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처럼 웃는 이 남자, 미소 속에 진지한 마음을 감추는 유민규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는 몰랐다. 벌떡 그가 일어선 순간 감탄이 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중학교 때부터 1년에 10cm씩 자라버렸다는 키는 어느 새 180cm를 훌쩍 넘어버렸고, 그렇게 큰 키가 인생에서 찾아온 첫 시련에서 그를 꺼내어주었다. 국악을 하다 슬럼프를 겪게 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열아홉에서 스무 살이 되어버린 배우 유민규는 ‘키’와 ‘비율’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누나의 권유 끝에 모델이 되었고, 지금은 배우로 살아간다. 2012년 tvN ‘닥치고 꽃미남 밴드’로 데뷔한 그는 지난 2년간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와 ‘주군의 태양’등 트렌디한 미니시리즈를 통해 얼굴을 비추었고, 지난 20일 종영한 MBC 일일극 ‘빛나는 로맨스’로는 8개월이라는 긴 호흡 속에 캐릭터 강기준의 성장을 연기할 수 있는 경험을 얻기도 했다. 어찌보면 참으로 운이 좋은 인생이다.
그렇지만, 약간의 웃음기를 섞어 툭툭 내뱉는 말투에 속지마라. 그는 지극히 A형스러워 자신의 속내를 기분 좋은 미소 속에 감춰두지만 알고보면 꽤나 집념이 대단하다.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낯설어할 뿐. 그러니 그의 속내를 알고 싶다면, 그 운 좋은 인생을 만들어낸 분투의 흔적을 알려한다면, 직구를 던져 대답을 들으려하기보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행간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렇게 포착한 진심을 알아줄 때, 그의 미소는 조금 달라진다.
숱한 시련이 그를 자라게 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법도 배운 듯 하다.
Q. 어, 민규라는 이름, 굉장히 평범하지 않나.유민규 : 그렇긴 하지만 배우 중에는 많지 않다. 김민규라는 배우분이 계시긴 하지만, 외에는 별로 없다. 그러니 굳이 바꿀 필요를 못느꼈다.
Q. 학교 다닐 때는 많은 민규를 만났을 것도 같은데.
유민규 : 글쎄, 아! 중학교 1학년 때인가, 반에 김민규라는 덩치 크고 키도 큰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굉장히 키가 작았다. 그래서 ‘큰 민규’와 ‘작은 민규’로 나뉘어 불렸었지. 지금은 아마도 입장이 바뀌었을 것이다.
Q. 으, 상상이 안간다. 그럼 대체 키는 언제 그렇게 컸나.
유민규 : 중2 여름방학이 지나고 1년에 10cm씩 자라더라. 그렇게 4년을 자라고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땐 내가 제일 컸다.
Q. 모델일을 시작한 것은 그럼 언제쯤?
유민규 : 스무 살이 되었는데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는 나를 보고 큰 누나가 권유했다. 권유가 아니라, 사실 몸만 가면 되게끔 서울컬렉션에 신청까지 다 해놓은 상태였지. 오디션을 보러갔는데 막상 반응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Q. 스무 살 무렵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었을까.
유민규 : 국악을 하다가, 그걸 안 하게 되니까 그때부터 잉여처럼 살았던 거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방과후 활동으로 시작했는데, 흥이 나니까 재미가 있었고 평생 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런 국악을 하지 못하게 되니 폐인처럼 살았다. 내가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하리란 것을 알게 된 거지. 지금 다시 생각해보아도 후회되는 시간이다. 그냥 버린 시간이 돼버렸으니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내 인생의 암흑기. 당시 재수해서 대학가길 원하시는 아버지와도 많이 싸웠다. 사실 아버지는 모델 일도 반대가 심하셨다. 막내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다보니 대학가서 제대로 된 절차를 밟기를 원하셨다.
일어서면 아우라는 완전히 달라진다. 모델이라는 종족들의 반전
Q. 아버지의 반대가 극심했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큰 키와 좋은 비율은 부모님이 물려준 거다. 유민규 :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정말 그러네. 참, 그러고보면 어렸을 적 키가 너무 작아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셨다. 아침마다 관절 마사지로 날 깨워주셨다. 그런데 나중에는 너무 키가 크니까 ‘그만 커!’라고 하셨다. 으, 이 자리에서 고백해야겠다.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하하.
Q. 모델에서 또 배우가 되었다. 요즘은 모델 출신 배우들이 참 많다. 그들 중 유민규만의 색깔은.
유민규 : 글쎄, 색깔이라기보다 연기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것은 긍정적인 마인드인 것 같다. 일이 없어도 초조해하는 성격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한 시간이면 풀린다. 딱 한 번 모델일 하다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도망간 적이 있었다. 영국으로.
Q. 스스로 강점이 긍정이라 말하는 당신이 도망갈 정도라면 사소한 일은 아니었을텐데.
유민규 :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 스트레스 받을 일이었다. 한국에 그대로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무작정 와버렸다. 당시 매니저한테 욕 엄청 먹었다. 쇼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도망가버린 거였으니, 욕 먹고도 충분하지. 그러다 입생로랑 쇼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매니저가 ‘이번에도 안 들어오면 다시는 얼굴 볼 생각말아라’라고 해서 바로 귀국했다.
Q. 그렇게 도망간 영국은 어땠나.
유민규 : 원래는 프랑스도 가려고 했지만, 런던이 너무 좋고 잘 맞아 런던에만 있었다. 그저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만 봐도 좋더라. 정말 말 그대로 쉬다 왔다. 사람들 돌아다니고 이런 모습, 평온한 모습 너무 좋았다. 정말 가서 쉬다 왔다.
Q. 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일종의 슬럼프?
유민규 : 슬럼프라기보다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여러가지로. 그래서 현실도피를 한 거지. 하지만 가서는 아무 것도 생각않고 문제없는 사람처럼 놀다왔다. 즐거웠던 쉼표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서 있을 땐 눈빛마저 달라지고 만다
Q. 다시 돌아온 한국, 그리고 다시 서게 된 무대, 어떤 기분이 들던가.유민규 : 일상으로의 복귀, 특별한 감흥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다시 돌아온 거구나, 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Q. 우연히 시작한 것이지만 모델 일 자체는 좋아했었나보다.
유민규 :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은 거니까. 그래서 톱모델이 되고자 분투했더 시간도 있었다.
Q. 그러다 연기로 방향을 튼 이유는.
유민규 :모델 일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연기에도 관심이 생겼다. 직접 뛰어다니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1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잘 안되더라.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다시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모델에서 톱이 되자’라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모델일에 집중했는데, 오보이 프로젝트를 통해 드라마를 찍게 됐다.
Q. 그리고 이제는 ‘빛나는 로맨스’로 일일극에도 데뷔했다. 사실 일일극 연기는 전형적인데, 그래도 여전히 재미있던가?
유민규 : 내가 연기한 기준이라는 친구는 전형적이면서도 전형적이지 않다. 캐릭터의 전형성 보다는 처음 하는 일일극이라는 점에서 즐거웠다. 쟁쟁한 배우들 사이 드라마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해줬다.
Q. 극 말미 기준이 엄마의 비밀을 알게된 뒤, 소리를 지르는 신이 등장한다. 마침내 등장하는 폭발적인 감정신, 준비를 많이 했을텐데.
유민규 : 힘들었다. 원래 성격 자체가 소리 지르는 사람이 아니다보니 더더욱. 심지어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견미리 선배님께 그렇게 해야한다 생각하니까 마음도 아팠다. 그리고 정말 이 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60부 정도부터 이 신 걱정을 했을 정도다. ‘과연 언제 터질까’ 긴장도 했다. 대본을 본 순간에는 ‘드디어 왔구나’ 했다. 하지만 감정연기는 그렇게 많은 연습을 하지 않았다. 연습하면 더 힘이 빠져서 못할 것 같아 대사만 외우고 할 때 확실히 터뜨렸다. 그래서였나. 실은 감독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신이라 ‘과연 쟤가 잘할 수 있을까’ 하셨던 것 같다. 음, 잘 한 것인지 아닌지는 이미 내 몫은 아니라고 본다. 나로서야 아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8개월의 일일극 여정까지 끝낸 그는 이제 어디로 향할까
Q. 유민규라는 사람의 인생을 크게 간추려 본다면 운 좋은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그 안에 의외의(?) 행동력과 집념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유민규 : 성격자체가 하나 시작하면 끝을 보는 편이긴 하다. 검도도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걸 보면. 그리고 모델 일도 누나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내 마음이었다. 실은 키가 크기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분들이 ‘모델 하라’고 말씀해주셨지만 와닿지 않았다. 스무 살 때는 누나가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줘서 신청한 거라 나가게 된 거였다.
Q. 큰 누나가 엄마같겠다.
유민규 : 아니, 작은 누나가 그렇다. 간섭을 얼마나 하는지, 귀찮아 죽겠다. 하하.
Q. 자. 유민규의 황금기는 언제? 혹시 런던에서 쉼표의 시간을 가졌을 때일까?
유민규 : 아니, 황금기는 지금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 중 현재가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나중에 더 잘 되면 그 때 또 ‘지금’이라고 이야기할테지만, 지금으로선 지금이 황금기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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