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손예진 필모에 드라마 ‘대망’(02), 영화 ‘취화선’(02) 등 사극 작품이 있긴 있다. 하지만 손예진과 사극,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손예진과 사극,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저도 그래요”라며 특유의 웃음이다. 손예진과 액션, 이 역시도 마찬가지다. “액션은 제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라는 게 그녀의 대답이다. 그런 점에서 ‘해적’은 손예진의 새로운 모습을 가득 담고 있다. 여자 해적 여월 역을 맡아 액션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연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멋들어진 액션도 가볍게 소화했다. 오랜 시간 ‘청순’으로 통하던 그녀 아니던가. 그래서 청순과는 다른, 손예진의 매력이 듬뿍 담긴 ‘해적’의 등장이 무척 반갑다.
손예진 : 나 역시 (사극을) 안 한 것 같다. 사극이 어렵다는 걸 알았던 게 ‘취화선’이다. 가채 머리를 하고, 한복 입은 모습이 예쁘긴 한데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사극은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망’은 남장 여자여서 조금 편했던 게 있었다. 그 뒤로 사극은 하고 싶은 분야는 아니었다. 제대로 된 사극을 하는 것도 처음이고, 액션도 처음이다. 더욱이 이건 사극인데 여자 해적이란 게 플러스 되니까 더 어려웠다. 완전히 모든 게 새로웠다.
Q. 사극 속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본 소감이 궁금하다.
손예진 : 하하하. 글쎄, 참 어렵다. 그냥 새로운 것 같다. 촬영하면서도 내 모습을 보곤 했지만, 완성된 작품을 극장에서 봤을 때 어색하거나 캐릭터하고 안 맞으면 어쩌지, 생소하게 느끼면 어쩌지 등 걱정을 많이 했다. 연기, 액션, 표정, 몸짓, 말투 등 기존에 해 왔던 것 중 써먹을 게 없었다. 모든 게 새로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Q. 사극도 사극이지만, 액션에도 큰 관심이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예전 인터뷰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손예진 : 지금도 마찬가지다. 결국엔 캐릭터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여자 해적은 앞으로도 못 만날 것 같다. 액션은 만날 수 있는데 여자 해적 캐릭터는 처음 봤고, 이런 소재도 처음 접했다. 시나리오 자체가 정말 재밌었고, 그래서 놓치기 아까웠던 거다.
Q. 액션 준비를 많이 했을 것 같다. 특히 소마 역의 이경영과 1대1로 맞붙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손예진 : 일정상 첫 액션 장면이 여월과 소마가 대치하면서 펼치는 고난도 액션이었다. 현실적으로 힘에서는 여월이 밀리는 게 당연하다. 말도 안 되게 힘이 세고, 적을 물리치는 건 비현실적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공격이 곧 방어고, 방어가 곧 공격으로 이루어지는 식의 날렵하고 빠른 액션의 느낌을 살리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소마는 장칼을 쓰고, 여월은 ‘연검’을 쓰는 거다. 또 서로 다치지 않게 하려다 보니 더 힘들었다. 심지어 첫 촬영 날 내 대역분이 다치셨다. 어려운 신도 아니었는데, 이경영 선배와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눈 주변에 상처를 입었다. 이 때문에 순식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생겼다. 어설프게 힘이 들어가면 다치게 되는데, 아무래도 초보자는 그렇게 된다.
Q. 직접 액션 연기를 해보니 할 만하던가.
손예진 : 할 만하지 않았다. 하하. 겨울에 고생하니까. 일단 서울보다 춥고, 짐벌(Gimbal, 물에 떠 있는 구조물의 동요와 관계없이 기기나 장비가 수평 및 수직으로 놓일 수 있도록 하는 장치) 위에 배가 있는 거니까 상당히 높은 곳이다. 거기에 강풍기에서 계속 바람은 불어오고. 살을 에는 추위를 느끼면서 있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액션을 하니까 근육은 너무 아팠다. 3분의 2 정도 찍을 때까지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액션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중간중간 잘 되면 시리즈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감독님이 ‘예진 씨는 어차피 안 하실 거죠’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끝날 때쯤 되니까 액션에 묘미가 있더라. 또 어려웠던 동작이나 어설펐던 게 쉬워지고 멋있어지니까 욕심도 나는 거다. 그러면서 ‘할 만한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Q. ‘타워’ 때 “CG 등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는 말을 했다. 이번에도 ‘타워’ 못지않게 CG가 가득한 영화다.
손예진 : 확실히 도움됐다. ‘타워’ 때는 모든 게 생경했다. 그리고 땅에서 했으면 와 닿지 않았을 텐데 이번엔 다행히 배 위에서 했으니까. 실제 짐벌로 움직이니까 정말 배 같았고, 강풍이 부니까 바다 같았다. 그런 부분에서는 확실히 ‘타워’보다 더 수월했던 부분이다.
Q. 그리고 ‘타워’ 때 “목숨 걸고 했다”는 말을 했는데, 그보다 액션 강도는 더 강하다. 이번엔 그런 순간이 없었나.
손예진 : 더 힘들었다. 그땐 끝나고 술이라도 한잔 할 수 있는 여유라도 있었다. 그런데 ‘해적’은 아픈 근육을 가라앉히기에 바빴다. 산적 팀들은 많이 모였는데, 해적 팀은 거의 못 모였다. 몸을 풀지 않으면 다음날 찍을 수 없으니까. 당시 머물던 숙소에 욕조가 없었는데, 큰 ‘고무 다라이’를 준비해놓고 거기 앉아서 몸을 녹였다. 추워서 몸이 항상 얼어 있었다. 그게 고생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지금 같은 더운 여름에 찍는 사람들도 정말 죽을 거다. 물론 내 기억에 여름과 겨울은 다르다. 그해 여름이 아무리 더웠어도 촬영이 없으면 시원하고, 예년보다 시원하다고 해도 촬영하면 더 혹독한 여름이다. 하하.
Q. 예쁘게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하던데.
손예진 : 당연하다. 여배우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쓰인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얼굴이 얼어 있고, 아침에 붓기가 있어도 신경 쓰지 않고 다 찍었다. 보통 아침에는 타이트한 클로즈업을 찍지 않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하하. 한편으론 그런 걸 내려놓으니까 편안하기도 했는데 실은 걱정했다. 너무 이상하게 나오면 어쩌지 싶었는데 후반 작업으로 많이 만져주셨더라.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하.
Q. 김남길과는 드라마 ‘상어’에 이어 곧바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손예진 : 사실 ‘상어’ 전에 ‘해적’을 먼저 봤다. 그때도 남자 주인공이 남길 오빠였는데, 사실 당시만 해도 감독님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고, 영화화가 될지도 의문이었다. 그러고 있었는데 ‘상어’에서 남길 오빠를 만난 거다. 그러다가 ‘상어’가 중반쯤 됐을 때부터 박차를 가하면서 투자도 되고, 이석훈 감독님도 들어오셨다. 그렇게 되면서 좀 의문이 들었다. ‘상어’의 느낌도 있고, 우리가 또 같이 하는 게 재미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제작 투자 쪽에서 상관없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작품이다. 그리고 시나리오 읽으면서도 ‘이게 영화화된다면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드라마 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바로 들어가는 건 힘들 것 같았는데, 결국엔 욕심을 냈다. 솔직히 민폐일 수 있다. 그림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얼마나 민폐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게 걸리긴 했지만, 한 달의 시간 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Q.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김남길과 호흡은 문제없었겠다.
손예진 : 확실히 유리했던 게 초반에 서로 붙는 신이 별로 없다. 그러다 후반부에 붙게 되는데 촬영은 후반부 내용을 먼저 찍었다. 처음 호흡 맞추는 배우와 후반부를 먼저 찍었다면 재미가 덜했을 것 같다. 시나리오에는 ‘빵빵’ 터지는 게 많았다. 그걸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잘 살았던 것 같다. 한번 했기 때문에 일부러 뭔가를 하지 않아도 웃길 수 있었다.
Q. 웃음 때문에 NG는 없었나.
손예진 : 그런 건 뜻밖에 없었다. 평소에 워낙 웃기기 때문에.
Q. 영화 속에 여배우가 거의 없어서 설리 입장에선 손예진이란 존재가 굉장히 의지 됐겠다.
손예진 : 항상 붙어 있었다. 귀엽고 순수하고 밝다. 사실 여러 부담이 있었을 거다. 빨리빨리 돌아가는 상황에서 당황스러운 부분이 분명 있었을 거다. 그리고 어리다고 해서 배려해주는 게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잘 따라왔다. 그런 모습들이 예뻤다. 또 은근히 어른스럽고, 그 나이 또래가 가지고 있는 순수함이나 엉뚱 발랄함을 다 가지고 있는 친구다. 얘길 들어봤더니 아역부터 활동해 왔고, 가수가 될지 몰랐다더라. 길게 이야기는 못 하고 잠깐 이야기를 나는 건데 어릴 때부터 숙소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무서워지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더라. 되게 마음이 짠했다. 그랬는데 마음이 너무 안 좋다. (인터뷰 당일 설리는 활동 중지를 선언했다.)
Q. ‘해적’은 손예진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다. 관객들이 그런 손예진을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나.
손예진 :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선이 있거나 끌고 가는 인물이 아니다. 해적, 산적, 소마, 관군들까지 각자의 역할이 있다. 또 다들 유머러스한 코믹 요소가 많은데 반면, 나는 정의로운 무게중심을 잡고 있어야 하는 입장이다. 그 점에서 내 역할을 다 했다고 봐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 영화는 재밌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또 개인적으로 액션을 했는데 멋지게 보이고 싶은 건 당연하다. 멋지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Q. 이번엔 바다로 간 산적인데, 다음에 산으로 간 해적을 찍는다면.
손예진 : 날씨만 받쳐준다면. 하하.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보물섬 지도를 보는데, ‘보물섬 찾아서 떠나나’ 이런 생각을 하긴 했다. 뭘 해도 웃길 것 같다. 나중에 철봉이 대장이 될 수도 있고.
Q. 스스로 ‘꾸준히 안타를 치는 배우’라면서 흥행적으로 봤을 때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작품이 거의 없다고 자랑했다. 이번엔 경쟁이 정말 치열하지 않나. 이번엔 어떨 것 같은가.
손예진 : 내가 그렇게 자랑했나. 알아서 써준 거 아니었나. 하하. 이번에는 당연히 대작이니까 손익분기점을 넘어야 하는데 뭐가 많아서…. 우리는 완전 차별이다. 다른 영화는 못 봤지만, 일단 웃음 하나는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 그게 우리 영화인 것 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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