기에 대한 무한 애정과 큰 꿈을 내비치며 머지않아 TV와 스크린에서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좋은 인상을 남겼다. 아니나 다를까 2012년 ‘건축학개론’으로 관객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기더니, 이젠 충무로에서 가장 자주 호출 받는 배우 중 한명으로 성장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다양한 가능성들이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그런 조정석의 진가가 제대로 된 ‘멍석’을 만나 빛을 발한 경우다. 틈새를 노리는 시간차 연기부터 대사를 내뱉는 기막힌 타이밍까지. 조정석은 어떻게 해야 상황을 더 흥미롭게 빚어낼 수 있는지를 아는 배우다. ‘멜로영화는 배우 하기 나름’이라는 진리를 조정석은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증명해 보인다.

Q. 기자시사회 때, 영화 보면서 울컥했다고 들었다.
조정석:
너무 즐겁게 봐주시니까 순간 울컥했다. 촬영하면서 고생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도 했다. 정말 열의를 가지고 열심히 촬영했거든. 24년 만에 리메이크 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내 첫 주연 영화라는 점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남다르다.

Q. 원작에 출연한 박중훈, 고(故) 최진실의 인장이 강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영민(조정석) 캐릭터를 본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이 컸을 것 같다.
조정석:
나는 리메이크 된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원작과는 다른 새로운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중심에 두고 있었기에, 영민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주민 센터에서 일하는 9급 공무원이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공무원이라고 하면 정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지니고 있는 나름의… 나름의 장점이랄까…

Q. (빠르게 받아치며) 말투에 특유의 ‘쪼’가 있다. 개성 있는 ‘쪼’(웃음)
조정석:
하하하. 그런 ‘쪼’를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만의 동적인 모습을 겸비해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Q. 조정석만의 ‘쪼’에 대해 조금 더 말해보자. 그게 아마 연극무대에서 익힌 것 같은데, 같은 대사를 맛있게 바꾸는 특유의 ‘쪼’가 당신에게 분명히 있다. 대사를 치는 템포도 기가 막히고. 그 호흡 때문에 ‘건축학개론’ 때도 사랑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영화에도 그런 씬들이 여럿 포착됐다. 기초수급 대상자인 할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는 씬 등이 그러한데, 그런 건 연출의 능력이라기보다 당신이 재미있게 살려낸 부분이라 생각한다.
조정석:
하하. 할머니와 통화하는 씬은 내가 고민을 하고 아이디어를 낸 게 맞다. 어차피 연기는 완벽한 계산이다. 상황을 어떻게 풀어내야 효과가 좋을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Q. 반면, 그런 ‘쪼’가 초반에는 신선해도, 계속적으로 반복되면 어느 순간 식상해 질 수도 있다고 본다.
조정석:
항상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호흡들을 뽑아내려고 노력해 왔다. 그래야만 씬에 재미있는 공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를 하려다 보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나의 일관된 연기 패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앞으로도 계속 증명해 보일 테니, 지켜봐 주면 어떨까 싶다.

Q. 대본, 캐릭터 분석 등을 굉장히 치밀하게 하는 걸로 안다.
조정석:
배우로서 변화무쌍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말씀드렸듯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호흡들을 발견하려고 고민한다. 모방은 특히 기피한다. 가령 ‘철의 연인’에서 메릴 스트립이 죽은 남편의 양복을 골라주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에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메릴 스트립만의 호흡이 있다. 그 장면을 볼 때 욕이 나올 정도로 놀랐다. ‘와, 매릴 스트립은 어떻게 저런 호흡을 찾아냈을까’ 다니엘 데이 루이스도 그렇고, (송)강호 선배님도 그렇고 내가 존경해 마지않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자극받고, 그러면서 나를 계속 괴롭게 한다. 하지만 연기할 때만큼은 심플하게 하려고 한다.

Q. 욕심과 의지는 큰데, 연기는 또 심플하게 하려고 하고. 그 간극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겠다.
조정석:
연기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아주 창의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그걸 어렵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본다. 연기를 교회 성극을 통해 처음 접했다. 학구파 적으로가 아니라 하나의 놀이문화처럼 접한 것이, 결과적으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Q.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연애의 역사 같은 느낌이 있다. 만나고, 설레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그러다가 서로 오해하고, 권태기도 느끼는. 이 많은 감정 중 어떤 연기를 할 때 가장 인상적이었나.
조정석:
다툴 때. 영민과 미영(신민아)이 사소하게 말다툼 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나는 그게 사소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사소한 것에서 남녀 간의 갈등이 시작되니까. 예를 들어 영민은 미영과 미영의 후배(서강준)가 극장에서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보고 질투를 느껴 유치한 말싸움을 건다. 이후 자장면 집에서 미영이 “영민 씨, 창피하게 왜 그래?” 하니까, 영민이 “창피해? 내가 창피해?”라고 화를 낸다. 남자는 이 ‘창피해’라는 단어에 꽂힌 거다. 싸움의 발단은 그게 아닌데, 서로 다른 지점을 보며 대화를 하다보면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그런 장면들이 우리 영화에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그런 것들을 밀도 있게 표현하려고 신경 썼다.

Q. 그런 연기를 하면서 ‘조정석 과거의 연애’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나, 추억에 많이 잠겼나.(웃음)
조정석:
과거의 나는 돌아보면 당연히 반성해야 한다.(웃음) 무조건 반성이다. 내가 이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본 가장 큰 이유는 공감이 됐기 때문이다. 그랬을 때 내 ‘과거의 연애’는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남녀의 마음을 공감하게 만들어준 원동력이었다. 이 영화는 공감대 형성이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다. 그런 면에 신경을 썼고, 내 과거의 연애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Q. 영화를 보면 미영이 안쓰러워 보이는 장면이 있다. 그래서 묻는데, 당신은 언제 이성에게 연민을 느끼나.
조정석: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데, 여자가 우는 모습. 정말이지 그건……. 여자가 냉정해지면 냉정해 질수록 남자도 냉정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여자가 울면 한 순간에 마음이 무너진다. 그건 여자가 참고 참다가 모든 걸 내려놓는 거잖나. 그러면 갑자기 모든 게 내 잘못 같이 느껴지고 어쩔 줄 모르겠다.

Q. ‘여자의 눈물은 무기’라는 말이 맞는 거네.
조정석:
그거, 나에겐 맞는 것 같다.

Q. 중요한 정보를…‘조정석을 공략하려면 눈물을 흘려라!’ 뭐 이런?(웃음)
조정석:
하하하. 결혼소재 영화라서 관련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 얘길 꼭 하고 싶다. 우리 영화의 진짜 주제는 사랑이라고. 지금 한창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커플이 우리 영화를 보면 더 뜨거워지리라 생각한다. 사랑이 식은 분들에겐 우리 영화가 서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지 않을까 싶고. 그리고 신혼부부라면 아마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을 거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핵심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Q. 남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 에로스적인 사랑일 수도 있고, 의리일 수도 있고, 믿음일 수도 있고, 서로의 가치관 일수도 있는데.
조정석:
에로스도 아니고 아가페도 아니고 일방적인 사랑도 아니고, 내 생각엔 ‘배려’ 같다. ‘결혼은 희생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결혼을 그렇게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내 개인의 인생이 있고 와이프가 될 사람의 인생이 있다면, 결혼이라는 건 이 두 인생이 합쳐지는 거다. 그랬을 때 서로 어느 정도 양보하고 포기해야 하는 게 있다. 그걸 희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걸 배려라고 표현하고 싶다.

Q. 영화에서 영민은 시인을 꿈꾸며 시를 꾸준히 쓴다. 혹시 조정석도 시를 써 본 기억이?
조정석:
중고등학교 때 장난삼아? 그땐 그래도 나름 진지했던 것도 같고.(웃음)

Q. 주제는?
조정석:
공개하기 창피한데… “핫브레이크 없으면 블랙조 먹으면 되고, 허브큐 없으면 목캔디 먹으면 되지만, 너 없이는 안 돼” 뭐 이런 시였다. 하하하. 제목은 ‘대체불가’(일동 폭소) 아, 손 발 오그라든다. 어린 나이니까 쓸 수 있는 시였다.

Q. 연애할 때 달달한 스타일인가보다.
조정석:
달달하지 않다. 굉장히 소탈하게 연애하는 편이다. 포장마차에서 소주한 잔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 하고. 영화에서처럼 “저기 하늘 봐. 예쁘지?” 이런 건 절대 못한다.

Q. 신민아 씨와 부부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
조정석:
아우, 기가 막혔다. 부러움들이 정말~!(웃음) 그런데 사실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지긋지긋하기도 하다. 다들 “부럽다!” “좋겠다” “예쁘냐” “신민아 짱이야!” 시도 때도 없이 물으니까, 나중엔 “(영혼 없이)어, 짱이야” “예뻐” 이런 식으로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게 되더라. 그럼 다들 김이 팍 새서 “너무 심플한 거 아니냐”고 그러고. 하하하.

Q. 연극 ‘트루웨스트’에서 형제 호흡을 맞췄던 배성우 씨와 이번 영화에서 친구로 나왔다.
조정석:
‘건축학 개론’ 촬영 들어가기 전에 형이랑 전화를 했는데 그때 형이 그랬다. “정석이 파이팅! 다 죽여 버려!”(웃음) 연극에서 만난 성우 형과 함께 영화를 하게 돼서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Q. 3년 전에 인터뷰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너무 하고 싶다고 했었다. 시작이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스타트를 한 이후로는 굉장히 빠른 템포로 가는 느낌이다.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 조연을 하고 1년도 채 안 돼서 ‘최고다 이순신’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영화도 ‘건축학개론’ 이후 꾸준히 달리는 중이고. 이 템포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조
정석:
내 입으로 템포가 어떻다고 말하긴 그런 것 같고… 남들이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보시는 분들이 빠르다고 하면 빠른 거다. 2012년에 ‘건축학개론’이 개봉했다. 이후 ‘관상’ ‘역린’을 거쳐 지금 ‘나의 사랑 나의 신부’까지 불과 2년 안에 일어난 일이니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다.

Q. 이 모든 게 가능했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일까.
조정석:
하하. 열~심히! 정말 열심히 한 건 사실이다.

Q 2011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출연 때 배우수첩을 적었던 걸로 안다. 혹시 지금도?
조정석:
지금은 안 쓴다. 가끔 들여다보긴 한다. 보면, 내가 정말 솔직했구나 싶다. 가령 ‘오늘 공연 거지 않았다. 내가 정말 병신 같았다’로 시작하는 글도 많더라고.(웃음) 호흡법, 아쉬운 점, 고쳐야 할 점 등이 적혀있는데,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도 있다.

Q. 스스로에게 엄격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조정석:
엄격하다.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을 할 때였나? 뮤지컬 배우들이 음 이탈을 한 두 번씩은 하는데, 그때 내가 음 이탈을 제대로 냈다. 공연 끝나고 분장실에서 속상해 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웃음)


Q. 연기에 대한 욕심을 덜어내는 마인드 컨트롤은 어떻게 하나.
조정석:
배우가 욕심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욕심이 드러나는 순간 배우를 하면 안 된다고도 생각한다. 개인적인 욕심이 드러나는 순간 작품에 해가 되니까. 씬의 목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배우라면, 욕심은 가져가되 그 욕심을 씬에 넣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 자신이 맡은 롤을 극 안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잘 섞는 게 중요하다. 본능적인 톤이랄까. 그런 느낌이 필요하다.

Q. 조정석의 감은 타고난 본능 같나, 아니면 오랜 시간 무대에 오르며 습득한 본능 같나.
조정석:
후자다. 나는 내가 타고 났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열심히 한다고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Q. 당신이 생각하는 ‘열심히’라는 건 도대체 어떤 건가.
조정석:
나열하자면 너무 많다. ‘이 씬의 목표가 뭔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상대방의 톤에 어떻게 섞여야 하는지, 이 캐릭터는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여기서는 어떻게 장면을 이끌어 가야 하는지’ 그런 모든 것들을 작품 들어가기 전부터 꼼꼼히 살핀다.

Q 그런 생각이 제대로 정립이 안 된 상태에서 작품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나.
조정석:
흠. 그렇게 만들면 안 되지 않을까. 내가 맡은 롤이 확실하게 있는데, 그런 상태에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Q. 얼마 전에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에 출연했다. 뮤지컬은 ‘헤드윅’ 이후 3년만인데, 생각보다 무대에 빨리 컴백한 느낌이 있다. 많은 연극/뮤지컬 무대 출신 배우들이 무대로 돌아가겠다고 해도, 막상 스케줄 때문에 그러지 못하지 않나. ‘블러드 브라더스’는 당신의 출연에 대한 의지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조정석:
일단 팬들에게 올해 꼭 공연을 하겠다고 얘기했었다.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 탁 있었다. ‘블러드 브라더스’은 스토리텔링이 너무 좋은 작품이다. 관객들이 공연을 선택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출연을 했다. 앞으로도 영화 드라마 무대를 자유롭게 오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Q. 그런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나.
조정석:
에너지는 연기가 좋으니까. 나는 내 직업을 너무 사랑한다.

Q. 지금 기분으로 시를 한 편 쓴다면? 시의 제목이나 내용은 어떻게 될까.
조정석:
음… 어려운데. 재미있게 표현하자면, “열정이 낳아준 씨앗은 흥행이다?” 하하하. 제목은 ‘나의 바람’ (일동 폭소)

글. 정시우 siwoorain@tenais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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