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바보’ 각본을 썼다. 그리고 ‘헬로우 고스트’에 이어 ‘슬로우 비디오’까지. 차태현 씨가 인터뷰할 때 웃으면서 ‘감독이 나밖에 모른다’고 했는데, 진짜 그런 것 같다. (웃음)
“뭔가 독특하고 궁금한 감독인 것 같다.”
차태현은 김영탁 감독을 이같이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김영탁 감독 작품은 뭔가 궁금증이 가득하다. ‘헬로우 고스트’는 귀신을 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평범하게 보여주면서도 독특함을 녹여냈다. ‘슬로우 비디오’도 마찬가지다. 동체 시력을 신선한 소재를 이용해 느린 호흡으로 대중의 감성을 어루만진다.
두 작품은 많은 부분이 닮았다. 세상과 소통하지 못했던 인물, 상만과 장부가 서서히 세상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슬로우 비디오’에도 상만(김강현)이 나온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영화에 흐르는 정서도 동일하다. 이는 곧 김영탁 감독만의 색깔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뚜렷한 색깔이 궁금증을 만드는 원인이다. 김영탁 감독과 인터뷰를 통해 그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김영탁 감독 : 그때는 작가였으니까 직접 마주할 일은 많지 않다. 술자리나 이런 곳에서 보긴 했다. 여하튼 그 당시 태현 씨가 승룡 캐릭터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자기 영화를 보고 좋아할 수도 있다’란 것을 처음 느꼈다. ‘헬로우 고스트’ 할 때 그때 만났던 이야기를 했더니 기억난다고 하더라.
Q. 차태현과 끈끈한 인연이 이어지는 것 같다.
김영탁 감독 : 인연을 믿는 편이다. 태현 씨와 인연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한 배우와 두 편 정도 해야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태현 씨도 이번 작품을 하면서 훨씬 잘 알게 됐다. 서로 동갑인데도 말을 놓은 지 얼마 안 됐다. 태현 씨도 ‘탁 감독’이라고 부르는 게 얼마 안 됐다. 감독과 배우라는 관계가 직업적인 필요에 의한 관계다. 그래서 더 속 깊이 들어가기 힘들다. 오히려 주인공은 더하다. 그리고 나 자체가 폐쇄적인 캐릭터다. 여전히 다른 영화 VIP 시사회나 뒤풀이는 못 간다. 그런데 이번 영화 하면서 술 마실 수 있는 배우가 많이 늘었다. 달수 선배, 상미, 강현, 태현 등 다 친해졌다.
Q. ‘슬로우 비디오’는 차태현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도 없는 건 확실하다. 그래도 ‘헬로우 고스트’를 같이 했기 때문에 두 번째는 다른 배우와 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배우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나.
김영탁 감독 : 일단 이 이야기에서는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준비하던 게 잘 안 돼 이 이야기를 급작스럽게 하게 됐다. 그리고 원래는 이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CCTV가 ‘감시’라는 속성이 있어서 편한 소재는 아니다. 애당초 이야기는 ‘지켜본다’와 ‘훔쳐본다’가 적절히 균형감을 이루고 있었다. 장부는 CCTV를 통해 수미를 지켜보는데, 수미는 훔쳐본다는 느낌을 받는 거다. 그 때문에 수미는 무대에 서는 것조차 겁을 먹게 되고,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장부가 수미 집부터 공연장까지 가는 거리에 있는 CCTV를 다 깨부수는 거였다. 다시 수미가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그런데 이 시나리오를 보더니 ‘감독님, 이런 거 좋아했어’라고 당황해 하는 거다. (웃음) 그래서 나만 재밌게 느끼는 건 아닌가 싶어 주변에 모니터를 시작했는데 이 시나리오를 이십세기폭스 관계자가 매우 재밌게 본 거다. 시나리오 초고에 대한 이해력이 좋았다. 감독으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다. 그랬던 이야기였는데, 태현 씨가 결정되면서 태현 씨한테 맞는 옷이 뭘까 고민했다. 그래서 휴머니티가 강하면서 울림이 있는 이야기로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중반부가 다 바뀌게 됐다. CCTV를 따뜻하게 그리는 거에 부담이 있었는데, 극 중 공간들을 사실적으로 가면서 전체적인 톤을 띄워 판타지를 그려냈다.
Q. 차태현의 합류가 영화 자체를 바꾼 셈이다. 다시 한 번 특별한 인연이긴 하다.
김영탁 감독 : 맞다 맞다. 시나리오를 쓸 때 배우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정확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중요하고, 그 이후에 캐스팅을 고민한다. 그리고 대중성이 부족하지 않으냐고 고민했을 때, 태현 씨라면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양보 없이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Q. 고집이 정말 세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이번엔 많은 걸 양보했나 보다.
김영탁 감독 : 가끔 이야기했던 것 중의 하나인데 ‘헬로우 고스트’ 끝나고 신뢰할만한 사람과 일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작가 겸 감독을 하고 있다 보니 자기 작품에 대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정말 재밌고, 늘 최종 원고 같다. 그래서 신뢰할 사람이 정확하게 말을 해줘야 한다. ‘헬로우 고스트’ 끝나고 났더니 죄다 날 이용하려는 사람 같더라.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이번 영화 하면서 주위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으로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찍은 거다. 앞으로 더 그러려고 한다. ‘헬로우 고스트’ 때는 고집스럽게 찍었다. 여유가 없기도 했고, 늘어지는 부분도 원했던 거다. 정말 행복한 하루로 몇 날 며칠을 살 수 있다. 그 하루가 중요한 건데, ‘헬로우 고스트’는 바로 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Q. 앞서 이야기했듯, ‘슬로우 비디오’는 원래 준비하던 작품이 잘 안 돼서 갑작스럽게 진행된 작품이다. 차태현 말로는, 굉장히 이 작품을 ‘빨리’ 썼다고 하더라. 그럼 소재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구상했었나 보다.
김영탁 감독 :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혼자서 뭘 먼저 할까 고민한다. 이미 10년 계획이 세워졌다. 매년 초에 이걸 먼저 할까? 저걸 먼저 할까? 나름대로 고민하고, 정리한다. (웃음) ‘슬로우 비디오’ 역시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옛날에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였다.
Q. 동체 시력은 어떻게 생각한 건가. 그리고 동체 시력을 가진 남자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구축했나. 달릴 때 옆으로 간다거나 등등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들 말이다.
김영탁 감독 : 동체 시력은 겨울이 긴 남자 이야기를 할 때 왜 길어졌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특이한 능력을 생각했다. ‘느려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그게 어색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다고 동체 시력을 극대화해서 활용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드라마만 보면서 자란 장부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장부가 CCTV 관제센터에서 매일 같이 화면 속 주인공이 바뀐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200개 모니터를 동시에 보는 게 가능해야 할 것 같았다. 동체 시력이라면 가능하니까. 그 외에 병적인 것들은 다 지어낸 거다. 그리고 달리는 건 개인적으로 달리는 거에 울컥함이 있다. 못 달리는 아이가 달리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했다.
Q. ‘슬로우 비디오’는 전작 ‘헬로우 고스트’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다. 두 작품 모두 세상과 소통을 하지 못했던 인물이 서서히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그리고 주인공의 눈에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사랑’을 하면서 원래 보이던 게 보이지 않고, 그러면서 세상과 본격 소통하게 된다.
김영탁 감독 : 너무 분석하면 안 되는데. (웃음) 타고난 외로움이 있는 것 같다. 이상하게 혼자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 중학교 때 세뱃돈을 모아서 독립한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였고, 실제 고등학교를 기숙학교로 가면서 이참에 독립하겠다고 통장 잔고를 보여드렸던 적도 있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자본적으로 자립했다. 이해와 소통, 두 가지에 목말라 있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판타지는 이해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진솔한 관계를 맺는 게 그냥 큰 감동이다. 지금 새로 쓰려는 이야기도 그런 지점이 있다. 앞선 두 편은 사변적인,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 날 소통 부재의 아이가 당신 때문에 봄이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겨울이 긴 남자가 세상 밖으로 나와서 봄을 맞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작이 나와 아내다.
Q. ‘상만’이란 이름에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나. ‘헬로우 고스트’ 주인공 이름이 상만이고, ‘슬로우 비디오’에서 김강현 씨가 맡은 역할도 상만이다. 그리고 ‘슬로우 비디오’ 속 상만도 자살 시도하는 게 있었다고.
김영탁 감독 : 상만이 자살 시도를 하는데, 장부를 만나 좀 더 살다가 귀신을 보게 되는 거다. 혼자서는 그렇게 프리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웃음) ‘이상하게 잘 안 죽는다’는 말과 ‘운전 잘한다’는 대사 등도 그런 식으로 연결된다. 태현 씨는 초고를 봤으니까 자신이 1인 2역 해야 하는지 알고 신이 났다. 귀신에 빙의되기 직전 느낌으로.
Q. 개인적으로는 한 편의 영화를 떠나 기록물의 의미도 있겠다. 과거 살았던 자취방, 동네 그리고 아내와의 일화 등이 영화에 그대로 담기지 않았나.
김영탁 감독 : 그런 것도 있다. 이런 걸 얘기해도 되나 싶다. ‘지가 보고 싶어서 만들었나’ 이런 소리 들으면 안 되니까. 늙어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숨겨놓은 게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Q. 작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김영탁 감독 : 내 안에서 이야기를 찾는다. 원래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생활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니까 누군가 시나리오 공모전을 내보라고 하더라. 공모전은 일단 목돈이니까, 일 년 생활비가 떨어진다. 그런데 공모전 내면, 떨어지는 이유가 상업적이지 않다는 이유였다. 1억 공모전이 있었는데 본선에 올라간 10개 중 내 작품이 2개 올라갔다. 그랬는데 최종적으로 떨어졌다. 그 역시 상업성이 문제였다. 당시 심사위원이 허진호 감독, 김지운 감독, 정지우 감독이었다. 그중 정지우 감독님이 내 시나리오를 인상 깊게 봤나 보더라. 그래서 싸이더스에 나를 접촉해 보라고 했나 보더라. 그 덕분에 대학교 4학년 때 작가가 됐다. 감사했던 게 직접 시나리오를 건넬 수도 있었는데 작가한테 직접 받아서 검토해보라고 했다는 거다. 그 작품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다. 처음이라서 당연히 많이 부족했을 거고, 장애인이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결국 영화화는 안 됐고, 제목만 계약하게 됐다. 그래서 곽재용 감독님 영화의 제목이 됐다. ‘헬로우 고스트’ 끝나고 마케팅팀 통해 (정지우 감독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Q.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라디오스타’에서 지루한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의미도 궁금하다.
김영탁 감독 : 지루한 영화를 하는 게 꿈이긴 한데, 오해하면 안 된다. 내가 말한 지루하다는 건 관객에 대한 배려가 없는 지루함이 아니다. 작가 입장에서 내 이야기가 소통되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내가 호흡하는 속도가 느리긴 하더라. (웃음) 그래서 내 속도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거다. 뭐 아직은 아주 멀리 있는 것 같지만. 확실한 건 규모가 큰 영화를 제안받는다 해도 내가 꼭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면 굳이 하고 싶진 않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SNS DRAMA][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