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님께 가장 먼저 묻고 싶은 게 영화 제목이다. 왜 ‘좋은 친구들’인가.
영화 ‘좋은 친구들’의 현태, 인철, 민수는 어릴 적부터 함께 해 온 친구들이다. 가족보다 더 끈끈하게 맺어진 우정이다. 평생 변치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탄탄했던, 아니 어쩌면 탄탄하지 못했기에 우정은 쉽사리 무너진다. 굳은 땅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래 위에 공든 탑을 쌓았던 셈이다. 우정의 균열은 오래전부터 시작됐고, 의심의 순간 우정은 산산이 부서진다.
사실 그리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않은 이야기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고, 의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결국엔 파경을 맞는 등 그간 숱하게 봐왔던 흐름, 딱 그 정도다. 하지만 이 흔하디흔한 소재를 ‘어떻게’ 사용하고, 풀어 가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이도윤 감독이 자리한다. 장편 연출 데뷔작임에도 노련한 솜씨로 ‘좋은 친구들’을 운전했다. 다소 인위적인 흐름마저도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할 정도다. 흥행을 떠나 충무로는 또 한 명의 유능한 감독을 얻었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도윤 감독 : 질문의 의미다. 누구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과연 나는 누구와의 관계에서 ‘좋은’ 사람인가를 생각했으면 했다. 걸작 영화와 제목이 같기도 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대안이 없었다.
Q. 제목 변경에 대해 고민을 하긴 했나 보다.
이도윤 감독 : 딱히 후보가 없을 정도로 대안이 없었다. 시나리오일 때는 몇몇 의견이 나왔는데 만들어지고 나선 이게 맞지 않나 싶다. 뭘 쓸지 구상한 다음, ‘좋은 친구들’이란 제목을 먼저 쓰고,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Q. 그럼 감독님이 생각하는 ‘좋은’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도윤 감독 : 영화에선 역설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그때 우선시 돼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 질문을 하고 싶었다. 영화 속 세 친구도 각각 큰 선택을 하는데, 그 기준이 되게 단순하다. 그리고 나서도 아전인수 격의 논리와 온갖 핑계를 만든다. 만약 선택할 때 한 번의 사유가 있었다면, 결말은 다르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할까’ 질문을 던지는 구조인 셈이다. 단순하게 좋지 못한 친구들 이야기인데, 한발 더 나아가 나는 혹은 내 친구들은 어떠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내 이익에 따르는 선택을 할 때도 한 번쯤 그 선택에 대해 사유를 하면 어떨까 싶다. 내가 그런 후회가 많은 사람이라, 그런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아서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Q. 두 번째로 묻고 싶은 질문이 이 같은 이야기를 영화화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무슨 이유에선지 궁금하다. 영화 보도자료에는 중국 설화집 태평광기 161권 의기 중 ‘파경’을 바탕으로 했다고 돼 있던데.
이도윤 감독 : 파경을 맞는다는 말 많이 하지 않나. 그 파경인데 실제 중국 고사다. 그 주제와 이야기를 친구들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인철은 우정을 그대로 지켜왔던 친구다. 현태는 처음 거울을 나눠 가질 때 의심이 생기면서 거울 한쪽이 떨어져 나갔고, 그걸 감추려고 가장 평범하게 사는 인물이다. 사실 살면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그 거울을 맞춰볼 일은 별로 없지 않나. 그리고 민수란 친구를 두 사람이 가진 거울의 틀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틀이 사라지면서 단면을 맞춰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다. 그런 경우가 인간 사회에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주제를 가지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친구 이야기를 한 거고, 다음에는 연인으로, 슈퍼히어로로도 할 수 있다.
Q. 극 중 설정만 놓고 보면, 다소 인위적인 부분도 있다. 물론 이야기의 흡인력이 좋아서 인위적인 부분이 거슬리진 않는다. 이야기 흐름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이도윤 감독 : 리얼리티라고 해야 하나. 방금 말한 것처럼 조금은 무리가 있지만, 거슬리지 않았던 것은 자기 자신을 대입해서 그런 게 아닐까. 큰 거짓말을 하려면 디테일을 잘 만들어야 한다. 저런 인간이면 저런 선택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거다. 큰 거짓말을 이해시키기 위해 자잘 자잘한 리얼리티를 잡으려고 했다. 시나리오 작업하면서도 디테일을 많이 써놓은 시나리오다. 반면 친구의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땐 ‘인철 무너진다.’ 한 줄이다. 대신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전화기를 꺼내 몇 번 버튼을 누른다고까지 있을 정도다. 돈 들이고 공들이는 장면은 슬쩍 보여줘야 오히려 더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제작자나 피디님께 좀 미안하다. 돈을 많이 들였는데 안 들어 보여서.
Q. 세 배우의 캐스팅도 정말 궁금하다. 지성 주지훈 이광수 등 세 캐릭터의 조화가 돋보이는데 사실 나이 차이도 크고, 외형적인 것도 다른데 이들을 ‘친구들’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도윤 감독 : 그런 차이점, 다름이 좋았다. 나이도 그렇고. 성향은 이렇게 묶일 수가 없을 정도로 정말 다르다. 지훈은 처음 만난 날 엄청나게 술을 마셨는데 딱 내가 생각하는 인철이었다. 자연스럽게 선택했다. 광수도 솔직히 처음엔 ‘런닝맨’ 이광수를 기대했다. 그런데 너무 조용했고, 무엇보다 시나리오를 여러 번 읽고 왔는지 질문이 많았다. 배우로서 이 역할에 욕심이 엄청나다는 걸 봤다. 더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있겠지만, 이만큼 욕심을 가진 배우는 없을 거로 생각했다. 지성 형을 마지막에 만났는데 깐깐하더라. 현태는 내 내면에서 파생된 인물이긴 하지만, 나한테는 거슬리는 인물이다. 현태의 자세나 행동이 가식 같고, 어렵다. 그런데 지성 형은 자연스러운 거다. 여러 배우를 만났는데 이렇게 맞는 배우를 데려와서 담을 수 있었다는 게 엄청난 행운이다. 지훈은 첫 회부터 꼭 맞았고, 광수는 지훈이한테 붙어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지성 형은 조금 늦게 오긴 했는데 가장 크게 왔다. 어려운 인물이었는데 형의 사는 모습대로만 해주면 된다고 요구했다. 내가 보기엔 지성 형은 배우로서든 인간으로서든 뭔가 벽이 깨진 것 같은 느낌이다. 지훈과 광수는 본래 있던 길을 찾아갔고. 이전의 지성과 이후의 지성이 얼마나 다를지 다음 작품이 보고 싶다.
Q. 사실 무엇보다 극 중 인물과 배우의 이미지가 그다지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이도윤 감독 : 나 역시도 만나기 전에는 그 배우들의 전작을 통해서 접하기 된다. 절대 과신하는 건 아닌데 나름 방향 정도는 아는 것 같다. 그리고 몇 번 만나면 명확해지는 지점이 있지 않나. 그래서 세 배우에 맞춰 시나리오를 조금씩 바꾼 부분도 있다. 글에 사람을 맞추는 건 어렵지만, 글을 사람에게 맞게 조금만 바꿔주면 훨씬 자연스럽게 된다. 그렇다고 사건이 바뀌고 그런 게 아니라 무리하게 반대 지점을 시키는 것보다 편하게 만들어주는 거다.
Q. 배우들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이도윤 감독 : 배우를 만나고 촬영까지 기간이 길지 않았다. 거의 매일 만나서 이야기했는데도 깨뜨리고 싶은 게 많아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로 보냈다. 지성 형한테만 질문을 막 던졌다. 무책임한 거지만, 물어보는 게 효과가 있겠더라. 광수, 지훈이는 허심탄회하게 너희 안에 있는 것만 보여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할 테니 따라와라, 이런 의미였다. 연출자로서 결정적 한 방이다. 모든 정수를 심어주는 역할을 한 편지다.
Q. 세 친구의 직업적인 선택도 중요했을 것 같다. 인물의 성향에 맞게 일부러 맞춘 것 같기도 하고.
이도윤 감독 : 그 선택들은 전형적이다. 그래도 될 것 같았던 게 리얼리티를 살린다면 그런 전형성도 타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현태는 당연하게 정의로운 직업을 선택하는 인물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자신이 지켜주는 사람의 이익을 위해 보험회사의 돈을 가져온다 해도 그건 반하는 일이 아니지 않나. 그런 직업군이 인철과 어울렸다. 민수는 세탁소를 운영한다는 거였는데, 친구들 비호 아래 있기엔 굉장히 멀쩡한 직업이다. 그래서 그 공간을 물려받긴 했는데, 자꾸 실패하는 거다. 그래서 친구들 덕에 먹고 사는, 그런 식으로 설정했다.
Q. 세 배우에게 각각 지시한 지점도 다를 것 같다. 친한 친구지만, 성격은 전혀 다른 인물들이다. 이 조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을 거고, 배우들에게 각각 강조한 지점이 조금은 달랐을 것 같다.
이도윤 감독 : 사전에 주입했던 게 기억은 안 나는데 프리프러덕션을 6개월 정도 했는데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질문지를 만들었다. 그거 때문에 집을 못 갔다. 물론 그 전에 각자의 것을 다 찾아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지금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게 아무도 영화 연출 이야기를 안 해서 좋다. 배우만 들었으면 좋겠다. 비슷한 쪽으로 가고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Q. 처음과 마지막이 상당히 영리하다. 결말을 전하는 순간,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거 때문에 진한 여운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게 구상했던 의도는 무엇인가.
이도윤 감독 : 현태를 주인공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한 구조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같은 상황에 있다고 생각했다. 의외로 수미쌍관 구성이 많다. 초반 사고 현장을 지나가는 현태의 모습이 마지막에 다시 등장한다. 민수도 머리를 다쳐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데, 과거 산에서 다쳤을 때와 똑같은 위치다. 빼긴 했지만, 현태도 여자를 쫓을 때 다리를 다친다는 설정이었다. 이 모든 게 이미 17년 전에 결말이 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17년 전 꿈을 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눈밭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 절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Q. 17년 전 당시 잃어버린 워크맨 주인은 민수다. 그때 현태는 순간 인철을 의심했다. 그렇다면 정작 워크맨의 주인인 민수는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건가.
이도윤 감독 : 민수는 죽었다 살아난 친구다. 친구들에게 너무나 큰 걸 받았다. 그때부터 민수의 운명은 정해진 거다. 돌봄을 받지 않으면 못 사는. 그래서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인철이 무조건 잘해주는 것 같지만, 분명 조금씩 얻어가는 게 있었을 거다. 보험도 가입했을 거고.
Q. 세 친구 중 유일하게 현태만이 친구를 100% 신뢰하지 못한다. 그런데 인철과 민수는 현태가 자신들을 100% 신뢰하지 않는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도윤 감독 : 그 거리감을 절대 모를 수 없다. 인철은 돈도 돈이지만, 현태와 어머니를 화해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있다.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무리를 할 수 있었던 거다. 또 현태한테 말했을 때 100% 반대할 거란 사실을 친구로서 아는 거다. 그게 친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아주 미묘한 불편함도 있다는 거다. 인철과 민수, 인철과 현태 등 대화 구도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둔 거다. 그 불편함을 느낀다면 연출한 나로선 고마운 일이다.
Q. 보험 조사관이 중간중간 등장하는데, 그 모습이 현태의 또 다른 자아처럼 느껴졌다. 보험 조사관이 민수, 인철에게 가서 사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마치 현태가 물어보고 싶은 것을 대신 물어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조사관도 인철을 의심하는데 결국 현태도 마찬가지다. 또 현태에게는 계속 친구를 의심하라고 부추기지 않나.
이도윤 감독 : 현태의 의지가 인물로서 나타난 거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걸 알아가는 과정을 현태가 할 수 없다. 알아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었을 거고. 그게 현태의 행동화된 상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보험 조사관도 지옥에 빠지는 거다. 민수의 죽음을 두고 ‘자기 때문에 죽은 걸 알면서도 나 때문에 죽은 게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영화에서 잘되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 각자의 지옥에서 허우적대는 거다. 그게 세상사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어떻게 휩쓸리느냐에 따라 엄청난 지옥을 맛볼 수 있다.
Q. 결말이 비극적인 게 친구를 의심했던 현태만 살아남은 상황이다. 이후 현태는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다.
이도윤 감독 : 내 생각은 비관적이다. 여전히 17년 전과 같은 마음으로, 평생 아무한테도 마음을 못 열 것 같다. 지금은 그 장면이 없지만, 딸이 아빠를 겁내는 장면이 있다. 아내도 그렇고. 기운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 거다. 그래서 딸이 사소한 행동을 하는데도 아빠 눈치를 보게 된다. 얼마 전까지 나도 (현태 같은) 그런 상태였다. 받은 상처 때문에 완벽하게 주지 못했다. 그걸 극복하고 싶어서 찍은 영화이기도 하다. 이 정도로 크게 다치면 극복하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실존 인물이 아닌데도 미안하다.
Q. 인철의 죽음은 현태가 의도한 건가. 의외로 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더라. 정확한 의도는 무엇이었나.
이도윤 감독 : 나는 답을 그렇게 여기고 찍었는데 그 해석은 스태프와 배우들 간에도 다 다르더라. 명확히 썼는데 안 믿겠다고 선언한 사람도 있었다. 굳이 말릴 필요는 없다. 같이 작업한 사람조차 해석을 달리하고자 한다. 많이 열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현태에게 연민이 있는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Q. 남자가 ‘좋은 친구들’을 본다면 아주 만족스러워 할 것 같다. 그런데 여자들이 봤을 때는 물음표다. 여성들의 반응이 더 궁금하지 않을까 싶은데. 여성 관객들의 관람 포인트를 짚어준다면.
이도윤 감독 : 공감한다. ‘좋은 친구들’ PD가 여자 분인데, 이런 경우가 있었다. 남자들이 봤을 땐 당연한 장면인데 PD님은 이상하다는 거다. 그런데 그것까지 이해시키려는 생각은 없었다. 여하튼 포인트를 짚는다면 그건 연민인 것 같다. 성별을 떠나 극 중 인물 중 누군가에겐 마음이 갈 거다. 그런 인물이 생긴다면, 거기서 오는 연민을 곱씹어 보고,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또 30대 중반의 섹시한 남자들을 보는 것도 있을 거다. 무게 잡고, 멋있게 안 나오는 게 오히려 섹시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잘 생기고 멋진 사람이지만, 내 주변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고. 그런 섹시함을 캐치할 수 있다면 나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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