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트러블메이커’였던 박재범은 이제 어엿한 자신의 레이블을 이끄는 사업가로, 또 자신의 곡을 직접 만들어 노래하는 뮤지션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제 박재범은 제이 팍(Jay Park)이라는 이름으로 빈지노, 크러쉬 등 힙합 계열의 뮤지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고, 자신의 회사 AOMG에서는 그레이, 로꼬와 같은 힙합 뮤지션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제 박재범은 아이돌그룹의 리더보다 자신의 크루를 이끌고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해나가는 모습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박재범을 통해 아이돌 팬들이 힙합 쪽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박재범의 이런 모습이 아이돌그룹 후배들에게 선구자적인 모습이 될는지는 아직 점치기 어렵겠지만, 그는 분명히 잘 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5대 비보이 페스티벌 중 하나로 꼽히는 ‘R16 코리아 2014 세계 비보이 대회’에 홍보대사로 참가한 박재범을 올림픽홀 현장에서 만났다.

Q. 음악만 나오면 몸을 가만두지 못하는 것 같다. 다섯 살 때부터 춤을 췄다고 하던데, 비보잉에는 어떻게 빠지게 됐나?
박재범: 어렸을 때부터 TV에서 춤이 나오면 따라 췄다. 비보잉은 고등학교 때 정식으로 시작했다. 고등학교의 힙합 클럽, 우리나라로 치면 동아리 같은 곳에서 비보잉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춤에 빠져 지냈다. 주변의 비보이들과 친해지면서 연습실을 찾아다녔고, YMCA 같은 곳에서도 연습했다. 그때는 정말 춤에 미쳐 있을 때였다. 정말 머릿속에 비보잉 생각뿐이었다. 항상 새로운 영상을 찾아보고, 학교 땡땡이 치고 춤추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Q. ‘R16’에 참여해 비보잉을 하는 영상을 봤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박재범: 데뷔 전부터 ‘R16’을 굉장히 관심 있게 봤다. 2007년 1회가 열렸을 때 나는 연습생 시절이었는데 그 때부터 이 대회를 챙겨 봐왔다. 세계 최고의 비보이들이 모이는 축제니까. 요새는 바빠서 예전처럼 매일 비보잉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때만 해도 열정이 대단했었다. 이후 내가 가수로 데뷔하고 난 뒤 비보이였던 사실이 알려져 주최 측에서 홍보대사로 불러주였다. 난 정말 좋았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존경했던 비보이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 말이다.

Q. ‘R16’에 선수로도 참여했다.
박재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영상으로 봤던 형들, ‘비보이 더키’와 같은 형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R16’에 나갔다. 어렸을 때 우상이었던 비보이들과 친해지고 함께 어울린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다. 형들이랑 함께 안무도 짜고 열심히 연습해서 한국 4강까지 올라갔다.



Q. 정말 좋았겠다.
박재범: 그렇다. 난 사실 비보잉을 좋아할 뿐이지 직업적인 비보이는 아니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R16’과 같은 대회에 함께 하고 싶다. 아직까지 비보잉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기 때문에 요새도 틈이 나면 비보잉을 한다. 내가 춤에 미쳐 지냈을 때 느꼈던 감흥을 잊지 못하니까. 이번 대회에서는 겜블러크루가 가장 기대된다. 겜블러크루는 10년 이상 세계 최고 수준의 비보잉을 선보여 왔다. 한동안 조용했는데 최근에 강하게 컴백해 기대가 크다. 심사위원 중에는 독일에서 온 전설의 비보이 스톰을 존경한다. 이제 나이가 많음에도 정말 모든 장르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리고 이미 전설이 됐음에도 거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후배들을 존중하는 모습이 멋지다.

Q. 비보잉을 하면서 애를 먹었던 동작은?
박재범: 처음 시작했을 때는 ‘프리즈’와 ‘에어체어’를 하는데 힘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비보잉을 시작할 때 파워무브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 프리즈와 같은 풋 워크 위주로 연습을 해서 지금은 파워무브를 잘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무대에서는 파워무브와 같은 동작이 잘 먹힌다.(웃음)

Q. 비보잉를 하다가 2PM과 같은 군무를 익힐 때에는 어색하지 않던가?
박재범: 다 같은 춤이니까 어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비보잉을 떠나 춤 자체에 관심이 많다. 난 댄서니까. 2PM 안무를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Q. 최근 댄싱9에 마스터로 출연 중이다. 자신이 열심히 춤을 추다가, 남의 춤을 심사하는 것은 기분이 다를 것 같다.
박재범: 처음에 좀 어색했다. 사실 내가 춤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는 그냥 친구들끼리 좋아서 열심히 춘 거다. 연습생 때 잠깐 트레이닝을 받기는 했지만, 기초부터 제대로 배운 것은 아니다. 내 춤은 느낌 위주다. ‘댄싱9’에는 현대무용, 발레도 있어서 내가 감히 어떻게 심사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Q. ‘댄싱9’에서 춤추는 영상이 있더라. 스트릿 댄스 같은 자유로운 느낌이 좋더라.
박재범: 쉬는 시간에 재미로 춤춘 거다. 대기시간이 정말 길다. 그래서 마스터들끼리 심심하니 춤이나 춰보자 해서 막간에 춘 거다. 난 녹화하는 줄도 몰라서 막 장난도 쳤는데 그게 편집이 되서 나갔더라. 그래도 멋지게 편집해 주셨다.(웃음)

Q. 최근에는 예전만큼 춤을 많이 추지 못한다고 하던데?
박재범: 아무래도 내 회사를 차리게 돼 바빠졌다. 다른 가수들은 작곡가들에게 곡도 받고, 회사에서 콘셉트를 정해주고 하는데, 지금의 나는 1부터 10까지 내가 다 정한다. 곡도 쓰고, 뮤직비디오 콘셉트 잡고, 안무 짜고, 앨범재킷도 관여하고 너무 바쁘다. 그래도 시간이 날 때는 비보잉을 한다. 재밌으니까.



Q. 작년 10월 본인이 직접 힙합레이블 AOMG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운영을 해보니 어떤가?
박재범: 내 음악은 어차피 내가 만드는데 뭐 하러 다른 회사 들어가서 이런저런 제약을 받나?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음악 즐겁게 하고,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기회를 주자고 시작을 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크루를 이뤄 가족처럼 했으면 좋겠다고 시작을 했는데, 정말 그게 현실화됐다. 지금으로선 내가 계획했던 것 이상의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우리 회사에 있는 그레이, 로꼬가 이렇게 단기간에 잘 될지 예상 못했다.

Q. 본인의 레이블은 왜 만들었나?
박재범: 싸이더스와 계약이 끝나면서 한참 고민을 했다. 처음에는 세 군데 정도 회사를 생각했다. 나를 받아 줄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한 곳은 YG엔터테인먼트, 아메바컬쳐, 그리고 일리네어 레코즈였다. 처음에 일리네어 분들에게 살짝 말을 꺼내봤더니 “너 정도의 스케일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 회사를 차린 거다. 나도 일리네어처럼 회사 개념보다는 크루에 가까운 곳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대표이지만 소속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존중하고 함께 가족같이 지낼 수 있는 곳 말이다. 작년 3월부터 계획을 세우고 이런저런 서류 작업을 마친 뒤 10월에 론칭 파티를 열고 바로 그레이의 앨범 ‘콜 미 그레이(Call Me Gray)’를 냈다.

Q. 요새 그레이가 인기가 상당하다. 빈지노의 뒤를 이어 차기 힙합 스타의 물망에 오르고 있다.
박재범: 나도 놀랄 정도다. 그레이는 작곡 위주로 활동해왔고, 이제 앨범을 한 장 냈는데 인기가 장난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섭외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Q. AOMG 소속 뮤지션들은 어떻게 모였나?
박재범: 크러쉬의 소개로 그레이를 알게 됐다. 그레이 형 음악이 정말 좋고 얼굴도 잘 생겼는데 소속사가 없어서, ‘왜 회사가 없지? 같이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레이를 AOMG의 첫 아티스트로 계획했다. 그리고 나와 어렸을 때부터 비보잉을 함께 한 친구 차차, 태양의 ‘아이 니드 어 걸(I Need A Girl)’ 내 노래 ‘별’ 등을 만든 전군 형, 이렇게 모여서 시작을 했다. 그 다음에 그레이 형의 소개로 비비드(VV:D) 크루의 로꼬, 엘로가 들어왔다. 다 같은 크루이고 친구다. 다 실력도 좋고 친하면 함께 음악을 하기도 좋으니까 다 데리고 왔다. 멤버들이 들어온 후 내 투어에 데리고 다녔다. 얼굴도 알리고 무대 경험들을 쌓아야 하니까. 투어에 DJ가 필요해서 DJ 펌킨 형과 같이 했는데 너무 잘 맞아서 크루로 함께 하게 됐다. 쌈디 형은 전 소속사와 계약이 끝나고 고민 중이었는데 내가 제안했다. 형이 고민을 좀 하더니, 우리 분위기를 좋아해서 바로 오케이 했다.



Q. 가수로 활동하다가 직접 대표를 하려면 힘들지 않나?
박재범: 그렇지 않다. 우리 아티스트들은 다 알아서 자기 음악을 만드니까. 내가 특별히 간섭하는 것이 없다. 다들 실력이 좋아서 알아서 하고, 나는 그것을 포장만 해주면 된다. 소위 말해 나는 제작을 하는 것이다. 그레이, 로꼬 같은 경우 나보다는 무대 경험이 덜하니까 그런 면에서 조언을 해주기는 한다. 그 외에 내가 화보, 재킷사진을 많이 찍어봤으니까 포즈 취하는데 조언해주는 정도다.

Q.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힙합으로 넘어온 느낌이다.
박재범: 사실 난 원래 힙합을 추구했다. 어렸을 때부터 힙합만 들었다. 힙합을 보고, 듣고 자란 것이다. 아이돌그룹을 한 것은 나에게는 안 어울리는 옷을 입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내게 주어진 기회였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최근에 날 알게 된 사람들은 내가 예전에 아이돌그룹 한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같은 사람 같지 않다고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이 자연스럽고 보기 좋다고 말해줘 행복하다.

Q. 최근 박재범을 통해 아이돌 팬들이 힙합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더라.
박재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다. 음악이 계속 똑같은 것만 나오면 재미없다. 다 같은 작곡가에게 곡을 받고, 비슷한 콘셉트를 반복하면 밋밋해진다. 그래서 자기만의 색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오고, 많은 팬들이 그들에게 열광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자이언티, 크러쉬, 로꼬, 그레이 같은 뮤지션들에게 말이다.

Q. 새 앨범은 언제 만나볼 수 있나?
박재범: 원래는 7월에 새 앨범을 내려고 했는데 미뤄졌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나올 것 같다. 요새 새 앨범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최근 미국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고 왔다. 지금 새 앨범 믹싱, 마스터링 중이며 안무를 짜고 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AO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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