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영화 ‘명량’에 등장한 인물 중 한명을 꺼내 스핀오프를 만든다면, 누가 좋을까.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후 대장선 탑승을 자처한 소년 수봉이 아닐까. 명량해전이 끝난 후 이순신 장군(최민식)에게 토란을 건네며 극을 이완시키는 것도 다름 아닌 수봉의 몫이었다. 출연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영화 전체의 정서에 중요한 역할을 수봉을 연기한 배우는 스물 둘의 청년 박보검이다. ‘명량’ 이후 박보검을 찾는 업계의 욕망은 뜨겁다. ‘보배로운 칼이 때가 되면 귀하게 쓰이리라’(보검)는 운명이 박보검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 좋은 예감. 가능성 무한대의 박보검을 만났다.

Q. 포토그래퍼가 사진을 찍으면서 “작년보다 얼굴이 더 좋아졌다”고 연신 환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자신의 얼굴이 어떤가?
박보검: 아직 어리지만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성숙해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나이에 맞는 얼굴과 분위기가 있다고 하던데, 앞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Q. ‘명량’이 개봉은 올해 했지만, 촬영은 작년에 끝났다. 그새 선이 조금 더 굵어진 느낌이 있다. 1,700만 명이라는 엄청난 관객이 ‘명량’을 봤는데, 길에 나가면 ‘토란소년’인 걸 많이들 알아보나.
박보검:
그냥, “어?” 하는 정도?(웃음) 그런데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이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면서 많이들 알아봐 주신다. 영화 ‘끝까지 간다’에도 잠깐 나오는데, 그 영화로 기억해 주시는 분들도 있다. 2104년 행보가 굉장히 좋다.

Q. 영화 ‘블라인드’로 데뷔했다. 영화만 놓고 보면, 이후 ‘끝까지 간다’와 ‘명량’까지. 결과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에만 출연했다.
박보검:
정말 행운이다. ‘끝까지 간다’는 심지어 칸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Q. 칸 레드카펫을 밟는 상상을 해 본적 있나.
박보검:
와, 칸까지는 상상해 본적이 없다. 연기대상은 생각을 해봤다. 참석할 수 있다면 너무 기쁠 것 같다.

Q. 어? 아직 연기대상 레드카펫을…
박보검:
한 번도 없다. 밟은 게 있다면, 시사회 레드카펫?


Q. 올해는 밟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배우로서 칸국제영화제까지 가보겠다는 욕심이 있나.
박보검:
열심히 연기 공부를 하고, 경험을 쌓고, 숙련이 되면, 언젠가는 갈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칸에 가서 상을 받아야지’가 아니라, 참석자체가 영광일 것 같다. 기회가 되면 할리우드도…(웃음) 아, 어디까지나 소망이다.

Q. 할리우드에 진출하려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 둬야 할 텐데.
박보검:
영어는 틈나는 대로 공부한다. 영어 애플리케이션 다운받아서 보기도 하고.(웃음)

Q. 영리한 배우들은 배움에 게으르지 않다. 연기하는데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워 두는데, 박보검도 그런가 보다.
박보검:
준비한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는 말을 믿는다. 여유가 조금 더 있을 땐 일본어 공부도 한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배울 기회가 많은데, ‘명량’ 때는 승마를 배웠다. 무술감독님이 조금만 더 다져지면 폼이 멋질 것 같다고 응원해 주셔서 더 신나게 했다.

Q. 액션에 끼가 있나 보다. 배우 이전에 가수 준비를 한 걸로 아는데, 혹시 그때 춤 연습도 한 건가.
박보검:
아, 나는 가수 연습생은 아니었다. 싱어송라이터가 꿈이었다. 그래서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부르는 영상을 큰 회사들에 보냈는데 감사하게도 모두 연락이 왔다. 그 중엔 싸이더스HQ도 있었고, 큰 음반회사도 있었다. 가장 먼저 연락이 온 곳이 싸이더스HQ였다. 싸이더스HQ가 배우 분들밖에 없는 곳이라서 처음에는 ‘여기에서 가수로서 위상을 높여야겠다’는 나름의 야망과 포부를 가졌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너는 가수보다 연기를 더 잘할 것 같다”고 하셔서 배우의 길로 전향했다.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블러썸엔터테인먼트)는 당시 함께 했던 분들이 나와서 차린 회사다.

Q. 가수가 꿈인데, 배우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해서 아쉽지는 않았나.
박보검:
전혀.연기를 하면서도 음악은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말에 공감했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명량’도 만난 게 아닌가.

Q 김한민 감독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
박보검:
처음 만날 때 감독님이 흰색 바지에 하늘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으셨던 걸로 기억하다. 로퍼화를 신고. 잡지에서 본 듯한 연륜 있는 멋진 남자의 모습이었다. 머리도 딱 묶으시고. 굉장히 멋있으셨다. 그리고 잘 생기시지 않았나. (흔쾌히 동의하지 않자) 하하하. 지금 살이 조금 붙으셔서 그렇지 당시에는 슬림하셔서 분위기가 상당했다. 사실 감독님이 왜 날 캐스팅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기회가 되면 여쭤보고 싶은데 모든 게 감사해요.


Q. 출연 분량을 떠나서 수봉은 상당히 의미 있는 역할이다. 영화 마지막에 정서적으로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박보검:
시나리오를 읽을 때 굉장히 울컥했다. 실제 나의 아버지가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는다는 걸 상상하니까,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감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감독님과 최민식 선배님이 조언을 많이 해 주셔서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Q. 이순신 장군 외에, 역사적으로 존경하는 위인이 있다면.
박보검:
옛날에는 역사에 대해 해박하지가 않았다. 부끄럽게도 수업시간에 배운 것이 거의 다였다. 그런데 ‘명량’을 찍은 후, 위인전만 봐도 쉽게 지나쳐 지지가 않는다. 한국역사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이번 작품을 통해서 했다.

Q. 굳이 위인이 아니어도, 멘토가 있다면.
박보검:
아버지, 그리고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 ‘보배로운 칼’이라는 뜻의 내 이름을 지어주신 목사님이다. 종교적인 걸 다 떠나서, 그 분의 삶을 보면 지혜라는 게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본 받고 싶은 분이다.

Q. 같은 교회를 계속 다닌 걸 보니, 거주지를 자주 옮기지는 않았나 보다.
박보감:
쭉 같은 곳에서 산다. 고향은 서울. 그래서 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서 사투리 연기 할 때 회사 신승환 선배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Q. 주위에 같이 성장한 친구들이 많겠다. 친구들은 배우 박보검을 보면 뭐라고 그러나.
박보검:
신기해하는 친구도 간혹 있는데, 대부분이 나를 연예인으로 안 본다. 그 친구들 앞에선 온전히 나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지금 친구들 대부분이 군대를 가거나, 유학을 갔다. 자주 보지 못해서 아쉽다.

Q.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땐 어떤 역할을 하나.
박보검:
내가 거의 주도하는 편이다.

Q. 의외네. 뭐랄까. 모범생의 분위기가 풍긴다. 혹시 학창시절 ‘장’ 같은 거 안 했나.
박보검:
항상 임원이었다. 회장도 했었고….

Q. 어쩐지. 박보검이 학창실절 했던 일탈이 있다면? 일탈이라는 말이 그렇다면 나쁜 짓?(웃음)
박보검:
어… 급식 시간에 새치기 했던 거?

Q. 에이~ 너무 약하지 않나~(웃음)
박보검:
학생들에 급식은 나름 예민한 문제다.(웃음) 내가 방송반이었는데 방송이 있는 날에는 밥을 빨리 먹고 가서 방송을 해야 했다. 그 날은 방송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새치기 했다.

Q. 학창시절에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
박보검:
아니다. 평범했다. 많이들 오해하고 계신 게, 내가 목동의 ‘얼짱’이었다는 소문이 있더라. 그런데 나는 ‘얼짱’도 아니고, TV프로그램에 나간 적도 없고, 사진을 올린 적도 없다. 그 소문의 진원지가 어딘지 모르겠다.

Q. 지금 뮤지컬학과 1학년생이다. 대학생활은 어떤가.
박보검:
재미있다. 노래와 연기와 춤. 내가 좋아하는 세 가지를 다 배운다. 이론은 물론, 연기에 대해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우면서 ‘내가 그걸 놓쳤었구나’를 느끼고 있다. 노래는 아직 합창 시간 밖에 없다. 개인 보컬 트레이닝은 2학년 때부터 들어가는데, 선배들이 노래 부르는 걸 보면서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알게 됐다. 자극이 된다.

Q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는?
박보검:
뮤지컬‘서편제’에서 차지연 선배님이 부른 ‘살다보면’. 최근에 ‘서편제’를 봤는데 너무 감동받았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노랫말에 울컥했다. 한의 정서를 절절하게 표현한 작품이고, 노래다.

Q. 원래 한의 정서에 관심이 많았나, 아니면 ‘명량’이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가.
박보검:
그런 감정을 원래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을 보면 괜히 가슴이 뜨거워진다. 거만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다. 작품을 보거나 책을 읽을 때 펑펑 울 때도 많다. 어떻게 보면 장점이고 어떻게 보면 단점이다.

Q. 일상에서 내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박보검:
결혼식장에 가면 자주 운다.(웃음)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옛날부터 그랬다. 양가 인사 하는 것이 슬프고, 축가를 부르는 것도 슬프고.


Q 결혼식에서 우는 건, 여자 부모님 쪽 감정에 ‘빙의’되는 건데.(웃음)
박보검:
그러니까 나도 신기하다. 하물며 내 가족도 아닌데. 내가 가족적인 분위기에 많이 약한 것 같다. 형제? 2남 1녀 중에 막내다. 형 누나와 10살 차이가 된다. 그 때문인지 나이 차 많은 선배들을 만나도 어렵지가 않다. 먼저 다가가서 살갑게 인사하는 편인데, 그런 면을 예뻐해 주시는 것 같다.

Q. 유승호, 이현우, 이민호와 함께 93년 꽃미남 4인방으로 묶어서 자주 거론된다.
박보검:
너무 감사하다. 모두 나보다 연기경력이 많은 선배들이다. 친구이기도 하고. 거기에 합류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나도 빨리 연기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Q. 그 친구들에 비해 박보검이 지닌 장점이라면?
박보검:
음악을 좋아하는 거? 그런데 이것도 분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게, 예전에는 피아노 치는 남자가 드물었는데, 요즘은 너무 많다. 조금 더 많은 악기를 섭렵하려고 하고 있다.

Q. 흔한 질문. 부모님이 연예 활동에 반대는 안 하셨나.
박보검:
그래서 나는 참 감사한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을 항상 믿어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다.

Q 얘기를 듣다보니 평탄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질문, 조금 빠르긴 한데 과연 박보검도 좌절을 해 봤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박보검:
기도하고 소망했던 일이 안 된 적, 나도 있다. 재즈피아노 관련 대학을 가고 싶었는데, 떨어지기도 했고. 그 밖에도 많다. 그런데 살면서 좌절을 겪는 건 좋은 것 같다. 너무 평탄한 삶을 사는 사람은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낮은 것 같고. 아직 이런 말을 할 나이는 아니지만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겪어보고 싶다.

Q. 박보검이 지키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보검:
내가 지키고 싶은 말… (한참 생각하던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울컥 하네. 그냥…그냥, ‘따뜻한 사람이 되야겠다?’ (눈물을 훔치며) 아, 이런.


Q. 왜 울컥할까.
박보검:
너무 감사한 일들이 많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감사’라는 말이 진심이 아니게 들릴까봐 두려운데, 진심이다. 이 행복이 달아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없다. 다행히 아빠나 회사 어른들이 여러 조언을 해 주신다. “언제든 겸손해라”, “예의 바른 사람이 되거라”, “감사의 마음 잊지 말아라” ‘뻔’한 이야기 일 수 있지만 그런 말을 진심으로 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도 행운이다.

Q 연예계라는 세계가 참 치열하다. 사람이 쉽게 변하게도 만든다. 특히 인기를 경험하면, 초심을 잃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다만 그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박보검:
그런 생각을 아주 가끔 한다. 그런 날이 온다면, 내가 정말 초심을 잃을까? 거만해질까? 그러지 않기를 다짐하고 기도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나를 떠받들거나, 무조건적으로 칭찬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못하면 못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 말을 받아들이는 나도 ‘뭐야?’라기보다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고. 다행히 객관적인 평가를 해 주시는 분들이 주위에 많다.

Q. 최근에 들었던 객관적인 평가는?
박보검:
주로 연기적인 면에서 지적을 많이 해 주신다. 최근 웃으면서 넘어갔던 소리가 있는데 “너, 토란 받을 때 이가 너무 하얗더라?” 하하하. 그런 객관적인 시선들이 많다.

Q. 지금 영화 ‘코인로커걸’과 드라마 ‘내일은 칸타빌레’를 촬영 중이다. 이상하지만 사람들은 영화에 비중을 둔 배우와 드라마에 비중을 둔 배우를 조금은 다르게 바라본다. 조금 더 욕심이 가는 쪽이 있나.
박보검:
영화는 영화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매력이 있다. 지금은 그 두 가지 매력을 다 느끼고 싶고, 경험해 보고 싶다.

Q. 올해가 아직 많이 남긴 했지만, 지금까지의 2014년을 표현해 본다면.
박보검:
‘참 좋은 해!’ 내겐 너무나도 의미 있는 해다. 평생 잊지 못할.

글. 정시우 siwoorain@tenais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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