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바리고 떠나간 언덕에, 우린 또 이렇게 바려진 떠돌이, 던져진 외톨이, 내쳐진 상처투성, 찢겨진 가슴, 그을린 영혼

한승석 정재일 ‘바리abandoned’ 中

한승석 정재일 ‘바리abandoned’
소리꾼 한승석의 소리와 ‘음악천재’라 불리는 만능재주꾼 정재일의 연주가 만난 이 앨범. 둘은 고수와 창자로써 만나고 있다. 정재일은 북만 들지 않았을 뿐 한승석의 창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긱스 출신의 천재 소년으로 회자됐던 정재일은 2012년 제대 후 동료 가수들의 세션으로 참여하고, 뮤지컬 음악감독, 연극 스코어 앨범 발매 등 실로 왕성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국악은 정재일의 넓디넓은 음악 배경 중 하나. 한승석과는 2008년 국악그룹 ‘푸리’를 통해 만났다. 당시 작품인 ‘자룡 활 쏘다’는 현대음악과 국악의 밀접한 앙상블을 느껴볼 수 있는 곡. 이번 앨범에서는 바리공주 이야기를 소재로 했으며 극작가 배삼식이 가사를 썼다. 그리고 거스를 것이 없는 정재일의 유연함은 한승석의 소리를 한껏 날아오르게 한다. 사실 현대음악과 국악의 조우는 과하다고 할 정도로 잦은 편. 이 앨범을 단순한 현대음악과 국악의 크로스오버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이 앨범의 방점은 단지 국악의 음악적인 진화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사람들과 소통을 유도하는데 찍혀 있기 때문이다. 국악을 잘 알지 못해도 충분히 가슴이 요동칠만한 음악이다.

프로젝트슘 ‘가상의 씨앗 슘’
처음에 이 앨범을 받았을 때는 ‘가상의 씨앗 슘’이라는 제목의 책인 줄 알았다. 헌데 안에 CD가 첨부돼 있더라.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글과 음악으로 풀어낸 이른바 ‘소설음반’이라고. 프로젝트슘은 음반제작자로도 활동했던 김상원의 프로젝트다. 김상원이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글과 음악을 창작하고 여성 신스팝 뮤지션 흐른이 노래를 맡았다. 정유정의 소설 ‘28’에 OST가 첨부되거나, 김연수와 푸른새벽이 단편소설과 노래를 함께 엮은 앨범을 낸 적은 있지만, 프로젝트슘처럼 소설과 음반을 동시에 내놓은 것은 처음. 김상원은 콘셉트앨범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한다. 아직 소설을 전부 읽어보지 못해서 정확한 감상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기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 일단 ‘몸’을 동시에 들으며 읽어보니 글과 음악의 분위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색다른 체험을 시도해보시길. 그래야 ‘식스 센스’가 발달하지 않겠는가. 가뜩이나 스마트폰 때문에 뇌가 작아지는 거 같은데 말이다.

트리오 클로저 ‘Coexistence’
트리오 클로저는 비안(피아노), 이원술(베이스), 한웅원(드럼)이 뭉친 피아노 트리오다. 셋은 현재 국내 재즈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 중인 연주자들로 2010년 12월부터 함께 트리오로 연주를 시작했다. 이들은 단지 임프로비제이션을 주고받는 스타일을 넘어서 세 명이 섬세하게 짜인 앙상블을 들려주고 있다. 흔히 유러피언 스타일, ECM 레이블에서 들어봄직한 피아노 트리오의 사운드라고 할까? 세 명은 거의 균등한 세 개의 꼭지점을 이루고 있다. 멤버들이 각각 3곡씩 자작곡 내지 편곡으로 앨범에 참여해 8곡의 자작곡과 1곡의 편곡(‘Solar’), 2곡의 즉흥곡이 담겼다. 그 어떤 곡에서도 누구 하나 과잉된 연주를 들려주지 않는다. 이는 개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전체의 교감에 보다 집중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킵 인 터치(Keep In Touch)’와 같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어볼 수 있는 것도 이 앨범의 미덕이다.

루시아 ‘Light & Shade - chapter. 1’
루시아(심규선)의 정규 2집의 첫 번째 파트. 루시아에게는 외모와 음색에서 애달픈 이미지가 있다. 그녀가 만든 곡들도 그렇다. 에피톤 프로젝트가 함께 한 1집 ‘자기만의 방’ 시절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들과 크게 구분되는 지점을 찾기 힘들었다. 허나 작년에 나온 ‘꽃그늘’부터 비로소 자신의 색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번 앨범은 ‘꽃그늘’ 때와 또 다른 분위기의 루시아다. ‘데미안’과 같은 곡은 분명 지난 앨범에서 이어지는 루시아의 색. 허나 다른 수록곡들은 제각각의 풍으로 채색돼 루시아의 다양한 음악세계를 들려주고 있다.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자신의 느낌으로 담으려는 의도도 보인다. ‘느와르’와 같은 곡을 들어보면 루시아가 노래 안에 보다 자신의 음색을 담으려는 욕심도 느껴볼 수 있다.

이정아 ‘Undertow’
이정아와 정재일이 만난 앨범. 이정아는 ‘슈퍼스타K3’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슈스케’ 출신이라면 대개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다. 이정아를 처음 본 것은 슈스케3가 열리기 전인 2011년 1월 CJ아지트의 신인뮤지션 지원프로그램 ‘튠업’ 경연에서였다. 이정아는 혼자 기타와 피아노를 번갈아 연주하며 자작곡 ’6월’, ‘핸즈 오브 러브(Hands Of Love)’를 들려줬는데 조그만 체구임에도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무대를 채웠다. 할머니에 대한 회상을 담은 ‘6월’의 진솔한 가사도 좋았다. ‘튠업’ 때 했던 곡들은 정규 1집인 ‘언더토우(Undertow)’에도 담겼다. 2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이정아의 목소리도 조금 변했다. 이제 풋풋함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원영, 정재일, 신연아(빅마마) 박혜리(바드), 양시온, 장민우(블랙백) 등이 참여했는데 특히 정재일이 편곡과 프로듀서를 맡은 것이 눈길을 끈다. 그 덕분인지 앨범에서는 매 곡마다 풍성하게 다듬어진 세션을 들어볼 수 있으며 웅장함이 느껴지는 곡도 더러 있다.

라이프 앤 타임 ‘The Great Deep’
3인조 밴드 라이프 앤 타임의 첫 EP. 칵스의 베이시스트 박선빈과 로로스의 기타리스트 진실, 재즈 드러머 임상욱으로 구성된 라이프 앤 타임은 록의 질감과 퓨전재즈의 리듬 등이 뒤섞인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칵스가 보컬 이현송 등의 군 입대로 휴지기를 맞으며 각 멤버들이 따로 또 같이 활동 중이다. 기타리스트 이수륜, 건반 숀 등의 활동을 보면 이들 멤버들의 연주력, 끼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박선빈이 함께 하는 라이프 앤 타임도 꽤 연주지향적인 면모를 보이는 등 특색 있는 음악을 들려준다. 셋은 고등학교 동창들로 음악 이야기를 나누다가 BBC 다큐 ‘Life’와 ‘Time’을 보고 영감을 받아 새로운 팀을 결성했다고 한다. 이들은 잼을 통해 주요 리프를 만들어 살을 붙이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흥얼거리던 멜로디를 합주를 통해 편곡이 완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넘실대는 그루브와 억지스럽지 않은 멜로디는 칵스, 로로스와는 전혀 다른 음악이다.

모하 ‘모하냥’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모하의 첫 정규앨범. 앨범재킷과 타이틀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이 앨범은 고양이를 위한 콘셉트 앨범이라고 한다. 모하가 직접 키우는 고양이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W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보고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는 만들기도 했는데, 모하의 음악도 그처럼 감성적이다. 음악적으로 모하는 클래식의 고풍스러운 편곡을 드러내기도 한다. 각각의 곡들은 마치 뮤지컬 소품들처럼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서정적인 미감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따스한 음악이 나온 것을 보면 모하가 기르는 고양이들을 말을 참 듣나보다.

호세 제임스 ‘While You Were Sleeping’
재즈와 R&B 마니아인 후배를 통해 호세 제임스를 알게 됐다. 요새 가장 ‘핫’한 소울 싱어송라이터라는 그의 말처럼 호세 제임스는 세련되면서도 알맹이가 있는 음악을 들려줬다. 그리고 블루노트라는 소속사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재즈적인 어법도 갖춘 아티스트더라. 이번 앨범은 흥미롭게도 록적인 질감이 가미돼 있다. 첫 곡 ‘엔젤(Angel)’부터 사이키델릭한 기타 연주가 인상적이다. 이러한 록 기타는 앨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호세 제임스는 전작들에서 기타를 잘 쓰지 않았다. R&B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기타의 리듬커팅 연주를 건반으로 대신하곤 했으니까. 이번 작업에서는 기존 밴드 구성에 기타리스트가 추가해 ‘에브리 리틀 씽(Every Little Thing)’, ‘애니웨어 유 고(Anywhere U Go)’와 같은 강렬한 기타 리프를 만들어냈다. 호세 제임스는 이번 새 앨범에 대해 “이번 앨범에 프랭크 오션, 제임스 블레이크, 주닙에서부터 라디오헤드, 너바나, 매들립 등과 같이 나와 함께 자라온 뛰어난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음악을 한데 담아냈다”고 록과 정분난 이유를 설명했다.

카사비안 ‘48:13’
카사비안이 데뷔앨범 ‘카사비안(Kasabian)’을 발매한지 10주년을 맞았다. 즉, 이들이 브리티시 록의 유행을 살짝 바꿔 놓은 지 10년이 지나다는 말이다. 애시드 하우스 등 전자음악의 어법이 강하게 반영된 카사비안의 데뷔앨범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후 그러한 스타일의 록밴드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마치 샬라탄스의 21세기 버전과 같은 섹시한 멜로디도 카사비안의 매력. 정규 5집인 새 앨범의 타이틀 ‘48:13’은 전체 러닝타임을 뜻한다. 앨범재킷 역시 수록곡 러닝타임으로 심플하게 이루어져 있다. 무엇보다 핑크색이 카사비안과 잘 어울린다. 신보의 음악들은 초기 작품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댄서블하고 경쾌하다. 첫 싱글 ‘이제(Eez-eh)’는 애시드 하우스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곡. 아주 신나고, 죽여주는 곡이다. 이외에 ‘S.P.S’와 같이 낭만적인(다소 오아시스스러운) 곡도 있다. 올해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내한하니 놓치지 마시길.

린킨 파크 ‘The Hunting Party’
린킨 파크가 ‘록’으로 돌아왔다. 언제 록이 아닌 적이 있었나? 아니 이번엔 진짜 록이다. 주지하다시피 린킨 파크는 콘, 림프 비즈킷과 같은 뉴 메탈 밴드들이 인기가 한풀 꺾일 무렵인 2000년 벽두에 혜성과 같이 등장해 뉴 메탈에 일렉트로니카가 가미된 하이브리드 록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이 형들 때문에 밴드에 DJ들이 출몰하기 시작한 것. 허나 6집 ‘더 헌팅 파티(The Hunting Party)’는 다르다. 디제잉의 비중이 현저히 줄고, 강력한 메탈 기타 리프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마이크 시노다는 한 블로그에서 ‘요즘엔 진정한 록이 없고 다 후지다. 그래서 진짜 참담하다’라는 글을 읽고 느낀 바 있어 유행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들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래서 ‘15세의 자신들이 듣고 싶을 만한 음악, 15세의 자신들에게 영감을 줄만한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고. 그것이 바로 이 앨범의 헤비한 록 사운드인 것이다. 블로그 질이 이처럼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번 앨범은 오랜 협력자인 프로듀서 릭 루빈과 결별하고 밴드가 직접 프로듀싱을 한 첫 앨범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옳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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